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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처럼 우리도 은혜를 입어야 삽니다! (창 6:5-22)

by 【고동엽】 2022. 3. 19.

노아처럼 우리도 은혜를 입어야 삽니다! (창 6:5-22)

 

  우리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은혜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가장 귀한 존재로 여겨 사랑해 주시는 것 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루하루 순간 순간을 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 받은 자들이며 은혜 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하난'이라는 말인데 그 말은 '아래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이 은혜를 입어야 하고 주님의 긍휼을 입어야 살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업에서, 학교에서, 사회생활하면서, 교우관계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신앙생활에서도 이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할/


  ①노아는 타락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타락상을 11절에서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나님을 떠나 살던 가인의 후손들은 말할 것 없고,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던 셋의 후손들까지도 한결같이 타락하고 범죄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영적인 모습을 버리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포기한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항상 악했고, 계획하는 것이 모두 악했습니다. 세상은 폭력이 난무하여 힘있는 사람만 살 수 있었고, 사회는 부정부패로 온통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가정의 질서가 깨어졌습니다. 결혼의 신성이 사라지고 육체적인 만족을 위해 마치 동물처럼 본능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타락하고 방탕한 세상을 보시며 하나님은 근심하셨고, 세상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 지면에서 모든 사람을 다 쓸어 멸망시키는 대 심판을 집행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다스림 속에 있던 모든 동물들이 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한 사람도 그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아가 심판을 면하게 되지만 실상은 노아도 똑 같이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의 죄를 이어받았고, 또 그 자신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 취해서 실수를 하는 것을 보면 노아도 별 수 없는 인간이며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그 심판을 면하고 구원받았습니다. 그 자신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함께 구원받았습니다. 또한 다른 동물들까지 구원을 얻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해서 노아가 이렇게 구원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맨 먼저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였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심판을 받는 마당에 노아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②노아는 왜 은혜를 입었는가?
  그것은 그 시대를 아주 성결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창 7:1을 보면 '내가 너의 의로움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모두 타락해서 살아갈 때 노아는 혼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그를 인정하여 그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시대를 혼자서 거룩하게 살았으니 얼마나 고독하고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그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혼자서 그 고통을 다 감수하고 의롭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모두 함께 살아가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는 힘든 일입니다. 나 혼자서 그렇게 살면 그 사회로부터 왕따 당합니다. 여러분, 왕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십니까? 왕따 당해서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것이 축복입니다. /할/


  ③노아는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8절에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하시고 곧장 9절에서 그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씀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삶을 살았고,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았고,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죄인이며 강포와 패괴한 자들 가운데 노아가 그렇게 산 것은 그가 바로 의인이었고, 완전하였고,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④은혜를 입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다 멸망하는데 그 가정만 구원받습니다. 노아의 가정만 든든하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노아가 은혜 입은 결과입니다. 세상이 심판 받아 멸망당해서 망해도 보호받는 것 그것이 은혜이고 구원입니다. 그래서 은혜 입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노아의 때도 심판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이 심판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심판도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도적같이' 라는 말로 그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기습적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전 자각증세가 있다면 암이 왜 무섭겠습니까. 암이 도적같이 기습적으로 오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암이 퍼져서 자각증세를 느낄 때가 되면 이미 강도 만난 꼴이 됩니다. 
  ⑴앞으로 하나님의 심판도 그렇게 올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다는 소식이 구약에만 353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는 약속은 구약에 1517번, 신약에 318번 모두 1835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재림하십니까?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노아의 때 심판도 그렇게 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노아만 미리 알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⑵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으면 나의 현재의 삶을 인도 받게 됩니다. 오늘의 이 혼돈스런 세상에서 인도를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십니다. 노아가 그런 은혜로 그 시대를 홀로 의인으로 남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현재에 임하십니다. /아멘!/
  ⑶또 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장래와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들의 앞길을 염려해서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안전하게 구원해 내셨습니다. 현재의 인도하심도 중요하지만 이 앞날을 인도 받는 삶은 더 소중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장래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날을 몰라서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이민도 가보고 노후 준비를 2중 3중 장치로 마련해 보기도 합니다. 건강에 좋다면 아무리 비싼 약이라도 구해서 먹습니다. 그래도 미래가 불안하기는 매 한가지 입니다. 삶 가운데서 가장 불안한 것이 우리의 장래문제입니다. 이 장래문제를 인도 받고 살아가는 삶이 복입니다. 
  이런 미래의 불확실함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인도 받고 살아가는 삶은 은혜 중 은혜입니다. 그것도 확실한 인도를 받는 은혜입니다. 사41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임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내 오른손으로 너는 붙들리라' 이보다 더 확실한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 미래를 인도 받고 살아가는 은혜의 삶입니다. /할/     
  ⑷또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면 종말도 인도 받게 됩니다. 장래 죽음의 문제,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기도할 문제입니다. 반드시 은총 입어야 할 일입니다. 죽는 문제가 심각한 것은 죽는 모습이 아주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조용히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4-5년씩 병석에 누워있게 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이 종말의 문제까지도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아멘!/
  ▶노아는 그 시대의 의인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고 나니까 하나님이 때를 따라 그의 길을 안내하셨고 미리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가야할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확실한 은혜의 삶입니다.
  내가 은혜 입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은혜를 입으니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은혜를 입습니다. 그 자녀들도 그 사위들도 모두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노아에게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노아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되라는 메시지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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