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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요 11:25-27)

by 【고동엽】 2022. 4. 5.
 
부활 목차 돌아가기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요 11:25-27)

 

  신학자 '칼 바르트'는 "기독교는 부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한 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경과 '길버트 웨스트'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반증하기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동안 연구한 뒤에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나 말하기를 "우리는 더 이상 이 같은 반대자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잃어버려진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영웅호걸도 모두 무덤에 매장되었고, 죽음으로 모든 영화가 끝났으며, 한 줌의 재로 돌아갔습니다. 석가도 죽어 무덤을 남겼고, 공자도 죽어 무덤을 남겼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무덤을 남길 뿐 무덤에서 일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덤 가운데서 무덤을 여시고 일어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뉴스입니다. 이 세상에는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소식만큼 위대한 뉴스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영원한 뉴스요,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중의 복음뉴스입니다. /믿/
  이 부활소식은 제자들에 의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지경으로 전파되었고 마침내 2000년이 흐른 후에도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0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을 지키는 성도들의 태도가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①어제(과거)의 사건으로 기념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삶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②내일(미래)의 사건으로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장차 죽은 뒤에 주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삶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 못합니다. 내일 부활할 것은 믿지만 그것이 오늘 나의 삶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③오늘(현재) 삶의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삶이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절은 오늘의 부활절이어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장차 죽은 뒤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는 정도여서도 안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가던 날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이면 백악관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백악관 식구들과 원하는 외빈들이 포함됩니다. 이 일을 놓고 민주당 쪽에서 그리고 부시를 반대하는 언론들이 꼬집기 시작했습니다.
  "백악관이 교회냐? 왜 대통령 집무장소를 사설집회장으로 바꾸느냐 당장 집어 치우라"고 대들었습니다.
  부시의 대답이 멋있습니다. "나는 거듭난 이후 20년 동안 매주 성경을 공부했다. 이것이 나의 생활방법이고 철학이다. 그것을 백악관에 들어왔다고 바꾸란 말이냐?"
  얼마나 당당하고 멋이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변화된 부시의 신앙 인격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런데 내내 교회 잘 다니다가 지위가 높아지고 돈을 벌고 일거리가 많아지면 교회를 멀리하고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힘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기뻐하시고 누구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을 때 어떤 기자가 부시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당신이 이라크 전쟁을 결정할 때 아버지 부시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그 질문에 부시 대통령은 "나에겐 두 분의 아버지가 있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는 텍사스에 있고 더 높은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 나는 더 높은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결정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부시의 신앙입니다. 족집게 도사한테 묻고, 유명하다는 무당 점쟁이한테 묻고, 선거 참모들한테 자문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부활절에 계란의 유래가 있습니다.
  중세 때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의 어느 마을에 '로잘린'이라는 젊은 귀족이 있었는데, 그는 이방 사람들에 의해서 성지 예루살렘이 빼앗겼다는 사실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십자군 전쟁에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로잘린'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로잘린'의 부인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 틈을 타서 하인이 못된 마음을 먹고, 재산을 모두 빼앗고는 '로잘린' 부인을 그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로잘린' 부인은 자기의 식졸들을 데리고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곳저곳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한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친절했습니다. 그들은 '로잘린' 부인과 그의 시녀가 그들의 마을에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때 '로잘린' 부인에게는 닭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동양의 새인 닭은 유럽에서는 아주 귀할 때였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닭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매일매일 낳는 달걀을 먹지 않고 모아두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사랑과 친절에 작은 것이지만 보답을 하고 싶어서 모아놓은 달걀을 삶았습니다. 그리고는 달걀을 예쁘게 색칠을 하고 난 뒤에 '로잘린' 가문의 오래된 가훈을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자!"
  '로잘린' 부인은 동네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 날 오후였습니다. 한 초라한 모습의 소년이 그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어머니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고향집으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그 아이의 손에도 삶은 달걀을 쥐어주면서 병든 어머니에게 갖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삶은 달걀을 가지고 병든 어머니를 찾아가던 도중에 기진맥진해서 허기진 모습으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십자군 병사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병든 어머니에게 주려고 가지고 가던 달걀을 십자군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허기진 병사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 쥐고서 먹으려고 껍질을 까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자기 집 가훈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자!"
  그는 바로 젊은 귀족 '로잘린'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보니까 아내는 어디론가 떠나간 뒤였습니다. 그는 아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기진맥진해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달걀이 계기가 되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잘린' 부부는 그 때부터 부활절이 되면, 달걀을 삶고 예쁘게 색칠한 뒤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데, 그것이 부활절 달걀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메시지의 중심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고 죽은 후 그 대신 사도 한 명을 뽑을 때도 그 자격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 중에서 제비뽑아 맛디아를 세웠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부활하시기까지는 삼일간입니다. 시간으로는 금요일 오후 세 시에서 일요일 새벽까지로 보아서 대략 35시간 내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고요히 무덤에 계신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는 매우 분주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그 날의 안식일보다 긴장이 감돌던 안식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무리들은 과연 예수가 살아날 것인가? 또 살아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보낸 안식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아침에 먼저 활동한 사람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그런데 그 아침 그 무덤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돌은 무덤에 출입하는데 절대 방해물입니다. 그리고 군병들이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옮겨져 있습니다. 천사가 그 돌을 굴려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에는 시체가 없습니다.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순서를 잠깐 추측해 보자!
  ①금요일 아침에 빌라도의 사형 선고가 떨어졌습니다.
  ②금요일 오전 9시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③오후 3시 운명하십니다.
  ④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맞아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심장 파열의 증거)
  ⑤그 당시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이 무덤을 제공하고, 니고데모와 장사지냄.
  ⑥돌문(2톤)으로 무덤의 문을 막고, 로마 황제 인봉을 침.
  ⑦3일간 로마 병정이 지킴. (국권 발동)
  ⑧새벽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나라 천사들이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음. 형상이 번개같고 옷은 흰 눈같이 희었음.(마28:2∼3)
  ⑨수직하던 자들이 무서워 떨며 죽은 자 같이 되었음(마28:4).
  ⑩천사가 여인들에게 세 가지로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세상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무서워 말라,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할/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 나셔서 하늘에 계시고 만 왕의 왕으로 우리의 경배를 받고 계십니다.
  ▶"가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⑪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 알리려 갈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인들은 만나주심(8-9). 

