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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행복하게 삽시다! (잠 17:20-22)

by 【고동엽】 2022.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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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행복하게 삽시다! (잠 17:20-22)

 

  하나님께서 잠언을 통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가장 좋은 내용을 몇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고 새해의 우리마음에 간직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①진실하게 새해를 살자! 20절 “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이 말은 진실성이 없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진실성이 없는 사람이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성이 결여된 사람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은 예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꾼이 필요해서 사람을 고르실 때 가장 먼저 보시는 덕목이 이 진실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도, 요셉을 선택하신 것도,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도 모두 이 진실성 때문입니다. 진실성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게 되는 삶의 내용이 됩니다. /할/

 

  ②바른 언어생활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입니다. 20절에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치밖에 안 되는 혀를 통한 말 한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격려가 되고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올무가 되기도 하고 패역을 갖다 주기도 합니다.

  기드온은 말 한마디로서 내란을 막아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르호보암은 말 한마디로서 나라를 둘로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혀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 혀가 사람을 높여 주기도 하고 낮춰 놓기도 합니다. 이 혀가 사람을 고상하게도 만들고 상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전승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랍비 한 사람이 일꾼을 시켜서 맛있는 음식을 사 오라고 했더니 나가서 혀 고기를 사 왔다고 합니다. 며칠 후에 이 랍비가 그 일꾼에게 이번에는 맛이 없어도 좋으니 값이 제일 싼 고기를 사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일꾼이 이번에도 혀 고기를 사 오더랍니다. 왜 이것을 또 사왔느냐고 물으니까 일꾼이 대답하기를 ‘이 혀란 놈은 좋을 때는 무척 좋고 나쁠 때는 또 무척 나쁜 놈’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총으로 죽은 사람의 수보다 독설에 의해서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잠언을 보면 이 혀와 말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람이 말에 신중하면 완전한 사람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해야 합니다. 한번 내뱉어진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멘!/

 

  ③자식을 바르게 신앙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자식이라고 해서 다 삶에 뜻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21절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자식은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보람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낙을 빼앗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이 자식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이 분명히 아비의 면류관이 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아비에게 있어서 근심 덩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의 교훈서인 탈무드에 보면 모두가 이 자녀들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전부는 아마 이 자식에 대한 열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교육이 세계에서 제일 앞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 가족이 조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비록 남의 나라에서 살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빠짐없이 히브리인의 교육을 시켰고 또 그렇게 영원히 히브리인으로 커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안식일 날 분명히 교회에 보냈는데 이 아이가 교회를 가지 않고 놀다 들어왔습니다.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사는데 아이들이 히브리인의 정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이 아이를 붙잡고는 얼마나 때렸는지 그만 이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조야의 신문들은 종교 때문에 아이를 죽였다고 대서특필을 했지만 이 어머니는 당당하게 항변을 했습니다.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이런 교육으로 2천년 동안이나 흩어져 살았으면서도 히브리인의 혼을 유지하여 왔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그러니까 교육 하면 히브리인의 교육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에게 가장 귀한 유산은 믿음의 유신입니다. /할/

 

  ④화목을 이루는 삶이 행복의 지수를 높입니다. 잠17:1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21: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나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그래서 옛말에 ‘가화 만사성’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보면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 꼭 있어야 할 화목이 없습니다. 있다는 것이 온갖 불화와 갈등과 근심된 일들만 집집마다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이 온전하겠습니까?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생들을 향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존재라고 했습니다.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이 말은 사람이 즐거움과 화평을 누리고 살 때 사람의 몸에 필요한 강한 저항력이 되는 항원이 몸속에서 생산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항원이 어디에서 생산이 되느냐 하면 바로 뼈 속에서 생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0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불화하며 근심 속에서 살게 되면 뼈 속에서 생산되어야 하는 이 힘의 원천이 되는 항원이 말라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래서 화목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이 자꾸만 우리에게 ‘기뻐하라, 감사하라, 화목 하라.’고 하신 것도 바로 이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는 불화하고 싶어서 불화하느냐는 것입니다. 화목하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로 하여금 화목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그냥 놔두지를 않습니다. 이것들을 효과 있게 극복을 하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실패를 하고 실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반목과 불화와 갈등이 만연해 있는 이 세상을 신앙 안에서 정말로 조화 있고 화목하게 살아가려면 가족 모두가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화목을 이루어 살려고 하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부부가 싸움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얼마나 사나운지 싸울 때마다 이깁니다. 한번은 싸우다가 부인이 남편의 머리 한 줌을 뽑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머리 한쪽이 훤히 보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날 일이고 엄청난 일입니까? 그런데도 이 남편이 꾹 참고 인내를 합니다. 굉장한 인내입니다. 그러다가 슬며시 나가더니 머리를 모두 깎아 삭발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무사하게 후유증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둘 중에 한 사람이 그렇게 노력을 하면 화목해지는 것입니다. /할/ 둘 중에 한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 화목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있는 곳에 화평이 있고 구원이 있고 화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인데도 사람과 화목하시기 위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있는 곳에 화평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주위에 왜 화평이 없습니까? 모두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려고만 하지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화목은 십자가를 질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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