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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15:11~24절
제목: 아버지의 마음
우리는 때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막연하지만 너무도 어렵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왠지 무뚝뚝하고 다정하기 보다는 엄해 보이는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새벽에 운전을 하다가 한 환경 미화원 아저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은 길거리에 나와 있는 쓰레기 봉투를 차에 담아 싣고서 다시 그 차 뒤에 매달려 있다가 다시 쓰레기 봉투를 주어담는 일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뒤를 따라가면서 자세히 보니까 왠지 힘드셨는지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서 매달려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쓰레기들이 가득 담겨 있어서 가장 냄새나는 부분인데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매달려 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생각이 드는 것은 문득 과연 누구를 위해서 저렇게 일을 하는 걸까? 누구를 위해서 저렇게 냄새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생각나는 건 그래 저분도 역시 한 사람의 아버지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힘들고 하기 싫어도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거겠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참 그 분이 존경스러워 졌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아버지는 자식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에게 그 유산을 미리 떼어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아직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유산을 달라고 하면 괘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왠지 아버지는 그렇게 다 해줍니다.
아버지가 주신 유산을 두 손에 들고 세상을 향해 신나게 떠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말이 없으십니다. 해질 녁이면 어김없이 동구 밖에 나가서 언덕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이제는 큰 아들에게도 낯 익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밥 상에 밥그릇과 숫가락 젓가락 놓는 것도 잊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말 없으십니다.
소문을 듣습니다. 혹자는 재산을 다 탕진해서 걸인이 되었다더라, 혹자는 불량배를 만나 가진 돈을 다 빼앗기고 객사 했다는 것을 봤다더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혹여 큰 아들이라도 눈치 챌까봐 뒤안에서 가슴 조이며 먼산만을 바라봅니다.
한편, 유산을 다 탕진한 아들의 마음은 허무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뭐라도 좋으니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간신히 얻은 일자리에서 돼지가 먹는 사료를 누가 볼까 싶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순간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 가면 적어도 맘껏 먹을 수는 있겠지. 양심이 있어서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종노릇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떤 벌도, 욕도 먹고 어떤 매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간신히 집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왔을 때 누군가 갑자기 달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눈에 맺히는 하나의 형상... 아버지..
아무 말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안고 맙니다. “그냥 때리면 맞아야지. 어떤 벌을 받아도 좋으니까 그냥 곁에만 있게 해주신다면...” 하고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 자신을 와락 끌어 안는 것을 느낍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이 몸을 씻지도 않아서 새카만 얼굴에 부드러운 수염이 담긴 얼굴로 그렇게 문대시며 한 없이 우시는 그 분...
난 정말 잘못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의 속을 그렇게 많이 썩혀 드렸는데... 몰매를 맞아도 당연한 나를..... 염치 없지만 아버지를 꽈악 끌어 안으며 한 없이 이 아들은 울고 맙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잘했던 잘못했던간에 그저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 보다 재물을 사랑해서 세상을 향해 떠나갈 때도, 그렇게 떠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찾지 아니하였어도, 이제 가진 것이라곤 지친 마음과 누더기 옷하나 뿐일지라도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렇게 사랑해주셨습니다.
이 아버지가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언제나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노란 손수건을 걸어놓으셨습니다. 돌아오기만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기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혹 성도님들 마음에 하나님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나 같이 못된 사람은 만나주시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 분을 찾기만 한다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지친 마음과 몸을 안아주십니다.
특별히 자신의 죄가 너무도 무거워서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책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그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한 1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구원의 비단 옷으로 입혀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락지를 끼워주시면서 우리를 위해 천국 잔치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죽음이 올 때 지옥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우리의 죄의 대가를 우리가 치뤄야 했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정말 기뻐하는 반면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큰 형은 왠지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나 한테는 일만 시키면서 잘해주지도 않고 기껏 죄를 많이 짓고 온 있으나 마나한 동생에게는 저렇게도 관심과 사랑을 쏟을까 해서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 큰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만 있을 뿐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탔는지를 모릅니다.
우리만 구원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나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 저기서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영혼을 바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무덤덤한 무관심한 마음 바로 큰 아들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혹 이런 마음을 품지 않았나 살펴 봐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흉악한 범죄자 입니까? 나 만이 아는 죄를 되새겨 볼 때 어찌 감히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 주시고 거저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한량없는 감사가 우리 안에 있을 따름입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용서 받은 사람으로서 한 사람의 사랑의 빚진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낙심한 영혼을 향해 두 팔 벌려 안아 주시길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영혼을 안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늘 범죄하여 나 같은 사람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영혼을 안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상처 받고 깨어진 마음으로 아무말 조차 하지 못하는 영혼을 안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바로 아버지께서 그 영혼을 너무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정도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보이시나요? 하나님의 두 손 가득 담긴 노란 손수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힘껏 예수님의 품에 안기길, 그래서 그 품안에서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고 가슴깊이 그 사랑을 심어 놓으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종으로 불러주지 않으시고 아들이라, 딸이라 자녀로 불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마음에 늘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기억하여서 언제나 주님 곁으로 달려가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품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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