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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의 은혜! (시 116:12-13)
이제 역사적인 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불과 30여 분만 지나면 금년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해의 첫날 첫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 감격스럽고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말 그대로 송구영신의 시간입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더구나 이 송구영신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림으로써 맞이하게 된 것이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을 맞이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난 한해를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를 손으로 꼽는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나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좋았던 일, 은혜로웠던 일, 기뻤던 일, 잘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어려웠던 일들만 오래 남아 있어 그것을 마음에 묻어 두고 되씹으며 기억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깊이 생각을 해보면 감사하고 은혜로웠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1. 먼저 한해를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건강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제일가는 자본이자 소중한 재산입니다.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미래도 잃고 꿈도 잃고 일터도 잃고 물질도 잃고 다 잃고 맙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이 한해를 살아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금년 한해만 해도 건강을 잃은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질병이 얼마나 많고 또 무서운 병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은 무서운 병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이 병들었다 하면 치명적인 병들입니다. 불치의 병들입니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병원엘 가지 못합니다. 무슨 진단이 내려질까 두려운 마음 때문입니다.
또 금년에는 수술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수술해서 입원한 분들을 찾아가 보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시는지 모릅니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몸에 수술 자국 남기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우리들이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아온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늘 건강하기만 하면 이러한 건강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건강의 고마움은 건강을 상실해 본 분들이나 실감나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늘 건강했던 분들은 때로 이 건강의 고마움을 모르고 경거망동하기도 하는데 그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은 언제 상실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문제만큼은 사람이 장담할 일이 아닙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그날 그날을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길이나 미래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 나의 건강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오늘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 본문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 은혜를 우리들이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습니까?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우리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봉사하고 일하는 생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의미 있는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면서 그 감사한 마음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2. 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여러분은 죽음은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만큼은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닙니다. 요즘 성도들이 죽는 것을 보니까 너무나 허무하게 죽습니다. 보니까 순서도 없고 준비할 기회도 없이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렵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비로소 성숙해진다고 합니다. 사람이 철들지 않고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죽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겸손해집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자꾸만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고 실감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 더욱 이 마음이 간절해지고 깊이 있게 생각되어집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부르심을 받는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도 어느 날 주께로부터 부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차례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부름에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부르시면 나도 하던 일을 그대로 놓아 두고 그냥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 만족하게 갈 수가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는 그 누구도 만족하게 대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심각합니다. 이것이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도 사람이 시기적으로 때가 되어서 죽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행복이고 축복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반드시 오래 살고 장수하는 것만이 축복은 아닙니다. 나이 많아서 병석에 오래 누워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욕이고 불행일 수 있습니다. 노년에 망령이 들어서 모두가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들을 보면 사람은 적당히 살아가다가 적당한 때에 부름을 받는 것도 행복이고 축복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가도 마음이 아쉽고 서운한 법입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축복일 수 있는 일인데도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줍니다. 그것이 죽음이 주는 아픔이고 충격입니다. 죽음은 무자비하게 떼어놓고 분리시켜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어두운 것입니다. 이미 때가 되어 가실 분이 가셔도 그런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그런데 생각도 하지 않았던 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것을 보면 어떻게 충격이 안 될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보는 사람들도 안타깝고 민망한데 그 가족들의 충격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특별히 우리 목회자들의 심정으로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충격은 이별입니다. 그것도 젊은 분들이 죽음으로 격리되는 그 이별의 아픔은 상당합니다.
금년 한해는 이렇게 사고사로 소천한 분들이 많고 질병으로 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해 동안 사건 사고로 불행을 당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는 한해 동안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만도 2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숨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두 내가 이 해에 죽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 예고 없이 당하는 죽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용케도 살아서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 시간 죽지 않고 살아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 있는 데는 어떤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좀더 값있게 살라는 사명일 것입니다. 할 일을 하고 살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있어서 태어났듯이, 지금 생존해 있는 데에도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책임 있게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3. 큰 실수 없이 한해를 살아온 것이 감사합니다.
오늘은 내가 잘해도 본의 아니게 실패를 하고 실수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는 실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만 운전을 잘한다고 해서 사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일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시대도 아닙니다.
