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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 제5단원 - 기도로 사는 사람

by 【고동엽】 2022. 2. 26.

제자의 길 : 제5단원 - 기도로 사는 사람

 

제 1과 당신은 기도로 사는 사람입니까?

제 2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①

제 3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제 4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③

제 5과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가 되려면

 

제 5단원 기도로 사는 사람

요절

마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 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제 1과 당신은 기도로 사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문제를 이기는 방법 중 가장 놀라운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과 기도로 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당신은 기도하는 것 기도로 사는 것의 차이를 아십니까? 많은 성도들이 기도는 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살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건강을 잃거나, 물질을 잃고서는 그렇지 않은데, 기도생활을 바로 하지 못할 때는 목사에게 미안해 합니다. "목사님, 제가 요즘 기도를 많이 못해서 죄송합니다." 마치 교회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바쁜 일로 그리하지 못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축복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큰 손해이지, 목사에게 미안해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성도님은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아서, 새벽기도회, 철야 기도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있어도 편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느날, 새벽기도회에 나왔더니, 그 날따라 빈자리가 많더랍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교인들은 절박한 어려움이 없어서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나오면서 "아이구, 내 팔자야!"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 이 성도의 연단이 오래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권면해 드렸습니다. "성도님, 그 말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세요! 만약 문제가 해결되어 편해지면 기도 안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되면 더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일이 계기가 되어, 기도하는 삶이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세요!"

제가 기도에 대해 눈이 뜨인 것은 1984년 6월 다리 부상으로 군목 임관을 하지 못하고, 수원 아버님 집으로 귀향 조치된 때였습니다. 그 때 저는 사명감 보다는 저의 가족의 생활을 위하여, 사역할 교회를 찾고자 목발에 의지하여, 서울 수원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리도 온전치 못하며, 군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저를 받아 주는 교회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달 이상 저를 도와 줄 만한 사람들을 찾아 다녔으나, 저를 불러 주는 교회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내려 오는 버스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목사인 제가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나갈 길에 대하여,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사실상 기도는 안하고 고민만 하고, 사람만 의하였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기도만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응답해 주실지 막연했지만, 제 인생 최초로 제대로 기도해 본 첫 경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곧 기도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도만 하기로 결심한 날, 기도를 시작한지 5분 정도 지나고 나니, 기도할 내용은 다 끝났습니다. 그 기도를 열 번이나 반복해도, 한 시간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전화 소리만 들려도 '나를 찾는 전화인가?' 하고 문 앞으로 달려 가곤 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며칠 몇 달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때 지혜가 생기기를, 기도하다가 막히면, 성경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신 부분을 찾아 노트에 써가면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달, 두달, 세달, 이 기간은 제게 철저한 기도 훈련의 기간이었고, 성령님으로부터 기도에 대한 성경공부를 했던 기간이었고, 저와 제 아내가 [합심기도]와 [믿음으로 사는 법]을 함께 배웠던 기간이었습니다. 그 해 11월, 참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인도하셔서 광림교회 부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7살이었습니다.

<질문> 약 4:2-3을 읽고, 기도에 대한 교훈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십시오..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면, 기도해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을 백번 이해가 가지만,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는 말씀은 아무리 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서로의 형편과 요구를 모르면, 어떤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또 줄 능력이나 마음이 있다면, 구하지 않아도 베풀어 주는 것이 자연스런 일입니다. 모든 것을 아는 데도, '구하지 않아서, 주지 않는 경우'는 비정상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구하여야만 주시는 것일까요?

 

<질문> 6:8을 읽고 자기 말로 다시 보십시오..

사 65:24을 읽고 자기 말로 다시 써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아시고,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실 것을 이미 다 준비해 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냥 주시지 않고, 우리가 구하기 까지 기다리시는 것일까요?

<질문> 17: 8-16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기도 안하는 성도들에게도 나름대로 대단한 믿음(?)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니, 구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요!" 또 어떤 교인들은 기도하고 꼭 사족(?)을 답니다. "... 미처 다 구하지 못한 것까지 다 응답해 주시옵소서..." 이런 믿음이 바른 믿음일까요? 성경 말씀에 의하면 엉터리 믿음이요, 무식해서(?) 용감한 믿음입니다.

