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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제58강) 바울의 고별설교! ② (행 20:25-38)

by 【고동엽】 2022. 3. 11.

(제58강) 바울의 고별설교! ② (행 20:25-38)

 

바울이 제 3차 선교여행을 마감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밀레도에 들려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설교한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3년 동안 목회를 했던 곳으로 애착이 있던 곳입니다. 그가 에베소에 들리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하여 바삐 가는 길이었고, 또 그가 에베소에 들리면 유대인들이 난리를 칠 것 같아 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밀레도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는 유언 적인 설교로서 4부분으로 나뉩니다.
⑴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본문에서 바울의 에베소교회의 목회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교회를 섬겼고,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사실 바울은 당시 최고의 명문가의 출신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뒤 빌3:7-8절에 고백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세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빈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낮아지셨습니다. 엡3: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했고, 고전15:9절에서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으며 또한 딤전1:15절에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겸손은 그로 하여금 위대한 복음의 거성이 되게 했습니다. /아멘!/
㈁눈물로 목회를 했습니다. 목자들의 죄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고,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으며, 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목사님, 그렇지 않은 것 같던데요? 제 엄마가 죽었는데 앞집에 개똥이 아빠가 왜 자꾸 울어요? 그 눈물은 거짓 아닙니까? 내 엄마를 위해서 울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요'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개똥이 아빠는 일년 전에 자기 부인이 죽은 것을 생각하고 우는 것입니다. 그 눈물의 사정을 우리가 모르는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할 때는 감사의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억울할 때는 억울한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는 속상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사랑할 때는 사랑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에는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시126: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할/
㈂시험을 참는 인내의 신앙이었습니다. 석가모니는 자기의 제자인 '브르나'를 서방 나라에 포고하러 보낼 때 '욕을 먹어도 참아라! 때려도 참아라! 죽여도 참아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수도 없이 고난을 받았지만 참았습니다. 매를 맞아도 참았고, 태창을 맞아도 참았고, 돌에 맞아도, 옥에 갇혀도, 위험한 일을 만나도 참았고, 굶주리기도 하였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도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이겼습니다. 그는 갈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⑵22-24절에서는 '현재 상태 즉 심령에 매임을 받아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심정'을 말했습니다.
23-24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데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을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사명에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전부 사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성도들은 직장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일하고 밥벌이나 하고 끝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나를 그 직장에 보냈고, 그 일터에 보냈고, 그 자리에 세워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보내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주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사명감 하나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즉 복음 증거와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는 일을 운동선수가 경주 장에서 달리는 열심을 가지고 했다고 했으며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벌써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어버린 사람에게는 두려움이란 용어가 필요 없습니다. 바울은 이미 자기 죽음을 선언한 사람입니다.
⑶25-31절은 미래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울의 순교가 암시되어 있고, 교회 적으로는 이단의 출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⑷32-35절은 축복 및 약한 자를 돌보라는 마지막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25절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줄 아노라"
사람은 이별이 슬픕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헤어질 때, 진실을 말하고 이별의 슬픔을, 눈물로 말합니다. 바울은 이제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곧 결박과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로마로 끌려가서 순교 당한 것은 성령께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아시아로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바울의 고별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마치고 바울과 장로들은 해변가에서 바를 앞에 놓고 껴안고 입을 맞추며 웁니다. 그렇게 헤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결단력 있는 신앙을 배워야합니다. 바울이 2천년의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감동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적인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는 고사하고 그저 자기 신앙 하나 제대로 붙들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 죽기로 결심하지 아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포기할 마음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26-27절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무서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피 값에 대한 선언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피 값에 대해서 깨끗하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양심선언이 아닙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해외에 나갈 일이 이따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 여권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여권으로는 천당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는 일관된 고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출한 애국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런 애국적이나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양심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는 생명을 가리키는 히브리적 표현입니다. 에베소 모든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 말입니다. 에베소 모든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지옥을 간다고 하더라고 자기로서는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겔33:1-9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은 자가 경비를 소홀히 하여 백성에게 화가 임하면 그 피가 파순꾼에게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의 간절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면 그는 죄악 중에서 죽고 파수꾼의 생명은 보존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이 죄를 범하면 당연히 그는 자기 죄 값에 죽지만 하나님은 그 악인을 깨우치고 전도하지 않는 책임을 우리들에게 물겠다는 말씀입니다.
특이한 말씀입니다. 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수를 해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죄를 범한 것을 내가 경고하지 않고 또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내가 경고하고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이 고치고 안 고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가 전도를 했는데 그 사람이 예수를 믿건, 안 믿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전도를 했는데도 안 믿었다면 그것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지옥에 갔다면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의 죄 값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은 자기들을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다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그가 파수꾼의 사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할/ 우리는 우리 가정의 죄 값에 대하여 깨끗합니까? 네 형제 이웃에 대하여 깨끗합니까? 정말 두려움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바울의 심정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

