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투구를 쓰자! (살전 5:8)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이 세 가지는 신앙 인이 세상을 살고 신앙을 성장시키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 요건이 되는 내용들입니다. 올 한해도 이 말씀을 붙들고 주안에서 승리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①믿음으로 살자!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우리들의 신앙의 행위입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 그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상이 있습니다.
믿음은 주님을 나의 삶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중심을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할/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갖자' 믿음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갖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믿음을 지키고 살기가 참 복잡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뜻을 세워야 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할/
▶우리의 믿음이 믿음다워지려면 몇 가지 우선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⑴하나님을 우선하는 삶입니다.
마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이 우선되게 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 속에 관심 속에 하나님이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나에게 먼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믿/ 우리 신앙인의 삶에는 이 같은 우선 순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⑵주일을 소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사58: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할/
여러분, 주일을 생명처럼 지켜보십시오. 주일을 지킨다는 말은 내 인생, 내 중심을 성전중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 '주일을 지킴'이 헌신이고 투자이고 고백이고 순종입니다. 바쁜 시대에 할 일은 많은데 하던 일들을 다 놓아두고 주일날 예배드리러 간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삶에 주님이 중심에 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의 앞길을 안내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주일날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주일날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은 날도 주일날입니다. 장차 주님이 재림하실 날도 주일날 새벽이 될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일하느라고, 돈 버느라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주일날 놀러가고 여행가고 운동가고 잠자는 분들도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불행한 일입니다. /할/
⑶십일조 생활입니다.
말3: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성경에는 '십'자로 시작하는 정신이 세 가지 나옵니다. '십계명 정신', '십일조 정신', '십자가 정신'이 그것입니다.
'십계명 정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정신입니다. '십자가 정신'은 인류의 죄를 청산하시려고 갈보리언덕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우리의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신입니다.
십일조를 통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하늘 문이 열리는 복과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늘과 땅과 바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온전하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드리는 것이 축복의 기름길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창고', 즉 성전, 나의(하나님) 집인 교회에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축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늘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제때에 비가 풍족하게 오면 농사가 잘되어 목축도 잘되고 사람도 풍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때에 비가 오지 않고, 6개월, 1년, 2년, 3년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물은 다 말라버리고 짐승과 사람도 굶주리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적당히 비가 내려야, 하나님께서 근본적인 축복을 주셔야 모든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14:22, 29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대하31:6, 10절에도 '히스기야도 유다 백성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와 헌물이 축복이 되어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인복과(福因福果)'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된 일을 하면 복된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씨를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 앞에 축복과 사랑을 받으려면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요, 통로입니다. 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하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부는 절대로 그물을 팔지 않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종자 씨를 먹지 않습니다. 화가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붓을 없애지 않습니다.
목수는 망치와 대패는 어디를 가든지 가지고 다집니다. 내 머리를 깎아 주는 이발사는 6.25때 가위 하나만 들고 다니면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위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성도는 십일조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아멘!/
십일조를 드려도 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⑴즐거움과 감사로 하지 않고 부담감과 의무감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많은 분일수록 인간의 계산이 앞섭니다. 그러나 의무감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의 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⑵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⑶십일조를 드리고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의롭게 생각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내가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다고 교만하면 안됩니다. 더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할/
②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삶은 미래 적인 삶입니다. 미래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을 지켰으니 장차 나에게 면류관이 예비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며 기대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미래는 하나님이 이루시고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기대하고 꿈꾸고 바라보고 소망해야 합니다. 그런 기대와 꿈을 가지면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원래 소망이란 원어의 뜻은 '피난을 가기 위해 서둘러 간다, 살길을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그 말이 상징적으로 변해 '확신한다, 신뢰한다, 안전하다'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벧전 1장에서 '산 소망'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 소망이 살아있는 소망이며 생명이 있는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산 소망이 되십니다. /아멘!/
▶벧전1:4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산 소망의 조건을 네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⑴'썩지 않고' 우리 인간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 썩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다 썩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 기업은 썩지 아니합니다. 부활의 몸도 썩지 아니할 몸입니다. 고전15:52절에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할/
⑵'더럽지 않고' 땅은 사람의 죄악으로 손상되고 더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것들은 손에 다른 사람의 피를 묻혀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깨끗합니다. 그곳은 사람의 범죄한 손으로 세운 나라가 아니므로 정결합니다. 그곳에 있는 것, 그 나라에 속한 자 모두 정결합니다. /아멘!/
⑶'쇠하지 아니하는' 세상 것은 세월이 지나면 쇠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습니다.
⑷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있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할/
그런데 세상이 주는 소망은 그렇지 못합니다. 곧 변하고 오염되고 추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영원한 소망다운 산 소망입니다. 시39:7절에서 시인의 고백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할/ 주께 소망을 둔 사람은 넘어지는 것 같으나 일어서게 됩니다.
눅12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농사를 지어 엄청난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업에 성공하여 떼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큰 창고를 짓고 거둔 곡식을 저장하고 배를 두드리며 자기와의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이제부터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면서 그 물질에 소망을 두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은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옛적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현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업에 소망을 거는 사람은 그 사업이 몰락할 때 함께 몰락합니다. 우리가 IMF시대에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지고 기업가들이 몰락했습니까? 가진 소유에 소망을 거는 사람은 그 소유가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권력에 소망을 둔 자들도 그렇습니다. 그 권력이 붕괴되면 함께 붕괴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한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믿/ 여기에 우리가 빨리 눈을 떠야 합니다. /아멘!/
시71:14절에서 시인은 고백하기를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라고 합니다. /할/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할/
③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호심경은 개혁 성경에서는 '흉배'라고 했습니다.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군인들이 무장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말은 가슴을 건강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가슴이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슴은 정신의 공급처입니다. 그래서 이 가슴이 병들고 찌들고 악해지고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게 되면 세상을 향해서 악한 삶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사랑을 베풀며 선하게 살아갑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도도하게 흐르는 몇 가지의 사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⑴경신사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장사상'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가정에서도 부모를 공경하고, 사회에서는 나이 많으신 분을 공경하고, 센머리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스승을 존경하고, 선배를 대우하는 이런 것이 다 '경신사상'에서 오는 정신입니다.
⑵애린사상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사상이 결여되면 종교는 거추장스러운 사치품이 되고 맙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정치, 경제, 봉사 그 어떤 것도 가치를 상실합니다.
특히 남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은 '애린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애린사상이 결여되면 의사와 환자는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운수업자는 사람을 짐짝 취급합니다. 요식업자는 돈을 벌기 위해 먹는 음식에 인체에 해로운 물질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⑶보은사상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일괄해서 흐르는 사상이 바로 이 '보은사상'입니다.
보은사상은 '은혜에 보답하고,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 오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께 순종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사상입니다. 이와 같이 '경신사상, 애린사상, 보은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이요, 도덕의 기준이 되고 사랑의 실천학이 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베이커'는 '사랑으로 이끌면 잔인성이 물러간다.'고 했고, '버튼'은 '제아무리 강한 밧줄도 실오라기 만한 사랑의 줄을 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자녀들을 놓지 않는 견고한 사랑의 줄입니다. 요13: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가지 사랑하시니라' 이 사랑으로 우리 모두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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