 

 

제 2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기도응답을 통하여 비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겔 36:35-38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35-36

②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여야 한다고 했습니까? :37

③ 그러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까? :3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우리는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너무나도 많이 받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해와 공기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월급은 회사가 주는 것이고, 건강은 언제나 그랬던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은혜와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영광과 감사는 세상과 자신에게 돌려 보냅니다. 그래서 기도없이 사는 성도는 없는 것보다 가진 것이 훨씬 더 많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놀라와도, 깨닫지 못하고, 늘 불만족과 메마른 심령으로 삽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난 뒤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응답하심에 대한 놀라운 체험과 확신을 가져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온갖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지만, 먼저 구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란 '어떤 일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질문> 4:13의 모세는 교만해 보입니까? 겸손해 보입니까?

삼상 17:32의 소년 다윗은 교만해 보입니까? 겸손해 보입니까?

출 3장, 4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내 보내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였을 때, 자기는 못한다고 주저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겸손한 것이 아니라, 교만한 것입니다. 이유는 자기 힘으로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삼상 17장에서 소년 다윗이 담대하게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간 것은, 교만이 아니고 겸손인 것입니다. 이유는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친히 골리앗을 이기실 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든지 자기가 하는 줄로 여기면 교만이고, 하나님 께서 하시는 줄로 믿으면 겸손인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어려움이 생겨도 기도하지 않고, 겸손한 자는 어떤 일이 생겨도 반드시 기도합니다.

삼일교회 전병욱목사님은 얼굴 잘 생긴 자매가 결혼하여 불행한 경우를 많아 보고, 사람이 교만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얼굴 잘 생긴 자매는 다가 오는 형제들이 많으니까, 결혼 대상자를 찾는 일로 기도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결혼을 위하여 충분한 기도가 없었으니, 그 부부생활이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을 쳐다 보면, 도무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자매들이 의외로 행복한 결혼을 합니다. 이것이 겸손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보통 시험을 칠 대,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기도는 안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니까, 기도를 안하는 것입니다. 이 학생은 공부는 잘하고, 달란트는 많지만, 장래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다가, 그 인생이 실패할 확율이 높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어떤 문제 해결책으로만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어려워져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오랜 교제를 통하여서만,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먼 친척이 이웃 사촌 만 못하다'는 속담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로 하나님과 의논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지식으로 배워서 아는 것과 다릅니다. 경험으로도 알게 되어, 더욱 분명해집니다.

<질문> 4:16을 읽고 우리가 기도해야 이유를 찾아 보십시오.


기도하면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방법은 언제나 다릅니다. 이것은 그 때마다의 상황과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약점은 지난 날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방법이나 사람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않은 사람과 방법을 통하여 일하실 것"임을 항상 명심하여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이 어렵게 진행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인도하고 계십니다. 단 말씀과 기도 중에 계속하여 확인이 옴을 알아야 합니다. 창 39:3과 39:21을 보면, 요셉은 애급에서 종으로, 또 죄인으로 어렵게 지냈지만, "여호와께서 요셉과와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이것만 분명하면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도 생활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제 3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기도는 영적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가 다 부흥되기를 원하실 텐데, 왜 부흥하는 교회가 있고, 부흥하지 않는 교회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다 은혜로운 삶을 살기 원하실 텐데, 왜 은혜 충만한 성도가 있고, 영적으로 메마른 삶을 사는 성도가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이 모든 일이 기도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많이 하는 교회가 부흥되고, 기도 많이 하는 성도가 은혜 충만하고, 기도 준비가 많은 일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분명히 기도가 다릅니다!

<질문> 18:18-19을 읽고,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 하늘이 먼저인지, 땅이 먼저 인지 답해 보십시오. 이것은 무엇에 대한 교훈입니까?