 

▶28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천국의 대사관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천국의 대사관에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의 대사관에서 해서는 아니 될 일이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장로들에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 '너희는' 에베소 장로들을 말하는데 오늘날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의 첫 번째 권면은 '양 떼들을 위하여 삼가라'는 명령입니다. 29절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왔다고 하면서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라는 말이고, 30절에서 '어그러진 말을 삼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목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도록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양떼를 목초지로 인도하여 양들을 먹이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철저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철저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르치는 일'에 철저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철저했습니다.
'죤 스타트'는 이를 '삼중적 철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능한 모든 진리를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삼가라'는 말씀 속에는 잘 구별하여 양들을 잘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제일 중요한 기본적인 일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양 떼들을 잘 돌보는 일이 바로 목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요10:11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서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양떼들을 향하여서는 '나는 선한 목자이다. 목자는 양의 음성을 듣고 또 양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0:10절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잘 가리키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양떼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양떼는 목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양떼를 잘 돌보는 비결은 무엇인가?
⑴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는 잘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고 날마다 말씀으로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⑵또 자기를 잘 다스려야합니다. 고전9: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으로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고, 말을 삼가야 하고, 행실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자기를 절제하고,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일이 절대 중요합니다.
바울은 고전10: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목자 한 사람이 넘어지면 모든 양떼들은 무더기로 넘어지고 맙니다. 또 엡4:27절에서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그렇습니다. 마귀는 틈만 보이면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공격합니다.
지도자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본문 28절에서 발견되는 것은 양떼를 잘 돌보기 위해서 하나님은 감독자를 세웠습니다. 즉 그냥 아무렇게나 양떼들이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양떼들이 따라갈 수 있는 교회의 영적 지도체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영적 체계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권위를 살려줘야 합니다. 이 감독을 누가 세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것입니다.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지금 바울은 장로의 직분을 성령께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어디 목사와 장로들뿐입니까? 교회의 모든 직분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임을 깨닫고 굳게 충성해야 합니다.
여기 '감독자'는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감독, 수호자, 보호자, 후견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또 28절에서 아주 귀한 단어는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행1장에 나타나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를 그 어느 곳에 세워졌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대가를 기준으로 세워진 교회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공동체(벧전1:18/고전1:2)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함을 받지 않고는 성도가 될 수 없고,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지 않은 무리를 교회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곧 하나님이 자신의 피로 값을 주고 샀습니다. /믿/
여러분! 피는 귀합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우리도 생명 바쳐 지켜야합니다. /믿/

 

