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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까? (미 7:18-20)

by 【고동엽】 2022. 3. 15.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까? (미 7:18-20)

 

본문은 하나님과 다른 신들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죄악을 사유하시는 하나님!(18)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여기서 ‘사유하신다.’는 말은 ‘히’어로 ‘노세’라는 말로, 그 뜻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 무거운 짐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사53:6절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애국자는 국가를 위해, 공산당은 공산주의와 그 사상을 위해 죽을 수도 있으나 죄를 옮겨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내가 가져야할 죄의 짐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엡2:1절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사유함 받기 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2:5절을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죽었고-살았고“ 그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2. ‘남은 자’의 허물을 넘겨주시는 하나님!(18)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왕상19:18절을 보면 바알 신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남은 자 7천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바알우상을 숭배했던 탓으로 장관도 대신도 신하도 모조리 바알을 숭배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여기서 ‘남은 자’란 이방신을 섬기거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만 섬기도록 남겨둔 사람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숨겨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남은 자의 허물’이란 남은 자도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들의 얘기로 바뀌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만, 욕심이 남아있고 유혹에 흔들리고 내 안에 못난 자아가 살아 꿈틀거리고 시기, 질투, 분 냄 등 온갖 육의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성경 안에는 죄를 사한다는 것을 다양한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넘긴다, 덮는다, 씻는다, 희게 한다, 대신한다, 기억도 안 한다, 넘어간다는 말은 곧 죄를 사유한다’는 뜻인데 본문에서도 ‘넘기신다.’고 했습니다. 죄목이 기록된 문서를 그냥 넘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월간지 <좋은 생각>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영웅 나폴레옹이 폴란드에 진격했습니다. 농촌 마을의 영주가 나폴레옹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저녁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도착하자 영주는 문밖에까지 나가 영접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온 나폴레옹은 식사가 마련된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주인은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자리도 그 다음 자리도 그냥 지나치고 세 번째 자리에 나폴레옹을 앉게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기분이 나빠 얼굴을 찡그렸고 이 모습을 본 수행신하가 영주를 꾸짖었습니다. “대 프랑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이렇게 대접하다니 영주가 겁이 없군.” 그러자 영주는 조심스럽게 대답하기를 “죄송합니다. 이 자리는 제 부모님이 앉으시는 자리입니다. 프랑스에선 황제폐하가 제일 높듯이 저희 집에선 제 아버님과 어머님이 제일 높습니다.”

시골영주의 번뜩이는 지혜, 그의 효성이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누가 제일 높습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크고 위대합니까? 나를 사랑하시고 내 죄를 사유하시고 내 죄의 기록을 조건 없이 넘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3.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시는 하나님!(18절 끝)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 하시나이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4.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는 하나님!(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죄 용서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만 죄는 끈질깁니다. 그래서 머리를 다시 들고 일어섭니다. 독버섯처럼 다시 싹이 나고 일어섭니다.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발로 밟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꼼짝못하게 능력의 발로 밟아 버린다는 뜻입니다.

나는 죄와 싸워 이길 힘도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길 힘을 주시고 죄악을 밟아주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으로 땅을 파면 하루 동안 1미터를 파기가 어렵지만 포클레인으로 파면 50미터를 팔 수 있습니다. 부산까지 걸어가려면 한 달이 걸리지만 비행기를 타면 1시간에 갈 수 있습니다. 맨 몸으로 한강을 건너가기가 어렵지만 배를 타면 태평양도 건너갑니다. 나를 이기는 힘도 죄를 짓밟는 능력도 주님께 있습니다.

 

5.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하나님!(19절 끝)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시적이고 상징적 표현입니다. 죄는 무겁습니다. 공중에 던지면 굴러서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바다에 던지면 한 없이 한 없이 깊은 데로 가라앉습니다. 무거워서 다시 떠오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신다. 기억도 안 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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