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이 은혜입니다! (고전 1:26-29)
시각장애인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강영우 박사는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이라는 글에서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 완전히 시각을 잃어 버렸고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아버지도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나가 고3이었는데 공부를 그만두고 동생들 먹여 살리려고 동대문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밤낮을 자지 않고 일하다가 그만 2년 만에 누나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강영우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장애인 고아원에 가게 되었고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 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고, 미국을 유학을 가서 석사, 박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사회에서, 아니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약함이 오히려 그의 강함이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약해지게 될 때 그 약함에 실망하게 됩니다.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일본의 가와바시라는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인데 이분이 늙어지면서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강하고 잘난 줄 알았는데 늙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가스파이프를 입에 물고 자살을 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약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썼다고 해서 강한 인생이 아닙니다. 약한 인생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인생을 가리켜 ‘질그릇’이라고 합니다.
대통령도 질그릇이고, 어떤 유명한 사람도 질그릇입니다. 여러분! 내가 돈이 많다고 질그릇이 아니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셰익스피어는 “인간은 하나님의 걸작 품 중에 걸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나약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흙입니다. 인간은 돈 있다가 돈 떨어지면 야코가 떨어져서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건강하다가 건강을 잃으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약한 인생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할/
성경은 놀랍게도 약할 때 강하고,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하게 세워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결단코 강한 자를 들어서 강하게 쓰지 않습니다. “나는 강하다. 나는 잘 났다. 나는 뭔가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도구로 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쓰시느냐? 여러 가지 시련과 경험을 통해서 “아! 나는 약하구나”라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강하게 만드셔서 사용하십니다.
▶정근모 박사님은 경기 고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졸업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바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23살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도 언제 쓰임 받았는지 아십니까? 그가 머리가 좋아서 쓰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한국에 초청을 받아서 과학 기술원을 만들고 한참 잘 나갈 때 아들 진우가 급성 신장병에 걸렸습니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하는 귀로에 봉착했습니다. 그 때 정근모박사는 손을 듭니다. “나는 약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공학박사도 교수 자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약해지던 그 시간에 하나님이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언제 쓰임을 받았습니까? 육체의 가시 때문에 바울은 강해졌습니다. “이 가시가 나를 강하게 하는구나!”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욱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십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는 몰라도 예수님은 아십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다 약할 때 쓰임을 받았습니다. 유럽 사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 천로역정입니다. 누가 썼습니까? 존 번연이 썼습니다. 어디서 섰습니까? 감옥에서 섰습니다. 12년 동안 감옥에 있을 때, 가장 약할 때 주옥같은 작품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 왜 그것이 강함이 되고, 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까?
①인간은 약해질 때 하나님을 반드시 찾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조금만 비빌 언덕만 있어도 오래 믿은 사람도 간절함이 없습니다. 그저 일생을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약함이 왜 은혜냐? 약함을 통해서 어떤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을병이 들어보세요!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환경이 사면초가에 부딪혀 보십시오!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조금 살만 하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그러나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강한 능력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②약할 때 우리 인생이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까? 겸손케 하시려고 주십니다. 약해지면 겸손해집니다.
병이 들면 마귀도 천사가 된다고 합니다. 고난이 오면 겸손해집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약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열립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겸손이 뭡니까? 내 부족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약해질 때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배우려 하고 더욱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려고 합니다. 약할 때 그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을 살려주십니다. /할/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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