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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강) 사도바울의 위기! (행 23:12-35)

by 【고동엽】 2022. 3. 11.

(제65강) 사도바울의 위기! (행 23:12-35)

 

바울은 산헤드린 앞에서도 담대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고, 사태가 더 어렵게 되자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를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밤에 우리 주님은 다시 바울 곁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의 선교는 바울 사도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롬15:23-24).
그리고 행28:30-31절에 가 보면 이 약속이 성취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째든 바울이 외롭고 고독한 밤에 주님이 오셔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고 앞으로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 될 중 차대한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인데 그때마다 담대히 거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바울의 신변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그렇게 가기를 소망했던 로마를 짚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성경을 통하여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로마는 이처럼 무섭고 원수와 같은 존재이지만 본문에서 로마는 바울을 챙겨주고 보호해주는 존재입니다.
21장에서 바울이 로마에서 대단히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로마는 그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고(행21:31-32), 22장에서도 위급한 상황을 겨우 넘긴 바울은 그의 변명이 오히려 더 큰 화근이 되어 죽을 고비를 맞게 되었는데 이 때에도 로마의 천부장이 그를 살려주었습니다(행22:22-24).
본문 23장에는 정식으로 열린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울이 한 변론이 또 다시 화를 불러 일으켜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10절) 함으로써 바울은 겨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일이 끝나고 난 그 날 밤에 유대교의 열렬 분자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한 암살단을 조직하였는데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맹세하고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결심을 표합니다(12-14절).
그런데 마침 옆에서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의 생질이 바울에게 고하여 로마 군인들에게까지 이 사실이 전달될 수 있었으므로 로마 군인들이 사도 바울을 챙겨줍니다(16-22절).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90Km 정도 떨어진 가이사랴 라는 곳으로 인도되어 안전하고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23-35절).
바울이 가이사랴로 가는 길은 그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로마로 가는 첫걸음이 됩니다. 감사하게도 그 당시 예루살렘에 주둔한 로마 군인은 약 6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서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으로 총 472명의 군인이 동원됩니다(23절). 여러분,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보호의 손길입니다. /믿/
이제 로마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로마는 침략자입니다. 로마는 B.C.63년경에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A.D.530년까지 약 600년 정도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습니다. 일제 36년의 지배를 받은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설사 로마가 일제치하 만큼 악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로마 사람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병들어 죽게 된 자신의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 로마 백부장이 그의 집으로 가시려하는 예수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고 말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눅7:1-6). 이것은 유대인인 예수께서 로마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는 좋지 않은 소리까지 듣게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했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는 이스라엘에게 원수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에게 로마는 너무나 놀라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은 죄를 지었지만 돌아올 줄 모르는 존재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앗수르, 바벨론, 헬라를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듯이 로마를 들어 이스라엘을 징벌하신 것입니다. 로마가 하나님의 일을 징벌하시고 응징하시는 하나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로마의 또 다른 역할은 하나님께서 그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였던 로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하는 종 바울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누구든지 여러분을 지키는 보호자로 들어 명령하시면 그들은 꼼짝없이 여러분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서 로마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볼 수 있는 로마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본문 11절에서 이르신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에 보내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수백 명의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바울을 호송하게 하셨고 가이사랴에서 다시 배를 태워 로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도구로 쓰시겠다고 작정하시면 누구든지 들어 쓰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로마는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요? 바울에게 로마는 위기 때마다 지켜주는 도구가 되고 동역자가 되며 바울을 지지해주는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을 포함하여 괴로움이나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은 모두 로마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질적으로 손해를 끼친 사람,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을 진정한 축복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동역자나 지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앞에는 어려움이나 큰 재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보실 것은 이런 모습을 가진 로마가 결코 여러분에게 고통만 주는 존재로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 나가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챙기시듯이 그것을 들어 여러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만이 결정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앞에 로마라는 그 무엇이 찾아올 때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지 간에 상관하지 말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분 앞에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지지자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두려워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과연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가?' 이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눈이 세상의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그리고 십자가를 보고 있는가? 이것만 확인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여러분의 동역자나 지지자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사도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약 4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음모입니까? 그래서 오늘의 제목은 ◀사도바울의 위기!▶입니다.

