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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7)-마음 다스리기

by 【고동엽】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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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7)-마음 다스리기

(잠 16: 32)

우리의 삶은 수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아픔, 생활의 슬픔 등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의 쓰나미가 항상 다가옵니다. 그것을 극복 못하고 사는 사람은 슬프게 살고 극복하고 사는 사람은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다스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환경을 다스리기 전에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환경을 다스리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처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을 빼앗는 것이 쉽습니까? 성을 지키고 있는 군대들이 안에서 끊임없이 저항을 하는데 성 빼앗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면 그 마음에 다스리는 능력이 나아가서 성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을 빼앗으려고 하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면 성이 무너진다는 말은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환경과 운명의 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방황하지 말고 내 마음에 바로 생명의 근원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28절에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으면 도둑놈들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약탈꾼들이 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했는데 매고 푸는 것이 어디서 합니까? 마음에서 매고 푸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매고 푸는 데로 하늘은 그에 따라서 역사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다스리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무엇을 다스여야 하는지 대언하겠습니다.

1. 욕심(탐심)을 다스려야 합니다.(눅12:15,엡4:22)

[눅12:15]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요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약1: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1: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엡4: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5: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골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시119: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갈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잠28:16]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이런 출처도 경과도 결과도 나쁜 욕심을 반드시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2. 죄와 악의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막7:21-23)

막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것을 청산해야 됩니다. 쓰레기 같은 죄악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깨끗하게 해주세요. 입으로 그냥 고백해서 고백이 잘 안되거든 종이를 가지고 죄를 하나, 둘 적으십시오. 적어서 그 죄 항목을 읽고 난 다음에 주님 앞에서 쫙 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으세요. 그리고 마음속에 죄 다 청산했다. 그러면 더 확신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세상 사람은 물질적으로 넘쳐나는 물로써 때는 씻지만 마음은 못 씻는데 우리는 마음을 씻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그리고는 죄의 생각을 물리처야 합니다.

▶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경고 :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요셉처럼 강력하게 죄의 유혹을 다스려야 합니다.

3. 부정적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왕하7:2,17)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정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시기, 분노, 우울한 마음, 살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 이런 생각을 다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만사형통하다. 이 말을 하라는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지도 않은데 왜 자꾸 행복하다고 그럽니까? 행복 안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라.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데 뭐라고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 없지 않느냐. 행복 안하니까 그것을 쫓아내기 위해서 나는 행복하다. 안 기쁘니까 슬프니까 나는 기쁘다. 평안하지 못하니까 나는 평안하다. 건강 안하니까 내가 건강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롬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라서 여러 가지 부정적 생각이 마음을 꽉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영의 생각을 쫓아서 예수님 이름으로 긍정적인 시인을 하므로 이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정리해서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합니다.

불행하다는 마음과 마음의 고통, 슬픔, 상처 등 주로 부정적인 것들을 다 재껴야 돼요.

화, 불안, 분노, 비난 등 부정적인 감정들도 지금 당장 버리고 망설이고, 걱정하고, 불신하고, 갈등하고, 조급증, 적대감 등의 행동을 버릴 때 마음이 그런 것으로부터 해방되면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 가운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쓰레기더미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내고 우리 마음을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성을 에워쌌을 때 엘리사의 말씀 선포에 부정적이었던 한 장관 :

왕하7: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 간질 하는 아이의 아버지 부정적 마음 교훈 :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어 쫓아야 돼요.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울면서라도 나는 평안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잘된다. 형통하다. 그렇게 하면은 그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반대적인 생각을 밀어내 주는 것이니까 마음에 그런 생각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불신앙, 의심을 다스려야 합니다.(마21:21)

마음에 늘 믿음이 있어야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의심과 불신앙의 마음이 들어와 불안하고 불행 속에 살고 잇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믿을 데가 없잖아요. 지위, 명예, 권세, 돈 이런 것을 믿지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은 하나님 모르니까. 그러나 극히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믿을 데가 없기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바로와 온 군대가 그들을 다 잡으러 나왔는데 홍해수가에 와서 올데갈데가 없습니다. 군대도 없고 무장도 안되고 바로왕의 군대를 대항할 수도 없습니다. 다 잡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를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너희는 오늘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오늘 내가 본 애굽 군대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싸워서 홍해수가 갈라졌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면 하나님 믿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 감각적으로나 경험 등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지적으로 가능한 것을 믿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지요.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믿는다고 기도할 때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적이 일어나야 돼요. 내가 영적으로 믿으면 영적인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야 되고 육신적으로 믿으면 육신적인 치료가 기적적으로 일어나야 되고 생활적으로 믿으면 생활에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은총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데 무엇을 믿을까요? 그렇게 하는 사람 많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백화점처럼 많아요.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레마가 되어서 감동을 주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의심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 :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잠언 4장 20절로 22절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것이 생명이 되고 온 몸에 건강이 되는 것입니다. 너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이루리라. 우리는 정말로 튼튼한 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믿어지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기적을 기대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믿는다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할 수가 있지요.

