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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의 복 (요 20:19-23)

by 【고동엽】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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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의 복 (요 20:19-23)

 

   교회사적으로 한국교회의 시작은 부활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이 한국교회가 시작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최초의 선교사인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조선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고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렇게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를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교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들이 첫 발을 내딛은 바로 그날을 이 땅의 부활의 날로 삼으셨습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며, 영적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며, 나라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이 전해지면서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이 부활의 아침에 축복의 서광이 이 땅에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큰 복을 가져다줍니다. 어두웠던 과거를 끊어내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에게 예수 부활의 복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임하는 예수 부활의 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임하신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정말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들이 받았던 복의 내용은 이런 것들입니다.

 

1. 평강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시면서 처음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그리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신 뒤에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처음 만나시면서 평강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간단합니다. 지금 저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당시 제자들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뿔뿔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고 죽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 혐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 산헤드린 공회의 군사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문을 굳게 닫고서 말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따르던 주님이 십자가형을 받고 처형당하신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목자 없는 양의 신세입니다. 게다가 자기들도 언제 예수님처럼 끌려가 처형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정말 큰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국가안보가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매우 불투명합니다. 그래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날이 불안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고 주님 주시는 평강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 14:27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예수님께서 평안을 주시는데 이 평안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주는 평안과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표면적인 평안입니다. 잠시 잠깐 불안한 일이 없을 때 맛보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다시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직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금새 그 평안은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평안은 아주 얕은 평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면적인 평안입니다. 마치 바다 저 깊은 곳이 항상 고요하고 잔잔한 것과 같습니다. 비록 건강에 문제가 있고, 직장과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을 때, 우리 심령 저 깊은 곳에는 평안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깊은 평안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성령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될 때, 우리 안에 평안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갈 5:22에서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심령 가운데 거하시게 될 때,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성령의 열매로 우리 심령 속에 가득하게 됩니다. 비록 인생사가 여전히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길이 불확실하고 깜깜해도,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의 복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2. 희망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상태는 그야말로 ‘절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건만 예수님께서 허망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입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뭐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습니다. 게다가 언제 잡혀서 처형당할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저들은 깊은 절망 속에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자기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기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동안 자기들을 짓누르던 절망을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캄캄하던 앞길이 다시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깊은 절망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빠져나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누구 하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어느 것에도 희망을 걸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어,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찾아오십니다. 저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저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저들에게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기쁨을 얻게 해 주십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서북쪽에 위치한 ‘밸리포지(Valley Forge)국가 역사공원’에는 ‘워싱턴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는 유독 기도하는 상이 많습니다. 교회당 외부에 기도하는 어머니 상이 있고, 또 교회당 내부에는 기도하는 군인 조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기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을 섬기게 하소서.”

  이렇게 이 교회가 기도를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 밸리포지 전투가 워싱턴이 지휘한 북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였습니다. 군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대부분 탈진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휘관 워싱턴은 달랐습니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이길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북군이 열세를 만회하고 남군을 물리쳐 대승을 거두었고, 전쟁을 끝낼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워싱턴이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에게 끝까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의 예견도 아닙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거기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의 복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3. 확신

   오늘 본문 바로 뒷부분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를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러 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도마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다른 제자들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하는데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일 뒤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도마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 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때서야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그 고백을 들으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오늘도 도마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전해도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음이 없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으셨던 것처럼 이런 사람들을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믿음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고 믿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보고 믿는 믿음은 경험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증명해 보고, 확인해 보고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 것,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은 신앙적 믿음을 말합니다. 증거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지만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왜 믿는지 알 수 없게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복인 것입니다.

 

  최근에 남자 청년 몇이 새가족으로 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를 처음 온 분들입니다. 공교롭게도 교회를 오게 된 동기가 같았습니다.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어 결혼을 하고 싶어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뜻밖의 제안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 허락해 줄께!”

  그래서 이분들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결혼하려고 억지로 오셨군요.” 그분들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이왕 왔으니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하셨습니다. 처음 주님 앞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저마다 다양한 계기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복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보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믿어져야 합니다.

   이 부활절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으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찾으셔서 믿음의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유머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남자들이 다 무기력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까 한약 한 첩을 잘 못 먹어서라고 합니다. 그 한약은 바로 ‘구기자’랍니다. 구기자 한 잔 씩을 잡수셔서 다 구겨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아내가 남편에게 뭘 먹이면 구겨져있는 인생을 활짝 펴지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한 가지 발견했답니다. 바로‘피자’ 한판을 시켜주었답니다. 그런데 피자 먹는다고 인생이 펴지겠습니까?

 

  이 부활의 아침에 예수 부활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이 활짝 펴지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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