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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문제는 부모의 책임입니다
삼상2:22~26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설교: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왜 한국교회는 5월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것일까요? 한국교회는 5월 5일이 어린이 날이기에 그날을 전후해서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 오고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은 왜 생긴 것일까요? 어린이만 예배드리라고요? 어린이들을 기념하라고요?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도록 강조하는 주일입니다. 어린이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어린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 알고는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어린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어린이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시고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하시면서 복을 베푸셨습니다.
현대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는 자녀교육입니다. 수많은 가정이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가고 있습니다. 이민자의 70%가 이민의 이유가 자녀교육 때문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자녀교육을 중요시 하면서도 수많은 가정에서 자녀 교육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오늘 봉독한 성경본문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당시의 제사장인 엘리 제사장이 자녀 교육에 실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2:12)
12절을 보면 놀라운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엘리의 자녀들은 불량자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불량자라는 말은 영어성경에는 가치 없는 인간, 불량배, 쓸모없는 자들이라고 쓰였고 어떤 성경에서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제사장의 아들들이 이지경이 되었을까요? 몇 가지 원인 중에 가장 큰 원인은 부모 책임입니다.
자식의 문제의 배후에는 부모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서 어떤 교회에서는 아버지학교를 개설하여 이수한 분들에게 자격증을 발급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다루는데도 시험을 보아 자격증을 발급받는데 하물며 생명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아버지 자격이 있는지 없지 확인도 안하고 낳기만 하면 아버지 되는 줄 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홉니, 비느하스 두 자녀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부모가 자녀에게 모델에 되지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어떻게 제사장의 자녀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을까요? 어떻게 제사장의 자녀가 불량배가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부모의 행위가 자녀에게 전혀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의 영적 권위도 없었고 아마도 제사장의 직무 때문에 자녀들과의 인격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의 성경 교육은 제 일차적으로는 부모책임입니다. 그런데 엘리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부모의 권위 문제,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부모를 부모답게 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의 신앙 문제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지식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자녀의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도 생명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중차대한 책임이 달린 문제입니다.
정말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자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문제를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넘겨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안된다구요? 아무리 설득해도 안된다구요? 그것은 부모의 권위문제이며 태도 문제입니다. 어떻게 믿기에 자식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단 말입니까? 내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내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부모의 책임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억지로 안된다구요? 그러면 금식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매달리세요.
그렇게 해서라도 나와서 들어야 하고 들어야 믿고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제절로 알아서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불신앙이요, 직무유기입니다.
2. 제대로 制裁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엘리는 자기 자식들이 성전에서 성물에 도적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예배를 훼손시키는 무서운 죄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봉사자들과 동침을 합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자식에 범죄에 대해 손대지 못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3가지로 추정됩니다.
1)자녀를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2)자신의 체면 문제 때문입니다.
3)육신의 정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식들을 망하게 방치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손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식이 犯罪하는데도 매를 들지 않으면 하나님이 매를 드십니다. 부모가 드는 매는 종아리에 피를 맺히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이 드시는 매는 생명을 거두실 뿐 아니라 영원한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저주가 임합니다.
하나님이 손보시기를 기다리십니까? 작은 죄라도 방치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잠언23장13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했고
14절에는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했습니다.
잠언29장15절에서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했습니다.
다 커서는 안 됩니다. 어릴 적부터 신앙문제를 가지고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그 아이의 영혼을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동생들을 때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서울에서 있을 때 부모님께서 막내 동생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시켰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교회를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 와서 교회를 다니는데 제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는 너무 멀어서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가까운 교회를 다니게 했는데 어느 날 낌새가 이상합니다. 교회 다녀온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녀왔냐고 하니 다녀왔다고 하는데 얼굴에 거짓말이라는 표시가 있더라구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매를 들고 몇 대 때렸더니 실토를 하는데 교회가 재미없어 만화가계 가서 헌금을 까먹고 놀다가 돌아온 것입니다. 정말 눈물을 흘리며 때렸습니다. 그 동생이 올 가을 목사가 됩니다.
바로 아래 동생은 경찰 경정으로 제주도 해안경비대에 대대장으로 멋있는 선교사역을 하고 있고 셋째는 지난주일 우리 교회 임직식 하던 날 시골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대신하여 매를 들었더니 모두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3.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6절)
엘리의 자식교육 실패는 부모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역할 중에 정말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기도와 모델교육입니다.
엘리와 비교되는 사람은 한나입니다. 그는 평신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그는 기도로 자식을 잉태했고 기도로 양육했으며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서원을 지키며 아이에게 모델 역활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부모의 기도, 이것은 자녀의 앞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통로 입니다. 엘리의 자녀와 한나의 자녀를 성경은 자꾸 비교합니다. 오늘 26절을 왜 그 자리에 기록하였을까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이 말은 엘리 자식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요? 부모가 기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기도가 하나님만 들으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자녀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들어야 하나 자식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동이 있고 응답이 있고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자녀 위에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신앙생활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됩니다. 교육방법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각교육입니다. 말로만의 교육은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입으로 만의 교육은 한계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모습을 보아야 자식도 그렇게 섬기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고 신앙의 외식을 보여준다면 자식들은 정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30절의 하반절을 보세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그렇습니다. 엘리가 하나님을 멸시하니 하나님도 그를 경멸이 여긴 것입니다. 결국 그 자식도 하나님을 경멸이 여기게 됩니다. 한나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니 그 자식 사무엘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이 그 사무엘을 높이십니다.
여러분 자식이 하나님에 의해 높임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본 자식들도 그렇게 할 것이고 결국 하나님이 내 자식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자식에 대한 중대한 책임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도록 해야 하며 과감하게 채찍을 들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여러분 먼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그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을 높여 드릴 것이며 결국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녀를 놓이는 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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