(제9강) 여자의 후손! (창 3:15-2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관리자로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곳은 '집 걱정도 없고, 은행이자 걱정도 없고, 질병이나 사고의 걱정도 없고, 기름 값 오른다는 걱정도 없고, 입시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 또 진로문제 때문에 걱정이 없고, 옷을 걸칠 필요 없고,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럽지도 않고 죄질 생각도 없는데, 먹을 것은 무수히 많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후며, 세월이 흘러가도 주름살 하나 생기지 않고 싱싱하게 살 수 있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너무 좋은 환경가운데 우리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행복을 지키는 한 기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선악과'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어떤 의미입니까? 인간을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나무였습니다.
⑴그 나무를 통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⑵그 나무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⑶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동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함입니다.
⑷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 나무를 보면서, '나는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라는 질서를 알게 하고 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만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것을 어기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것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창2: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금지 명령을 어겼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뱀은 여자를 유혹했습니다.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이것을 죄라고 하는데 그 죄 성은 유전되므로 '원죄'라고 합니다. ◀제목소개!▶
사람은 분명히 자기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즉 'Yes냐? No냐?'가 분명해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맞는 것은 예라고 분명히 하는 것이 도덕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에 '아니요'하며 단호히 뿌리치자 못하는 것이 공통적인 약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유혹하는 사단은 뿔이 나고 얼굴이 흉악하게 생긴 괴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정이 천사 같고, 상냥하며 말씨가 간드러지며 포장된 모습으로 우리를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귀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험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들의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찔러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밤대로 변경하다가 뱀이 꾐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뱀의 말을 더 듣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범죄하고도 솔직하게 회개하지 아니하고 책임을 서로 전가만 하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각각 형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꾀어서 죄를 범케 한 뱀도 저주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14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하와를 꾀어서 죄짓게 만들었으니 뱀에게 '네가 모든 육축과 짐승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이나 먹고 살아라'고 저주했습니다.
여기 '모든 짐승보다'는 모든 짐승 가운데서 뱀은 사단의 도구로 전락한 뒤 짐승들로부터 경멸당할 것을 말합니다. '배로 다니고'는 '천박하고 미천한 존재로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종신토록'은 '너의 생명이 끝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은 뱀에게 영원한 저주를 명하셨습니다.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수고와 해산하는 고통을 주셨고, 또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는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므로 땀 흘리고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또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죽음을 선언했습니다.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말씀은 장차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뱀의 머리를 완전히 밟아 버리고 마귀의 권세를 꺾어 버리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비한 것은 벌써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타락 때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운 하나님은 죄에 대한 당연한 처벌을 내리시는 중에서도 저들의 후손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는 사42:3절에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귀는 일시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꾀어 승리한 것 같지만 결국은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마귀의 권세와 머리를 밟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
우리는 현실 속에서 종종 불의가 승리하고 정의가 패배하는 모습을 봅니다.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업하는 사람들보다 불법을 자행하고 세상 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업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진리가 어디 있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불법과 마귀는 일시적으로 승리한 것 같지만 결국 파멸되고 맙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눅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기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부자는 얼마나 사업이 잘 되었으면 날이면 날마다 거래처 사람들을 불러놓고 기생파티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영적인 사람 거지 나사로는 하는 것마다 망했습니다. 그래서 거지꼴이 되어 부잣집의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밝히신 진리대로 그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삶의 마지막 길에 하나님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부내였고, 부자는 음부 지옥으로 떨어져 물 한방을 조차 먹지 못하는 몸부림 속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보이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지옥과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분명히 천국과 지옥은 있으며 분명한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
인류의 역사는 여인의 후손과 마귀의 후손 사이의 투쟁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도 마귀의 후손들이 항상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여인의 후손이 승리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아담과 하와의 실패에서 우리가 귀한 진리를 발견하고 그들의 실패에서 우리를 돌이켜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사람이 아니라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아담의 죄를 사함 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그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이요, 그 십자가의 사건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과 다시 맺은 새로운 언약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만이 절대 주권자 되심을 명심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주권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오, 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그의 청지기요, 그의 종입니다. 종은 하나님의 일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렘33:2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일이 바로 주를 섬기는 자세입니다. /할/ 어떻게 맡겨야 합니까? 믿음으로 기도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할/
우리가 맡기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그 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철갑 차로 무장한 애굽의 군인들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에 갇힌 것입니다.
