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제11단원 - 전도의 사명
제 1과 전도, 정말 어려운 것인가?
제 2과 전도는 "당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한다"
제 3과 불신자의 마음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라
제 4과 먼저 영적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제 5과 전도자가 가장 복된 자입니다.
제 11단원 전도의 사명
요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9-20)
제 1과 전도, 정말 어려운 것인가?
우리교회에 처음 부임한 지, 두달이 지났을 때, 주일 예배 후, 축호전도를 나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배가 끝난 후, 점심도 먹지 않고, 바로 가버렸습니다. 어떤 교인은 결혼식이 있다고, 어떤 교인은 친척이 찾아 와서, 어떤 교인은 몸이 아파서 일찍 집으로 가 버렸습니다. 결국 그 주일에 축호전도를 못하고 다음 주일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공교롭게도(?) 교인들의 개인적인 바쁜 일은 계속되어, 축호전도에 나간 교인은 몇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는 미리 조를 짜서 모든 임원들은 의무적으로 축호전도를 나가게 하였습니다. 그 주일 예배 후, 한 권사님께서 제 방에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누가 길거리에서 [주 예수를 믿으시오]라는 띠를 띠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집집마다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보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그렇게 하고 나가야 한다니, 저는 정말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이것이 당시 우리 교인들의 영적인 형편이었습니다.
1. 성도들 안에서 전도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질문> 골 4:1-3에서 사도 바울이 요청한 기도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전도 대상자의 마음 문이 꽉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도의 문을 전도대상자나, 불신자 안에 있는 문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전도의 역사가 일어났던 당시의 기록을 읽어 보면, 불신자들이 복음을 잘 받아 들여서 전도가 잘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구령열에 불탔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 속의 전도의 문이 닫혀 있을 뿐 아니라, 성도들 안의 문이 더 굳게 닫혀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① 1996년 1월 31일자 신문보도에 청주에서 1800년전 볍씨 9알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보도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지독하게도 깨어지지 않은 볍씨이구나! 1800년동안 한 알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볍씨가 땅에 떨어져, 깨어졌다면, 그로 인하여 지금 얼마만큼의 법씨가 생겼을까요?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쌀이 되었을 것입니다.
②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전도 못하는 이유는, "전도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일본 성도들 안에 닫힌 문이 더 큰 문제입니다.
③ 한번은 어느 집사님께, "집사님의 사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는 "사명이요?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요" 하셨습니다. 그는 좋은 직장과 직위를 가지고 열심히 사십니다. 이 축복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고 믿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에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감격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큰 의무이고, 기쁨과 감격이란 없었습니다.
④ 지난 1995년 저희 교회 전도부원들이 이웃 감리교회에 전도 간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5년 전에는 자신들과 똑같았는데, 어떻게 전도자가 되었는, 듣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5년 동안에 교회 주변이 바뀐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변한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의 역사는 교회 주변상황이 변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인 자신이 변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질문> 당신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몇 명의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한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전도란 성도들이 누리는 구원의 축복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를 누리며, 기도응답의 체험을 하게 되면, 이 놀라운 삶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라, 말라 할 것이 없습니다. 전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질문> 행 1:8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약속과 예언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전도하라!"고 하시지 않고, "증인이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증인은 결코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을 그저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 어떤 교통사고를 격었다면, 그 사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어려운일이겠습니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 말을 하지 말라 하면 더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3, 전도는 우리 자신이 사는 길입니다.
<질문> 눅 10:3과 10:17-20의 말씀에서 어떤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까?
