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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자 (롬 10:13-15/사 40:9)
희망찬 2013년이 밝았습니다. 우리 교회로서는 본격적으로 ‘새성전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금년 교회 표어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자’로 정했습니다. 새성전 시대에 전도하는 일에 힘쓰자는 뜻입니다. 교회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붙여주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을 구약 이사야 선지자는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일들을 폭넓게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신약의 사도들은 ‘좋은 소식’ 곧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좋은 소식’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금년 표어에 ‘아름다운 소식’이라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일들까지 전하자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한 섭리하시며, 궁극적으로는 구원하시려 하는 그 모든 일들을 전하자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준비하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려면 우선 내가 전할 아름다운 소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도대체 내가 전할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사람의 말과 지혜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사람들이 반할만한 말과 지혜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이렇게 전도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 뼈저린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바로 전에 아덴에서 전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철학의 발상지요 인간의 지혜가 최고봉에 달한 곳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갈고 닦았던 지혜와 수사학을 총동원해서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이 믿는 신과 어떻게 다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 부활에 대해서 또한 심판에 대해 수사학적으로 논리를 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대로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 중 유독 아덴에서만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바울은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사람의 말과 지혜로 전도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전도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는 그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는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말과 지혜로 전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논쟁으로 흐르게 됩니다. 논쟁이 되면 전도의 열매를 맺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약 논쟁을 해서 전도자가 이기면 진 사람들이 선선히 교회에 따라 나올까요? 아닙니다. 기분 나빠서 안 나옵니다. 패배자로 승자에 끌려서 교회로 오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면 만약 논쟁을 해서 전도자가 지면 이긴 사람들이 당당하게 교회에 나올까요? 아닙니다. 기독교를 형편없는 종교로 여겨서 조롱을 하면 했지 교회에 나오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전도는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말과 지혜에서는 아름다운 소식을 찾을 수 없고, 그저 논쟁으로 흐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소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1. 말씀
우선 말씀 안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도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일까를 찾아야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미국의 지도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왔습니다. 그래서 미 대통령을 위시해 지도자들과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닉슨 대통령 때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습니다. 목사님은 닉슨 대통령의 녹취록이 공개되었을 때,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참담한 결과를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닉슨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닉슨이 백악관을 떠나기 전날, 경비행기를 띠워 백악관 주위를 비행하게 했습니다. 그 경비행기에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현수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 병에 걸려 수술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깊은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아내 팻에게 죽고 싶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어느 날 간호사가 닉슨에게 이것 좀 보라며 병실 커튼을 열었습니다. 병원 주위를 경비행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그 경비행기에 현수막이 걸렸는데 거기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번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부인인 루스 그레이엄이 준비한 것입니다. 후에 닉슨은 그 메시지가 자기를 다시 일으켰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빌리 그레임엄 목사님 부부는 닉슨 대통령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 속에서 저를 향한 아름다운 소식을 찾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도하려고 할 때,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면서 성경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를 위한 아름다운 소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간증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식은 우리의 간증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 안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눅 8:38-39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예수님께서 거리사 지방에 가셨을 때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예수님 곁에 있고자 했습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겪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집은 물론이고 거라서 성에 다니며 이 놀라운 간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간증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저 하늘의 기쁨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고, 또 구체적으로 응답하셨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고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위험과 인생의 고난에서 구원받은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고난과 역경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체험들이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그 자료 속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전도하려고 할 때, 그를 위해 기도면서 그 사람에게 맞는 아름다운 소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대상자
우리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려고 할 때 먼저 해야 할 것은 전하고자 하는 대상을 정해야 합니다.
요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요 1:40-4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안드레가 세례 요한을 따르다가 그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보니 세례 요한의 말대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가 자기 형 베드로를 찾아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요1:45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갈릴리 바다 부근에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보니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분 즉 오시마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가 가까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소식을 알게 됐을 때, 먼저 전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게 됩니다. 안드레는 친 형인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빌립은 절친인 나다나엘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떠오릅니까?
세계적인 전도학자 오스카 톰슨이라는 분이 [관계중심전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보면, “관계의 동심원”(Concentric Circle)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행 1:8에서 전도 대상 지역을 ‘예루살렘 ? 유대 ? 사마리아 ? 땅 끝’으로 확대한 것처럼 전도 대상자를 자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확대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전도대상자를 찾을 때 우선 가족에서 찾고(예루살렘), 다음으로 가까운 관계 즉 친척, 친구, 가까운 이웃에서 찾고(유다), 그리고 자기와 어떻게든지 연관된 사람들 즉 직장 동료, 동우회 회원, 동창 등에서 찾고(사마리아), 맨 마지막으로 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우연히 만난 사람들 중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서 찾으라는 것입니다.(땅 끝)
그렇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누구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까요?”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성령의 감동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누군가가 떠오를 것입니다.
만일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관계의 동심원을 따라 기도하며 찾아보십시오. 가족들, 친척이나 친구 또는 가까운 이웃들, 이렇게 저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우연히 만난 사람들 중에서 찾아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구원코자 하시는 사람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에는 여러분 마음속에 전도대상자를 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기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대상자가 정해지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 문이 열려서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요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동네에서 한 여인에게 전도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요 4: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시려고 우물을 찾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남 부끄러워 아무도 없는 시간에 조용히 우물을 찾았습니다.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앙숙관계여서 서로 한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물론 대화를 하거나 무엇이든 부탁하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외갓남자가 여자에게 무엇인가 부탁하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이 여인은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는가 의아해 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호기심 속에 대화의 기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상자가 정해지면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 문이 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회가 찾아오기를 손 놓고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며 기회를 만들어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좋은 지혜를 떠올려 주실 것입니다.
3. 인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은 교회를 인도하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은 교회로 인도하는 일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살핀 안드레는 아름다운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형 베드로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앞에서 살핀 빌립도 아름다운 소식을 알게 돼습니다. 그래서 친구 나다나엘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예수님 역할을 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을 하도록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면서 그 대상자를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전도의 마무리는 인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에 우리교회 표어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자”라고 정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명령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일에 순종하며 참여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 전도의 귀한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참 전도가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전도에 부담을 갖는 시절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이 일에 함께 나서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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