그때 모세는 인간적인 방법을 가지고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희망에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출14:13-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니 홍해 바다가 갈라져 육지 같이 건너가게 되었고 그 뒤 다시 하나님이 일을 하시니 물결이 애굽의 군대를 다 앗아갔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느 날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말씀대로 순종한 하인들이 물 항아리를 아구까지 채웠을 때 하인들에게 명하여 그물을 떠나 연회장에게 떠다 주라고 했을 때, 처음보다 더 좋은 포도주를 만드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시는 일을 자청하십니다. 다만 그분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 인생들을 향해 '저주에 매여 살지 말고 일의 주인 되신 나에게 와서 저주에서 해방을 받고 쉼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여자의 후손의 초청은 유효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어놓아라! 너희 가정의 문제를 내어놓아라! 자녀의 문제, 생활의 문제를, 사업의 문제를, 질병의 문제를, 그 어떤 문제에도, 짐을 내어놓으라'고 당부하신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십자가에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 버리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
주님은 마6:31-3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할/ 그런데 주님은 마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일해 보십시오, 가르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모이기에 힘쓰고 성도들과의 사랑의 교제를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해 보세요! 그리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믿/
미국의 한 교회에서 병자들이 고침 받은 기적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젊은이가 그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소곤거립니다. '저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새 다리를 주실 줄을 기대하나 봐!' 그 말을 들은 젊은이가 뒤돌아서 말하기를 '물론 새 다리를 기대하지는 않소! 다만 한쪽 다리 없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러 왔소!'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입니다. /할/
오늘 본문 15절의 여자의 후손은 한 마디로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그 분 앞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담아 네가 벗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자의 후손은 생각하라! 너의 부족을 생각할 때, 여자의 후손을 생각하라! 땀이 나고 가시밭과 엉겅퀴가 나는 생활 속에서 아담아 여자의 후손을 생각하라. 너희들이 지은 죄! 너희를 유혹해서 죄를 범하게 한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여자의 후손을 생각하라!' 이런 묵상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한마디로 여자의 후손이 아니고는 죄인은 살 수 없고, 여인의 후손이 아니고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없고, 죄에서 사망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아멘!/
▶16-17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범죄의 결과입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①하와의 범죄의 결과입니다.
⑴해산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16절에 '수고하다'는 히브리어의 뜻은 '고통을 당하다, 괴로움을 당하다'입니다. 여러분 뭐니뭐니 해도 여자가 받는 가장 큰 형벌은 잉태하여 해산하는 고통입니다.
⑵남편을 사모해야 합니다. 16절 하반절에 '남편을 사모한다'는 말은 '늘 남편을 기다린다는 말이요, 남편의 도움을 기다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아내는 남편을 잘 도와주고 돕는 배필로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돕기는커녕 죄 속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와가 죄를 범한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에 이끌렸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한 마디로 남편을 제대로 돕지 못했으니 이제는 남편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사모하면서 살라고 명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편은 죄로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후에 바울은 딤전2:11-12절에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그 이유를 바울은 1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억울하지만 '너는 남편을 사모하며 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아내를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남편은 아내를 잘 다스리시고 아내는 그 남편의 다스림을 잘 받는 즉 순종하는 그런 가정이 질서가 있는 가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권신장이 엄청 커져서 이런 이야기가 맥이지 않지만 성경의 진리는 분명히 아내는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됩니다. /할/
②아담의 범죄 결과입니다.