 

▶12-13절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명이더라"
그 전날 재판을 하다가 혼란이 일어나 재판이 무산되어 바울은 군부대에 들어가 보호를 받고, 그 사람들은 바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작전을 짠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도 못 믿고, 재판도 못 믿겠으니 우리는 직접 손을 보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결사대를 조직한 것입니다.
그들의 결심이 무섭습니다. 바울은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당을 지어 맹세까지 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로 하여금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과연 이 40인의 특공대들이 바울을 죽이지 못했는데 굶어죽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이나 약속에서 교묘히 빠져나가는데 명수였습니다.
40인의 특공대들이 어디로 갔습니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로 갔습니다. 한마디로 당신들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리하겠다는 것입니다.

 

▶14-15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보십시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맹세를 전달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살인음모를 겉으로는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면적으로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40인의 결사대만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더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바울을 죽이는 일에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로 다시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군부대에서 나와 산헤드린 공회에 도착하기 전에 도중에서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여러분 40여명이나 되는 자객이 가슴에 칼을 품고 골목골목을 지키고 있다가 바울이 지나가는 순간 칼을 뽑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웬만한 군인들이 호송을 한다고 해도 겉옷 속에 칼을 숨긴 저들이 행인처럼 바울 곁에 접근하는 무방비상태에 있는 바울을 죽이는 일을 자주 간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생명은 참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이 사방으로부터 숨막히게 조여들고 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한 40여명의 결사대는 공회에서 바울을 부를 때에 바울은 분명히 그의 죄목을 변호하기 위하여 그가 천부장에게로 오게 될텐데 그가 올 때에 우리는 매복을 하였다가 죽인다는 계획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바울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보다는 사람들의 계획이 앞선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만 두더라도 그는 예루살렘에서 로마는커녕 떠나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이루시려고 어떻게 하셨는가? 다음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바울의 생질을 준비시키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의 생질은 40명의 자결결사대의 정보를 듣고는 바울에게 이야기를 하고 바울은 그 사실을 천부장에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말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미물의 짐승들도 듣겠거든 하물며 인간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종을 헤치려는 이 엄청난 악한 계획을 왜 모르겠습니까? 놀랍게도 사도바울을 죽이겠다는 이 계획은 바울의 조카를 통해서 알려지게 됩니다.
천부장은 본래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바울은 그가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천부장이 알고 있으므로 바울의 이야기를 그는 경청을 하게 됩니다. 바울에게 이미 로마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까?
바울에게 다가온 유대인들의 무서운 음모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답변은 성도를 위협하는 그 무서운 음모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은 사람이 보기에는 패망으로 보여도 하나님 섭리 속에 놓인 좋은 작품입니다. 잠21: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할/ 이 말씀처럼 성도가 당하는 고난까지도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는 큰 작품의 일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사람의 음모만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붙들고 승리하는 신앙 생활을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16절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여기서 바울의 생질이 나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잘 모릅니다.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바울의 집이 명문가의 집이었기에 바울의 누나가 예루살렘 명문가를 출가해서 낳은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연히 예루살렘 사람입니다. 어째든 우리는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사실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바울의 위기에 개입하셨다는 일입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그 위기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그럴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위기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때마다 막아주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날 일도 많았고, 죽을 고비도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셔서 오늘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이야기입니다. 루터가 로마 교황청이 틀렸다고 반기를 들 때, 교황청에서 종교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때 교황청의 권세는 하늘이 높은 줄 모르는 곳입니다.
루터의 친구들은 '종교재판이란 받으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가지말고 차라리 도망가라'고 했습니다만 루터는 '보름스에 있는 모든 기왓장이 마귀라 할지라도 나는 가서 이기고 오리라'고 하면서 개선장군처럼 갔습니다.
그 때 재판장에서 '이 책을 다 네가 쓴 것이 맞느냐?' '맞습니다.' '이 책을 쓴 것을 취소할 수 있느냐? 최소하면 앞으로 우리 교황청에서 좋은 자리를 줄 것이지만 취소하지 않으면 파문이다.'라고 했을 때, 그곳 기왓장이 다 마귀라고 하더라도 이기고 오겠노라고 큰 소리 쳤던 루터였지만 그때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은 겁이 나서 한 행동이니 변질된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때 돌아와 보니 같이 종교개혁에 뜻을 모았던 친구들이 루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으며 돌아오자 '네가 보름스에 있는 모든 기왓장이 마귀라 해도 이기고 돌아오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서 루터가 넘어지지 않도록 에워쌌습니다.
루터 한 사람이 철벽같은 믿음을 가졌기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많은 형제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재판장에 들어갔을 때, 교황청은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웃음 띤 얼굴로 '너도 별 수 없군' 하는 표정으로 '취소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이것은 성경에 합한 것이기에 나는 취소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기도하고 뒤돌아서 나갈 때, 재판관이 '3일 이내로 이 지역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그 길로 말을 타고 정신 없이 도망갔습니다. 그렇게 도망갈 때 따라가서 죽여 버리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루터는 죽었다 싶어서 정신 없이 도망가고 있을 때, 그때 갑자기 그물이 휙 던져져 그물 속에 갇혀 돌돌 뭉쳐져 납치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끝장났구나!' 싶었는데 죽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석 옆에 있었던 '삭소니아 공'이란 분봉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냥 데리고 가면 사람들이 알까 싶어서 죽이는 것처럼 체포하여 살려주도록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성으로 인도하여 그 성에서 2년 동안 성경을 다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적으로 보호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의 생질이 굉장히 용감합니다. 40인의 특공대의 음모를 듣자마자 곧 군인부대가 뛰어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용기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생질이 들어가서 바울을 면회하고 자초지종을 다 말합니다.

