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 제 4단원 믿음으로 사는 사람
제 1과 당신은 믿음으로 사는가?
제 2과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제 3과 어떻게 하면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제 4과 염려하지 않고 사는 길
제 5과 당신 안에 있는 믿음의 장애물을 제거하라!
제 4단원 믿음으로 사는 사람
요절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제 1과 당신은 믿음으로 사는가?
둘째 딸 하영이가 세 살 때, 시편 23편을 암송시켰더니, 옛 말투라서 그런지, 첫부분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리로다"라고 자꾸 틀리게 암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영이의 성구암송을 바로 잡아 주다가,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삶 속에서는 성경을 하영이처럼 읽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지만, 내게는 부족한 것도 많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사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살아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염려하며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질문> 믿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당신은 믿음으로 사십니까?
<질문> 삼상 17:33-37을 읽고, 다윗과 사울 왕은 무엇이 다른지를 찾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람만큼도 못 믿고 삽니다.
선교지를 방문했던 한 목사님, 선교비가 부족하여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하는 한 선교사님께, "이제부터라도 꼭 십일조하세요. 만약 생활비가 모자라면 내게 전화하세요. 그러면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당부하였답니다. 그 선교사님은 그 목사님의 약속에 용기를 얻어 십일조 생활을 하였는데, 생활비가 모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1년 뒤 귀국한 길에 그 목사님을 만난 선교사님께서 그 간증을 하였더니 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선교사님, 참 감사한데, 왜 하나님의 약속은 믿지 않으면서, 내 말은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습니까?"
"목사님, 참 믿음좋은 젊은 집사입니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는 남자집사님이 있어서 심방을 갔었는데, 실망스럽게도 그는 정말 믿음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집사님은 술 담배 안하고, 교회출석과 봉사를 잘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그를 믿음좋은 집사님이라고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세상을 너무나 두려워 하여, 세상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믿지 못하고 계셨고, 직장 상사가 싫어 한다고, 직장에서는 자신이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담대히 고백하지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착한 것과 믿음 좋은 것은 다릅니다.
믿음이란 영적 감각입니다. 어거지가 아닙니다. 육체에 시각, 청각, 촉각이 있듯이, 영에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살아야지 경험과 감각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경험, 지식, 의지로 사는 자는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믿음 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없습니다.
히 11:1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질문> 롬 14:23에서는 무엇이 죄라고 하였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사람을 믿고 살았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토록 침묵하신 이유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이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판단하고 살았던 것이 죄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하여 꺽으십니다.
사람과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며, 돈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도구일 뿐입니다.
<질문> 요일 5:4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어떤 어린아이가 두려운 밤 길을 간다고 합시다. 혼자가는 것과 아버지와 같이 가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길은 똑같은 길입니다. 다른 것은 이 아이의 믿음입니다.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두려움이 다 사라집니다.
믿음이야 말로 기적이고,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되면, 문제는 다 사라집니다. 걱정하고,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수 1:9에서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 잡혀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질문> 약 1:2-3을 읽어 보면, [시험]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왜 시험이 믿음의 시련이 되는 지 생각해 보십시오.
시험이란 곧 믿음이 테스트를 받는 순간입니다. 시험을 이겼다는 말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시험에 들었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시련이 오래되면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확증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이스라엘 나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애급(BC 1440여년전)이후부터 3500년 동안 여전히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언제나 평안했느냐? 하면 아닙니다.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강대국들, 애급, 블레셋, 앗수르,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제국 등은 지금,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조건 잘 되고, 평안한 것으로 측정치 말아야 합니다. 순교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받아서 순교했습니까? 하나님의 속 깊은 경륜과 은총을 헤아릴 줄 모르는 성도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사실인가요? 나는 믿어지지 않아요" 공부 못했다고 아버지가 야단을 치자, 아들이 "성공하고 돌아 오겠습니다", 하고 메모지를 남기고 가출한 학생과 같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김용기 장로님은 늘 말했습니다. "무슨 복을 더 달라고 그래, 골마다 복인데, 볼 줄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복을 더 달라 그래"
제 2과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을 믿음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질문> 구원은 무엇으로 얻습니까?