⑴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모든 기득권을 아담에게 주셨는데 아담이 그 기득권을 포기하고 마누라의 말에 빠져 죄의 추종자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책임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몸 된 제단을 섬기고 가꾸고 보살피라는 기득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득권을 잘 감당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믿/
⑵17절의 하반절을 보세요!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담이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땅이 아담의 부주의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18절에 보니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으로 저주를 받았으니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8-19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몇 가지 진리를 찾아보겠습니다.
①인간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홀로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고 마지막 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왜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주권행사를 못하도록 하기 위해 천지와 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에 인간은 마지막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우주 창조에 기여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처음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평안히 살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은총이 예비된 에덴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비된 은총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했습니다. 뱀의 꾐에 빠진 그들은 하나님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준비하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스스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그 결과도 땀을 흘리며 살라는 비극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적인 운명이 그들을 끝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그의 죄의 유산이 미치고 만 것입니다.
②아담이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지한 것이 죄라고 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먼저 무엇을 못 깨달았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소유주이시며 절대 주권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아무리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얼마 전에 방송을 들으니까 명동 어떤 은행자리가 평당 몇 억이 훨씬 넘는 땅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부동산 경기가 약간 시들하고 있지만 그래도 서울 땅값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자기 이름 앞으로 등기가 나왔다고 해서 자기의 것입니까?
여러분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대한민국의 땅덩어리가 누구의 것입니까? 삼성의 땅입니까? 현대의 땅입니까? 재벌 회장의 땅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국가의 땅도 아닙니다. 원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국가가 임시로 관리 할 뿐입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가 그 소유를 임시로 맡아서 관리하는 것뿐입니다. /믿/
여러분 여기 '땅'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직장일 수도 있고, 사업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그 현장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맙니다. 한마디로 수고의 대가가 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패와 좌절을 안겨줍니다. 아담은 종신토록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③아담은 피조물인 자신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귀가 와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했을 때 '아니다.'라고 단호히 물리쳐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배격하시고, 진리에 맞는 소리는 '아멘!'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④아담은 하나님을 모시는 청지기요 종의 신분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소유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요 관리자입니다. 관리자는 주인이 시키는 일에 순종하면 주인의 은총을 받습니다.
부자 집의 머슴들은 시키는 대로 나가 일하면 때맞추어 새참을 주고 점심을 주고 새경을 줍니다. 한 마디로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반역해서 얻어진 것은 무엇인가? '땀을 흘리며 종신토록 일을 해야 의식주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절망의 자리로 떨어진 것' 뿐입니다. 그 저주로 인하여 오늘 우리 인간들에게는 '죄악과 미움과 전쟁과 질병과 가난과 고통과 죽음을 당하며 살아가는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종신토록 땀을 흘리고 수고하다가는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곧 인간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인간의 죽음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육적인 죽음보다는 영적인 죽음의 고통은 이루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고통의 끝자락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지옥 불입니다. 이런 절망에 처한 인류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당신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계심을 우리는 본문 1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기 보면 아담이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주시겠다는 이 사실을 그가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러분 성경 밑에 내려다보시면 하와의 뜻이 쓰여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담이 죽음을 선고받은 뒤에 자기 아내를 죽음과는 대조되는 이름인 하와(생명)라고 부른 것은 아담이 하와의 역할을 '모든 산 자의 어미'와 연결시킨 것을 볼 때 15절의 약속인 '여자의 후손'을 확실히 믿음으로 받아드렸다는 증거입니다.
'생명!' 이렇게 완전히 실패한 자에게 다시 새롭게 하시는 복음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사탄의 권세를 파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주여! 믿습니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부인의 이름을 생명이라고 지었다고 주석 가들은 말합니다.
아담은 부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름짓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야곱은 원래 '약탈자, 사기꾼, 협잡꾼, 빼앗아 먹는 놈'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사기꾼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셨습니다. '승리자'란 뜻입니다.