제가 신학대학 재학 중, 3학년이 되는 어느 봄에 4학년 선배의 권유로 병원전도대에 따라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적십자 병원에 갔었습니다. 저는 그 날 전도를 처음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3학년이라고 갑자기 조장이 되어, 1학년 여학생과 짝이 되어 병동 하나를 책임맡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법도 모르고, 병원 전도는 어떻게 하는 지도 몰랐던 저는 그 날 저는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여학생 때문에 중도에 도망도 못가고, 결국 병동을 다 돌았습니다. 그 날 저는 다시는 전도 나오지 않으리라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4학년 선배는 제게 찾아 와서 제가 만장일치로 병원전도대 총무로 뽑혔다고 축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한 짝이 된 여학생이 제가 환자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차가운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병동을 다 돌았던 것을 전도의 사명감이 투철한 신학생으로 오해(?)하고는 보고를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내성적이라 자기 표현이 부족했던 저는 그 날부터 병원 전도대에 붙잡혔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곤혹스런 학교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전도 나가는 날인 수요일에는 아침 밥 맛도 없었습니다. 전도대원을 피해 도망다니느라, 점심도 굶고 도서관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산부인과 병동에 가서 임산부를 붙잡고 중환자인줄만 알고, 하나님께 병을 고쳐서 건강하게 해 달라고 입에 침을 튀겨 가며 기도했던 일은 지금도 등에 땀이 나는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 때의 전도대 활동을 통하여 저는 복음의 역사와 기도의 역사를 처음 체험했습니다. 저 같은 자의 기도와 전도를 통하여도 병이 낫고,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진로를 교수에서 목회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도자의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 28:20의 말씀처럼 발걸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전도자'를 세우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전도는 실지로 해 보아야 그 역사와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 기적적인 성장을 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엄청난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순교할 믿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성도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능력 주시는 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복음은 무섭게 전파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로마의 황제의 어머니 조차 예수를 믿게 되었고, 결국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정말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로마가 복음화 된 후에, 모든 로마 시민들은 전도할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교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도 없이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거듭난 삶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또 어떤 고난을 받을지라도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는 순교의 각오도 없었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세상에서 귀족이 교회 안에서도 높은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자랑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버리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갑자기 부유해졌고, 사람들이 많아졌고, 세상적으로 막강한 권세를 가졌으나, 하나님의 능력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도란 특별히 훈련받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교회 안에 심어 놓게 한 것입니다. 이후 교회는 곧 암흑시대로 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군목에 입대하였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불신 장병들 앞에 서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영적 훈련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것인가?" 이 질문은 곧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왜 예수가 그리스도인가?]를 정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군목 시절의 이 경험은 내가 복음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질문> 당신은 실제로 전도를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을 써 보십시오.
제 2과 전도는 "당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한다"
첫째 '나는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가?'
<질문> 요 21:15-18을 읽고 답해 보십시오.
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을 목격하고도 고기잡는 어부로 돌아 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②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일에 대하여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③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④ 그 때, 베드로는 무엇이라 대답하였습니까?
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어떤 당부를 하셨습니까?
⑥ 이 말씀은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주님의 양을 찾아 먹이지 않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도하지 않는 우리의 사랑이 정말인가?'를 물으십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김준곤목사님은 성경 안에 나타난 예수님의 명령은 두가지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라이고 또 하나는 전도하라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를 진단해 줍니다. 전도 안하는 진정한 이유는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아무리 전도가 어렵더라도,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도 못하겠습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계속 기도하면 반드시 전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쉬면 안됩니다. 기도도 안하면서 '전도가 쉽다, 어렵다' 하면, 솔직히 말합시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질문>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전도에 힘쓰고 계십니까?
둘째 '나는 영적으로 떠돌아 다니지 않는가?'
시냇물에 종이 배를 띄우면, 그 배는 물결에 따라 떠돌아 다닙니다. 떠돌아 다니는 종이배는 목적지가 없고, 있어도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배를 탈 때, 이처럼 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노를 젓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삽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떠돌아 다닙니다. 떠돌아 다닌다는 말은 종이 배처럼 힘을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떠돌아 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떠돌아 다니는 것은 사실, 큰 죄 짓는 것 같지 않습니다. 방탕한 것도 아니고, 도적질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힘을 쓰지 않고, 지내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1년, 10년이 지나면, 그 결과가 엄청납니다.