  ⑫파수 군들은 성에 들어가 예수 부활 사실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림(마28:11).
  ⑬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고민에 빠져서 의논 결과 파수 군에게 돈을 많이 줘서 거짓보고를 하게 함(그의 제자들이 훔쳐갔다고)(마28:12∼15).

 

2.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후에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①구약의 할례가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죽는 것으로 물 속에 들어가고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해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의 연합입니다.

  ②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역사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을 지킨 것이고,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종지부 찍고 새로운 주의 날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이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3.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구속 사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아담의 무덤도 없고, 노아, 아브라함, 다윗의 무덤도 없습니다. 유대의 역사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히스기야 왕의 무덤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나 바울이나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무덤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무덤의 요소는 시체입니다. 시체가 있어야만 무덤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시체가 없는 빈 무덤은 무덤으로서 성립되지 않습니다.

  ①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숨겨 놓고 부활했다고 거짓말한다면 그 거짓말을 위하여 제자들이 순교하였겠습니까? 진리를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거짓을 위하여 죽은 이는 없습니다. 잠시 동안은 속일 수 있어도 2,000년 동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은 속일 수가 있어도 자기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 북경에 가면 천안문 광장 한 쪽에 모택동이의 미이라는 보려고 뱀처럼 길게 줄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쏘련 모스코바 붉은 광장 한 쪽에는 레닌의 미이라 시신을 보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했었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뼈가 지나갈 때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하기를 "만약 예수의 무덤에서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했다면 기독교는 산산 조작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을 부활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②빈 무덤은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군중들이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가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질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군중은 놀랐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자복하며 하루에 5천명씩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로마는 패하여 자기 나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사망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이름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할/

  ③빈 무덤의 보상은 부활의 새 생명입니다.
  사망은 죽고 영생이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믿는 자는 그 다음 열매로서 사는 것입니다.
  고전15:16-20절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벧전1:3-4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④빈 무덤은 부활의 완성입니다.
   부활이 의미하는 진리의 최고 가치는 완성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며 진리의 완성이요 승리의 완성입니다. 모든 것의 완성이 바로 부활입니다.
  믿음은 99점짜리가 없습니다. 기도도 99점짜리가 없습니다. 전도도 99점짜리가 없습니다. 60점 이상은 합격이고, 60점 이하는 불합격이라는 이런 원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섬김이나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해야 바쳐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완전은 하나님 앞에서 바쳐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전한 존재인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불완전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완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과 연합함으로써 예수 안에서 우리의 믿음도, 기도도, 헌신도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불완전이 메워져서 하나님 앞에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도 불완전한 예배입니다. 예배드리는 회중 가운데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분석해보면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는 온전해야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예배가 됩니다. 그 불완전함을 누가 메워 주십니까?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메워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함께 함으로써 우리의 부족한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믿/