▶ 아브라함의 믿음

창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마음속에 바라보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바라보고 믿으면 여러분 운명과 환경이 믿음을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자꾸 내 팔자가 나쁘다. 내 환경이 나쁘다. 시대가 나쁘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것은 마음을 다스리면 자동적으로 여러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난 다음에 다스린 마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명령하면 큰 변화의 역사가 여러분 환경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 마9:20-22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음으로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아직 안 나았습니다. 혈루병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예수님의 옷가에 손만대면 낫는다고 바라보고 믿었는데 손을 대자마자 나아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먼저 믿음이 있고 그 다음 구원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서 담대하게 행하십시오. 용기를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바라보고 믿고 행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5. 감정, 화, 성을 다스려야 합니다.(잠16:32)

1980년도 브리태니카 연감을 보면 '특이한 일, 그러나 주목할만한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샘렌드로(Samlendro) 시에, '블루 돌핀(Blue Dolphin)'이라고 하는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이 식당에서 방금 결혼한 신랑 신부가 3백여 명의 손님을 초대해놓고 피로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랑 신부가 돈 많은 집 자녀들이라 피로연은 화려하고도 거창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의견충돌이 생겼습니다.

화가 치민 신랑이 결혼 케이크를 집어 들어 신부의 얼굴에다 덮어씌웠습니다. 그러자, 신랑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손님들에게도 화가 전달되어 저마다 테이블을 집어던지면서 소동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연회장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끝내는 30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어 겨우 진압시켰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저 간단히 웃어넘기고 말 가벼운 이야깃거리가 아닙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브리태니카 연감에까지 기록될만한 사건입니다.

약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시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 김익두 목사님이라고 하면 왕년에 신천장안의 유명한 깡패요 불량배입니다. 그러던 그분이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는가 하면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시느라 높은 산길을 걸어 오른 후에 너무도 더워서 웃옷을 벗어놓고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어떤 술취한 사람 하나가 올라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느냐?"고 시비하면서 다짜고짜 마구 때리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리 치고 저리 치는 대로 아무 저항 없이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이윽고 저쪽에서 때리기를 멈추었을 때에 김익두 목사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형님 다 때렸소?" "다 때렸다 왜?" 목사님은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상대방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내가 김익두야." 순간, 사나이는 사색이 되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젠 죽었구나 싶어 싹싹 빕니다. 목사님이 점잖게 말씀합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하던가?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다면 자네는 여기서 장례식을 치렀을 거야. 그러나 지금은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내가 예수 믿은 덕에 자네가 살았지 않았나?" 사나이는 그제야 반정신이 듭니다. "그러면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얼 어떻게 해. 따라와야지." 목사님은 그를 데리고 가서 부흥회에 참석시켰고, 후일에 그 사람은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유 없이, 말도 안 되는 그 부조리 한 매를, 더구나 그 매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허수아비처럼 맞고만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누가 다스린 것이겠습니까? 지성입니까? 교양입니까? 강한 의지입니까? 학벌입니까? 아니면 체면입니까?

모두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마음을 다스리게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인격이 곧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제사를 드린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그렇지 못한 형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자, 형 가인의 얼굴빛이 변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분하여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4:6)"라고 경고하십니다.

잠언 16장 32절 말씀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노하더라도 시간을 조금만 지연시킬 수가 있다면, 오늘 낼 화를 하루가 지난 내일에만 낸다 하더라도 그는 용사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 우리가 잘 아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요 신앙인인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한때 그를 모질게도 욕하고 비난한 스텐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링컨에 대하여 참으로 못된 소리를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저급하고 교활한 어릿광대"라느니 "고릴라 같은 사람"이라느니 "고릴라를 잡으려면 아프리카로 가지 말고 링컨의 고향으로 가라"라느니 갖은 악담을 다 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링컨은 후에 대통령이 되자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였으며 함께 훌륭한 일을 많이 해냈던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저격을 당하여 쓰러지자 스텐튼은 어느 누구보다도 슬퍼했습니다. "여기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 있다"고 하면서 대통령의 관 앞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링컨 대통령이 이 스텐튼을 국방장관에 임명할 때의 마음과 저를 용서할 때의 마음은 어디에서 다스려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양입니까? 그의 지성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이같이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다스린 것입니다.

▶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특권은 바로 다스림의 능력입니다. 이를 정치적 본능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만물을 다스리는, 만물을 주관하는 특별한 권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라는 특권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놓고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네 마음을 네가 다스려라. 그리고 그에 따른 운명도 네가 주관하라"라고 하는 엄청난 특권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스림에 따라 인격이 세워지고 그의 사람됨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린다고 할 때에는 그 주도적인 성향에 따라 다스리는 길이 몇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하나가 이성에 의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경우입니다.

이성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면 지성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지성은 합리성을 생각하며 그 미래를 추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지성인 또는 문화인이라고도 말합니다.

한편 자기 양심에 의하여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자극이 있을 때마다 양심에 묻게 되고, 그리고 도덕성을 생각하여 이것이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 남에게 해가 될 것인지 이익이 될 것인지, 이런 것들부터 먼저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의지에 의하여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 의지를 굳게 함으로써 어떤 어려운 시련이 있어도 끝까지 잘 참고 견디어나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일컫습니다.

그 다음엔,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에 의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 이외의 그 무엇으로도 나의 마음을 지배케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일사각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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