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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에서 추석을 지낸다! (레 23;33-43)
추석입니다.
추석이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보름달
2. 송편
3. 벌초
4. 제사
5. 민족 대이동
이런 것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나는 추석이면 늘 추억되는 사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2005년 44명 목사님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지낼 때였습니다. 한 달 가량을 지내다 보니 모두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모두 갈릴리 바다로 나갔을 때가 바로 추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석달은 유난히도 밝았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갈릴리 마을의 야경이 갈릴리 호수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환상적이었습니다.
갈릴리 해변가에 불을 피워놓고 바베큐 파티를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춤을 추면서 즐기던 추억은 추석이면 늘 생각나는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하는 계절인 가을이면 초막을 만들어 7일 동안 초막에서 지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41)
초막절은 영원한 규례입니다. 지키다 마는 절기가 아닙니다.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금까지 계속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지킬 것입니다.
나는 많은 초막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가을에 추수한 많은 열매들로 초막을 만들어 그 속에서 온 가족이 삽니다. 지붕위에 만듭니다. 뜰안에 만듭니다. 성전에 만듭니다. 현대적으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배란다에 만듭니다. 심지어 초막절에 낙타를 타야만 하는 사람은 낙타위에 만듭니다. 배를 타고 가야하는 이는 배위에 초막을 만들어 잘 때에는 그 곳에서 자야 합니다. 여행중이라 호텔에서 지내야 하는 이는 풀을 뜯어 호텔 지붕위에 조금이라고 올려 놓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모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적으로 추석에 추억하며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1. 추석에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추석이나 초막을 다 같이 추수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풍요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추석을한 가위라 하면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추석에는 추수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봄에 심고 여름에 땀을 흘리며 가꾼 것을 가을에 추수합니다.
심으면 거두게 됩니다.
거두려면 심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7-10)
1882년 우리나라 감리교 평신도였던 윤 치호 선생이 미국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국에는 단 한 명의 선교사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짐을 싸려다가 200불이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그 돈으로 마지막 귀국 선물을 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리교 남선교부를 찾아 가서 부탁하였습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 사용하여 주십시오.>
오늘 날 한국의 감리교회가 잉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1885년 4월 5일에 한국에 처음으로 아펜셀러 선교사를 파송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82년에 200불 심은 것이 3년 후에 싹이 나고 100년 후인 오늘 날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복음을 수출하는 데 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나는 몇 년전에 박 경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 집회를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되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한 명도 없을 때 길거리에 나가 전도하여 중고등부를 만든 목사닙니다. 이산 가족을 만난 듯이 반가웠습니다. 교회가 잘 부흥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조 영순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넓은 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원부지로 묶여서 못쓰는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조 권사님은 그 땅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불렀스니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이 찬송을 100번 씩 매일 불렀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불렀습니다. 추우면 두터운 옷을 입고 두 손들고 꼭 엎드리면 100번 씩 이었습니다. 내가 한번 불러보니 한번 부르는 데 45초였습니다. 100번이면 4500초 그러면 75분이었습니다. 한 시간 반을 팔이 떨어져 나가라 죽으면 죽으리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땅이 모두 주택지로 바뀌었습니다. 70억을 보상받았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7억원을 하나님께 헌금하였습니다. 70세된 노인이었습니다.우리 교회에도 여러 번 오셔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건축이 되었습니다.
기도도 심으면 납니다.
우리 교회 곳곳마다 <기도는 임신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두 분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임신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니?>
<나도 몰라. 기도하면 임신이 된다는 것이 아닐가?>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것이 임신되었다가 언젠가는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거두게 됩니다.
추석은 결실을 추수하는 계절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나게 합니다.
하나님께 심은 것은 반드시 싹이 나게 되어 있고 반드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2.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추석은 알곡과 죽정이를 가르는 절기입니다. 한 마디로 초막은 심판입니다. 초막은 원두막입니다. 원두막인 초막에 알곡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쭉정이는 밖에서 불태워 버립니다. 이것이 초막입니다. 그래서 추석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초막절 즉 추석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중요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초막절에 가르치실 때에는 외쳐 가르치셨습니다(요7;28)
성경전체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외쳐 가르치셨다는 것은 이 곳뿐입니다. 그 때 외치신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3-37)
알곡과 쭉정이를 분명히 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찾아도 찾지 못 할 것이고 예수님에게 오는 자는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초막 즉 추석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과일이나 새 곡식을 먹으면서 맛만 느끼지 말고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어느 판사가 지나가다가 물에 빠져 죽으려는 사람을 건져주었습니다. 인연이 되어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살인을 하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판사였습니다.
