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가기 |
새해 감사와 기원! (시 19:14)
새해 첫말 아침입니다. 밝고 신선하고 소망이 넘치는 아침입니다. 새해가 되니까 마치 새옷을 입은 기분입니다. 마음이 달리지고 기분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지고 소망이 넘치고 밝고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가정과 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충만하시고 주께로부터 오는 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에 언짢았던 일들이 있으면 모두 떨쳐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담고 있으면 새해 소망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특별히 저에 대해 서운했던 일이 있거나 오해될 만한 일이 있으시면 그것도 떨쳐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인사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고 서운해 한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의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한 사람을 보고 있는 동안 여러분들은 여러 곳에서 함께 보시기 때문에 인사를 해도 때로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절대로 고의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또 어떤 분은 악수를 하는데 손으로는 악수를 하고 눈은 딴 사람을 보더라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상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그런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악수를 하면 빨리 손을 놓아 주어야 하는데 어떤 분은 손을 잡고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밀려 나오고 손은 붙잡혀 있고 그러니까 본의 아니게 손 따로 눈 따로 일 때가 있습니다. 이점도 결코 고의가 아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러가 하면 또 어떤 분은 웃지 않는다고 거만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거만해서 나올 것이 없는데 거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분들에게 모두 엇어 주다 보니까 얼굴 근육이 굳어 가지고 제 얼굴이 이렇게 주름살이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더 웃으면 제 얼굴은 절단 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왜 실수가 없겠습니까? 나이도 젊고 침착하지 못해서 자주 실수도 합니다. 그런데도 별 문제 없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은 모두 여러분들이 무조건 이해해 주시고 협조해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로는 표현을 잘 못하지만 여러분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원로 목사님은밖에 나가셔서 저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고 다니십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하길래 그렇게 칭찬하시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사람들이 제가 목회를 잘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목회자들이 저를 부러운 마음으로 보고 우리 교회를 부럽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생각하면 참 송구한 마음뿐이고 또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한 교회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그씩이지만 부흥하고 있는 교회 가운데 하나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가 목히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 여러분이 잘 협조해 주시고 무조건 이해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한번도 제가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이렇게 평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이런 은혜를 입어도 괜찮은가"하는 죄송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은 당회원들의 이해와 협조입니다. 우리 교회는 회의 때도 큰 소리 없이 짧은 시간내에 회의하는 교회로 소문나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하나의 모범일 수 있습니다. 회의가 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문제 있는 교회는 회의가 많고 또 한결같이 회의가 깁니다.
오늘 새해 아침에 혹시라도 언짢았던 마음이 있으시면 모두 떨쳐 버리시고 새해 아침을 밝고 편안하게 맞이해서 소망을 가지고 한 해를 출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의 말씀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신앙인의 자세를 한마디로 묘사해 놓은 기도문입니다. 하나님과 기도자는 하나님과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응답자이고 성도는 기도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한을 소유하신 아버지시고 기도자는 요구하는 입장에 있는 아들이고 자녀이고 성도입니다. 그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축복해 주실 의무가 있고 자녀들은 그 부모에게 구할 의무와 권한도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사랑스러운 자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세를 지니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새해에는 신앙인으로서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면 더욱 밝고 소망적인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별일이 다 있을 것입니다. 혹시 어려울 때가 오더라도, 힘들 때가 오더라도, 손해 볼 일이 생기더라도 여러분,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는 감사한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렇지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새해를 주신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 똑같지만 새해 첫시간은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결코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365일씩 토막을 내서 한 해를 보내고 나서 새해를 시작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아침을 맞는 여러분들 마음이 모두 밝고 소망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세도 훨씬 달라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면에서 새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낮을 주신 것도 가사한 일입니다. 낮이 주어진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람이 밝은 눈을 가지고 밝은 시간을 소유하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옛날 희랍에서는 눈이 어두운 소경들은 밤이면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자신이 길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둠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들고 가던 등불이 꺼진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입니다. 불이 꺼진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이 소경이 마주 오던 사람과 부딪쳐서 이마가 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경이 "등불도 부지 않고 다니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마주 오던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의 등에는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고 하더랍니다.
사람이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밤을 주신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피곤하겠습니까? 밤 새워 조사를 받던 어떤 사람이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말하기를 "밤이 이렇게 소중한 시간인줄은 미처 몰랐다"고 하더랍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 입장에 처해 보아야 고마움을 아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밤을 주셔서 안식하게 하신 것은 축복입니다.