  ⑤빈 무덤은 이제 우리에게 부활의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감사하고 부활의 주님께 경배하는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부활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양심이 부활되어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지성소입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윤리적, 도덕적인 부활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이 온통 가치관의 상실로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심령의 부활이 일어나야 삽니다.
  죽은 심령, 잠을 자고 침체된 심령이 영적인 부활(부흥)을 경험하여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을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로! 찬양으로!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축복의 부활이 일어나야 합니다.
  불통이 형통으로! 가난이 부자로! /할/ ▶신통하면 영통하고, 영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합니다. 

 

4. 우리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요11:25-27)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르다를 찾아오셔서 그를 위로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마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27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의 이 고백이 위대합니다. "나의 부활이요, 나의 생명이신 분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내가 확실히 믿나이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르다의 이 고백을 통해 그 집에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죽은 나사로를 다시금 살려주셨습니다. /할/

  ①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당신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요2:19절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금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살아나실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기적을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리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기 시작한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②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26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육이 산 사람이 아니고, 영이 산 사람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사람, 곧 영원히 산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육신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Moody가 임종할 때 사람들이 둘러서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때 무디는 감격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영화스럽도다!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임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여러분,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났다 할지라도 믿지 마십시오! 무디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늘로 올려 가지 않습니까?"
  그는 환희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③본문에서 중요한 진리는 우리도 마리다의 부활신앙을 본 받아야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실 때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나의 주님은 나의 부활이시요, 나의 생명이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마르다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나의 부활이시요, 나의 생명이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내가 믿습니다."
  마르다의 이 고백이 그 가정에 놀라운 부활의 능력과 부활의 축복이 나타나서 죽었던 나사로가 나흘만에 예수님이 다시금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할/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태양 빛이 아무리 강하고 밝게 비추인다 할지도 뚜껑을 닫아놓은 항아리 속은 비출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이시요, 우리의 생명이 되시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이 주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서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5.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어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눅24:24-34)

 

  ①어두워져있던 영안이 밝아졌습니다.
  눅24:31절 "저희 눈이 밝아져 그 인줄 알아보더니" 드디어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바로 알고 믿는 것이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②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눅24:32절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을 들을 때 그들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은 헬라어에서 '현재분사 수동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만 뜨거워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뜨거워져있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용기가 생기고 힘이 생겼던 것입니다. '뜨거워졌다'라는 말은, '감동되었다'라는 말입니다.

  ③내려가던 길을 돌이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눅24:33절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신앙이 올라갑니다. ▲사랑이 ▲능력이 ▲소망이 올라가게 됩니다.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올라가게 됩니다. ▲신앙 인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마음 문을 열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심으로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라가고 또 올라가 차원 높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어지면 아멘!/

  ④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눅24:34절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만난 일을 증거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일생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힘차게 증거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접한 우리들도 그냥 있어서는 안됩니다.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6.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 당시 40일간 지상에 계시면서 13번이나 제자들에게 오셔서 만나주셨습니다.
  요20:19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께서 오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들도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①"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의 주님의 제 일성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보고 요20:20절에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그들은 더 이상 슬픔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기쁨의 사람들로 바뀌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에 평강을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20:21절에서 다시 한번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②"성령을 받으라!"(요20:22)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을 물리쳐 주신 후, 제자들이 담대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담대해졌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요16: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도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세상의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미 이겼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있는 그 어떠한 두려움이라도 물리치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벤허"란 영화는 '류 월레이스'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어느 날 '월레이스'는 자기의 절친한 친구요, 유명한 무신론자였던 '로버트 잉거솔'의 부탁을 받고, 기독교를 부인하는 글을 써서, 기독교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자고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는 그 후 이년 동안 세계 각 국의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기독교를 완전히 부인하고, 없애 버리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2장을 쓰는 순간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만나 주신 것입니다. 주님 만나고 다시 쓰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벤허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자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믿/ 본문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할/  (2005년 3월 27일 부활절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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