① 우리가 영적인 일에 갑자기 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 부부가 처음부터 이혼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부부가 영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계속하면, 미움과 원망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게 됩니다. 갑자기 방탕하게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갑자기 시험에 듭니까?
② 전도 훈련을 받으라고 하니까, 중직인 한 교인이 말했습니다. "세상 살기도 힘든데, 교회마저 힘들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지금 이것도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예요.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저는 말할 수 없이 슬펐습니다. 눈을 좀 떠서 넓게 살펴 보십시오. 부흥하는 교회와 그 교인들을! 축복받은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헌신을!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정말 힘들면, "왜 우리는 안되는 것일까?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면서 예수님께 나아가 구하여야 할 것이 아닙니까? 왜 해보려고도 안하고 안된다고 말합니까? 애초에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③ 피아노 연주자가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친구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고 했습니다.
④ 무디 목사님은 '게으른 자가 구원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도가 정말 어렵게 느껴지면, 먼저 전도 훈련에 참가하십시오.
전도훈련 중에 전도하기가 정말 힘들면, 동네에서 아는 아이에게 "내 말을 듣고만 있어주면, 돈 천원을 주마" 하고 제의해서라도 전도 실습해 보라고 권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전도를 잘하는지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셋째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정말 복되게 살려면, 구원받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고,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하여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언제 그렇게 뜨거웠나? 내가 언제 그렇게 간절했나?" 하며 곧 흐지부지해 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은혜를 받으려고만 했지 은혜를 흘려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주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통해,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 성도가 예배가 마친 후,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오늘 예배 중에, 저는 설교를 통하여 이런 저런 은혜를 받았어요, 저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라고 믿어요" 하고 자기 입으로 말할 경우, 그 성도는 그 은혜를 오래 간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롭다고 느끼기만 했지,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가만 있는 사람은 예배가 끝나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은혜받은 모든 내용을 다 잊어 버리고 맙니다.
물질도, 사랑도, 우리는 하나님의 통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흘러 보내야, 계속해서 채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의 뜻입니다.
대영박물관에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왕이나 특별한 신분이 아니면 미이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엄청난 돈과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전시된 그 미이라는 흉칙한 해골과 상한 시체입니다. 그 꼴이 될 줄 알았다면 누가 미이라가 되고 싶겠습니까? 헛된 데 모든 것을 건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분주하십니까? 혹시 미이라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전도가 우리에게는 큰 사명이지만, 동시에 놀라운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는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
2) 복음을 전하려고 갈 때
3)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람을 만나는 순간
4)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말할 때
5) 전도한 사람을 양육하려고 갈 때
우리 안의 전도의 문이 먼저 열리도록 기도합시다.
영국에서 빌리그래함 전도집회가 열릴 때, 10살된 소녀가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한 후, 길거리에 나갔더니, 얼굴이 험상 궂은 남자가 지나가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전도하라는 것이라고 믿고, 따라 가며 "아저씨, 오늘 저녁 전도 집회 가요" 하고 전도하였습니다. 이 남자는 이 소녀의 권유를 거절하고, 나중에는 위협을 하며 뿌리치려했으나, 결국 이 소녀의 간청을 받아 들여 빌리그래함 전도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날 그가 회심하여 주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로 마피아의 두목이었습니다.
제 3과 불신자의 마음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라
1. 전도하려면, 불신자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질문> 다음 성경구절들은 불신자의 어떤 상태를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까?
① 엡 2:1
② 엡 2:2
③ 엡 2:3, 요 8:44
④ 마 11:28
⑤ 눅 16:22-23
⑥ 출 34:7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의 진정한 형편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지위나 물질의 풍요함으로만 그 인생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고통당하는 진정한 이유는, 지식이 모자란 것도, 무기가 모자란 것도, 양식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 4:1-6)
불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마귀에게 사로 잡혀, 철저히 죄 값을 치르며 살아 가고 있으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반드시 멸망했습니다. 한 때 세상을 호령하던 수 많은 나라들, 이집트, 로마, 바벨론 등이 지금은 폐허만 남았습니다.