▶29절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리의 존재가 양떼들에게 파괴적입니다. 흉악합니다. 그러나 양들은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래서 목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 절에서 삼가야 할 것이 바로 '흉악한 이리'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흉악한 이리가 무엇입니까? 거짓교사입니다. 진리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대신 자기를 따르도록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깨어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깨어 있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마24:42-43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고 고전16:13절에서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했고, 엡5:14절에서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깨우다'라는 말은 현재 명령법으로 '방심하지 말고 계속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미래를 내다보며 흉악한 이리떼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하여 파수자의 자세로 이리로부터 양을 보호하는 데 정신을 차려서 최선의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흉악한 이리'에 대해 두 자기의 견해가 있습니다.
⑴당시 기독교인들을 염탐하고 고발하여 핍박을 일삼는 유대인들이란 견해이고, ⑵기독교인체 하면서 교회에 들어와 분란을 일으키는 거짓 선생들(이단)이란 견해입니다.
빌3:2절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여기 '개'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진리를 물고 찢고 싸우는 자'를 말하고, '행악하는 자'는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을 방해하고 파괴시키려고 하는 악한 무리들을 의미'하고, '손 할례당'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깨어서 양떼를 지켜야 할 것은 사탄, 즉 흉악한 이리가 두루마리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양떼들을 돌보며 양떼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도록 장로들에게 권면과 부탁을 한 것입니다.

▶요10장을 보면 세 가지 목자 상이 나옵니다.
⑴절도가 있습니다. 절도는 한마디로 양을 도둑질하여 자기 양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이단들이 선한 목자인체하면서 얼마나 많은 양들을 도둑질해 가고 있습니까? 특히 거짓 목자를 참 목자로 알고, 진짜 참 목자를 배척하는 눈 어둔 양떼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⑵삯군도 있습니다. 삯군은 그 중심이 삯이기 때문에 오직 물질만 밝히고 무책임한 목회를 합니다.
⑶선한 목자가 있습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건 목자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선한 목자이십니다. 아멘!/
지금 바울이 장로들에게 권면한 것은 바로 선한 목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흉악한 이리'란 말은 '양의 가죽을 썼다'는 말입니다. 흉악한 이리는 절대로 자기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자기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주 그럴 듯하게 말씀과 능력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천사의 모습을 가장해서 다가오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속습니다. 30절에 이 흉악한 이리들은 사람을 자꾸 분열시키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30절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조직을 하나로 만들기보다는 자꾸 이간질을 시키고 분열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리 떼들은 말만 그럴 듯하게 합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사람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좇도록 가르쳐야 하고 진리의 말씀만을 좇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는 올곧고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많은 조미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만 바라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좇게 하려고 하니까 말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삼가 해야 할 것이 '어그러진 말'입니다. 어그러진 말은 진리에서 떠난 말입니다. 어그러진 말은 제자들을 끌어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좇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자기를 좇으라는 이단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흉악한 이리떼들을 막을 수 있습니까? 31절에서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31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먼저 31절에서 바울은 눈물로 양떼를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에베소교회에서 3년 간 어떻게 하였는가를 상기시킴으로서 그들이 따라야할 모범으로 자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영혼에 대하여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눈물로써 그들을 훈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눈물로써 주님을 섬겼듯이 또한 성도들도 눈물로 섬겼습니다. 눈물은 진실이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너희가 깨어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방심하지 말고 계속 깨어있으라는 뜻입니다. 막13:35절에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예수님께서도 재림을 준비하고 항상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지도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모세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을 훈계할 때 자주 사용한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떻게 크신 능력을 펴서 출애굽의 은혜를 베푸셨고, 또한 이 광야에서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고(신8:2, 18), 그리하여 하나님을 순종하고 경의하라(신8:1-6)고 촉구한 것과 같이 바울 자신이 3년 동안에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님을 섬기고 각 사람을 가르친 것을 기억하여 그 본을 받으라는 권면입니다.
그 다음 흉악한 이리떼를 막을 수 있는 그 비결은 32절에서 '은혜의 말씀을 꼭 붙들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에 위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렵고, 사탄의 궤계와 유혹이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있는 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깨닫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믿/

 

▶32절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어떻게 맡겨주신 양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권면으로 지도자들의 성실함을 촉구했지만 마지막에 바울이 부탁한 것은 바울의 모범도 지도자들의 충성스러움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교회를 세워 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방도요 도구일 뿐 근본적으로는 교회를 배교의 세력에서 지키지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구한테 맡겨야 옳단 말인가? 바울은 안전의 원천을 알았으니 곧, '주와 그분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지도자들의 모든 수고를 쓰셔서 친히 교회를 세워 가시는 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교회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몸된 교회를 친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때 그 방법은 '오직 말씀으로'입니다. 그 말씀이 능력이 있어서 교회롤 모든 악의 세력에서 지켜주고 거룩하게 서 가게 하는 것입니다.

