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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마음

마음 다스리기(9)-마음을 품으라

by 【고동엽】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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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9)-마음을 품으라

눅11:24-26 겔36:24-28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깨끗이 정리된 마음에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아니하고 텅비어있는 채로 버려두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악령이 친구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 빈 마음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이전보다 더 악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빈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근거해서 몇 가지 신앙의 교훈을 얻고 자 합니다.

▶ 1925년 시인 엘리어트는 [텅빈 인간]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

[우리들은 텅빈 인간, 서로가 기대어서 두뇌조각은 짚으로 채워지고 형태가 없는 모양, 빛깔이 없는 그림자, 마비된 생명, 움직임 없는 제스처]

현대인은 텅빈 마음을 안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허와 허탈과 고독과 소외를 느끼면서 현대인들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공허하고 허전하기만 합니다.

▶ 젊은 부부가 돈을 벌어서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실내장식도 현대 감각에 맞도록 설비했습니다. 자가용도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비로소 찾아오는 것은 도대체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하는 공허감뿐입니다.

속이 텅빈 마음 때문에 불안하게 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노이로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동안 안정제를 보용하다가 친구와 어울려 술을 마셔 봅니다. 남편은 열 심히 돈을 벌어들이지만 아내는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렇지만 공허한 마음은 메울 방도가 없습니다.

▶ 뉴욕 시내에서 버스를 운전하던 어느 기사가 매일 바둑판같은 노선을 버스를 타고 돌아다닙니다. 밤이나 낮이나 무의미한 일을 반복합니다. 어느 날 그의 마음속에 찬 허탈감을 견딜 수 없어서 그 버스를 몰고 저 멀리 플로리다주로 도망갔습니다. 얼마 후 버스가 실종된 것이 발견되어 결국 그는 체포 됐습니다. 법정에서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하였소]라고 물으니까, 그는 [나는 도대체 공허하고 답답해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운전기사의 행동에 대해서는 미국의 법정도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 해답을 줍니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새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우리 마음 : 수입심(受入心) 발생심(發生心) 수출심(授出心)로 늘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수입심은 무엇인가를 대언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마음(빌2:5)(主心)을 품으라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소외감과 공허감은 죄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기회가 됩니다.

텅빈 마음속에 무엇인가 채워져야 됩니다. 이 빈 자리에 무엇인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초조감과 허탈감 때문에 견딜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공허한 마음을 예수님으로 가득 차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가득차 있을 때에 우리는 아무리 넘어져도 또 다 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밑에 무거운 추를 달고 있는 오뚝이처럼 쓰러지지만 또 일어나서 기어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현대의학과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인체의 웬만한 부분은 이식수술이 가능합니다.

의학에서 장기이식과 조직이식으로 구분하는데, 5대 장기 이식수술은 심장, 간장, 췌장, 신장, 폐(허파)를 이식합니다.

또 조직이식 수술에는 각막이식, 조혈세포 이식이라는 골수이식을 비롯해서 힘줄, 피부, 근육, 인대, 뼈, 판막, 혈관이식 등이 있습니다.

미래사회는 체세포나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인간의 노화방지 정도가 아니라, 무병장수 체질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성형외과는 피부이식 수술에 탁월합니다. 성형수술 수준이 리모델링 정도가 아니라, 재건축 수준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성형수술을 받고 가면 공항에서 신분증 사진 대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의 마음도 이식할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으로 변화 받으면 새 사람, 새 성품, 새 마음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이식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이식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이식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의 이식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빌2:5

우리의 인격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시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 받은 후, 자기 가슴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시켰습니다.

고전2:16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여러분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이식시키십시오

2. 신자의 마음 (信心)을 품으라. (합2:4)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마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요새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을 조금 더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려고 밤을 새워 줄을 서고, 전 국민이 판교 아파트 당첨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처럼 돈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얻으려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예배에 힘쓰고, 더 기도하고, 더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더 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에게 그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축복과 신비한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늘 믿는 마음을 채우십시오.

3. 사람의 마음(人心=良心)을 품으라.(단5:21)

[단4:16]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단5:21]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딤전1:5]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딤전1:19]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3: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4:2]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벧전3: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가 신앙은 있는데 인심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통해 구원과 축복만 배우고 인격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것보다 진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심도 중요하지만 인심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해서 인심의 중요성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인심 속에 신심이 있습니다.

▶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양심! 신성한 본능이여, 하늘의 소리요, 지성과 자유의 안내자, 선악에 대한 심판자, 인간 본능의 우수성과 도덕성의 근본,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단지 규율 없는 모성과 원리 없는 이성의 도움을 빌려서 잘못만을 저지르는 특권을 느낄 뿐이며, 누구나 짐승일 따름이다.>

▶ 양심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은 글씨로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인간영혼의 육법전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시며 올바름과 그릇됨의 판단기준을 마음에 새겨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양심이 배금주의 사상과 쾌락주의, 무사안일주의의 포로가 되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양심을 생동하는 깨끗한 양심으로 살려내야 합니다. 이 시대적 사명이 우리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양심을 살려낼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치료의 숨겨진 비밀입니다. 만일 양심의 회복을 빼놓은 복음이 있다면 이것은 반기독교적 이원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때문입니다.(히9:14, 히10:22)

▶ 어느 목사님이 독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을 안내하던 집사가 차를 몰면서 「목사님, 바로 저 집 대문 있잖아요. 언젠가 오밤중에 차로 대문을 받아 부서졌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기에 천만 다행이었지요. 운전이 서툴렀던 때인데....」 작은 농촌의 마을을 지나면서 하는 말입니다.

마을이 수백 년 되었기 때문에 길이 꼬불꼬불하여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대문만 보면 늘 생각이 나지요. 주인이 어딜 갔는지 인적도 없고 해서 무사했죠. 참으로 ‘할렐루야’지요.」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꺼림직한 마음이 들어 「집사님, 안 들킨 것이 어째서 할렐루야입니까?」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다고 합니다. 남의 집 대문을 부수어 놓고 들키지 않은 것이 「할렐루야」라니 신앙양심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또 목사 중에는 교통법규를 어겨 교통순경에게 딱지를 떼게 되었을 때 자기 신분이 목사라는 것을 밝히고 눈감아 달라고 불의한 부탁을 하는 한심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잘못과 실수를 범하고도 윤리적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입버릇처럼 「할렐루야」와 「은혜」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주변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거짓말을 잘하고 더욱 엉터리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짜꿀을 만드는 부모 때문에 교회를 멀리했다는 어떤 분의 간증이 귀에 맴돕니다. 실로 믿는 자는 더욱 조심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행24:16)

믿음과 착한 양심은 기차의 두 레일과 같고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라는 선로와 양심이라는 선로가 있어야 신앙의 기차는 잘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은 있지만 양심은 버렸다고 합니다.(딤전1:19) 신앙의 양심이 그만 화인을 맞아 버렸습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조금도 가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양심이 마비되었기에 짐승과 같이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인간화라고 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일사각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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