어느 권사님께서 두 아들을 소개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큰 아들은 예수는 잘 믿는데, 너무 못 살고, 둘째는 예수는 안 믿는데, 참 잘살아요? 큰 아들이 참 걱정이예요, 큰 아들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떤 것이 못 사는 것일까요? 전도하려면, 우선 잘 살고, 못사는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성령님]의 저자인 베니힌 목사님이, 은혜를 체험하고, 전도간증을 자주 요청받았는데, 그는 어릴 때 부터 심한 말더듬이 였고, 특히 긴장할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했기에, "하나님! 전 말도 더듬는데 왜 자꾸 전도집회에서 말씀을 전하라고 보내시죠?" 하며 불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후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 속에 많은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어느 언덕 비탈로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여 그 너머를 보았더니 이글거리는 불구덩이가 있는 낭떠러지로 밀려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뒤에 그는 사명감을 지니고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2. 전도하려면, 불신자에게 복음을 정확히 들려 주어야 합니다.
<질문> 롬 10:13-15을 읽고 답하십시오.
①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겠다고 했습니까? :13
② :14-15에 나오는 전도의 4단계를 기록해 보십시오.
( )을 받음 - 복음을 ( ) - 복음을 ( ) - 예수님을 ( )
③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까? :15
교인들에게 [전도]를 하게 했더니, 대부분의 교인들이 불신자를 교회로 데려오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인도]일 뿐입니다. 굳이 그 차이를 설명하자면, [전도]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세상으로 나가 불신자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인도]는 불신자를 세상에서 교회로 데리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불신자 중에 교회에 한번 나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시 청소년의 경우 100명 중 90명 이상이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교회에 인도를 받아 나왔지만, 정확한 복음을 듣고, 양육을 받지는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 수정궁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설교를 마친 후, 세련된 한 여인이 목사님의 책에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목사님에게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구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있지요?" 그녀는 매우 당황한 기색으로 가까이 다가와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지 방법을 몰라요?" 목사님께서 그 시간 그녀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설명해 주었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울면서 "아버지 하나님!"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실제로 주일에 새가족이 교회에 나왔을 때, 그에게 필요한 복음을 듣고, 그에게 필요한 관심과 돌봄을 받고, 함께 기도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생소한 예배, 많은 새로운 사람과 의 인사, 분주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가서 길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갈급한 자에게 복음을 들려 주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구원은 삶의 현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998년 10월 24일 토요일 오후 4시경 고신의료원 341동 21호실에서 당시 불신자였던 김광진성도의 장남 성훈군을 찾아 갔습니다. 경남중학교 2학년인 이 학생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에게 4영리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 부모님도 교회에 나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질문>
① 롬 10:17을 보면, 믿음은 결국 무엇에 의하여 생긴다고 하였습니까?
② 딤후 4: 2에서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무엇에 힘쓰라고 하였습니까?
③ 히 4: 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역사가 있다고 했습니까?
제 4과 먼저 영적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질문> 딤후 4:1-5을 읽고 답해 보십시오.
① 사도 바울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전도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습니까? :1
② 사도 바울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전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2, :5
③ 사도 바울은 어떤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까? :3
④ 지금이 그 때와 비슷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1. 전도대상자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불신자가 겪는 영적 시달림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자살충동을 느낀 청소년 63.4%나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학업 30.2%, 진로 취업 28%, 이성문제 11.8%로 자살의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부입니다. 몇 년 전 여중생이 서울 올림픽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면서 "공부만 하라는 현실이 지옥이다.내가 노래방에 안가는 것은 엄마가 무섭기 때문이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또 목동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여학생도 "부모님이 언니와 동생만 좋아 하고 나에게는 너무 무관심하다. 학교성적이 너무나빠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 두렵다." 심지어는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법대를 들어 간 학생이 1학기 성적이 떨어진다고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을 메고 자살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질문>
① 고후 4:4에서 이 세상 신이 불신자에게 어떻게 역사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② 마 13:4, 19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누가 말씀을 빼앗아 간다고 했습니까?