 

▶17-19절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사도바울이 이런 음모의 소식을 듣고 백부장을 통하여 천부장에게 가서 이러한 사실을 다 고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판단력은 대단합니다.
조카의 말을 듣고 사태의 시급함을 절감합니다. '그놈들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야!' 아마도 이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40명의 특공대의 계략을 천부장에게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황급히 백부장을 불러서 자신의 조카를 천부장에게 데리고 가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당시 바울은 여러 명의 백부장들 중에 한사람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군인들이 직접 지키고 있지만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당시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기에 백부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부탁을 받은 백부장이 바울의 조카를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천부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이때 천부장의 이름이 '루시아'입니다. 천부장은 청년의 태도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친절하게 손을 잡고 은밀한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천부장은 그 청년에게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20-21절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 여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바울 조카의 대답이 나옵니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바울을 데려가려던 유대인들의 음모가 바울의 조카에 의해서 사직당국에 고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무리 물샐틈없이 짜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조카는 40인의 유대인들의 특공대들로 구성된 결사대가 금식까지 하며 바울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천부장에게 알리고 천부장으로 하여금 그들의 말을 듣지 않도록 종용했습니다.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간청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발걸음을 옮길지라도 그 목적에 도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37:5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어' 주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를 써서 완벽한 계획을 세울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천부장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뉴스를 접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로마의 천부장은 하나님도 안 믿고 예수님도 안 믿던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 바울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나서서 돕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자까지도 들어서 쓰십니다.
밤 세시, 그러니까 지금 시간으로 보면 저녁 9시에 해당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군대를 풀어서 바울을 보호해 줍니다.

 

▶22-24절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명과 마병 칠십명과 창군 이백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그 내용이 본 절에서 나옵니다. 밤 세시면 그들의 모든 일과가 끝이 날 때입니다. 지금 천부장은 야간을 틈타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바울 한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연 로마 군인답게 민첩하고 빈틈없이 일을 진행함을 볼 수 있습니다. 보병 200명, 마병 70명, 창군 200명, 도합 470명을 동원합니다.
여기서 창군은 경장비를 다루는 군인들 같습니다.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된 군인 숫자치고도 보통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멋쟁이 하나님이십니다. 날이 새면 암살 단원들이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천부장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천부장은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하여 바울의 일행을 말에 태워 어디로 보냅니까? 가이샤라로 보냅니다. 그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돈이 안 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모든 일이 쉽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또 시키지도 않았는데 천부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편지까지 하고 바울을 변호해줍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분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자들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하나님이 그 종들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5-26절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천부장은 로마 총독에게 전할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사건을 보고할 때에는 상관에게 반드시 진술서를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부장은 바울을 총독에게로 보내는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로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편지는 단순히 사건의 내용을 보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울의 신변에 안전을 위하여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천부장의 이름입니다. 그는 자유인으로 태어나 자기의 힘으로 로마 군대의 제일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천부장의 위치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 사령관입니다.
그는 서신에서 총독 벨릭스에게 '각하'라는 존칭어로 호칭하면서 정중하게 문안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총독 벨릭스는 근본 노예였으나 '글라우디오 황제의 부친 안토니아'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토니우스 벨릭스'라고 불렀습니다. 벨릭스는 '글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A.D 52년에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이 되어 58년까지 약 6년 간을 총독을 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벨릭스는 잔인하고, 음탕하며, 악정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의 사생활은 복잡하여 세 여인을 데리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천부장의 편지 내용이 27절 이하부터 나타납니다.