십자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정말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을 때, 구원의 역사가 임합니다. 그래서 평안이 옵니다. 죄사함을 받아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죄사함 받았음을 믿으니 평안한 것입니다. 부모님께 잘못했을 때, 부모님의 용서를 받을 때, 우리 마음이 평안을 느낍니까? 아닙니다 용서받았음을 믿을 때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용서는 받았지만, 평안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믿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믿으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해 주시겟다는 약속의 말씀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구원만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하는 원리가 똑같습니다. 기도응답도, 성령충만도, 성결의 역사도, 치유도, 이김도 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2.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세상에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다른 여건에 매여서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일을 꼭 해야 할 지 여부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돈이 결정할 때가 대부분인 경우입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허락하는 대로 어떤 일을 하면, 걱정할 것도, 기도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일을 시작하면, 믿음을 사용해야 하고, 간절히 기도도 해야 하지만, 그 때부터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셔서, 기적이 일어나고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① 1996년 감리교 부산지방회에서는 지방 내에 있는 미자립교회 한 교회를 우리 지방에 속한 각 교회의 힘을 모아, 자립시키는 감격스러운 순서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사업에 참여하였는데, 처음에는 '얼마를 부담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심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교회 형편에 맞추면, 우리는 부담이 없겠으나, 지방회에서 목표로 하는 미자립교회 한 교회를 자립시키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만약 우리교회가 감당해야 할 만큼 헌금하자면, 교회 예산 집행에 상당한 무리가 오고 또 당시 교회재정도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 때, 저와 장로님들은 무리가 따르지만, 우리교회가 1,000만원은 헌금해야 미자립교회를 자립시키는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믿음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별 기도에 들어 갔으며, 교인들에게도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개월 안에 1,000만원 이상 헌금이 되어, 송금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앞장서자 지방 내 다른 교회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목표했던 미자립교회 한 교회가 예배당 건물을 분양받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었습니다.
②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나, 당시 영국의 어떤 선교단체도 그룰 중국으로 파송해 주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자신을 중국 선교사로 부르셨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되는구나!" 믿음으로 사는 답을 얻은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중국 내지 선교회]라는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③ [광림교회 일산성전 이송아권사 99.3.15 편지 중에서]
목사님! (중략) 지난 번 부산에 내려 갔을 때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이 제 마음에 꼭 합하기에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허락하는 대로 어떤 일을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일을 시작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셔서, 기적이 일어나고 간증거리가 생긴다"
저희 형편도 어렵고 날마다 세 자녀들의 학비 대기가 보통이 아닙니다만 최권사와 저는 작정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저희 가족 모두가 성가대에서 봉사하기에, 주일 아침마다 간식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교회 예산은 한계가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광고 하지 않고 그냥 김밥을 싸기로 했습니다. 전에 봉사하던 교회 애찬관 김치도 주일마다 저희가 경영하는 [맛있는 집]에서 담구어 갑니다. 주일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 김밥 싸고 7:20 까지 교회 가는 일이 보통이 아닙니다. 인정이, 훈정이, 최권사와 저, 주일 새벽이면 저희 가게는 잔치집입니다.
김밥 비빈 밥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승용이가 첫 목회 길로 들어섰나이다. 저 부족한 아들을 주님께서 지켜달라고 우리 식구는 이 한가지 주님 앞에 봉사합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안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손 끝에 맛을 내게 하시어 먹는 사람마다 입 맛에 맞추어 주시고 소화 잘 되게 하시어, 먹고 찬양 할 때, 하늘 보좌의 문설주가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고맙고 감사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또 시간 늦지않게 하소서. 아멘!"
