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닮은 사람! (창 1:27-28/2:7)
<찰스 다윈>은 사람이 아메바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의 기원은 원숭이나 아메바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139:14)고 했습니다.
사람의 존귀한 가치는 천하보다 귀합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 보다 귀한 것이 무엇인가?
헬라 사람은 지식을 구했으나 사람의 가치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요, 고린도 사람은 향락을 구했으나 사람의 목적이 향락에 있는 것이 아니요, 로마사람은 권세를 구하였으나 사람의 가치가 지위로 규정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경제 제1주의를 부르짖으나 그것도 수의 한 벌로 족한 인생 마지막 길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에 귀하고 가치 있고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믿/
1. 인간은 세 가지 재료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먼저 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2:7).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을 지으실 때도 흙을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창1:11,22). 흙은 자연의 기초가 되고 만물의 기초가 되는 재료입니다.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흙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생기입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그래서 특제품 사람이 만들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또 한 가지 재료를 더 사용하셨는데, 창2:22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사람)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의 한 부분을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만드실 때는 부모의 몸의 일부를 그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성향과 세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려는 성향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려는 성향과 사람에게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즉 사람에게는 자연적이고 동식물 적인 존재로 전락하려는 성질도 있고 신적인 존재로 승화하려는 성질도 있고 인간적인 존재로 남아 있으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짐승이나 악마가 되려는 성향도 있고 천사나 하나님이 되려는 성향도 있고 그저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성향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악마가 될 가능성도, 천사가 될 가능성도, 그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목적하신 바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며 형상을 나타내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은 존재로, 하나님과 비슷하게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야기도 하고 교제도 할 수 있는 신적 존재로, 하나님께 기도도 할 수 있고 찬송도 부를 수 있는 신적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께서 저를 천사보다 또는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
2. 사람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①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는 것은 인생의 본분입니다. "너는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13).
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찬송을 부르게 하심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라"(사43:21).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②사람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도우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남자와 여자만이 서로 도우며 살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사로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북한 동포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을 귀하게 여기고 저들을 도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③사람은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라고 분부했습니다. 여기 다스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리는 방식으로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즉 보살피며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가지고 자연을 파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정복하라는 말은 발로 밟듯이 정복하라는 뜻입니다. 즉 피조물에 굴복하거나 매이거나 붙잡히거나 노예가 되지 말고 발로 밟듯 자연을 정복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돈과 물질과 자연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정복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제 우리는 특제품답게 자부심을 가지고 멋지게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할/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시 90:10-12/약 4:13-17) (0) | 2022.03.14 |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롬 8:31-39) (0) | 2022.03.14 |
하나님께 받은 몸! (고전 6:19-20) (0) | 2022.03.14 |
참으로 예배하는 자! (요 4:20-24) (0) | 2022.03.14 |
잃어버린 것을 찾자! (눅 15:8-10) (0) | 2022.03.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