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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선민의식을 질타! (롬 2:17-29)

by 【고동엽】 2022. 3. 20.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질타! (롬 2:17-29)

 

  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유대인이라 하는 네가' 이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굉장히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이방인들은 다 죄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 의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을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의롭고, 선하고, 잘났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자만심을, 유대인들의 우월감,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을 꼬집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유대민족만큼 자만심이 강한 민족도 없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우월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을 택하시고 그 민족을 통해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 메시야를 통해서 이 땅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축복을 유대인들은 그만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할/


  ▶먼저 유대 민족에 대한 명칭을 생각해 봅시다.
  ⑴이스라엘입니다. 창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지방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 그에게 큰 나라와 민족을 이루어 줄 것을 약속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두 형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고, 두 형제 중 하나님은 첫째인 에서는 버리고, 둘째 야곱을 선택하여 선택받은 신앙의 계통을 이어나갈 장자로 삼습니다.
  야곱이 장자 권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빼앗은 것이 화근이 되어 하란 땅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20년 간의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와 더불어 밤새 씨름하여 이기고 축복 받게 될 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창32:28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야곱의 바꿔진 이름이 국호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란 말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란 뜻도 됩니다 만은 '하나님이 함께 하면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할/
  ⑵히브리인입니다. 출1:15-19절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칭하여 히브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먼데서 온 자, 강 건너에서 온 자'라는 뜻인데, 다른 민족과 구별해 놓은 의미입니다.
  ⑶유대인입니다. 왕상12장에서 솔로몬이 죽으면서 이스라엘 나라가 주전 932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집니다. 북은 여로보함이 10지파를 차지하고 국호를 이스라엘이라고 정하였고,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남은 두 지파(유다, 베냐민)의 국호를 유다로 칭하였고, 유다는 다윗의 왕권을 계승한 정통지파로써 수도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전 722년에 북 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된 후, 남 왕조 유다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⑷유대인과 이스라엘은 어떤 백성입니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요, ㈁소명된 백성이요, ㈂계시 받은 백성이요, ㈃타민족과 구별의 표시로 할례 받은 백성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백성(제사장의 백성)이요,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백성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소유한 백성이요,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백성이며,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있는 백성이요, ㈉하나님의 뜻을 만방에 선포할 사명이 있는 백성입니다. /할/

 

  ①유대인이라는 긍지에 빠져있는 선민(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유대인은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하나는 '이방인들에게는 없는 율법이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은 네가, 다른 민족을 지옥의 땔감정도로 보는 네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크리스천이다 하는 자가 왜 그러느냐?'는 반문입니다.
  '네가 율법에 의지하며'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부여받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특권은 자랑할 뿐 아니라 그 특권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경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월감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함으로 나타났으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그 특권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에겐 언약을 지켜야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 속에 큰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교훈을 받고 가르치면서도 그 사랑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함으로 율법주의자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23-24절에서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 가서든지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랑할 때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도 없으면서 겉으로 자랑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 남자들을 보면 머리에 베레모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감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는 분이십니다.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심판주시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5:42절에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본문의 배경은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자랑하는 잡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을 나타내려는 악한 마음을 가진 자를 책망하는 말입니다. /할/

 

  ②그들은 율법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도 알았습니다(18).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동의했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그 말씀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고 동의했다'는 말입니다. 누가?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롬1:21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할/

 

  ③그들은 소경과 어두움에 있는 자들을 인도하는 자로 선별된 자입니다(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말씀을 잘 배워서 지식을 먼저 가졌습니다. 다음으로 진리의 규모를 가졌다는 말은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체계를 세웠다는 뜻입니다.
  '규모'는 문자 그대로 '규격과 모양'라는 말입니다. 뼈대, 골격, 본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 철학의 지식도 아니고, 사람이 연구하고 탐구해낸 진리도 아닌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통째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마음속에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경멸했습니다. /할/

 

  ④어떻게 멸시하고 경멸했는가?(19-20)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에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여기에 나오는 '소경이라든지 어두움에 있는 자, 어리석은 자, 어린아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이방인을 가리켜서 하는 말로 유대인들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멸시했습니다. 반면에 자기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인도하는 자요, 빛이요, 훈도요, 선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믿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발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이 부족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항상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더 잘나고, 더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목사로 나오지 마십시오. 권사로 나오지 마십시오. 집사로 나오지 마십시오. 직분을 감투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이런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죄인의 심정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할/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는 자들을 복음으로 깨우고 가르쳐서 바른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죄 속에 빠져 방황하는 무리들을 건져내는 일입니다. /아멘!/ 지금 바울은 유대인들을 지칭해서 말씀합니다만 오늘날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영적 유대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는 동일한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는 영적으로 연약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또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뜻도 있습니다. 훈도란 잘못을 범할 때 채찍질도 가하는 엄한 선생을 가리킵니다. 훈계라는 뜻도 됩니다.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은 특권을 부여받은 자기 만족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훈계하는 자는 가르치는 선생으로 믿고 있습니다. /할/

 

  ⑤유대인들의 죄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21-24)
  ⑴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이방인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부터 먼저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너희들이 자신을 가르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과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우쭐대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17-20절까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전에 먼저 네 자신에게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 자녀요, 참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좀 더 깊은 교훈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먼저 남을 위해 믿음의 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⑵'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도적질하지 말라, 도적질 말라, 나쁘다 그것은 죄다' 가르치는 네가 도적질한다는 말입니다. 말로는 제8계명을 가르쳤지만 그들 자신은 8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유대인들은 부정직한 방법을 통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구약에 보면, 장사꾼들은 저울추를 속였습니다. 되박을 마음대로 변경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철면피와 같이 돈을 긁어모으는데 열심이었던 '샤일록' 같은 사람이 전형적인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는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구나' 하나님의 것까지도 도적질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하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떼먹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까지 도적질하는 사람이 어찌 사람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⑶'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말로는 7계명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7계명을 어겼다는 말입니다. 여기 간음이란 남녀 관계의 성적인 관계도 포함합니다만, 성경에서 말하는 간음의 포인트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정조를 잃어버리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골3장에서는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간음하는 자와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영적인 간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⑷'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유대인들은 우상을 지극히도 가증히 여겼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에 당시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존엄한 신의 아들 디베리우스 가이사'라고 써 있어 유대인들은 이 화폐가 우상 숭배적인 화폐라고 생각하면서 그 화폐를 만지기조차 꺼렸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우상을 가증스럽게 여겼지만 뒤에서는 돈이 된다고 생각이 되면 이방 신전에 몰래 들어가서 신사 물건을 훔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우상을 훔쳐서 이방인들에게 내다 팔았습니다. 여기 '산사'란 우상을 섬기는 집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우상을 섬겼던 재물을 도적질하면서도 우상을 가증이 여긴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니 한마디로 어리석은 소경입니다. /할/ 
  ⑸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는 자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받게 됩니다. 그 자랑은 헛된 자랑이요, 가증한 자랑입니다(23).
  ⑹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에게서 모독을 받는다고 한탄하고 계십니다(24).
  '기록된 바'는 사52:5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범죄한 너희로 인하여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이 영광은커녕 모독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너희가 감히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도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된 삶 때문에 행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았는가 반성해봐야 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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