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9)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선지자의 길을 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인 ‘통역사’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처음에는 전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4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했고 그 음성을 들을 줄 몰랐다는 증거입니다.
19절을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이 자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엘리 제사장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자기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점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아멘!/
①주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모함(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사무엘의 어린 시절 당시의 영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한 마디로 그 시대에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55: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안타깝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아서 그 영혼이 죽어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그 영혼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무엘 시대나 이사야 시대뿐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가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 영혼이 메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고, 현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모함이나 간절한 열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할/
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다 보면 초음파로 장기 구석구석을 살피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위 내시경검사를 할 때 의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장기 구석구석을 살펴야 합니까?’ 그러자 ‘암 진단을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암은 자각증세가 없어서 발견이 쉽지 않고, 자각증세가 나타나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조기 발견을 위해서 이렇게 구석구석을 살펴봅니다.’
암은 자각증세가 없습니다. 이미 암세포가 몸 속에서 자라고 활동하고 있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병을 키웁니다. 만일 암세포가 초기에 발견되었다면 그렇게 병을 키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암부터 해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그렇습니다. 자각증세가 없습니다. 영혼이 병들고 있는데 우리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믿/
여러분, 우리 영혼의 문제를 살펴야 합니다. 영적 건강을 체크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병들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시42:1절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인은 자기의 영적 갈급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이 타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영혼의 생수 되시는 주를 찾고 또 찾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여러분! 주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불 일 듯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하나님 앞에서 침묵해야 합니다.
3절에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침묵하며 누워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침묵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62:1절에서 시인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그분을 침묵 가운데 바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멘!/
현대를 일컬어 정보화 시대라 부릅니다. ‘앨빈 토플러’라는 사람이 제3의 기술 혁명으로 정보 교류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을 예언한 이래 오늘 우리 시대를 정보화시대라 부릅니다. 또한 현대를 지식 기반 사회라고 부릅니다. ‘다니엘 벨’이라는 사람이 지식이 중심이 되는 지식 기반사회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 이래 오늘 우리 시대를 지식 기반사회라 부릅니다.
이런 정보화 시대라든지 지식 기반 사회라는 표현은 한 마디로 정보와 지식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정보가 새로운 지식이 눈코 뜰 새 없이 쏟아지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조금만 관심을 멀리하면 순식간에 뒤쳐지고 밀려나는 그런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와 신지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매스미디어에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리 만무합니다. 머릿속은 온통 세상 정보와 지식으로 뒤죽박죽이고, 귀속에는 세상 소리들로 와글거리고 있는 속에서 저 하늘의 소리가 들리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세상 정보, 세상 지식을 뒤로하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저 하늘을 향해 귀를 열어야 합니다. 우리 심령 깊은 곳을 향해 귀를 열어야 합니다. /할/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상을 뒤로하고 차분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이것도 큰 문제입니다.
데모대를 진압하는 전경들은 워키토키라 부르는 무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시는 대로 무전기는 핸드폰과는 다릅니다. 말하려는 사람이 키를 누르고 말해야 합니다. 먼저 키를 누른 사람만 말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있습니다. 한 쪽에서 말할 때 한 쪽에서는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키를 놓은 후에야 다른 사람이 키를 누르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런 무전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말씀드릴 때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양자가 동시에 듣고 동시에 말하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 키를 누르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자기 말을 끝내고 키를 놓아서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키를 누르시면 아예 무전기를 꺼버립니다. 그래서 늘 자기만 말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도의 무전기의 키를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키를 쥐시고 말씀하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할/
③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따름으로써 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할/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⑴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묵상이란 말은 ‘약’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메디켈루스’입니다. 마치 약이 우리 몸에 들어와 온 몸에 퍼져서 약효를 내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와 우리 온 심령 속에 퍼져가면서 영향을 끼쳐 가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묵상하는 방법은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을 깊이 심령 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심령 속에 들어온 그 말씀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마치 되새김질하듯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깨달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받아 삶에 적용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할/
⑵설교를 경청하십시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해 전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경청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청’이란 단순한 ‘청취’와는 다릅니다. 외면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를 경청한다는 것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아멘!/
⑶기도 중에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서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기도 중에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강렬하게 떠오르는 말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차분한 가운데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에 집중하십시오. 성령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분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인지, 내 간절한 바람인지, 아니면 사탄이 던져놓은 마음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아멘!/ 성령의 도우심으로 확신이 들고, 마음에 평안히 찾아오면 그 마음을 붙들고 더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주의 음성을 듣게 될 줄 믿습니다. /할/
⑷환경을 살펴보십시오!
때로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기도했던 내용을 되새기면서 환경을 주목하십시오.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명에 주목하십시오. 내게 주신 사명과 관련해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죄와 연관해서 주목하십시오. 내게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의지하여 그 생각들을 잘 정리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의 삶이 그래야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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