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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 하는 새해! (수 1:1-9)
독일의 초대 수상 '비스마르크'는 '운명을 겁내는 사람은 운명에 먹히고 운명에 부딪히는 사람은 운명이 길을 비킨다'고 했습니다. 신년새해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본문 말씀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9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할/ 그렇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할 땅이며, 싸워서 얻어야 할 땅이며, 개척해야 할 땅이며, 들어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올 2008년도는 '우리가 반듯이 가야 할 세월이며, 싸워서 얻어야 할 새해이며, 개척해야 할 땅이며, 들어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 2008년'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 하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승리자가 됩니다. /할/
영국을 변화시킨 요한 웨슬레는 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팔을 높이 들고 기쁨이 넘치는 소리로 외치기를 '내가 항상 감사함은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동행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살펴보아도 하나님은 개와 고양이, 그런 짐승들과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겠다고 한 약속은 한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기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으로 본명은 호세아(구원)였으나 모세가 여호수아로 개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이며 그의 아버지는 '눈'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모세의 꿈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땅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가나안땅의 원주민들과 싸워서 그 땅을 정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40년 동안 긴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어려움도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나안땅의 정복이라는 큰 과업을 맡게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격려의 말씀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가져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고, 격려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하께 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제목소개!▶
지금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이스라엘이 들어가야 할 땅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입니다. 사막은 비가 오지 않아 나무도, 풀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사람도 짐승도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비가 내리고 날씨가 좋아서 푸른 초장을 이루는 좋은 땅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에도 사막과 같은 메마른 마음이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심령도 있습니다. 사막 같은 심령은 항상 강퍅하고 부정적이며 탄식하고 한숨쉬고 삶의 즐거움이 없는 그런 심령입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심령은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우며 그 마음이 평화롭고 은혜롭습니다.
우리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어떤 가정은 사막과 같은 가정이 있습니다. 사랑이 메마르고, 감사가 메마르고, 인정이 메마른 가정이 있습니다. 하늘의 은혜의 단비가 내리지 앉아 사막 같은 가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가정은 젖과 꿀이 흘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소중하게 여겨서 보기만 해도 감사가 넘칩니다. 이런 가정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가정입니다. /할/
오늘 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도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해 '메마른 심령'이 있습니다. 이런 심령을 광야성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은혜가 넘쳐서 기쁘고 즐겁고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 감격하는 성도를 가나안 성도라고 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가나안 성도는 천국을 누리며 사는 성도입니다. /아멘!/
이스라엘이 들어가야 할 땅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도 사실은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들어가 살면서 옥토가 되었습니다. 이 땅을 가리켜 하나님이 함께 하는 땅이라고 합니다. 그 땅을 또 약속의 땅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의 말씀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젖'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꿀'도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땅을 쉽게 들어가는 땅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이끌고 가야 할 가나안땅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서 얻어야 할 땅입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땅은 천국입니다. 그 땅도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땅입니다.
딤전6: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전투입니다. 원수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6:10절 이하에서 '전신갑주를 입으라.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일어나 요단을 건너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라고 명하십니다. 여기 '일어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에는 '일어나라'는 단어가 약 618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어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병들어있고, 다리에 힘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행3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그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곧 걷고 뛰고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40년 동안 걷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했던 앉은뱅이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 혼자만 일어나지 말고 모든 백성과 함께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그곳에 들어가 살 사람은 여호수아 개인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어나야 요단을 건널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일어나야 합니까? 앉은뱅이 신앙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잠자는 신앙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 잠은 신앙의 잠을 말합니다. 잠자는 신앙에서 일어나야 가나안 땅에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잠자는 신앙에서 우리 모두 다 일어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또 게으름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나태함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병든 신앙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죽은 신앙에서도 깨어나야 합니다. /할/ 바울은 롬13:11절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가나안땅은 어떤 땅인가? 이스라엘에게 준 땅입니다. 2절 '하'반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가라'는 말씀은 '목적지를 향하여 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어디로 가느냐'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악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고 절망으로 치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께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아멘!/
또 '미래를 향해 가라'는 뜻입니다. '가라'는 것은 뒤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앞에 있는 약속의 땅, 요단 건너편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2008년의 새해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저 영원한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믿/
오늘 여호수아에게 가라고 한 그 땅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요, 허락한 땅입니다. 또 3절에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할/
그래요!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자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하나님이 저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갑니다. 그 뿐만 아니라 2008년도의 미지의 세계를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루하루 일어나 원수 마귀를 밟아버리고 승리하는 성림의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노만 빈센필' 목사님은 성공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패자처럼 생각하면 실패자가 된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크게 믿으라. 크게 기도하라! 크게 행동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충격적인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세가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1-2절을 종합해 보면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가나안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라는 말은 모세가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모세가 죽어야만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말인가?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영도자입니다.
