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는가? (눅 4:17-19)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선지자 요한의 소개를 받으셨고, 그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고, 성부 하나님께서 메시야 이심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세례직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하신 뒤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번째 설교인데 사61:1-3절을 인용하시어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①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신18:15,18절에 예언된 바로 '그 선지자'로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천국을 소유케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5:3). 가난한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소망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은 무덤 너머까지 미치는 축복입니다.
고후8: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요,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을 해결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비교해 보면 아무리 영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하고 자연 환경이 불리하더라도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간 나라는 축복을 받아 부요하게 살고, 아무리 영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하고 자연 환경이 좋더라도 기독교의 복음이 안 들어간 나라는 빈궁하고 잘 살지 못합니다.
②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시려고
예수님은 메시야로서(단9:24) 죄악에 포로된 자들을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의 자유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이라는 찬송 그대로입니다.
③눈먼 자를 보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눈 먼 소경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영적 소경들에게도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④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힘이 없어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자유를 빼앗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해방을 얻게 하고 영혼의 평안과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세상에는 악령에 눌리거나 열등감이나 정신적 압박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신 예수께 나오면 참 자유 함을 얻어, 모든 눌림과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주 말씀하시길 죄 사슬 끊겼네 우리 자유 얻었네> 이런 감격적인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⑤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케 하시려고
레25:8-55절에 나타난 희년으로, 노예들이 해방되고 땅의 경작을 쉬게 하며 거민 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해방의 해입니다. 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려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①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마1:21,9:13).
시51: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아담 안에 모든 인류는 죄인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실낙원 당해 버린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요15:4-5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마치 원목에서 잘리 운 가지와 같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요15:5-7).
②목숨을 버려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막10:45).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나의 죄를 위한 죽으심입니다. 롬5:6절 "우리가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였으며, 롬5:8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였으며, 롬5:10절에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했습니다.
③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셨습니다(눅19:10).
아담이 범죄 후에 숨어 버린 것처럼, 인생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가출해 버렸습니다. 사53: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으니, 가출해서 탈선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시고, 당신의 잃은 자녀를 도로 찾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풍성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10:10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도 오셨습니다(요14:6).
중국 명나라 학자 왕양명은 사람에게 길이 너무 많이 있음을 한탄하였으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하나 뿐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했습니다. /아멘!/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 (딤후 1:1-2) (0) | 2022.03.14 |
---|---|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렘 18:1-6) (0) | 2022.03.14 |
예수님 생각! 베드로 생각! (마 16:21-24) (0) | 2022.03.14 |
에덴동산의 네 강의 의미는? (창 2:8-14) (0) | 2022.03.14 |
약한 것이 은혜입니다! (고전 1:26-29) (0) | 2022.03.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