아브람도 아브라함으로 사래도 사라로, 또 신약에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울이 바울로 바꿔졌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에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겸손해 졌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만나면 인간은 겸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하와의 이름을 보시고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우리는 본 절에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한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입으리라'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시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입혀 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옷이 있습니다.
아마 인간의 옷은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몸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가리는 목적이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옷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범함으로 눈이 밝아지면서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눈이 밝아져 벌어 벗은 수치를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로 해서 입었습니다. 여기 무화과나무 엮은 치마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몸을 가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린다는 말은 드러나는 곳을 숨긴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만든 옷은 타락한 자신의 모습을 가릴 목적으로 지었습니다. 범죄의 죄악상을 가리고 수치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 입은 옷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위선과 거짓을 이 치마로 가리고 있습니다. 악하면서도 선한 채, 원수로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체, 모르면서도 아는 체, 게으르면서도 부지런한 체,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위선과 거짓의 옷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의 옷을 아담이 인간적으로 만든 옷입니다. 이 옷으로는 일시적으로 가리어지는 것 같지만 영원히 가리어지지는 않습니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범한 인간들에게 양의 가죽으로 옷을 입혔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 수치스러운 몸을 감추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표한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 잎은 우리에게 완전한 부끄러움을 가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무화과는 인간의 방법이고 노력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우리 인간의 능력은 오늘날까지 별의 별 옷으로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했지만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벌하시고 멸하시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이 사랑의 옷을 다시 입혀 주셔서 에덴동산을 떠나서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주어진 사명을 다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옷은 앞으로 온 인류의 구세주로 인류의 의복이 되셔서 온 인류의 가죽옷이 되셔서 우리를 모든 죄의 저주와 부끄러움에서 가려 주실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요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에게 가죽옷이 되어 주시듯이 오늘 우리의 가죽옷이 되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죽옷은 하나님의 사랑의 옷입니다. 은혜의 옷입니다. 긍휼의 옷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옷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행위로는 아무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백 가지를 잘 해도 죄를 지으면 죄의 능력이 우리를 다 침몰시키는 것입니다.
이 옷은 거룩한 옷입니다. 사람이 만든 옷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신 옷을 입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롬13: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갈3:2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는 예수로 옷 입고 사는 잡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 주님이 주신 세마포 옷 거룩한 옷을 입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인간이 만든 무화과 잎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내 행위의 옷으로는 아무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보혈의 옷으로 우리가 천국까지 갈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 아무리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려고 해도 말라 버리고 다시 드러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스스로의 행위로는 자기의 죄의 몸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이시는 어린양이 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을 때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고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어린양의 피는 구속의 은총입니다. 바울은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아담은 하나님이 무서워 숨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졌습니다. 세상의 자연 종교는 하나님의 진노,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가죽옷을 입은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그들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기는 종교입니다. /할/
▶22-23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여기 그룹이란 천사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천사들로 지키게 하시고 아담을 추방시켰습니다. 왜 추방시켰습니까? 죄를 범한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목적은 죄인들을 주려고, 죄인들이 살게 하기 위해 만든 처소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짓기 전에는 그곳에서 살수가 있었으나 죄 지은 후에는 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다음에는 오래 이 동산에서 살았다고 하면 그들은 여기에서 또 다른 죄를 지었을 것이고 그들의 여자들이 이곳에서 범죄 했을 것입니다. 4장에서 나옵니다만 아담의 자손 가인이 자기 동생을 돌로 쳐죽이는 살인 사건이 나옵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에덴에서 살았더라면 첫 살인사건도 하나님의 성산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죄인들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억지로 여기에서 죄짓지 말고 경건하게 살라고 하셨다면 오히려 죄인들에게 큰 불행이 임합니다. 만일 믿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교회에다 불러다 놓고 '술과 담배를 금하라. 성경을 읽으라, 기도하라, 헌금하라, 봉사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못하겠다고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연약함을 아십니다. 아담은 자업자득한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에덴을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아담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믿/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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