지금 이 세상에는 사단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단이 "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2:31/ 눅4:6-7) 물론 사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패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습니다" (요일 3:8) 그러나 이 세상에서 여전히 사단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사단을 당장 영원히 멸하시지 않고, 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허락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질문> 벧후 3:8에서 하나님께서 왜 심판을 뒤로 미루고 계시다고 하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심판을 미루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지금 사단을 영원히 지옥에 결박하신다면, 사단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도 함께 지옥에 가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저와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지, 사랑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고 계시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왕노릇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마귀는 꺽입니다!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마귀의 일이 멸해집니다.(요일 3;8)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실제 증명되는 사건입니다. 이런 뜻에서 기도는 철도 레일과 같고, 2인3각 경기(2人3脚 競技)와 같습니다. 기도하는 일에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우리의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 9:19에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이것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쇠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하신 일들도 좌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 삼상 12:23에 어떤 죄가 나옵니까?

당신에게는 기도하기를 쉰 죄가 없는 써 보십시오. (가정, 교회, 나라 등)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와 교회가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깨닫고 보면, 피곤해서 기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못해서 피곤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어려움 중에도 끝까지 기도하는 자는 시험을 분별하고, 이깁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든지 간에 기도실에 들어 가면, 이기고 나옵니다. 우리의 싸움도 사실상 모두 영적 전쟁이며, 기도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전쟁은 기도의 역사였습니다. 도무지 군사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승리했습니다.

출 17장 아말렉과 싸운 모세와 여호수아

대하 20:1-4, 20-23 모압과 암몬 연합군과 싸운 여호사밧 왕

왕하 19:1, 35 앗수르 185,000명 군사와 싸운 히스기야 왕

왕하 6:16-17 도단성에 쳐들어 온 아람 왕과 싸운 엘리사

기도의 4 단계

렘 33: 1-9에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의 네 단계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단계입니다.

[렘 33:2] 일을 행하는 여호아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 하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둘째,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기도하도록 감동하시는 단계입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집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셋째, 성도가 순종하여 실제로 기도하는 단계입니다.

넷째,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렘 33: 6-9

[왕하 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교회 근처에 있는 점집들이 문을 닫게 해 달라고 계속하여 기도하였는데, 몇 년 뒤, 실제로 교회 근처의 점집들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이사가거나, 개문휴업 상태가 되었습니다.

김경자권사님은 오래 전에 미국의 동서가 절을 짓겠다는 말을 듣고,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하나님께 "동서가 절을 짓지 않고, 교회를 지을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만 했다고 합니다.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기도제목이었는데, 그 동서가 나중에 그 기도제목대로, 예수를 믿게 되고, 교회를 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4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기도 만이 시험을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26:36-46을 읽고 답하십시오.

①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부탁을 하셨습니까?

②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③ 잠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잠자는 제자들을 굳이 깨우셨습니다. "나와 함께 한 시간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너무 야박하지 않습니까? 새벽 단잠을 깨우는 자명종 벨 소리가 얼마나 싫습니까? "졸린데, 어떻게 기도합니까?" 이 말이 성도들 얼굴에 씌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괴롭히시기만 하실까요?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상기도, 금식기도,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요?

마 26:41에서 예수님께서는 졸려도 기도해야 할 이유를 두가지 말씀하셨습니다.

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언제나 자명종 시계는 새벽마다 울리는데, 피곤해서 "하나님, 죄송해요!" 하고는 다시 주무신다는 어느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애교가 넘칩니까?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내게 죄송할 것 없다. 네가 큰 일이지!" 만약 미친 개가 한 마리가 집 안에 들어 와도 "졸린데, 어떻게 합니까?"하고 잘 수 있을까요? 몰라서 기도 안하는 것입니다.

<질문> 벧전 5:8을 읽어 보시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왜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지 말해 보십시오.

사단은 계속하여 성도들과 교회를 공격합니다. 시험이 계속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험을 분별할 수 있고, 결국 이깁니다. 기도해 보면 알지만, 죄 짓는 일과 진실한 기도는 병행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그만 두든지, 죄 짓는 일을 그만 두든지 하게 됩니다. 부부싸움도, 기도하면 반드시 화해하게 됩니다.