그런데 왜 그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가 없단 말인가?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모세를 율법의 대표자'로 봅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직접 계명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인가? 롬3: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서 모세의 율법은 몽학선생으로 예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역할까지만 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기 위해서는 두 번 강을 건너야 합니다. 한 번은 홍해의 강을 건너냐 하고, 두 번째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요단강입니다. 홍해는 모세가 인도해서 건너갔습니다. 요단강은 여호수아가 인도해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홍해를 건너가는 것보다 요단강을 건네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홍해는 애굽의 신을 신고 건널 수 있었으나 요단강은 신발을 벗어야 건널 수 있습니다. '발바닥으로 건너가라'고 했습니다. 신을 벗는 다는 것은 '자기 포기'입니다. '세속의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홍해는 세례의 강입니다. 세례는 옛 사람의 모습 그대로 와서 받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은혜의 강입니다. 이 강을 건너면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이 강은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자만이 건너갈 수 있는 강입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가? 온갖 시련과 고난을 통과한 성도가 자기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독수리 새끼의 훈련 법을 들어서 잘 압니다. 아버지 독수리가 이제 이만 하면 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기가 되면 새끼 독수리를 자기 날개 위에 태우고 높은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사정없이 새끼 독수리를 아래로 내동댕이를 칩니다.
그렇게 되면 새끼독수리는 안간힘을 다해서 살려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갯짓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새끼 독수리가 땅바닥에 떨어지려고 할 때 아비 독수리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자기 날개로 새끼 독수리를 안전하게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또 다시 새끼 독수리를 사정없이 떨어뜨리는 훈련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류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독수리 새끼가 훈련 중 떨어져서 죽은 새는 아직까지 한 마리도 없다고 합니다. 훈련을 마친 후 아버지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아! 정말 자랑스럽다. 너도 이제는 아빠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단다. 다시 날라 보아라! 네가 위험에 처할 때 두렵고 떨리고 불안할 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속삭여 줄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향하여, 또 저 천국을 향하여 가는데 어려움도 많고 역경도 많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준비하며 사는 길도 수많은 어려움을 만날 수 있고, 큰 시련 작은 고난을 수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9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할/
여러분,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만을 위한 약속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변함 없는 약속입니다. /믿/
마28장에 보면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선교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마28:19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열한 제자는 지금까지 유대 땅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그런 촌부들이었습니다. 세계라는 것은 생각할 염두조차 못 낼 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그들에게 세계를 맡기십니다. 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명령이 얼마나 암담하고 불가능한 숙제인가? 제자들은 심히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약속을 보십시오! 마28:20절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이 약속 때문에 그들이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신다면, 전지전능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쥐고 계신 그분이 함께 하시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주님은 바울에게 세계선교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마음속에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적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숱한 박해를 받아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위기 속에 있을 때 주님이 그에게 오셨습니다. 행18: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항상 내 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①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3절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또 4절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땅을 말합니다. 이 땅에다 집을 지을 수도 있고, 팔면 돈이 되는 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천년만년을 살수가 없습니다.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놓고 가야할 땅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원한 땅입니다. 이 땅에다가는 빌딩도 아파트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또 팔아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 땅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신 땅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의 나라의 땅입니다. 그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는 땅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우리는 그 땅을 약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같은 평수의 땅이라도 위치에 따라 값이 다릅니다. 변두리 땅 천 평과 명동 당 천 평은 값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지방 아파트와 서울 아파트 값이 같지 않습니다. 또 같은 서울이라도 강남과 강북도 역시 값이 다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 땅덩어리와 영원한 땅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 땅은 재벌이나 대기업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나라는 상황이 다릅니다.
