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두운 사람들! (롬 1:19-23)
오늘 본문에 '인간의 값'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20절에서는 '이미 창세 때부터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줘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을 모른다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감사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하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와 은혜를 모르는 자식이 많습니다. 성도라고 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짓는 죄가 몇 가지 있습니다.
①원망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망 죄는 생각이 없어서 짓는 죄입니다. 보면 특별히 원망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만 열면 원망하고 탓하고 불평을 합니다. 그것은 생각이 짧아서 그렇습니다. 좀 깊이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감사하고 넉넉하고 원망할 이유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 입만 열면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불신자들 보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원망을 잘 한다고 합니다. 불신자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원망의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잘 하지 않고 오히려 체념을 잘하고 운명소관으로 돌려버립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니까 원망을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새벽기도도 했고 11조도 드렸는데 그런데 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 왜 잘 안 해주느냐'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 설익어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할/
②교만 죄가 있습니다.
교만은 자만하고 자기과신 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믿음이 좋은 줄 알고 살아가는 것도 교만입니다. 그래서 남을 정죄하고 탓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우를 범하고 스스로 의롭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③위선 죄가 있습니다.
위선자를 영어로 '가면을 쓴 사람'입니다. 배우는 연극할 때 속마음이 쓰려도 웃습니다. 왜냐하면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선입니다.
킬 케골이 쓴 '가 면'이라는 작품을 공연하기에 앞서 선전하기 위해서 배우들이 동네에 들어가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며 광대 짓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들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불이 났다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연극 참 잘한다고 박수를 더 크게 쳐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진짜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를 하니까 사람들은 더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이것이 가면입니다. 위선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때로 이렇게 위선자가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데 좋은 체 하고 아는 체하고 잘 믿는 체하고 선한 체하고 경건한 체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본의 아니게 이렇게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할/
④감사하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감사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오늘은 감사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입니다. 그리고 배신과 배은과 망덕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배은망덕 시대라 부르고 감사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라고들 부릅니다. 부모를 버리고 스승을 버리고 자기직장에 불을 지르고 부수고 친구를 버리고 신세진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시대입니다. 심지어 풍년에도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들이 없습니다. /할/
⑤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왜 감사하라고 하는가?
⑴'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에 따뜻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삶이 따뜻해지고 관계가 좋아지는 복이 주어집니다. 부모님에게 '부모님 감사합니다.'하고 마음을 전하고 은혜에 감사할 때 서로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부모는 자식에게 다 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날 것입니다.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스승에게 생신 날 선물 들고 찾아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라고 할 때 그 관계가 얼마나 따뜻하게 전해지겠습니까? 거기에 믿음이 있고 보람이 있고 소망이 있고 인생의 따뜻함이 주어집니다. /아멘!/ 그것이 감사가 주는 축복입니다. /할/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큰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을 합니다. 그때 노스웨스턴대학 학생이 강물에 뛰어들어 23명의 생명을 구해냅니다. 그것이 한때 화제가 되었던 때가 있습니다. 수십 년 후에 유명한 토레이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이 실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설교를 듣고 있던 청중 한사람이 일어나 '그때 그 청년이 바로 나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강단으로 이끌어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장 인상 깊은 일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대답합니다. '그때 뛰어들 때는 목숨을 버리며 모험을 했는데 그 23명 중 한사람도 찾아와 감사하다는 말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쓸쓸한 마음을 갖게되고, 하나님도 성도들에게 서운하고 쓸쓸한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왜 감사가 없습니까? 그 마음이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이 마음의 어두움을 무엇으로 몰아내야 할까요? 예수 생명의 빛으로, 성령의 불로 몰아내야 합니다. /아멘!/
⑵또 감사함이 있는 곳에 '만족함과 너그러움'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삶에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함과 너그러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할/
감사한 마음은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느끼고 살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텍사스 휴스턴대학 알렌 교수가 '만족하게 사는 삶 5계명'을 발표했습니다.
첫째는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는 연습을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적은 소득이라도 조금씩 저축하며 살라, 그리하면 꿈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꿈과 모험을 잃지 말라, 그러면 미래에 대한 희망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넷째는 '많은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고, 다섯째는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감사함의 삶은 이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⑶감사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5병2어 들고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5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눅17장을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께 찾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사람만 돌아와 감사사례를 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병을 고침 받고 찾아와 감사 드림으로 영적으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
단6장에 보면 다니엘은 창문을 열고 고국 하늘을 향해 매일 세 번 기도 기도했습니다.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은 약점을 잡아 죽이려 혈안 했고 그는 사자 굴에 던지기로 법령을 만들어 놓은 것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하던 기도를 계속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어떤 기도냐 하면 감사 기도입니다. 다니엘은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고 기도합니다.
마침내 그는 고발당했고 사자 굴에 던져지는 불행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자 굴의 굶주린 사자 입을 막으시고 건져내 나라의 2인자의 자리로 올려놓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인의 용기입니다. 감사함이 있는 곳에는 이런 기적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감사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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