<질문> 막 9:28-29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고 가르치셨습니까?
그러므로 전도하려면, 영적전쟁도 함께 해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내쫓아야 합니다. 이 악한 영을 내어 쫓기 위하여는 반드시 영적전쟁의 중보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마귀와 반대정신으로 싸워야 합니다.
<질문> 여러분은 "나는 세상(가정, 이웃, 직장)의 빛이다" 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까?
전도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하는 자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삶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빛은 반드시 어둠을 물리치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전도자의 말을 듣기 전에 그의 삶을 주목해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삶이 빛이 되면, 마귀의 간교한 방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거짓의 세상에서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큰 손해일 수 있으나, 성도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이며, 동시에 빛입니다. 미움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빛의 삶입니다. 욕심 앞에서, 주는 삶도 마찬가지로 빛입니다. 이렇게 마귀와 [반대정신]으로 살 때, 전도자의 삶은 빛이 됩니다.
<질문> 벧전 3:1-2에서 불신 남편에게 어떻게 전도하라고 하였습니까?
우리나라 1200만 성도 중에 남편이 구원받지 못한 가정이 40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신남편을 전도하는 전략으로 30일 작전이 있습니다. 성도인 아내가 30일 동안 만이라도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고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남편을 왕 같이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반드시 "당신이 어쩐 일이야?"고 묻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대답하기를 "내가 예수님께 기도하였더니,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섬기라고 말씀하시더라"고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잔소리, 바가지를 긁지 말고 불평 원망하지 말고,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칭찬하고 "내가 정말 시집을 잘 왔다"고 말하고, 남편의 호주머니와 가방에 사랑을 고백하는 쪽지 편지를 넣어 주고, "당신이 최고에요" 말하고, 남편이 좋아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뒤받침 해주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기분이 좋아서 "당신 요즘 많이 바뀌었어?" 하면 잊지 말고, "기도하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마음이 열렸다고 느껴지면, "여보 내게 한가지 소원이 있는데, 교회 한번 같이 가요" 하고 권해 보라는 것입니다.
3.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과 영적전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하기 위한 영적 전쟁은 개인 차원의 영적전쟁 뿐 아니라,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공중 권세잡은 자와의 영적전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질문> 엡 2:2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좇고, 무엇을 따르며 산다고 했습니까?
선교학자들은 세계 지도에서 위도 10인 지역부터 40인 지역까지를 [10/40 창문 지역]이라고 설정해 두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11,000 미전도 종족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회교, 힌두교, 불교 세력이 장악하고 있고, 84% 극빈자이고 문맹국이고 후진국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느 지역마다 그 지역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려면, 그 지역의 공중권세 잡은 자가 꺽어져,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질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마을마다 다니며 전도할 때, 하늘에서 어떤 일이 벌 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까?
① 1990년 교회에서 교회 주변에 처음 축호전도 나갔을 때, 받은 봉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개를 풀어 놓고, 소금을 뿌리고, 물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여호수아 기도회를 하면서, 전도 대신에 골목 골목을 다니며, 악령의 권세를 대적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제일감리교회에서 나왔다고 하면 문을 열어 주게 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② 바로 우리 교회 옆 골목은 목사 사택이 들어 가기 전, 그 골목 전체에서 청년 한명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사 사택이 들어 간지 3년이 지난 뒤, 그 골목에서 8가정이 교회 나오게 되었습니다.
