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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신앙을 배우자! (삼상 1:1:18)

by 【고동엽】 2022. 3. 20.

한나의 신앙을 배우자! (삼상 1:1:18)
 
  사무엘상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가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뒤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특히 영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대로 놔 둘 수가 없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지도 체제를 바꾸시고 하나님의 나라 기틀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왕정시대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그 왕정시대가 시작될 때의 이야기가 바로 사무엘상입니다. /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 나라가 세워지고 새로운 역사의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는 이야기가 뜻 밖에 한 여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문은 한나라는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해 큰 고통을 겪는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어떻게 보면 보잘것없는 한 여인의 눈물과 한숨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우연히 끼어 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 하에 일어난 일입니다. 놀랍게도 역사가 큰 전환기를 맞을 때 여인들의 눈물과 한숨이 거기 등장합니다. 그것도 모두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 당하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 구속의 역사를 새롭게 펼치기 시작하실 때 사라의 눈물과 한숨이 있었습니다. 나이 90이 다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또 눅1장을 보면 구약 시대가 가고 신약 시대가 열리는 그 때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의 눈물과 한숨이 있었습니다. 나이 늙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계시는데 그것이 무엇인가요? 신학자들은 이것을 ‘불임’이라는 주제로 설명을 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 당하는 여인의 이야기 속에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새 술은 새 부대에’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 방식대로 태어나는 사람으로는 새 시대가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 시대에는 새로운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한숨을 통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사람들 그들의 새로운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흔하고 어찌 보면 하찮아 보이는 여인의 눈물과 한숨을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창조의 소중한 도구로 쓰셨습니다. 여인의 고통을 새로운 역사를 여는 열쇠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모든 불임 여인의 눈물과 한숨이 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눈물과 한숨 속에 고통 당한 여인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의 주인공 한나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가 그 점을 찾아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멘!/
 
  ①한나는 고난을 잘 견뎠습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한나의 고난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⑴우선 그 가정 형편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남편 엘가나라는 사람이 4대 선조의 이름까지 배경으로 하여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집안이 뼈대있는 집안이라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게다가 에브라임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당시 이 지역은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유하고 좋은 가문에 한나가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⑵다음으로 남편과의 관계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남편 엘가나에게는 한나 외에도 브닌나라는 또 다른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5절, 8절을 보면 남편이 한나를 특별히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한나는 좋은 남편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⑶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6절을 보면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했고, 다른 아내인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여인 취급을 받지 못했으니 감당키 힘든 멸시를 당했고 마음에 큰 고통을 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특별히 절기가 되어 성소에 갈 때마다 브닌나가 마음의 상처를 건드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큰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나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잘 살고 좋은 집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좋은 집안 살고 남편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한 아픔을 이기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한나에게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할/


  ▶그런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한나의 태도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⑴우선 한나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찾아오면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냅니다.
  광야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저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고기를 먹지 못했다고, 적들이 공격해 온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인도하고 계신데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하고 있는 모세 때문이라고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때문이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원망과 불평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의 깊이만 더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세월을 더 길게 연장할 뿐입니다. /믿/
  ⑵한나는 그 고난을 잊으려고 하거나 도망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찾아오면 그 고통을 잊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술의 힘을 빌어서 잊어보려고 합니다. 마약이나 사람들의 위로로 그 고통을 덜어보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 고통을 피해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피하려는 태도 역시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고통만 더 크게 느껴지게 하고 심지어 고통에 무릎을 꿇고 말뿐입니다.
  한나는 그 고통을 온 몸으로 견뎠습니다. 그 고통을 가슴에 담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고통을 참고 견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한나로 하여금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나에게 고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한나를 새 시대에 맞는 사람으로 새롭게 빚고 계신 것입니다. 
  ▶곤충학자 ‘찰스 코우만’의 일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 구멍을 뚫고 나오는 광경을 오랫동안 관찰했답니다. 나비는 작은 고치 구멍을 뚫고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한번은 이분이 긴 시간 나비가 애쓰는 것이 안쓰러워 가위로 고치 구멍을 조금 뚫어주었답니다. 이제 나비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면서 창공을 날아다니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나비는 날개를 질질 끌며 바닥을 왔다 갔다 하다가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당시 경험을 써놓았습니다. ‘나비는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만한 힘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나비는 작은 고치 구멍을 빠져나오려 애쓰는 가운데 날개의 힘을 키우게 되어있는데 내 값싼 동정이 그 기회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지금 작은 고치구멍을 통과해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 때 많이 아파하고 눈물도 많이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영이 새 힘을 얻습니다. 이제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새로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께서 여시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우리가 사도 바울의 간증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분이 질병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고통을 온 몸으로 겪다 보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의 심령 속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할/
  여러분! 여기에 고난의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왔느냐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고난을 피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온 몸으로 맞서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견디십시오. 그러면 우리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