그런데,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려고 목사님을 통해 증거하셨는데 제가 그 말씀을 붙들지 않았으면 큰 손해 볼 뻔 하였습니다. 성가대 김밥 봉사를 시작한지, 한 주가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훈정이 재학 증명서, 성적증명서 빨리 제출하라는 속회 집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장학금이 준비되었나봅니다. 또 하루 지나 전화가 오기를 "인정이 주일 날 꼭 데리고 와서 등록금 받아가세요, 도와 줄 분이 생겼습니다" 자식 하나도 아니고, 덤으로 두 자녀 등록금이 마련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후략)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자임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당신의 얼굴 표정과 분위기가 말해 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얼굴 표정만 보면 주위 사람들 중에 가장 부자인 것 처럼 보입니다. 가장 평안하고 감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는 두 차례의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하기 전에 감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공한 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감히 "할렐루야!" "나는 이겼다" 하지 못합니다. 다른 것은 꾸밀 수가 있어도 이것은 꾸밀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가 가진 믿음이 말합니다.!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고, 찬양과 개가는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시합을 해 보기 전에 "이겼다!" 할 수 없습니다. 공은 둥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십니까? 역시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려 보아야 합니까? 아니면 결과를 볼 필요도 없이 "이겼다!"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믿음이 말합니다.
<질문> 사람들이 당신의 표정을 보면, 당신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까?
제 3과 어떻게 하면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믿음은 노력한다고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는 데는 몇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1. 항상 큰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질문> 눅 17:5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사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돈이 아니고, 믿음이 없는 것이고, 문제가 큰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작은 것입니다. 믿음이 가장 큰 응답이다. 믿음으로 살다가 한가지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면 10가지 유익이 오고, 한가지 어려움을 피하려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10가지 손해가 옵니다.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큰 믿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믿음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확신이 있는 자에게로 끌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집사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부도가 났습니다. 그 순간 이 집사님의 머리에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집사님은 거리를 헤매이다가, 밤 늦은 시간에 겨우 집에 들어 갔습니다. 그 때 부인 집사님이 꿀물을 타가지고 들어와서, 남편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나 고생할 각오가 되었어요. 내 걱정은 마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재기하게 하실 것을 믿어요" 그 순간, 이 남편 집사님이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아내의 믿음이 그 남편 집사가 결국 재기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2. 믿음으로 살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회개할 것이 무엇입니까?" 구해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회개할 줄 모르면, 영적인 삶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청년 집사가 부흥회 때, 강사목사님께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을 때, 자신의 통장과 함께 신학교에 다니는 전도사님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동안 어렵게 모으고 모아, 200만원을 저축했는데, 그것을 다 내 놓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드는데, 결단을 못하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달아지는 것이 '200만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좋은 아내를 얻을 수 있는가? 집을 살 수 있는가? 사업을 할 수 있는가? 돈 200만원을 의지하는 자신을 보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척교회 부흥회를 인도하였을 때입니다. 마지막 날 새벽기도회 때, 1000만원이 통장이 헌금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의 통장이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 너무나 어렵게 살아 왔기에 급할 때, 쓰려고, 사모님도 모르게 돈을 조금씩 조금씩 억척같이 모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중에, 자신이 어느덧 하나님보다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깨닫고, 교인들 앞에서 회개하며, "교회 빚을 갚는데, 쓰려고 다 내어 놓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교인들도 사모님도 다 울었습니다.
3. 믿음은 말씀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가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 수 1:8입니다.
[수 1: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되리라 네가 형통하리라
<질문> 당신은 믿음이 어떻게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참고 롬 10:17)
100만명의 영혼을 구원했다는 무디목사님은 처음에는 믿음이 번개처럼 위로부터 임할 줄로 여겼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롬 10:17을 읽고, 믿음은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읽고, 또 기도하고, 또 성경 읽기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믿음이 자라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이 무디목사님에게 찾아 와서 "나는 속죄의 확신이 없습니다"고 할 때, 요 1:12을 읽어 주었숩니다. 무디 목사님은 또 롬 8:1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 죄가 용서받은 것과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요일 1:9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 무디 목사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가 도데체 뭔데, 안 믿는건가? 하나님께서 자네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이만큼 말씀하셨으면 믿어야지!"
믿음과 신념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이나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다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당신에게도 주신 것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믿음과 기분도 다른 것입니다. 애급으로 팔려가는 요셉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사자 굴 앞에서 다니엘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소돔으로 이사가는 롯은 콧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이기고 많은 짐승들을 끌고 돌아오는 사울 왕의 기분은 너무나 좋았을 것입니다. 기분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판단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무리해도 이기지 못하고, 반복하는 잘못을 가지고, "계속하여 하나님께 회개만 한다고 정말 용서받게 될까?" 하고 깊이 좌절한 채, 염려하며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 18:22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사죄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다시는 그 죄에 빠지지 않는 해결도 얻었습니다.