③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러 나라와 도시를 찾아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쪽 나라에서는 복음이 크게 일어나는데 한쪽에서는 너무너무 복음이 안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거리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데...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도시마다 영적인 분위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영적인 권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④ 선교사들의 평가에 의하면, 일본과 중국과 한국을 지배하는 악한 영이 있음을 느낀다고 하는데, 일본은 음란의 영, 중국은 탐욕의 영, 한국은 분열의 영입니다. 지역마다 장악하고 있는 영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영향력에 눌려 있습니다.
교회만이 이 마귀와 싸우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모든 일을 대적하면서, 한 개인과 그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 안의 참 구원을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청년들과 함께 부산진역 광장에 노방 찬양전도를 나갔을 때, 너무나 강한 영적 전쟁을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노려 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적은 불교도가 아닙니다. 무당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부산의 공중에서 이 지역을 사로 잡고 있는 악한 권세입니다. 우리는 그 정면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제 5과 전도자가 가장 복된 자입니다.
1. 당신의 삶의 목적을 예수님께 두십시오.
목적지가 다른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당신은 어디선가 예수님과 헤어지겠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과 당신의 목적지가 같은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적 조건으로 택하지 않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자를 찾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셨던 이유입니다.
<질문> 다음 성경 구절에서 사도 바울의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찾아 보십시오.
① 고전 10:31
② 빌 1:20-21
③ 고후 5:9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온통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에 대한 생각 뿐이셨습니다. 질병도, 가난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굳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하실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주님의 마음도 온통 지옥으로 향하여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영혼구원이 그 삶의 목적이 된 자만이 예수님과 계속하여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①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 목사는 대동강 모래 사장에서 처형을 당했는데, 그의 목을 치려는 나졸 박춘관에게 성경을 전하며, "예수- 예수- 예수-" 하면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영국사람이었으나 그는 한국 민족을 위한 최대의 애국지사였습니다. 그가 이 민족의 영적 죽음을 일깨웠기 때문입니다. 이 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② CCC에서 파송한 선우형식 선교사는 비뇨기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집안도 부유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술을 스스로 부자되는 일에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남아시아로 선교사로 갔습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위하여 부자되기를 포기하니 한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는 사실은 가장 지혜로운 투자자입니다. 그는 과감히 하늘에 위대한 투자를 한 것입니다.
③ 세계 항구마다 복음을 전하는 둘로스 호가 좌초 사고가 났을 때, 브라질 출신의 한 여선교사가, 카메라 생각이 났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에요. 당황한 그녀는 카메라고 뭐고 다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문을 붙잡았어요! 그런데 그 순간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오직 영혼구원" 의 마음을 가진 자를 주목하십니다.
빌 3:7-9에서 사도 바울은 다 버렸습니다. 나쁜 것만 아니라 좋은 것도 유익한 것도. 출신, 학식, 신분, 버려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더 알고, 예수님께 붙들리고,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데, 그 일에 혹시 방해될까봐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오직 예수, 오직 전도는 너무 극단이 아니냐? 균형이 잡혀야지!"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자신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게으르고, 불충성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오직'이라고 해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전도도 하고' 이런 자세로는 결국 전도만 못하고 맙니다. "오직 전도"의 자세가 없으면 전도 못하는 줄 알면 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오직 기도다!" 그런 성도는 기도를 좀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를 갖지 못하면, 결국 기도 못합니다.
<질문> 여러분에게 "오직 전도" "오직 기도" "오직 순종" 이란 자세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전도자가 누릴 축복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 전도단'은 오대원선교사가 1972년 서울공과대학 앞에서 서울공대 학생들에게 전도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계엄령이 발동등 어수선한 당시 5명 정도가 오대원선교사 집에서 성경공부와 찬양모임을 가졌고, 200명까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도와 말씀을 하는 가운데 나가서 전도하라는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그들에게도 성령 안에 충만케 살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주님께서 전도하라고 하셨기에 전도하기 위해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명동에는 다방이 많이 있었는데, 예수전도단 60 - 70명이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각 다방마다 다녔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이었는데 그 곳에서 믿지 않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으므로 힘들었으나,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도하였을 때 5분 이내에 모두 강한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찬양하고 말씀보고 전도하였고, 지금의 예수전도단으로 성장했습니다.
