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인의 삶의 모습! (딤전 6:17-21)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존귀한 자들입니다.
다이아몬드를 휴지로 쌌다고 해서 돌멩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돌멩이를 실크 보자기로 쌌다고 해서 보석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바울은 질그릇에 보배(예수)를 담은 보배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부족하고 연약해도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면 귀한 그릇이 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라!(17).
‘부한 자들은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부자들은 교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권력 가진 사람도 겸손해야 합니다. 언젠가 권력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겸손해야 됨은 돈은 돌고 돌기 때문입니다. 인기인도 겸손해야 합니다. 인기란 기운처럼 떠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눈에 보이는 것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교훈 합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말씀합니다.
골1:5절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고 했고, 골3:1절 '위엣 것을 찾으라'고 했고, 골3: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다 맡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평안합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소망! 하나님이 해결하신다는 소망! 하나님이 길을 여신다는 소망!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소망을 가집시다. /할/
2. 나눠주는 자가 되라!(18).
유대 땅에는 두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와 사해바다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각종 물고기가 뛰놀고 있습니다만 사해는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이유는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들어오는 물을 꿀꺽 꿀꺽 삼키기만 할 뿐, 단 한 방울도 딴 데로 내보내질 못합니다. 이유는 바다 위치가 깊기 때문입니다. 받고 보내야 물도 삽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입구와 출구를 따로 만드셨습니다. 음식물이 들어가면 배설되는 곳이 따로 있고, 코와 입으로 산소가 들어가면 각 기관으로 필요량의 산소를 공급하고 불필요한 가스는 딴 곳으로 배출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나눠 준다’는 말은 조건 없이 나눠주는 것을 말합니다.
행2:42절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쓰니라.”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언뜻 보면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내용과 비슷한 것 같으나 전혀 같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폭력으로 아니면 제도적 장치로 빼앗아 나눠 먹자는 것으로 강압과 강제수단이 동원됩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호의호식하고 자기 것을 내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누가 누구를 강요한 일이 없습니다. 성령 받고 기뻐서 자기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내놓고 기뻐했습니다.
▶왜 나눠줘야 합니까?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이만큼 먹고 쓰고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나누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남을 돕고 나누는 일을 외면하지 맙시다.
3. 참된 생명을 취하라!(12,19).
12절 “영생을 취하라” 19절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 요10:28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영원한 생명, 영생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누리는 영원한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창5장을 펴면 아담이 930세를 살다 죽었다(5:5)고 했고, 에노스는 912세에, 게난은 905세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950세에 죽었고(9:29),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고(25:7-8), 야곱은 147세에 애굽에서 죽었습니다(49:33). 모세는 120세에 모압 평지에 있는 느보산에서 죽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경우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가를 개인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전혀 다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가? 바울이 언제 죽었는가? 마태, 마가, 누가가 언제 죽었는가? 요한이 언제, 어디서 죽었는가?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신약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부활과 영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고(요11:25-26)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은 죽음의 문제보다는 생명을 크게 취급한 것입니다. 죽음보다 생명의 중요성과 그 힘을 믿었기 때문에 바울도 베드로도 스데반도 야고보도 순교가 겁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행6장 이하에 스데반의 순교사입니다. 전도하다 붙잡힌 스데반이 공회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고 공격을 받으며 심문을 받고 있었는데, 15절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죽음 앞에서 그가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생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얼굴로 드러납니다. 제 아무리 성형을 했더라도 성내고 화내면 일그러집니다. 그러나 돌에 맞아 죽어도 마음속에 영생이 있으면 천사 얼굴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 참된 생명을 소유합시다. 예수님을 내 심령 내 안에 모시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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