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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by 【고동엽】 2022. 2. 25.

김남준특별기고/ 회심 없는 목회는 없다열린교회 김남준 목사가, 한국교회와 합동 총회에 전하는 메시지에서 "신앙의 선조들이 누렸던 예배의 영광 보게 하소서, 예배를 `견디고' 있는 조국교회여, 장엄한 성경진리의 감동을 갈망해야 한다"고 호소해
2017년 08월 20일 08시 24분 입력



본 기고문은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총신대학교 교수)가 한국교회와 합동 총회 산하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향해 전해준 특별한 메시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예배, 회심, 설교, 교리, 성화, 목양, 신학교육, 소명, 현대사회, 목사, 그리스도인의 삶 등의 주제로 12회에 걸쳐 전해준 메시지다. 기독신문을 통해서 발표한 기고문을 더 많은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크리스천포커스가 편집 수정하여 보도한다. - 편집자 주

“여러분이 죄와 비참에 빠져 있을 때에도…하나님은 자신의 일꾼들을 보내어 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무척이나 슬픕니다. 우리의 영혼은 심히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귀를 막고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일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아아, 그때 우리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할 것입니다.”
 
이 고백은 17세기에 영국 키더민스터에서 목회하였던 <참목자상>(The Reformed Pastor)의 저자인 리처드 백스터(R. Baxter)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외친 목회자로서의 눈물어린 탄식이다.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回心)은 좁은 의미의 회심과 넓은 의미의 회심으로 나뉘는데, 좁은 의미의 회심은 고유한 의미의 회심으로 구원에 이르는 최초의 회심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넓은 의미의 회심은 신자의 삶 속에서 이러한 회심이 반복적으로 새롭게 경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유한 의미의 회심이란 거듭난 영혼이 인간 의식(意識) 속에서 활동하는 첫 번째 움직임으로써,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회심의 토대는 중생(重生), 곧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회심은 인간의 영혼이 최초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하나님 홀로 하시는 일이지만, 회심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 중생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지만, 회심하도록 촉구한다(행 3:19, 16:31). 중생 없이는 회심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중생과 회심은 시간적인 발생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구분된다.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회심 여부는 그의 구원과 직결된다. 성인인 불신자는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와 믿음 없이는 구원도 없다.

그런데 오늘날 조국교회는 어떠한가?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구원 받은 자로 간주되어 세례를 받고 교회의 회원이 되지 않는가? 이것이 과연 개혁주의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인가?
 
구원에 이르는 조건으로서의 회심은 신약성경에서 `회개', `중생', `칭의' 등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난다(마 3:2, 요 3:3, 롬 3:24). 이는 종말의 때에 재앙을 당할 처지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욜 2:12∼13).
 
기독교는 회심의 종교다. 기독교의 신학적 기초를 놓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을 경험하였고, 종교개혁자들은 심오한 회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의 견해를 토대로 구원론을 계승 발전시켰다.

마틴 루터(M. Luther) 역시 신자를 세속적 그리스도인과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 나누었고, 칼빈(J. Calvin)은 신자의 삶 전체가 구원을 완성해 가는 `신생'(新生)의 과정이라고 보았지만 그 역시 회심을 강조하였다.

칼빈에게 회심은 곧 회개였으며, 이는 단지 내면적 슬픔만이 아니라 옛 본성을 벗어버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가는 것을 뜻했다.

심지어 칼 바르트(K. Barth)조차도 신앙의 본질을 종교적 경험에 두는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의 견해에 반대하며 한 인간의 총체적 변화의 조건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전향(轉向)을 강조하였고,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

어린 시절, 나의 눈에 비친 조국교회는 회개와 눈물이 있는 공동체였다. 나는 당시의 뜨거운 찬양과 열렬한 기도의 분위기에 모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때는 뚜렷한 회심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오늘날 조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목회와 선교적인 어려움들의 근본 뿌리는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임을 믿어 본 적이 없는 교인이 점점 다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 안에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마 13:26, 요 6:70, 딤전 1:20).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 중 대부분은 본인이 회심하지 않았는데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사람들의 거듭남과 회심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더욱이 이런 사람들이 신앙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써 집사나 권사 혹은 장로가 되고, 심지어는 신학교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여러 해 신학교를 섬기면서 구원의 증거가 현저히 결핍된 신학생들을 수 없이 만났다.
 
개신교의 힘은 확고한 구원 신앙에 있다. 모든 인간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믿음에 의한 구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복음의 분명한 제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해 통절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 의존적으로 믿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 교리와 성경을 통해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변혁이 일어나, 새로운 사상으로 그의 삶이 재편되어야 한다. 그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해지고, 예배의 감격은 회복될 것이다.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총신대 교수

김밝음 기자 dawnkb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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