 

  ②한나는 그 상황을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한나의 일행이 실로에 있는 성소로 가서 연례 제사 의식을 끝내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다 쉬기 위해 숙소로 간 시간에 한나는 홀로 성소에 남아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반전이 됩니다. 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골치 아픈 문제가 변하여 축복의 출발점이 됩니다. /할/ 그 전환점에 기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능력이고, 기도가 축복입니다. /아멘!/
  만일 그 고통을 견디며 울고만 있었다면, 힘들고 아파서 소리만 질렀다면, 그 고통은 계속 그 심령 속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고통 속에서 울고 소리를 지르며 기도의 입을 열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고통을 이길 힘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16:23-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아주 특별한 비밀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주신 소중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 들어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한나가 이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늘 기도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한나의 기도에 제사장 엘리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한나가 통곡하며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지치고 힘이 들어 묵상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제사장 엘리가 오해를 했습니다. ‘술 취해서’ 중언부언한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형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한나는 당시 일반적인 기도 형식과 아주 다른 형식으로 기도했습니다. 당시의 기도 형식은 제사장의 인도 하에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자기가 직접 성소에서 오랜 시간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술 취한 것처럼 침묵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런 비난을 받았습니다. 저들이 방언으로 기도했을 때 사람들이 술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도는 저 바리새인들처럼 기도문을 외운다든지 어떤 기도의 곡조를 따라 기도하는 것인데 저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기도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형식도 필요하지만 형식에 얽매여 기도의 마음이 위축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을 의식해서 기도의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믿음이 담긴 기도의 마음, 우리의 진실이 담긴 기도의 마음, 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멘!/

 

  ③한나는 서원기도를 드리고 그 서원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이 때 1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 하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부부가 오래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늘 생각하십니다. 그 기도를 생각하시고, 그 기도하는 사람을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 하십니다. 여기에 기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시는 여러분을 생각하고 계심을 절대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한나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10절에 그 이름의 뜻을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저 아이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낳은 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한 사람을 늘 생각하셨다면 한나는 응답하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마음과 응답 받은 후 마음이 달라집니다. 기도할 때 간절함은 간 곳 이 없고, 응답 받음에 대한 감사가 식어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 응답으로 이루어졌다는 고백도 희미해지고 맙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된 일이고,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무엘이라 이름지은 한나의 심정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늘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약속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우선 사무엘이 젖을 뗄 때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육을 다했습니다. 대체로 3년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 때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돌보고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젖을 뗀 후에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쳤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해 살도록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따지고 보면 한나에게 그 때 아들은 사무엘 하나였습니다. 이제 이 아들 의지하고 노후를 보내야 할 상황입니다. 아들을 떠나보낸다면 아들을 낳기 전과 상황은 같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신실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이제 한나의 이런 신실함은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여는 일에 동참케 된 것이다. 2012년도에는 우리 모두 한나의 신앙의 위대함을 배워 그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축복의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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