전도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질문>
① 막 16:20에 전도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② 단 12:3에는 전도자가 어떤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역사는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제일 귀합니다. 대통령보다, 학자보다, 장군보다, 큰 회사 사장보다 더 귀한 일이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를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질문> 행 10:3-6에서 천사가 직접 고넬료에게 전도하지 않고, 누구를 찾아 청하여 복음을 들으라고 하였습니까?
당신은 무엇 때문에 분주하게 사십니까? 정말 영혼 구원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분주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정말 역사의 흐름,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고 진짜 되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헛된 투자 말아야 합니다.
<질문> 막 10: 17-22을 읽고 답해 보십시오
① 한 부자가 예수님께 무엇을 물었습니까? :17
② 예수님은 이 청년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21)
③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스럽게 보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20
④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21
⑤ 이 청년은 왜 예수님께 순종을 하지 못하고, 떠났을까요? 22
⑥ 이 청년은 재산을 지킨 것입니까? 기회를 놓친 것입니까?
3. 당신은 직장과 학교, 동네에서 선교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네팔로, 인도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열방을 향하여 보냄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마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 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들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족, 이웃, 직장, 학교가 현재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시청과 구청, 법원, 경찰청, 금융기관, 각종 기관들, 회사들, 학교들도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부산시청은 목사 보다, 시청 공무원인 교인이 더 중요한 선교사입니다.
만약 당신의 마음에 작은 음성이라도 "전도하라"는 부름이 있다면, 그것이 주님의 부름이라고 믿어도 좋습니다. 여기에 순종하면 반드시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복음전파에 투자한 인생은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끝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역사가 바로 이 때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기도 A시 S교회 P전도사님은 본래 의사였으나, 식도암에 걸린 것을 알고, 늦게 목회를 시작하시게 되었습니다. 교단의 진급시험이 있던 날, 시험보러 갔다가 목이 너무 아퍼서 시험도 못치루고, 겨우 교회까지 와서 교회 안의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죽더라도 기도하다 죽자하고, 강단으로 나가서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기도하다가 '죽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다 죽자"하고 교회가 세든 2층에서 아래 층으로 기어 내려가다시피하여 내려가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지나가길래 "예수 믿으라"고 전했답니다. 그 사람은 누가 길에 누워 힘이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 같아, "뭐라구요?" 하며 귀를 기울였는데, 이 전도사님은 자기 입에 귀를 기울이는 그 사람을 붙잡고 기도해 주겠다고 하고 혼신이 힘을 다해 간절히 기도해주었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나자 다리에 힘이 생기고 먹고싶은 마음이 생겨서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먹었는데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도만 하면 몸이 회복되는 것이어습니다. 동네에서 초등학생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깡패로 소문나서 학교선생님도 말릴 수 없는 소년을 전도하여 그 아이가 변화하여, 불교신자라고 전도하러 갈 때마다 말도 못붙이게 하던 그 부모들이 고맙니다 합장하며 인사를 하고,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 부터는 고맙다고 불고기 대접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바뀐 후 그 아이의 두목을 찾아가서 그 아이를 놓아 주라고 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교회 아래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깡패들이 여자를 자루에 넣어와서 때리고 있어서, 그 아이들을 불러서 기도해 주고 돌려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건물 주인이 3층에 사는데 교회에 세를 주고도 자기는 불교를 믿으니 찬송도 크게 하지말로 울고 기도도 하지말라고 하였는데 그 지역의 불량한 학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자기아들도 좀 돌봐달라고 하면서 부탁해옴으로 이제는 마음껏 기도하고 찬송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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