[마 18:22]...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4. 믿음의 훈련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경과 환란도 감사할 이유입니다. 믿음도 성장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그 해수만큼 믿음이 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전도단 사역자들은 매일 매일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아 갑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짐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YM 사역자들이 전세계로 급속히 나아 갈 수 있는 비결임을 알았습니다. 예수전도단 창시자인 로렌 커닝헴은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일하게 하시는가? 그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실재하심을 매 순간 확신케 하시려는 것이다" 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 전도단 사역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마르크스주의자와 부딪히든지, 유럽에서 공부벨레인 지성인들의 무관심에 부딪히든지, 악조건 환경 속에서 사역하던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것(신 8:2-3)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심(대하 16:9)을 체험하였습니다.
1991년도, 군인교회인 항만진중교회 건축을 위한 특별헌금을 요청받았을 때, 맥추감사절 직전이었습니다. 그 때, 고민하다가 군인교회 건축헌금을 맥추감사절 보다 먼저 지켰습니다. 그 때 맥추감사절 헌금 목표가 260만원이었는데, 군인교회 건축헌금이 280여만원 나왔습니다. "이 헌금을 다 군인교회에 보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지킬 맥추감사절 헌금에 큰 차질이 올 것이라고 에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 보내었습니다. 그 다음 주 맥추감사주일 헌금이 340여 만원 나왔습니다. 이 일이 우리교회가 재정에 대하여 믿음을 사용해 본 첫 번째 체험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왜 고생스런 기간이 있었을까요? 그가 왕이 되려면 훈련을 받은 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왜 고생을 겪었습니까? 그가 총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훈련받은 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5.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질문> 왕하 6:8-17에서 엘리사의 종은 언제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질문> 제자들은 언제부터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전도할 수 있었을까요?
(참고 행 2:1-4)
제 4과 염려하지 않고 사는 길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받으면서, 비로서 깨닫고 놀란 것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그동안 너무나 염려를 많이 하며 살았었다는 것(건강, 가정, 교회, 재정 등등)이고 둘째는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가에 대하여 정말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질문> 눅 21:34에 말세에 성도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교계신문에 [목사님 어깨 힘 좀 빼십시오] 라는 글이 있어서 보았습니다. 두레교회 장로이신 서강대 강영안교수님, 기도원에 갔다가 교회는 큰 교회로 부흥시키셨지만, 정작 당신은 과로로 쓰러져 기도원에 오신 목사님 내외를 만나셨답니다. 기도원 뒤 뜰에서 운동을 가르쳐 드리는데, 온 몸이 굳어 계시더랍니다. "목사님, 힘 빼십시오. 힘 좀 빼세요. 목사님, 어깨를 낮추십시오. 힘 빼시구요!" 이 장로님은 온 몸에 긴장하며, 힘이 잔뜩 들어 가 있는 목사님을 한참 바라 보며, "목사님도 사람의 노력과 염려로 살면 쓰러지게 되어 있구나"하고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곧 염려하지 않고 산다는 것인데, 염려하지 않고 살려면, 염려가 왜 그렇게 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염려를 붙잡지 않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염려를 붙잡고 살고 있습니다.
한 번은 제자훈련 때, 한 주간 숙제를 내어 주었는데, "한 주간 동안 염려하지 않고 살아 보고,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후, 한 권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지 않아야 하는 염려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질문> 당신은 염려하기 위하여 노력해 본 적 있습니까?
우리의 악한 본성 때문에, 저절로 되는 것은 대부분 악합니다. 화! 욕! 저절로 나옵니다. 죄 지으려고 금식하고 철야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염려는 어떻습니까? 염려는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질문> 초등학교 다니는 자녀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 부모는 "왜 네가 그런 것을 염려하니?"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14:18), 고아란 자기 문제는 자기가 염려하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 하시는 것입니다. 염려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고전 7:32-33에서 결혼 생활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개인생활에 시달리고, 염려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한정되어 있기에, 개인 문제로 염려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막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결국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구나!"일 것입니다. 이처럼 염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 1:9]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마 6:31]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질문> 벧전 5:7 말씀대로 "염려를 주께 맡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염려를 주님게 맡기려고 노력하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 풍성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체험하는 만큼 염려는 맡겨지기 때문입니다.
