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랴의 교훈! (마 16:21-24)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도중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하시자,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 그리고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고 그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라는 의미로, 그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21).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아직까지 제자들은 정치적 메시야 관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께서 빨리 왕이 되셔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시고 경제적으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며 자기들도 한 자리씩 맡아 출세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셔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공회원들이 있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그들에게 잡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형으로 처형을 당하시고 장사되었다가 반드시 사흘 만에 살아나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셔야 예언이 성취되고 만인을 구원하는 구주로서 사명을 완수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제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라도 그 길을 막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의 생각과 베드로의 생각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①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하고 만류합니다(22).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안 됩니다, 결코 죽어서는 안 됩니다.’하고 만류했다는 말입니다. 제자로서 당연한 말입니다. 여기 베드로는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죽도록 내버려 둡니까? 그리고 제자로서 예수님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할 일입니다.
사명의 길을 가다보면 때로 이렇게 만류당할 때가 있습니다. 대학갈 때 아들이 갑자기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온 집안이 한바탕 난리를 일으키게 됩니다. 모두 ‘결코 가지 못한다.’고 만류를 합니다. 그러면 결심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여기 베드로가 예수님이 죽어야 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절대로 그러면 안 됩니다.’ 하고 만류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만류가 때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고 할 일을 방해하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②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의기양양한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십니다(23).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때로 의기양양할 때가 있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때로 ‘내가 사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을 조금 하고 나서, 헌금을 조금 하고 나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나서 아주 의기양양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행동은 큰 오해입니다. 더구나 지금 베드로가 의기양양해 있는 것도 참 우스운 행동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 이렇게 오해를 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안 됩니다, 결코 죽어서는 안 됩니다.’하고 의기양양해서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다.’라는 자세로 서 있습니다.
이것이 때로 우리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말씀을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갑자기 베드로가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사단이란 말이 아니라 베드로의 생각이 사단의 생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시는 것인데 사단은 뜻은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단은 지금도 우리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 개인의 뜻을 내세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하며 성경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또 사단은 다른 사람을 움직여서 우리로 하여금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 개개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내 마음처럼 느끼게 하여 죄를 짓게도 합니다.
여러분, 사탄이 뭡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거치는 일을 하면 사탄이 됩니다. 사탄은 어느 무서운 형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자가 되고 훼방을 하면 그가 사탄입니다. 때로 우리들이 사탄의 역할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베드로는 자신이 큰일을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베드로는 지금 사탄이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말처럼 예수님이 결코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때로 ‘사탄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멘!/
③주님이 책망을 하십니다(23).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사실 우리들이 높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너무 깊고 높고 넓어서 우리들의 지혜로 다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내가 사탄의 역할을 할 때도 있고 방해자나 훼방 자가 될 때도 있습니다.
여기 베드로가 그 깊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깨닫겠습니까? 우리들이 그것을 모르니까 답답한 것이고 때로 불평도 하고 탓을 하고 또 본의 아니게 사탄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무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지가 죄라고 했습니다. 무지하면 열심을 내서 일한 것이 책망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할/ 그래서 바울사도가 롬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본문의 베드로의 생각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④바른 제자도의 정신자세를 말씀하고 계십니다(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⑴‘나를 따라 오려거든’ 이 말씀은 ‘내 제자가 되려면’ 이라는 말씀입니다.
⑵‘자기를 부인하고’ 이 말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과 생각과 주장과 부패하고 타락한 옛 자아를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 굴복시키라’는 말씀입니다. 바클레이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내 유익보다는 주님의 유익을 따르는 것, 자기중심의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생활의 지배원리와 그 이상으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할/
⑶‘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다가 닥치는 각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각오하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씀의 배경은 그 당시 로마제국의 속국이 된 나라에서 악명 높은 죄수나 사회를 전복시키기 위해서 반란죄를 범하여 십자가형의 형벌을 선고받은 자는 자기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를 사형장까지 지고 가야했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지고 가기까지는 엄청난 고통이 따랐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고통을 염두에 두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좇으려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당하는 죽음과 고통도 따를 수 있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할/
⑷‘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것이 제자의 바른 길입니다. 제자란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따르고, 주님의 사상을 따르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히12: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예수 바라보고 주님을 좇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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