오늘은 서로가 연합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서로가 모두 잘 해야 문제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안전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그날 그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금년에도 많은 분들이 실패를 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곤란을 당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부도난 사업장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낭패를 당하고 고난을 당한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해 동안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모두 뜻하지 않은 고난들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도 끝날 때까지 실수 없이 잘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목회도 은퇴할 때까지 별 실수 없이 잘 마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염려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도 실수하는 일듪이 많으니까 그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한해를 살아오면서 별로 큰 실수한 것 없이 오늘 이 시간을 맞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큰 실수 없이 그리고 큰 어려움 없이 목회를 마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목회를 슬기롭게 끝마친 분들을 보면 깨끗하고 은혜롭게 인생을 마치고 목회를 끝낼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이 한해를 무사히 살고 은혜 가운데서 이 송구영신의 시간을 맞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4. 또한 먹으면 소화되고 누우면 잠이 오는 축복이 감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먹으면 소화된다는 것, 이것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는 소화기 고장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만나 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소화기가 좋지 않아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답답한 일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먹는 재미가 얼마나 중요하고 큽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이 먹는다는 것은 전부인 셈입니다. 사람은 먹는 일 빼 놓으면 할 일이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다닌다는 것도 생각하면 즐거운 일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함게 나누어 먹는 기쁨도 상당한 것입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앞에 놓고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다면 얼마나 아쉬움이 많겠습니까? 사람이 먹으면 불편 없이 소화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또 누우면 잠이 온다는 것도 엄청난 축복입니다. 저는 한때 노이로제에 걸려서 고생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온 밤을 뜬눈으로 보내 버립니다. 이것은 뼈를 마르게 하는 고문입니다. 아무리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살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최고급 이태리제 상아 침대에 누워 있으면 무엇합니까? 잠이 오지 않는데 그것들은 아무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시간도 아니고 매일같이 온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한다는 것은 진정 뼈를 마르게 하는 아픔이고 고문입니다.
사람이 먹으면 소화되고 누우면 잠이 온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최상의 축복인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고 "너는 이제 가서 기쁨으로 마시고 음식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 것인가를 알아야만 나머지 생활들 속에서 감사한 조건들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나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소화가 잘된다고 해서 많이 먹는 것은 어떤 때는 저주일 수도 있습니다. 소화기 고장은 모두 많이 먹어서 발생되는 병입니다. 세계적으로 나온 통계에 의하면 적게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이 먹어서 죽는 비율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들을 보면 대부분 많이 먹어서 발생한 병들입니다. 음식도 그렇게 술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습니다. 모두 과해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이 없는 것도 고민이지만 잠이 너무 많은 것도 고민입니다. 잠도 적당히 주어져야지 너무 많으면 이것도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평생에 새벽기도 한번 못해 봅니다. 잠도 잠자리에 누웠을 때 와 주어야지 예배시간에 쏟아져 보십시오. 설교시간만 되면 조는 분들, 이것은 누가 말립니까? 쏟아지는 졸음은 말릴 길이 없습니 .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5. 마지막으로 한해를 무사히 보내고 오늘 새해를 맞이하도록 하신 은헤가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입니까? 이제 불과 5분여의 시간이 지나면 새해 첫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 의미 있고 뜻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작정 거리를 배회하며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술에 취해서 소리지르며 떠들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시간 아무런 의미도 없이 잠자리에 들어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다시 맞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중요한 시간을 하나님께 찾아 나와 예배드리며 성찬을 받으면서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은헤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그 고마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나의 서원을 여호와 앞에 갚으리다." 사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우리들이 생각해 보면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충분하게 보답할 길도, 방법도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시간을 맞는 우리들의 심정이고 바로 나의 고백입니다.
사람이 가장 인간다울 때가 언제인가 하면 받은 바 은혜를 오래 기억하며 감사할 때입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함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이 은혜를 알고 되새기고 깨닫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알고 스승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 값있는 성숙한 인간의 마음이며 자세입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이미 한해가 지나가고 있지만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되새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도 성숙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도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시고 그 은혜를 입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기도하는 제목이나 세워 놓은 계획들이 은혜 가운데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새해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생활과 가정과 일터 위에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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