또 우리에게 형통이 주어진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매사에 일이 꼬이고 막히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일이 잘 풀리고 문이 열리고 순조롭게 일이 치리되는 형통이 주어지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형통은 하늘이 주는 축복입니다.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이 같은 형통도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고 형통만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가끔씩 역경을 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확실히 사람은 가끔씩 역경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무가 단단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은 겨울이라는 역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겨울이라는 혹독한 추위가 없다고 하면 이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형통만을 좋아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겨울이 춥고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이 겨울이 있기에 우리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겨울은 우리로 하여금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강인한 체력을 만들어 줘서 어느 환경에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형통이 주어지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때로 겨울이 오고 역경이 와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역경을 통해서 우리의 앞날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과정을 밟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환난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그 환난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안내하십니다.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 환난들이 도전해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없기를 바라지만 온다 할지라도 원망하지 말고 늠름한 모습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또 어떤 길로 인도하실까 하는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환경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가장 성숙된 신앙인의 마음 자세입니다. 새해에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시면 더욱 삶이 행복할 것입니다.
다음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한해를 살아가다 보면 별일을 다 만날 것입니다. 좋은 일을 만나거든 신앙인답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감사할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이것이 마음같이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어진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조용히 엎드려 진지하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또 병이 들었을 때도 먼저 조용히 엎드려 진지하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는 할 수 있으면 고상한 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고상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막무가내로 고쳐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그 뜻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고상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것은 내 뜻이고 "이대로가 좋습니다."하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예를 들어 중병에 걸렸다고 하면 "고쳐 주십시오"하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고쳐 주시지 않으면 소용 없는 일입니다. 그때는 빨리 고상한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고쳐 주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고쳐 주십시오. 그러나 이대로가 주님의 뜻이라면 잘 감당할 힘을 주십시오. 설령 내가 죽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마지막까지 신앙인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그 시간을 맞이하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고상한 기도입니까?
거기다 군소리 없는 기도가 좋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내가 살아야 할 사람인 것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내가 죽어야 할 사람인 것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것을 전제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처지와 형편을 다 아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고상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고백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나의 실패,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서 주신 것이라면 인내하며 기다리게 해주십시오." "오늘 내가 당한 이 낭패가 주님의 뜻이라면 조용히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얼마나 고상한 기도입니까? 신앙인의 고상한 기도는 신앙적인 품위를 지켜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불러옵니다. 깊은 영적인 체취를 체험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성숙한 영적 자세를 유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싱안인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고 판단하는 기준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해 놓고 나서 하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러고 나서 형통이 주어지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의 자세이고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만인 제사장설을 주창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은 각각 다르지만 그 일은 모두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히 부여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성직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참좋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생활에 축복이 임합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이익에만 집착해서 살면 불성실해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봉사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그런 자세로 살면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음식 장사를 해도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해야 잘 됩니다. 음식을 만들되 아주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마음 놓고 맛있게 먹을 것입니다. 그때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사명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래서 일이 잘 되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익에만 집착한 나머지 값싼 재료를 쓰고 불결하고 양을 속여서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니 누가 그 음식을 와서 사 먹겠습니까? 저는 가끔 길을 지나다가 붕어빵 장사를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붕어빵 장사를 한다면 저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마음입니다. 아주 좋은 재료를 쓰고 좋은 팥과 설탕과 기름을 써서 깨끗하게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갈 수 없도록 구워 낼 자신이 있습니다.
추운 날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거거에 어떤 사명감 같은 마음가짐이 있어야 음식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 놓을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왜 실패를 하며, 또 속일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작품은 꼭 미술품만 작품이 아니고 고각품만 작품입니까? 빵 한 조각을 구워도 그것을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 내면 그것도 작품입니다.
그런데 보면 사람들이 이런 사명 의식이 없습니다. 모두 돈독이 올라서 속이고 불량 재료를 쓰고 유해식품을 만들어서 팝니다. 왜 콩나물에 농약을 쳐야 합니까? 왜 백화점이 속임수를 써야 합니까? 그러니 무엇 하나 마음 놓고 사 먹을 것이 있습니까? 모두 이익에만 급급해서 그렇습니다. 사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도 성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살아가기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해 놓고 나서야 진인사 대천명의 심정으로 형통을 기대하고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이 복 주시고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기쁨이 주어질 것이 아닙니까?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새해에는 이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묵상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축복도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핵심 주제별 성구 (0) | 2022.04.03 |
---|---|
송구영신의 은혜! (시 116:12-13) (0) | 2022.04.03 |
송구영신의 다짐! (빌 3:13-14) (0) | 2022.04.03 |
새 마음으로 새 해를본문/ 눅 15:17-24 (0) | 2022.04.03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들을 한눈에 보기쉽게 정리한 표 (0) | 2022.04.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