▶32절에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⑴그 말씀이 우리를 든든히 세운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말씀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이 약한 성도는 금방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⑵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기업이 있습니다. 벧전1: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의 기업은 물질적 가치가 아닙니다. 금이나, 은이나, 옷 같은 것이 아닙니다.

 

▶33절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사도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에베소의 기독교신앙인들은 많은 돈과 금속과 값비싼 가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고급 옷을 입고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사치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같은 생활을 금했습니다. 바울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여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한 자리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그뿐입니까?

 

▶34절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바울은 자신이 생계를 위하여 일하였을 뿐 아니라 동행자들의 생필품까지도 감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어려운 동역 자들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35절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느니' 바울은 자신 있게 장로들에게 신앙의 모본과 지도자의 모본을 보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열심히 일해서 자기만 모은 것이 아니라 전도일행도 먹여 살리고 또 약한 자와 가난한 자도 많이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는 생활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됩시다.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십시다.
받는 사람을 가리켜 뭐라고 합니까? 거지라고 합니다. 꼭 먹을 게 없어야만 거지가 아닙니다. 남을 바라보는 사람도 거지 철학을 가진 자입니다.
▶옛날 희랍의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24시간 호색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과 행복'을 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큰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 일 다 해 보았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만족치 않습니다. 그래서 더 높은 행복, 더 높은 즐거움은 없을까해서 높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방법을 간구한 것입니다. 별별 기발한 아이디어가 다 나왔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만나봅니다. 왕은 실망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자기를 실망 시켰다고 해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온 사람에게 '그까짓 아이디어를 가져 왔냐'고 하면서 사형에 처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향락과 기쁨을 추구했으나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소녀 하나가 자기가 왕께 나아가서 기뻐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가 왕 앞에 나타나서 당돌하게 막 꾸짖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참 놀라운 말입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행복을 원하신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행복하게 하십시오. 그리고서야 왕이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왕은 숙연해 지고 한참 생각 끝에 '딸아!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그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의 방법 열 가지를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⑴계산하지 말 것. ⑵후회하지 말 것. ⑶되돌려 받으려 하지 말 것. ⑷조건을 달지 말 것. ⑸다짐하지 말 것. ⑹기대하지 말 것. ⑺의심하지 말 것. ⑻비교하지 말 것. ⑼확인하지 말 것(내가 사랑한 것이 어떻게 됐나 그거 확인하려고 들지 말 것). ⑽상황에 온전히 맡길 것.
▶왜 주어야 합니까?

⑴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대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고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고 나아가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까지라도 바치는 것이 사랑입니다.
⑵주는 자에게 행복이 있고 주는 것이 복입니다.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아무리 주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⑶주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오른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하라.' 또 '하늘에 쌓아 두라. 냉수 한 그릇을 네 이름으로 줄 때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네 이웃에게 향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할/

 

▶36-37절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마지막 작별인사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사람에게는 감동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비판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메마른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36절을 보세요!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기도부터입니다.
바울도, 장로들도 바울의 일행 모두가 지금 뱃고동 소리가 울리는 부둣가에서 모두 무릎을 꿇고 통성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바울의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에베소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38절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얼마나 정감 있는 광경입니까? 다 크게 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별의 키스입니다. 유대인들의 인사법입니다.
이 기도는 연합된 기도요, 겸손하고, 경건한 기도요, 작별의 기도입니다. 목자와 양무리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는 진정한 감동적인 장면이 밀레도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진짜 그들의 이별이 마지막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재판 받으러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근심하고' 깊이 슬퍼했다, 몹시 괴로워 마음이 아팠다는 것입니다. 배에까지 전송하는 장로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바울에 대한 최대의 존경심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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