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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삶 (행 5:32)

by 【고동엽】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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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삶 (행 5:32)
 
 

   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다 보면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 가족이 사고에 대한 작은 제보라도 얻어 보고자 걸어놓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제보자에게 보상하겠다고 보상금까지 밝힌 것도 있습니다. 눈물겹게 호소하며 “제발 부탁드립니다”라고 써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처럼 제보가 들어오지 않는답니다. 분명히 목격자가 있는데도 제보를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추정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우선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다음으로 제보하면 오라 가라 하고 또 분쟁이 생길 때 입장 곤란한 일이 생길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나 말고 다른 목격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미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목격자와 증인은 별도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목격자는 사건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자기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 체험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증인은 목격한 것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가 보고 체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실제로 목격을 하고도 증언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목격자로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격하고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증인입니다.

   성경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목격자로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목격한 것을 자기만 알고 지나갑니다.

   다른 하나는 증인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증언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열정을 가지고 증언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증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코 목격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려면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증인이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의 증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증인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기대를 기억해야 합니다.

   흔히 마 28:19 이하의 말씀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한마디로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가서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강력한 주님의 기대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제 저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주님께서 저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요즘 국민 여동생으로 김연아 선수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계 4대륙선수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곧 펼쳐질 세계 선수권에서도 우승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년에 벌어질 동계 올림픽에서도 우승할 것을 기대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국민들의 이런 기대를 잘 압니다. 그래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지만 열심히 훈련해서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대하십니다. 이 세상 속에서 훌륭한 예수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부르시는 날까지 이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암송하고 있는 행 1:8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증인이 되어라”고 명령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증인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르다 보면 저절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행 2장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 때 120문도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 2:4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저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예루살렘 시내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감동하시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는 따로 전도대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전도를 위한 특별 훈련도 하지 않았습니다. “총동원 전도주일”이라든지 “VIP 전도”와 같은 전도 이벤트나 전도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저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언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증인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증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음 속에 강한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신문만 돌리지 말고 이 가정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 목사님이 성령의 강력한 음성임을 깨닫고 순종키로 했습니다.

  일주일이 시작되는 첫날마다 신문과 함께 전도 편지를 만들어 배달했습니다. 한 번은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당신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정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가족 모두가 예수 믿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의 기도가 필요한 분들은 문 앞에 기도 편지를 놓아두십시오. 제가 정성껏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스트레스 때문인지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교회 다니지 않지만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시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이 아주머니가 혼자 서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잠을 잘 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주일부터 자기 집에 오셔서 예배를 드려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가 개척이 되었고, 신문 배달하던 집에서 여러 가정이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라고 마음  속에 누군가를 떠올려주실 때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때 핑계를 대고 나중으로 미루면 안됩니다.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전도할 좋은 기회를 주실 때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때 두려워서 물러서면 안됩니다. 부끄럽다고 주저하면 안됩니다.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증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증언할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증언하고자 할 때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예수가 누구신가를 생각해 봅시다.

   요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입니다.

   남자관계가 복잡합니다. 이미 다섯 남자 품을 떠났습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덧없는 세월을 성적 욕망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마음 깊이 죄책감이 자신을 짓누릅니다. 이제는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끌고 가는대로 끌려갑니다.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에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분이 자신을 성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실 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실 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에게 증언합니다.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그렇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던 세상 욕망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를 증언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눅 19장을 보면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세리장이고 부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비록 부자이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깊은 외로움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당시 세리장은 지탄의 대상입니다. 로마의 앞잡이로 무자비하게 동포들에게 세금을 뜯어냈습니다. 많은 세금을 착복했습니다. 모두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외모도 보잘 것이 없어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를 싫어합니다. 상종하려하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소외감이 그를 괴롭힙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여리고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를 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를 친구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감당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그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외로움에 아파하는 그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친구로 맞아주셨습니다. 우리를 외로움과 소외로부터 건져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해 봅시다.

   요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치부했습니다. 이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 때문에 고통스러운데다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까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눈이 떠지고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 9:11) 당시 이렇게 말하면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증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여호와 이레로 많은 일들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갖가지 문제에 직면해서 기도드릴 때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를 증언해야 합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증언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에 대해 무엇을 증언하시겠습니까? 잘 준비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증언하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려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증언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 말씀과 기도로 나았습니다. 하루는 기도 중에 “네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마음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과 남다른 뜨개질 솜씨와 맛있는 만두 빚는 솜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루는 아파트 공터에 어르신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성껏 만두를 빚어서 찾아가 대접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만두는 처음 먹어본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 때 자기가 발견한 예수를 아는 지식을 전했습니다.

  하루는 젊은 엄마가 추위에 아이를 엎고 가는데 모자가 없어 보이더랍니다. 눈대중으로 아이 치수를 가름하고 기도하면서 이틀 동안 아이 모자를 뜨개질로 떴답니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가서 전해주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크게 감동을 했답니다. 그 때 자기가 발견한 예수를 아는 지식을 전했습니다.

  이 분이 이런 식으로 벌써 10명 넘게 전도하고 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적극적으로 예수를 증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예수의 목격자들입니다. 예수를 만났고 그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며 그분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목격자로 머물러있으면 안됩니다.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대하고 계십니다.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서 오늘도 증인의 삶을 살라고 감동해 주십니다.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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