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⑵ (요 13:34-35)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고' 떡과 포도주로 주님의 살과 피의 성찬식을 하시고 '영원히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신 모든 말씀을 종합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기가 막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들 중에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새 계명은 지금까지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을 요약한 핵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신6:5절에서 인용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의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 구약의 정신입니다. /할/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레19:18절에서 인용하셨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사상은 한마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며 기독교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높은 사상이 없고 사랑보다 더 큰 철학이 없으며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가 없음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고, 죄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요일4: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예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와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 구약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구약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하고 좋아하며 느끼는 대로 사랑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사랑에 대한 개념을 정의해 주신대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은 새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①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
우리의 취향대로 사랑하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의 스타일대로, 생각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음대로 입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교회에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오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다닌다고 말합니다. 헌금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봉사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도 아닌 착각입니다.
사랑의 기준은 우리가 불쌍히 여기고 우리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만족시키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②새 계명을 구약의 계명들과 비교해 보면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⑴대상을 구분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사랑의 대상은 이방인이 제외돼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끼리 사랑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어떠한 지경에도 참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지 남의 자식을 위해선 그렇게 하진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약의 사랑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동족끼리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은 사랑의 대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을 포함해 유대인이나 이방인, 지혜 자나 어리석은 자, 백인이나 흑인, 늙은이나 젊은이, 남종이나 여종, 성별이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모두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랑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기준을 예수님께서 새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할/
⑵한계를 두지 않는 사랑입니다. 구약의 사랑은 용서와 더불어 채찍과 징계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한계가 없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죄에 대한 용서를 일곱 번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의 용서는 일곱 번이 최대 용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에 한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국인의 정서는 삼 세 번입니다. 그 다음엔 흔히 '국물도 없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개념과 많이 다릅니다. /할/
⑶본을 보이신 사랑의 방법입니다. 구약에서 사랑의 방법은 율법과 명령입니다. 율법에 어긋나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의무적이거나 율법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방법은 먼저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닥에 휴지가 떨어져 있을 때 주울 것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솔선 수범해 줍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손가락 사랑을 많이 합니다.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사랑을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기도에 자신이 속아넘어가기도 합니다. 화려하게 기도한 후에 그게 자신인양 착각합니다. 사랑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은 구약의 율법적 사랑과 전혀 다릅니다. 롬5: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주님의 사랑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조건 없이 희생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해 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랑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아멘!/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서 그리스도인과 제자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일정한 단계를 거쳐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 핵심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할/
③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⑴나 자신의 이기주의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이 정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에게 상당한 인내의 삶이 요구됩니다. 그런 용기가 없으면 이런 정신은 발휘될 수가 없습니다.
⑵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이런 정신을 발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나도 건강하고 세상도 건강해지고 그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⑶우리 신앙 인들은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도덕규범을 지키려 애쓰고 국가의 의무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남들이 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나 자신은 이웃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가는 삶, 이 삶이 오늘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그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⑷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성령의 열매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아멘!/
▶성 프란치스코는 거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엄청난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길을 걸어가는데 고름으로 뒤범벅 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너무 더러워서 그 사람을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 저녁 성령께서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어떻게 네가 그 고름 나는 환자를 지나쳤느냐?' 프란치스코가 말합니다. '너무 더러워서 가까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너는 저 고름 많은 형제보다 더 더러웠다. 그런 너를 내가 사랑했다.'
그 날의 사건을 통해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아버지께 받은 재산은 다 내놓을 수 있었어도 고름 나는 형제를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인 건 성령이셨습니다.' /할/ 그러기에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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