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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제8단원 - 사랑의 열매

by 【고동엽】 2022. 2. 26.

제자의 길: 제8단원 - 사랑의 열매

 

제 1과 당신의 마음은 병들어 있지 않습니까?

제 2과 당신은 사랑이 없어서 성령님의 책망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제 3과 축복의 원리

제 4과 가장 귀한 성령의 열매 :사랑

제 5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제 8단원 사랑의 열매

요절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제 1과 당신의 마음은 병들어 있지 않습니까?

 

① 베트남 전쟁 당시, 월남에 주둔하고 있던 한 미군부대에 성격 좋은 하우스 보이가 있었습니다. 미군들은 물 뒤집어 쓰기, 밀가루 세례, 물건 훔치기 등으로 이 소년을 골탕먹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도 이 소년은 언제나 얼굴이 밝았습니다. 그러다가 미군들이 자신들이 너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이 소년을 불러다가 말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 그 때, 이 소년이 말했습니다. "정말 다시는 장난치지 않고,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좋아요, 그렇다면 저도 다시는 아저씨들의 스프에 침을 ꒘지 않을께요"

② 1977 가을, 전남 영광군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준비물을 검사하다가, 반장인 아이가 아무런 준비물도 없이 있는 것을 보고는 야단을 쳤습니다. 그 아이는 눈물이 글썽한 채, 선생님을 쳐다 보았는데, 선생님은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느끼고, 뺨을 때렸습니다. 그 다음 시간에도 그 다음 시간에도 이 아이는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이 아이를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17년후, 이 소년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최후 진술에 그 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그 때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모두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 때, 크레파스는 커녕 밥을 굶으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항상 때리기만 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지존파 사건의 주인공, 김기환씨입니다.

 

<질문> 이 두 이야기를 읽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늦기 전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난 뒤, 우리 안에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사랑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는데는 대략 다음 세 단계를 거칩니다.

(1) 자기 자신 안에 사랑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실제로 자식 조차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자일 때가 많습니다.

(2) 사랑하게 해 달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게 됩니다.

몸부림치는 이유는 노력할수록 더 큰 좌절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단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자아가 죽게 됩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이 부어지게 됩니다.

이 때 자신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됨을 느낍니다. 성령충만한 사랑입니다.

<질문>

① 요일 3:14에 우리가 영생을 얻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② 요 5:24에서는 영생얻는 조건을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③ 사도 요한은 왜 영생얻는 조건에 대하여 서로 다른 조건을 말씀하셨을까요?

[형제를 사랑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 요일 3:16에는 우리가 어떻게 참 사랑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러므로 그 사람이 정말 구원받았는지 아니지를 알려면, 그 안에 어떤 사랑이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사랑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이며, 구원받은 성도인데, 사랑이 없는 것은 하나의 병입니다. 영적질병입니다.

돌아가신 저의 어머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게 대해서 "큰 애는 마음은 어떤 지 모르지만, 표현이 없어서"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저 자신이 마음으로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단지 표현이 부족한 것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님은 심장병이 악화되신 중에도, 건축 중인 교회 사정과 집 안의 재정 상태를 잘 아셨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병을 숨기셨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저는 어머님이 힘들 때, 설거지 한번 도와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 가신 후, 빈소를 지키고 앉았을 때, "나는 왜,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설거지는 제가 하지요' 한 마디 못했을까?" 후회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제 딸, 지영이에게도 매우 엄격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날, 지영이가 "아빠 나 다른 교회 다니고 싶어요" 하였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가 왜 그럴까?' 생각하며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목사의 딸로 온 교인들의 주목거리가 되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인 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영이가 저를 무서워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편은 속상하기도 하고, 한편은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저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큰 사랑으로 저를 대하셨는가? 얼마나 오래 기다려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지영이에게 제가 한 것처럼 하셨다면, 저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서야, 지영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했구나! 말 한마디 따뜻하게 못해 주었구나!" 회개하고, 지영이를 끌어 안고 "지영아, 아빠가 잘못한 것이 많다. 용서해 줘"하고 고백하며 서로 울면서, 막혔던 관계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때서야 제게 영적 질병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보이지 않는 억압 속에서 자랐습니다. 언제나 교인들과 동생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항상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되고, 공부도 잘 해야 했습니다. 욕구나 감정 표현은 금기였습니다. 언제나 젊잖아야 했습니다.