 

▶27-29절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천부장은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보내는 경위를 간결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가 바울을 보호하고 살려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 아니라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을 채찍질하여 심문했던(행22:24) 사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 자기 위주로 삽니다.
천부장은 총독 벨릭스에게 자기는 유대인들에게 위협 당하고 있는 로마인의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 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심문해 보고 또 그들의 재판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넘긴 것까지 자세하게 보고를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을 죽이려고 서원한 사람들이 40여명이나 있었지만 자기가 보니까 죽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이 사람을 체포한 이유나 감금한 이유, 죽일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빌라도에게서 재판을 받던 장면과 똑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때 빌라도는 아무리 보아도 예수께서 십자가형에 처할 이유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아우성인데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요, 자기들의 율법에 관한 문제이지 이 사람이 법적으로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바나바를 놔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막으시오!'
사실은 국민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배후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 바리새인,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빌라도가 너무 고민스러워서 예수님을 채찍에 맡깁니다. 많이 때림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은 좀 누그러뜨리게 할 수 없을까 해서 예수를 채찍으로 때렸지만 사람들은 더 악을 씁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당신의 가이사의 장군이 분명한가?' 정치적인 문제로 끌고 들어갑니다. 빌라도는 자칫하면 자기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이 두려워 예수님 대신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했습니다.
빌라도는 역사이래 최악의 오판을 범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에 바울에게도 닥친 것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조사해 봤으나 저희들의 종교문제요, 율법 문제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천부장이 빌라도보다 났습니다. 편지의 결론은 '바울은 아무리 조사해 봐도 죽이거나 감옥에 쳐 넣어야 할 죄목이 없기 때문에 당신께 보내오니 잘 선처해달라'는 것입니다.

 

▶30절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마지막으로 천부장은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대해서 말합니다. 40인의 특공대들이 그를 죽이기 전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것'이라고 일사각오로 다짐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31-32절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 가니라"
드디어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샤라를 향하게 됩니다. 가이샤라를 향하는 길이지만 더 넓게는 이제 로마 본토에 가서 재판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가는 길이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태가 더 심각해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울을 로마로 보내어 당신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40인의 특공대가 오기 전에 빠져 나와 예루살렘에서 약 56K되는 지점인 안디바드리까지 왔습니다.
이곳은 가이샤라까지의 중간지점인데 안전한 곳이요,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곳에는 우물이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부터는 그리 위험하지 않으니까 보병 200명은 돌아가고 마병 70명과 창군 200명이 바울을 호송하여 가이샤라 궁 영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33절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드디어 가이샤라에 도착해서 벨릭스 총독에게 편지를 전하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워 정식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심문을 받게 된 것입니다.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줄 알고"
천부장의 편지로 읽어본 총독은 바울에게 어느 영지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고향을 물어본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이 어느 관할 구역에 속한 사람인가를 확인하여 그 죄인이 소속된 영지에서 재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고향이 '다소 길리기아'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길리기아는 로마의 직영지입니다. 그러니까 정부로서는 예루살렘보다 더 높게 보는 지역입니다. '아! 그래, 길리기아 사람이군'하고 알아주게 되었습니다.

 

▶35절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벨릭스는 바울을 송사한 사람들이 도착한 후에 사건을 심리하기도 하는 바울에게 그때 변명한 기회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헤롯 궁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헤롯궁'은 대 헤롯의 별궁이 가이샤라에 있었는데 이때는 총독의 관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을 대접하여 그곳에서 어느 정도 자유를 주어 친구가 찾아오면 자유롭게 대하도록 선처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버려 두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145:20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노르웨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 어부가 두 아들과 함께 밤바다의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끼고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쪽이 육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환한 빛이 비치는 곳이 있었습니다.
어부는 죽을 고생을 다해서 육지에 이르렀더니 어부의 아내가 방성대곡을 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그 밤에 집을 몽땅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어부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그 빛이 아니면 나는 죽었소! 그 빛 때문에 우리가 살았소!' 바로 그 불빛은 자기 집에 불이 난 불빛입니다.
보십시오! 삶의 하루가 어렵습니까? 인생의 배가 깨어집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집이 불타 버렸지만 그 불빛 때문에 어부가 살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큰 역경과 고난이 와도 하나님은 반드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고 전화위복의 복을 예비하십니다. /믿/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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