또 기도하면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잘 안될 때, 자신의 영적 상태에 무슨 문제가 있는 지 알아 보아야 합니다. 죄 짓고 사는 것은 아닌지, 영적으로 시험이 든 것은 아니지 점검할 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시험이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해 달라는 말씀을 "깨어 있으라"(:38) 표현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깨어 있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잠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집사님께서 새벽기도회에 몇일 나오시더니, "목사님, 새벽기도도 좋지만, 하루종일 졸려서 아무 것도 못하겠습니다. 저는 새벽 잠이 많아서 새벽기도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셨습니다.

정신차려 살자고 기도하는 것인데, 오히려 기도하고 졸리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새벽기도하고 종일 졸리시는 분도 알기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몽롱하게 하루를 지내도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죄 지을 유혹이 오거나, 시험이 올 때, 금방 알아 차리게 되고, 이길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제대로 기도하지 않고 사는 성도는 아무리 똑똑하게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졸며 몽롱하게 사는 것입니다. 유혹과 시련이 닥칠 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고 쉬라" 하셨는데, 이 말은 기도할 때가 지났다는 말입니다. 기도도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기도하는 것과 고3 때 기도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아가 되기 전에 기도하는 것과 문제아가 된 이후에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②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41)

이 말씀을 기도 못하는 핑계로 삼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아무리 졸려도 더욱 기도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육신이 약하니 기도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겟세마네]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꿉니다! 기도하지 않고 자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요한은 벌거벗고 도망갔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천국 가서 두고 두고 창피해 할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담대하게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한 번은 제 아내가 마음에 크게 낙심하여 있었습니다. "새벽에 충만하게 기도하고, 내가 왜 이 모양이지요?" 이렇게 말하며, 괴로워 하였습니다. 기도하면서 이런 일을 경험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새벽에 충만히 기도했으니, 그만큼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없으면 그 짜증과 화로 인한 영적 침체가 며칠을 갓을 것입니다. 새벽에 충만하게 기도했으니, 그 날로 깨달아 진 것입니다.

<질문> 6:10을 읽고, 다니엘이 시험을 이긴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찾아 보십시오.


다니엘은 하루 3번 기도했더니, 어려움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했더니, 원수가 완전히 꺽어지지 않았습니까? 기도 안될 때, 사실 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기도를 형편과 여건대로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마귀는 계속하여 어려운 형편으로 몰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건이 좋아서, 기도한 예도 없고, 그렇게 해서 역사가 일어난 예도 없습니다. 기도가 안되어도, 끝까지 매달리면, 한 순간에 기도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방해하는 영적 세력이 꺽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기도 안될 때, 더 기도해야 한다. 영적으로 숨통이 막힌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제 5과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가 되려면

기도의 약속이 이렇게 놀랍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기도 생활에 실패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엘리야 처럼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가 되려면, 성경이 가르치는 조건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

<질문> 약 1:6, 막 11:24에 나오는 기도 응답의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 보십시오.



기도를 많이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기도가 있고, 기도 시간이 짧아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염려하면서 하는 기도는 열심히 해도, 몸부림일 뿐이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맡기는 기도는 기도하고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믿음의 기도입니다. 문제는 언제, 소원의 기도가 믿음의 선포로 바뀌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우가 고3인 아들을 새벽에 깨워 놓고, 새벽기도회에 와서 간절히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회 후, 집에 들어가 보니, 아들이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불을 걷어 치우면서, "이놈아! 너는 어째서 그 모양이냐? 에미는 교회에 가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왔는데, 정작 네가 자면 돼니? 넌 안돼, 안돼" 이 교우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단지 소원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잘됐으면 좋겠다!"에서 "잘 될 것을 믿습니다" 로 바꾸어져야 한다.

<질문> 3:6, 9:32-43을 읽고, 베드로의 선포를 보십시오.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 8년된 중풍병자 애니아, 죽었던 과부 다비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선포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같으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선언했습니다. 기도와 선포는 다릅니다. 기도가 선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자신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실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질문> 다음은 기도할 내용입니까? 선포할 내용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하였다"

 

② 순종의 기도

 

<질문> 요 15:7을 읽고, 기도 응답의 조건으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써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나 이루어진다!" 오해말아야 합니다. 이 놀라운 약속은 간구하는 자의 순종을 전제로 주시는 약속인 것입니다. 만약 누구에게 인감도장을 맡길 때는 그 사람을 믿으니까 맡기는 것입니다.