어릴 때 한복을 입고, 사진관에서 찍은 독사진이 있는 데, 울쌍을 하고 찍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진을 찍을 때 기억이 납니다. '웃어, 웃으라니까' 그래서 나는 힘을 다하여 웃었습니다. 저는 웃었는데, 사진을 보니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였습니다. 제게는 풍성한 사랑을 느끼고 표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에게, 제 딸 지영이에게, 함께 일하는 사역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질문>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이 병들어 사랑을 잃어 버린 분은 없습니까?

제 2과 당신은 사랑이 없어서 성령님의 책망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한 번은 부산의 모 회사 대표이사이신 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는 의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과 만날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로 가는 데, 운전하는 차 중에서 성령님의 큰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때, 구치소에 수감되신 여자 교인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분은 부진신자이며, 빚 때문에 고소를 당해 구속되셨습니다. 저는 전도사님께 다녀 오시도록 했지만, 저는 두 주째 면회를 못 가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제 마음의 모순을 지적하셨습니다. 대표이사되는 그 분을 만나는 약속은 그 여자 성도가 구속된 것보다 훨씬 뒤의 일입니다. 바쁘다면 그 분도 만날 수 없어야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 저는 이 말씀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한 저는 다음 날 아침, 구치소로 심방갔습니다. 그 여 성도는 며칠 후, 집행유예로 풀려 났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적 눈이 뜨여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 안에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무서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은 말만 잘한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조차 사랑하고 받아 주셨지만, 당시에 가장 경건하고 의롭게 산다고 자랑하던 바리새인은 저주하고 버리신 까닭 그들 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장애인 선교단체의 여 간사님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분명한 판단력, 그리고 깔끔하고 정확한 계산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디서나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소개는 그녀에게 모자란 듯 넉넉한 푼수같은 웃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녀에게 날카로운 분석력, 분명한 판단력, 깔금한 계산력만 있었다면, 외롭고 소외된 이들이 도무지 위로받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이처럼 푼수같은 웃음을 가지게 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후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에게도 푼수같은 웃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특별히 용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하기를 얼마나 싫어 하는지 모릅니다.

<질문> 눅 17:1-6을 읽고 답해 보십시오.

① :3에서 예수님은 어떤 교훈을 가르치셨습니까?

② 마 18:21에서 베드로는 어떤 질문을 하였습니까?

③ 베드로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마 18:22

눅 17:4

④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잘못할 때 몇번이나 용서하십니까?

⑤ 이 말씀에 대하여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눅 17:5)


⑥ 즉각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할 믿음을 달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눅 17: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음을 달라고 하였을 때, 좀 엉뚱하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신 것은, 지금은 믿음을 따질 때가 아니라, 순종을 따질 때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는 않으면서,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 기적을 어디에 사용하겠습니까? 혹시 아무 필요도 없이 산이나 뽕나무를 바다로 옮기지나 않겠습니다. 그러다가 원수의 머리 위에 벼락을 내리게 하지나 않겠습니까? 정말 그 기적을 행하는 믿음을 영혼 구원과 용서하고 사랑하는데만 사용하겠습니까?

<질문> 다음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써 보시기 바랍니다.

 

① 당신은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어떤 상황 속에서, 주님으로부터 "용 서하라! 사랑하라!"는 명령을 들은 적이 없습니까?

② 당신은 그 명령에 순종하셨습니까? 그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제 3과 축복의 원리

 

몇 년 전 어느날 우리 교회에서 경찰관이 행려자 한 사람을 끌고 나갔습니다. 그는 욕을 섞어 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교회가 이래도 되냐? 도와달라고 온 사람을 경찰을 불러 끌어 내는 것이 교회냐?" 그는 잔뜩 술이 취해 있었고, 교회 사무실에 와서 오랫동안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교회 관리집사나 사무원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려자의 외침은 쉽게 제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인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 때, 성경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 내가 헐벗었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이 일로 인하여 우리 교회에서 부랑인 급식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여름에는 200명이 넘게 매일 아침을 먹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우리 교회가 재정적인 축복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복을 빌어 주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야곱이 이것 때문에 에서와 다툰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복을 빌어 주게 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복을 빌어 주게 되어 있는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질문>

① 민 6:23-27에 보면 누가 복을 빌어 주는 자입니까?

② 마 10:42에는 누가 복을 빌어 주는 자입니까?

③ 출 20:12에는 누구에게 잘하면 복을 받습니까?

④ 눅 14:14에는 누구에게 잘하면 복을 받습니까?