<재판장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전에도 내 생명을 살려 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사형수는 애걸복걸하였습니다. 이 때 재판장은 준업하게 말했습니다.
<오냐. 그 때는 내가 너를 구해준 구세주였으나 지금은 너를 심판하는 사람이심판주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심판주가 되셔서 생명과 죽음을, 양과 염소를, 지옥과 천국을, 어둠과 광명을 엄격하게 갈라 놓으실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때는 뇌물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과 사정이 효력을 발생하지 못 하게 될 것입니다. 꼭 하나 정확하고 냉정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피로 닦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죽으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죽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심문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는가?>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웠는가?>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아닙니다.>
목사님은 곧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밝은 빛이 환하게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구세주는 이 목사님을 껴안고 보좌를 향해 올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했고 항상 깨끗하지 못했으나 세상에서 그는 저의 편에서 있었으니 지금 여기에서는 제가 이 사람의 편에 서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 편에서 살면서 먼 훗날 심판대에서 우리를 시인하실 것입니다.
그 순간을 바라보며 깨끗하고 성결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 날이 모든 종결의 날입니다.
1928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종군 작가인 엘리위젤이 쓴 <밤>이란 책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나치 정권 아래에서 대량 학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일에 주동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인 아히만이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습니다.
어느 날 큰 거리에 아치를 세우고 남녀 각각 한 사람씩과 한 어린 소년의 목을 아치에 매달아두고 많은 사람들을 그 밑으로 지나가게 하며 위협했습니다. 이때 종군 기자이며 작가인 엘리위젤이 한 독일군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능청스런 독일 군인은 냉소적으로 말했습니다.
<지금 막 죽어가는 저 소년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
종전 후 아히만은 자기의 범죄에 대한 댓가가 너무나 두려워 잠적해버렸습니다. 유대 비밀 경찰은 총력을 기울여 아히만을 찾았습니다. 몇 년 걸려서 드디더 아르헨티나 어떤 시골 공장에서 수염을 기르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이름까지 고쳐 살던 아히만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방탄 유리 상자에 넣어져서 최고 재판소의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위젤은 그의 책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고 두 번째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히만을 심판하고 계신다.>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추석에 우리는 열매와 쭉정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3. 추석에는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짓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기억하라.>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본 집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해마다 추석이 고향을 찾기에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0시간이 걸립니다. 미국가는 데 10시간 좀 넘으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7일간 초막절이면 초막에서 지내면서 애급에서 나그네 되었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땅은 나그네 땅이며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영원한 천국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생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서울에도 200여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데 그들도 초막을 만듭니다. 서울에 만들어 놓은 초막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훈련기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땅에 나그네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초막같은 일시적인 집에 불과합니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베드로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이 나그네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70년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이 나라 저 나라, 이 곳 저 곳 떠돌아 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1948년 독립할 때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남아 살고 있는 이들도 유목민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떠돌아다니면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인생은 모두 나그네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다가 부자가 된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도 그렇게 애쓰고 힘써서 번 돈이 아까웠습니다. 그는 죽을 때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놓은 땅을 모두 팔아라. 그리고 내가 은행에 넣어둔 돈도 다 찾아라. 그리고 내 무덤에 나와 함께 묻어다오.>
유언이니 할 수 없었습니다. 수 십억원을 무덤에 넣고 매장하려 할 때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친구가 오더니 매장할 때 당좌 수표 한 장에 수 십억 상당의 수표를 써서 무덤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돈은 내게 주시오.>
그는 현찰을 다 갖고 수표 한 장을 시체와 함께 파묻었습니다.
나그네 인생은 이 땅은 다 사라질 것임을 알고 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나그네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쓰러지기 쉽고 넘어지기 쉬운 것이 나그네입니다. 살얼음 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처럼 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를 신학교 때에 가르쳤던 교수님은 매일 속 옷을 깨끗이 갈아 입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죽을이지 모르기에 항상 몸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면서 종말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나그네의 삶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초막절인 추석을 지내면서 우리는 나그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향을 찾으면 영적인 고향 천국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평양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70대 노인들이 30명 가량 있었습니다. 이 때 예쁜 초등학교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자리인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모두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습니다.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 강에 놓으면 바다로 가서 살다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추석에는 고향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정말 고향은 천국입니다. 초막절 추석에는 초막에서 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추석입니다.
추석에는 초막에서 살면서 하나님은 세 가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1. 추석에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2.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3. 추석에는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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