 

<질문> 당신의 소원대로 이루어지면 좋을까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임원 선출, 속회 분할, 선교회 편성 등 교회 일도 뒤죽박죽이 될 것입니다. 날씨는 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역경의 열매' 하지만, 사실 역경을 구해 보셨습니까? 苦盡甘來라 하지만 고난을 구해 보셨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제대로 압니까?

한 농부가 돌덩어리를 금덩어리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한 후에, 눈을 떠 보니, 여전히 돌덩어리였답니다. 그가 하는 말 "내 이럴 줄 알았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는 있지만 순종이 없습니다.

 

<질문> 22:39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③ 의인의 기도

<질문> 약 5: 16에는 어떤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까?

한 교우의 가정에배 때 일어난 일입니다. '가장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가족을 향한 축복권이 있다'고 배운 부인 집사님이 남편되는 집사님에게 가족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해 달라고 강권하였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가 무릅을 꿇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남편되는 집사님이 마지 못해 먼저 아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였답니다. 그 다음 차례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는데, 아들이 '킥킥' 하며 웃었답니다. 이 아들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밤 늦게 술에 취해서 오는 일이 예사고, 아빠 엄마가 늘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목사님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아빠가 아무리 해도 웃겼던 것입니다. 그 아들의 웃음에 이 남자 집사님도 그만 웃어 버렸답니다. 자기 자신도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게기가 되어, 이 남자 집사님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평소의 삶이 바로 되어야, 가족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음을 너무나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열심도 좋고, 많은 헌금도 좋으나, 하나님께서 죄 위에다 복과 부흥을 부어 주실 수는 없으시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잊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은 십자가의 사람입니다. 죄로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고, 십자가 보혈의 역사를 의지하여, 항상 바로 서는 사람이 능력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요일 1:9에서는 어떻게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이기는 기도

 

<질문> 창 32: 28의 이스라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은 야곱이 응답받을 때까지 매달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기도하되 응답받을 때까지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안된다"는 응답일지라도, 분명히 응답받은 자와 그냥 안되는 것은 다릅니다.

 

<질문> 마 26:44에서는 예수님은 몇번 기도하셨다고 했습니까?

고후 12:8에서는 바울이 몇번 기도하였다고 했습니까?

왕상 18:41-46에서는 엘리야가 몇번 기도하였다고 했습니까?


세 번, 일곱번 기도하는 것은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기도를 하지 말고, 기도의 눌림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하여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⑤ 일치의 기도

 

<질문> 마 18:19을 읽고, 기도응답을 받는 기도의 조건을 찾아 보십시오.

 

성도는 개인기도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반드시 합심기도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기도한다고 다 합심기도는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마귀는 분열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있는 기도의 역사를 위하여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엡 4:27)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파가 나뉘고 분열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금물입니다.

옳은 말이라고 다 합당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때는 '어느 것이 옳으냐?' 보다 '하나가 되었냐, 분열이 되었느냐?'를 더 중요하게 살펴야 합니다. 마귀는 아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게 하였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일치의 마음은 없이, 옳고 그른 것만 따질 줄 아는 사람은 마귀의 도구로 쓰임받기 쉽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었다가 다수결로 한쪽 의견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의견에 반대했던 교인들은 그 일이 잘 안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이고, 주님의 일인데도 은근히 그 일이 실패로 끝나고, 문제가 생기기를 원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나중에 어려움이 생기자 "그것 보세요. 제가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안이 이런 형편인데, 어떻게 주님의 역사가 교회에 나타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된 이유가 합심하는 일에 소홀히 함으로, 마귀가 틈타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⑥ 사랑의 기도

<질문> 사 58:6-9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② 그리하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가장 간절한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생명걸고 하는 기도요, 자아가 죽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랑하는 삶, 나누어 주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잘되기를 축복해 주며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은 외면하다가, 어려움을 당하여 주님을 부르면, 담대함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질문>요일 3:21-23에서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출처 : 믿음으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글쓴이 : 덩울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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