돈은 얼마나 힘이 있습니까? 1억만 있어도, 생활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염려를 맡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어도 여전히 걱정이 안 떠나는데, 돈이 있으면 걱정이 안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돈만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알 때는 하나님께 절대 염려가 맡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하는 순간, 그 즉시 염려가 하나님께 맡겨집니다.
<질문> 왕하 6:14-17에 나오는 엘리사의 종이 영적 눈이 뜨인 후에도 염려했을까요?
염려하지 않고 사는 방법 |
첫째, 염려가 생길 때, 염려가 사라지기까지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 보자
[빌 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눅 10;38-42에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만 듣는 마리아를 보고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마리아 좀 보세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억양은 어떠했을까요?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요? 마르다의 염려 때문입니다.(:41)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염려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염려가 생길 때, 염려 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할 일이 생각나면, 그것을 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염려는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 "쯧 쯧, 큰일이군, 걱정이야" 하고 염려만 하지, 기도는 안합니다. 우리는 염려하는 것을 관심을 가져 주는 것으로 여기고, 심지어 사랑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염려는 사랑도 관심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태를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요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한 대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하고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라고 종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염려가 생길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미국의 암전문의 원종수권사의 어머니 김철례권사는 집에 어떤 어려운 일, 사면초가의 기가 막힌 사정이 생기면,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성경 찬송 가방만 하나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서는 평소에 꼭 전도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믿음으로 교분을 나누고는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서 당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던, 금요일 저녁, 설교 파일이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다 날라가버렸습니다. 저는 당황하여 사방에 저를 도와 줄 컴퓨터 전문가들을 찾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마침 그 시간은 며칠 전에 몇분의 집사님들과 교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다시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가득차 있었기에, 집사님들을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설교문을 다시 쓰려고, 원고지를 꺼내어 제목부터 썼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저는 이 제목을 쓰고서야, 저 자신이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집사님들과의 약속을 지키러 교회 1층으로 내려왔는데, 마침 컴퓨터를 잘 다루는 주성진 청년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제 컴퓨터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염려하지 않고 주께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해결책을 만났던 것입니다.
<질문> 마 6:33에서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먼저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한신대 정태기박사님이 미국 유학 시절, 강동만집사라는 분이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냥개가 호랑이를 나무 위로 몰아서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냥개는 어떤 짐승도 주인의 총 한방이면 죽는 것을 보고, 호랑이도 무섭지 않는 믿음을 가졌고, 호랑이는 생전 처음 겁도 없이 자기에게 달려드는 짐승을 보고, 스스로 놀라 도망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도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호랑이도 잡을 수 있고, 토끼도 못 잡을 수 있습니다.
제 5과 당신 안에 있는 믿음의 장애물을 제거하라!
<질문> 다음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반응을 적어 보십시오.
① 막 6:1-6
② 막 9:14-24
③ 눅 7:2-10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성도마다 다 다른데,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책망받는 믿음과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결같이 칭찬받는 큰 믿음을 가지고 싶은데, 왜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고전 5:17을 읽고 당신의 이전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다 지나갔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죄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 신년 연합집회에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교회 수석장로였던 길선주 장로는 온 회중들 앞에서 친구가 유언하며 맡긴 돈 200원 중에 100원을 가로 챈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회개하지 않은 죄는 믿음의 장애물이 됩니다.
2. 부정적 자아상
우리는 어릴 때부터 들은 부정적인 말이 마음에 새겨 있습니다. "넌 안돼, 넌 못해, 이 못난 놈아, 바보같은 자식! 넌 맨날 그러니, 죽어라 죽어, 넌 왜 저 아이처럼 못하니" 좌절시키는 말, 낙심의 말, 놀리는 말, 비웃는 말, 욕하는 말이 우리 마음에서 부정적인 믿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했습니다. 구원의 믿음도 들음에서 나지만, 절망의 믿음, 안되는 믿음도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사춘기의 어느 학생이 빨래터를 지나는데, 모인 여인들의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는 왜 멋대가리 없이 키만 저렇게 크지?" 그 말 한마디 때문에 40이 넘도록 결혼을 못했답니다. 여자들 앞에만 나서면 나는 멋대가리 없이 키만 커서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꺼야! 그가 40이 넘은 어느 날, 미국의 한 자매가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멋잇게 생겼습니까?" 하는 말을 듣고 자기를 보는 눈이 뜨였습니다. 그리고 비로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동환목사님이십니다.