⑤ 욥 42:10에는 누가 복을 빌어 주는 자로 나옵니까?

⑥ 삼상 26:25에는 누가 누구에게 복을 빌어 주는 자로 나옵니까?

축복의 엉긴 것을 풀어야 합니다. 왜 미워하고 원수지고 사십니까?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는 미국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그것이 그들의 복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요해 졌을 때, 동남아 사람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한을 품은 채 우리나라를 떠났습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98. 7. 어느 화요일, 도둑이 드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도둑이 두명이었고, 그 도둑을 쫓아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 토요일 새벽, 교회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돈 얼마와 교회 비디오를 훔쳐갔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아침 급식이 생각났습니다. 증거도 없으면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저지른 일이 아닐까 의심이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몹시 무거운 채,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개인 기도시간에 갑자기 꿈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도둑을 쫓아 내지 못했는데, 도둑을 쫓아 내는 꿈을 꾸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더 큰 도둑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제 마음에 도둑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도둑이 제 안에 있는 사랑과 기쁨과 감사를 훔쳐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이냐?" "비디오냐? 감사와 사랑이냐?" 그 때 깨달아졌습니다. "좀 도둑은 갔지만, 큰 도둑은 아직 남았구나!"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깨달아지는데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아침 급식소에 오는 분들을 사랑하는 것은 도둑 맞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기도회 후에 내려 오는데, 아침 일찍 오신 분들이 내용도 모르고 인사를 하십니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온 몸이 다 젖은 채, 운동화를 벗으면서, "목사님, 양말 있으면 한 컬레만 부탁합니다"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드리고는, 그 날 아침식사 후 이미 기증받은 양말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질문>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마음에 사랑이 있습니까? 기쁨은 있습니까?

만약 잃어 버렸으면, "도둑이야!, 도둑이야!"해야 할 것입니다. 돈 지갑이나, 집 문서를 잃어 버렸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입니까?

제 4과 가장 귀한 성령의 열매 :사랑

<질문> 빌 4;2을 읽고 대답해 보십시오.

①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사람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어떤 비중의 사람이었겠 습니까?

②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겠는지 추측해 보십시오.

③ 우리 교회 안에서 당신과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교우는 없습니까?

④ 만약 당신과 마음이 불편한 교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사랑보다는 옳고 그른 것을 더 따짐으로, 분열되고,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질문>

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따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열매는 무슨 열매입니까? (창 2:9, :17 3:6)

②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 왜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③ 만약 어떤 사람이 어른이 되고도,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여, 매 번 하나님께 선악의 여부를 질문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겠습 니까?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하여, 쉽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타락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부정확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판단하는라고 인간관계는 깨어지고,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진정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 주실 분은 하나님 뿐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옳아 보여도, 사실은 잘못된 일이 많고, 잘못된 것 처럼 보여도, 깊은 사정을 알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면, 우리는 서로 죽이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에서 우리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하나가 되고, 살려주고, 사랑하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옳은 말이라고 다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마귀 중에 진실을 말하는 마귀도 있습니다.

어떤 자매가 불우한 형편에서 자라서, 몸과 마음이 망가질대로 망가졌으나, 그런 중에도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진실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하여, 결혼하고는 평범한 주부로서의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부부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인 중에 이 여인의 과거에 대하여 알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사실을 다른 교인들에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 아무개 집사,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세요?" 이 소문으로 인하여 그 부부는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장레식 날 목사님은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양들을 돌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리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질문>

① 당신은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하여 말하거나 불평한 한 적이 없습니까?

② 혹시 가족 중에나, 교우들 사이에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③ 만약에 그렇다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시 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5과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질문> 고전 13:13을 읽고 답해 보십시오.

①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② 당신에게는 이 세가지가 항상 있습니까?

③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 [믿음] [소망] [사랑]을 항상 가지고 있는 사람 으로 누구를 꼽을 수 있겠습니까?

④ 이 세가지 중에 제일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이 없다고 안타까와 하는 성도들이 드뭅니다. 중요하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성적, 재물, 재능, 외모, 심지어 운(運)을 더 중요한 조건으로 여깁니다.