주님은 마5장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차지한다고 했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심령이 깨끗한 자요,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받은 자로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저 천국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은 날마다 하나님께 회계하고 깨끗한 심령을 유지라는 것이요, 말씀으로 잘 훈련받아 행하고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됩니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②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당할 자가' 없습니다.
5절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아무도 모세를 당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고, 모세의 뒤를 추격하던 애굽의 최강부대인 추격대도 모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광야를 통과할 때 아모리 족속도, 그의 형 아론이나 반대자들도 모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제나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롬8:31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렇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 그래서 모세를 당할 자 없이 만드신 그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할/ 이 약속을 믿는 자는 항상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에 가면 제2차 대전 때 백전백승을 거둔 전차 부대장 '패튼'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는 보석 박힌 권총을 차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기자가 패튼 장군에게 물었습니다. '각하는 어떻게 전쟁마다 승리를 하십니까?' 이때 패튼 장군은 대답하기를 '난 모르네. 그런 일은 내 뒤에서 돌봐주시는 분이 계시지'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③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형통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7절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8절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할/
여기서 형통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막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행로에 장애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에 장애물이 없습니다. 사업에 장애물이 없습니다. 진학에 장애물이 없습니다. 진급에 장애물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서 교통정리를 다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2.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한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9)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값진 재산은 자신감입니다. 이 자신감은 재산 중 재산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자신감을 갖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내게 자신감(능력)을 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현재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미래에 대해서, 종말 앞에서, 무지 앞에서, 운명 앞에서, 죽음 앞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갖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이 이 자신감을 잃고 믿음을 잃으면 곧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언제 자신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옵니까?
⑴나는 혼자라고 생각될 때 두려움이 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방선지자 850명을 혼자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때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통쾌하게 이깁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향해서 이를 갑니다. 그리고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 네 운명도 저 사람들과 같이 만들겠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비로소 눈을 뜨고 보니까 자기 혼자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사람은 '나 혼자'라고 느낄 때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왜 너 혼자냐, 아직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 7천명이나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 때 다시 엘리야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⑵장래가 불확실할 때 두려움이 옵니다.
⑶또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불안이 찾아옵니다. 수양대군이 형 문종대왕의 충신 6명을 죄 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조카 단종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살아갑니다. 사람을 죽이고 숨어살면 잡히지 않아도 매일 스스로 고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죄인들의 형벌입니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불교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고다 공원자리에 절을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다고 근본이 치유되지 않는데 편안해 지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는 왕위에 오른 지 10년 만에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을 두렵게 만듭니다.
⑷신앙인이 영적으로 무력해질 때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아멘!/
②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또 7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불안한 시대입니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극심한 경제난, 세계 제1의 교통사고, 우리나라 사기꾼들도 넘치는데 외국인들까지 이 나라에 와서 사기 판을 벌리고 있는 이 세상이 무섭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죄악이 난무하여 한순간에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사탄의 함정들이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우리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마음이 연약하면 쉽게 좌절하고 쓰러지기 쉽습니다. 믿음 안에서 담대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 당시 여호수아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⑴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한마디로 '굳세게, 확실히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확신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그렇겠지만 특히 신앙생활은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놀라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 신앙입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는데 실상은 안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강하고 담대 하라(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 하라는 것입니다.
⑵본문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인가?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주시겠다는 것(3-4)이며, ㈏함께 하여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가 없게 해주시겠다는 것(5.상)이고,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겠다는 것(5.하)이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겠다(9)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008년 새 해를 맞은 우리들에게도 이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강하고 담대히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가 강하고 담대히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못 믿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할 수가 없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아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이 결정하고 좌우합니다. 울기로 마음을 먹으면 눈물이 나오고, 웃기로 마음을 정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또한 독한 마음을 품으면 독설이 나오고, 순한 마음을 지니면 부드러운 행동이 나옵니다.
또 악한 마음을 품으면 폭력이 나오고 선한 마음을 품으면 선행이 나옵니다. 왕년에 금배지를 달은 최희준씨의 흘러간 노래 속에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는 유행가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4: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년 새해에 큰 믿음으로 살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를 다짐하고, 예배 참석도 잘 하겠다는 마음에 다짐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강해야 신앙으로 담대해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아멘!/
③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7절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8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자는 형통한 복을 받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부정함으로 불행해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한다는 것은 산 믿음으로 사는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는 것을 금하는 것'이 산 믿음입니다. 약2: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태어나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도 못했습니다. 나이 12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불러놓고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줬습니다. '너는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 것'을 당부하는 유언을 했습니다.