제가 운동을 잘못하는 이유는 놀리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넌 축구는 못하는구나!" 이 말 한마디에 운동하는 것을 꺼리게 된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우리 내면에는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 인생의 운전수가 되어, 우리 인생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3. 조상과 부모로 전해 내려온 쓴뿌리
한서대 교수인 김의식교수님이 미국 유학 시절,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한 번은 주일설교 준비 마친 후, 한 분 계신 장로님을 찾아 갔었답니다. 주일 설교제목이 [용서하라, 사랑하라]였는데, 장로님이 마음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그날 장로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장로님의 아버지는 서울의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셨는데, 얼마나 성경말씀대로 철저히 살도록 자녀들을 가르쳤는지,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많았답니다. 예를 들면, 주일에 공부 못하게 하고, 밤 12:00 지나면 깨워서 공부하라고 하실 정도였답니다. 이 분이 미국에 유학을 와서, 교회의 장로가 되었는데, 교회 일을 결정할 때마다, 반발심이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사실은 아버지를 향한 반발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애꿎게 교회 목사님에게 발산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자녀들에게 매우 율법적인 아버지가 되어 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날 장로님의 마음의 쓴뿌리를 이해하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4. 세상 가치관
유교적 권위주의가 교회 직분문제에 엄청난 시험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말 교회의 종을 뽑는다면, 그렇게 되고 싶어 할까요?
10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도 기도도 많이 했던 한 교인에게, 뜻밖의 기회가 왔습니다. 수억원의 돈을 벌 사업이 계약단계에 온 것입니다. 이제야 기도 응답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불법이 관련된 것을 알았습니다. "과연 모른 체 해야 하는가?" 이 문제 때문에 갈등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세상 가치관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을 것이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교회에는 나오지만,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질문> 시 14:1에서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이처럼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처리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영혼은 구원을 받았지만, 생각과 마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병든 믿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병든 믿음을 어떻게 합니까?
우리 마음이 말로 병들었기 때문에, 치유도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원동연 박사님이 추진하는 세인고등학교 설립 설명회가 화요일 우리 교회에서 있습니다. 입학 안내문을 보면 눈에 뜨이는 문구가 있습니다. "입학자격이 성적이 중하위권 학생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만 가지고도 살 소망을 발견한 학생이 많습니다. 모든 학교가 성적이 상위권학생만 찾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좌절감, 거절감, 열등감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인고등학교 입학요강은 자신감을 잃은 많은 중학생들에게 소망을 일으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나주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의 귀에 들려질 때, 병든 믿음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질문> 롬 8:17을 읽고 믿음은 언제 생긴다고 하였는지 찾아 보십시오.
<질문> 눅 4:17-21을 읽고, :21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항상 물질 염려로 사시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재산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도, 언제나 "돈, 돈" 하면서 염려와 걱정으로 살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지?" 걱정하다가 어느날, 깨달았습니다. 이 권사님이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 때의 충격은 대단히 컸습니다. "큰일났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니? 돈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로부터 늘 듣던 말입니다.그 때부터 돈, 돈 하고 산 것입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마음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10대 때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계심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그리고는 고침을 받기 시작하는데, 물질 때문에 안달하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가정에 행복이 찾아 왔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쫓기듯이 살아 왔습니다. 항상 앞서야 하고, 잘한다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쓰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목회하면서도 늘 경쟁심, 교만 열등감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를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하는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은 나를 약하기에 택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약한 것에서 더 큰 은혜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 제 믿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내가 약하기에 하나님은 더 크게 역사하신다!"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열등감, 경쟁심, 조급함이 치유받았습니다.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해야 하고, 세계 1등도 해야 하지만, 거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진정한 새 삶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새 인생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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