성적을 올리는 일, 유학을 가거나, 좋은 직장을 얻거나, 고시를 보거나, 승진하는 일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 그까짓거야, 마음만 먹으면 가지는 것 이라고 여깁니다. 또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한번 둘러 보십시오. 당신 주위에 믿음 소망 사랑의 사람이 누굽니까? 찾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생기면,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소망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갈등이 없어지고, 이 자리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하나님께서 제게 큰 능력을 주셔야 한다고 깨닫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이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지만,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응답은 전혀 기대 밖의 것이어서, 한동안 그것이 응답임을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

제가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느 날 새벽기도회 후, 개인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 골고다 산상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는 체험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순간 예수님께서 당하신 말할 수 없는 모욕들, 엄청난 슬픔, 외로이 십자가 달리신 예수님의 고독, 양손과 발, 머리에 흐르는 피, 그리고 옆구리와 심장이 찔리면서, 쏟아지는 피를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불쌍했지만, 결국은 저 자신을 위하여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죄인인 나를 위하여 한 없이 낮아지셨음 보았고,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어떤 고난을 당하셨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체험을 하고 난 뒤, 제 안에 있던 모든 조급함과 원망과 불평, 그리고 부흥에 대한 열망 조차 다 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비로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또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감사만 나왔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능력이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고침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실 우리 교회에서 아침식사하시는 행려자들과 악수하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 했던 부끄러운 목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귀한 십자가 사랑의 능력이었습니다.

이후 제 목회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피곤하고 긴장되고, 원망과 비판으로 지칠 때마다, 모든 문제를 내려 놓고, 묵상 중에 골고다 십자가 앞으로 갑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 보면, 모든 문제는 다 사라지고, 제 안에서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 결과 목회 현장에서 부흥도 놀랍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

① 요일 4:7에서 요한 사도는 어떻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② 당신은 교우들과 친한 편입니까? 가장 최근에 전에는 친하지 않았던 어떤 교우와 친해진 이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③ 만약에 교인들과 사랑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정말 가슴설레는 말입니다. 교인들 사이에 친해도 너무나 좋은데, 우리 교우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꿈만 같은 말입니다. "우리 친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① 지하 무덤에 살았던 로마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힘으로 견뎌나갔습니다.

② 공산당 박해 아래서도 중국 가정교회가 계속 부흥했던 이유도 교인들의 사랑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성도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넘쳐 흘렀습니다.

마지막 때, 참 교회의 증거는 '참 사랑이 있는 교회인가?'입니다. 기사와 능력에는 많은 가짜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능력 보다는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어느날 장애인인 전해용 군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 통일교로 왔습니다. 여기 목사관입니다. 마침 아무도 없어서 전화했습니다. 너무 외로와 견딜 수가 없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저는 전화로 야단을 쳤습니다. "빨리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전해용군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아들이 장애인이 된 것에 너무나 실망한 아버지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혼자 살았습니다. 이 마음의 상처로 성격이 왜곡되었던 전해용 군에게 교회에서 의족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생전 처음, 무조건적인 사랑과 섬김을 받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직장을 찾아 객지 생활을 할 때, 교회에서 받은 사랑을 잊지 못해, 여러 교회를 찾아 갔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이해받지도, 적응하지도 못하고 쌀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에게 거짓 사랑으로 유혹했던 곳이 통일교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지막 순간에 제게 전화를 하게 함으로 그곳에서 벗어나오게 한 것입니다.

<질문> 다음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 가정에서

① 부모님을 정말 이해하고 사랑하고 공경해 드렸습니까?

② 시부모님, 시댁 식구들, 장인 장모에게 소홀하게 하거나 미워한 것 없습니까?

③ 남편, 아내 사이에, 자녀들에게 잘못했던 일은 없습니까?

#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에 화해하지 못하고, 마음에 섭섭함을 품고 있는 일이 없습니까?

② 모든 성도를 다 사랑하려 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과만 친하지는 않았습니까?

③ 내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보고 비판했던 일은 없습니까?

④ 도와야 하는 생각을 하고서도, 인색함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던 일은 없습니까?

# 세상에서

① 불신자들과 자주 다투고 언쟁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적은 없습니까?

② 나를 욕하고 핍박한다고 그들을 같이 욕하고 미워하고 저주한 일은 없습니까?

③ 사람들에게 거짓말하고, 속이고 도둑질하여 어떤 이익을 챙긴 것은 없습니까?

④ 지나친 탐욕으로 양보나 너그러움이 없이 다투기만 했던 일들이 없습니까?

⑤ 나 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는 비굴하고 나보다 약한 자는 무시한 일은 없습니까?

출처 : 믿음으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글쓴이 : 덩울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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