링컨은 그 성경을 어머니의 유일한 유산으로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에 가난하고 불쌍한 가정에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했고, 어머니를 도와 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새벽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 교회 새벽종을 쳤습니다. 그리고 교회 청소를 도맡아 하여 교회 사찰 집사님의 역할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아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수1장 말씀을 읽어주면서 '너는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을 다 지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법을 묵상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너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씀을 통해 늘 신앙의 권면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년은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그는 더 열심히 공부해 우리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 감리교에서 경영하는 더루 대학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의 혼란한 과정에서 정계에 투신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짝지어 준 아내를 통해 한국 사회에 엄청난 공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아내는 우리나라 초대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형 여사였고, 바로 불쌍하게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이 민주당 정권시절에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정일영 박사요 그의 아들이 정대철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습니다. /아멘!/
▶율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우리는 '형통'이라는 말만 나오면 귀가 번쩍 뜨입니다. 또 '성공'이란 말만 나오면 관심이 팍 쏠립니다. 그러나 그 앞에 전제 조건에는 관심이 무딥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전재조건이 무엇입니까?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할/
⑴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이 말은 쉽게 표현하면 '읽고 암송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은 마음과 영혼에 창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도 복이 되고, 암송하는 것은 능력입니다.
⑵주야로 묵상하라! 여기서 묵상한다는 말은 되새김질을 의미하는데 그 뜻은 내가 말씀대로 살았는지 아니면 말씀 밖에 살았는지 생각해 보고 반성하고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야는 24시간을 의미하는 말로 일 년 365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더 크게는 우리의 일생을 그렇게 살라는 하는 당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주일날 나와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혼이 살질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영육 간에 복을 받게 됩니다.
⑶다 지켜 행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지켜 행하라는 말은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아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라! 말씀 중심으로 살아라!'라는 말로, 말씀을 선별하거나 입에 맞는 것만 골라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음식을 편식하면 성장발달이 더딥니다. 영적인 원리도 똑 같습니다.
④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십니다(7).
수23:6절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탈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본래 죄라는 말의 뜻도 '탈선, 혹은 빗나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을 바라보고 제 길을 걷거나 달리는 것이 정도입니다. 모든 탈선은 불행의 원인입니다. 열차가 레일에서 탈선하면 전복됩니다. 사람도 윤리, 도덕, 질서로부터 탈선하면 파멸이 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탈선하면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래서 히12:1절에 서 바울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110년 동안의 삶은 그야말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아니하는 의로운 삶이요, 청렴결백한 삶을 살았습니다. 수24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온 지파들을 세겜에 다 모으고 이런 유언을 합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할/ 기독교는 외길로만 가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넓은 길이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기독교는 혼합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여호수아처럼 오로지 한 분 하나님만 섬기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나님께로 가야 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주님이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신앙인들이 좌우로 치우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길은 좌우로 살피며 양다리 작전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눅9: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앙이 약해서 흔들리는 것도 모르고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은 외길입니다. 이 제단에서 여러분, 축복의 우물을 파십시오! 한 우물을 파는 자가 끝장을 봅니다.
시계도 가만히 있으면 하루에 두 번이라도 맞는데 제멋대로 돌아가면 단 한 번도 맞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치우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흔들리는 사람은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래 기다려도 힘들어도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에를리히' 박사는 그 유명한 약 606호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 약 이름이 606호인지 아십니까? 606번을 실험해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600번 실험해도 안 되고, 605번까지도 안되었는데 낙심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이 나갔더니 드디어 606번째 성공한 것입니다. /할/ 이런 끈기와 인내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그 마음에 심지를 보십니다. 몸무게는 50kg이지만 마음이 천근만근 나갈수록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믿/
길을 잃었습니까? 가만히 계십시오!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왔습니까? 가만히 계십시오! 치우치지 마시고 당황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렇습니다. 치우치지 않은 자의 결론은 형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의 결론도 형통입니다.
왕하18:7절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시니 그 앞에 형통의 문이 열렸습니다. 또 창39: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할/ (2008년 1월 13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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