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전달되지 않는 18가지 이유
1.공감대를 형성하라(공감대 형성은 청중의 마음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설교에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설교가 청중의 마음을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설교의 내용이라도 성도들이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곤 한다. 예를 들어서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포켓 몬스터’라는 것이 제일 인기가 있는데 몬스터들의 캐릭터와 주제가를 모르면 따돌림을 당할 정도이다. 그 만화의 몬스터들과 노래를 외우는 것은 그 시대의 어린이들에게는 맞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폭넓은 관심을 이끌어 낼 수는 없는가? 사람들이 느끼며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 사람들은 마음을 활짝 연다. 그들은 마음을 연 채 다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자신들의 생각이나 느낌 등에 맞아떨어 졌기 때문이다. 일단 성도들과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면 어떤 내용이든 성도들은 그 것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공감대란?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래 맞아!’하고 돌질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며,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일단 동의하게 되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도 쉽게 받아들이려고 자신들의 마음 문을 활짝 연다. 이렇게 만드는 작업을 공감대형이라고 한다.
공감대가 왜 필요한가? 마음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를 듣게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불 보듯이 뻔한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 문이 닫혀 있는 상황에서 열심히 설교를 한다해도 소득이 없을 것이다. 닫힌 마음은 던져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열심히 설교하는 것도 좋지만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평범한 설교라도 마음 문을 열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한 설교는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훌륭한 내용이라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성도들은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며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 식으로 설교자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것일 것이다.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맞추어야 한다. 즉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공감대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공감대 형성은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을 청중이 잘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활짝 열게 하며, 성도들의 열린 마음에 말씀이 스며들 때 성도들은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성도들과의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는 설교는 어떤 설교들인가. 첫째로, 주입식 설교는 성도들의 마음을 영지 못한다. 성도들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려고 할 때 우선은 그들의 마음을 열어놓아야 한다. 즉 주입식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훈계하고 명령하기 전에 성도들이 그 설교 내용을 잘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본문을 설명할 때 성도들에게 공감될 수 있는 부분들을 삽입해야한다. 그 삽입의 내용들은 현대화된 것이어야 성도들이 흥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또 본문 내용과 반대되는 개념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성도들은 본문의 내용과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동시에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갖는다. 둘째로, 흑백논리의 설교는 성도들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 부정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부정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일부 설교자들이 성도들을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결국에는 성도들의 마음 문을 닫게 해버린다. 초 신자나 불신자는 이러한 설교자의 태도에 대해 ‘인간적인 약점을 이용해서 겁주는 것은 싫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사물을 흑백의 논리로 생각하는 설교자의 견해가 결국 성도들을 설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성도와 설교자간에 거리감을 조성하며 동시에 양자간에 보이지 않는 담을 쌓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다 세속적 삶의 모습을 보일 때, 설교자는 흑백논리 속에서 성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 좁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해야한다. 성도들이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의 고민과 아픔을 이해하고 있는 설교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설교를 해야한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교역자들은 끊임없이 성도들의 삶의 정황을 이해하고 보살피며 찾아가 보는 넓은 마음과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성도들과 하나가되어 말씀을 전하고 듣는 그 순간들이 만들어질 때 ‘공감대 형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2.공감대 형성의 원리를 활용하라(공감대를 위한 실제적 방법을 형성하라)
공감대 형성이 잘 전달되는 설교는? 첫째로, 중요성을 밝혀라. 성도들은 설교의 내용이 자신들의 삶에 필요하다거나 중요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면 쉽게 그 설교에 공감하게 된다(부정적인 내용들을 긍정적인 중요성으로 강조). 중요성(필요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자각할 때 그 설교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도전을 받게 된다.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성도들이 평소의 삶에서 놓치고 있는 필요성을 언급해야 한다. 필요성의 언급에 최고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목적을 제시해라. 선명한 목적 제시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목적이 분명할 때 성도들은 확실히 공감을 잘하게 된다. 내용에 뚜렷한 목적이 담겨 있을 때 성도들은 그 설교에 마음이 끌려가는 것을 느낀다. 목적을 거울 보듯 선명하게 부각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면 설교자와 성도들이 쉽게 하나가 될 수 있다. 셋째로, 상식적이어야 한다. 가장 많은 성도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을 언급해야 성도들은 공감대를 표시하게 된다. ‘가장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곧 지역적인 선택보다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선택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문제를 제기해라. 평소 직시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문제를 꺼내면 성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때론 두려워하거나 걱정에 휩싸이고 불안하게 된다. 예로 마약이나 본드 등의 환각성이 있는 것을 흡입하면 시각 촉각적인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 것이 오래가면 신체의 부분들에 마비증상이 오고 나중에는 일상생활을 못하게 되는 사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이야기했다고 한다면, 성도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 때 생각하게 되고 동시에 그 문제에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결국 문제 제기로 시작된 설교에 성도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공감하게 된다. 문제제기를 할 때에는 정확한 통계자료를 통해 성도들의 위기를 날카롭게 제시해야 된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놀란 성도들은 그 심각성에 큰 우려를 나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뒤이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관심을 갖고 듣게 될 것이다. 결국 문제의 심각성을 성도들에게 인식시킴으로써 성도들은 설교에 공감하게 된다. 광감대를 계속 끌고 나가려면 문제제기 후에 그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들의 공감대는 계속해서 형성될 것이다. 성도들은 문제제기로부터 필요성 언급으로 이어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공감대를 지속하게 된다. 즉 성도들에게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시켜야 한다. 그렇지 안으면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성도들은 자신들의 삶의 문제나 신앙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교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파헤쳐 성도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설교를 통해 제기된 문제가 진정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닥친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면, 성도들은 그 문제제기에 동감하게 되고 결국 마음을 열고 설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문제제기는 성도들이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을 꼭꼭 집어서 들추어내어 주기도 한다. 성도들은 그 문제를 들으며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설교에서 제기한 문제가 타당하다는 것에 동감한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 즉 문제 자체를 알려주는 것이 곧 성도들을 깨닫게 해주는 ‘문제의 알림’이라 할 수 있다. 문제제기에서 시작한 설교는 성도들에게서 쉽게 공감대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심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서 성도들이 아예 설교 듣기를 단념케 하거나 설교 내용을 깨끗이 잊어버리려는 생각을 갖기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 겁을 주기 위해서 문제를 제기해서도 안 된다. 문제제기로 시작하는 설교는 다양한 설교 구성법으로 훌륭한 설교가 될 수 있다. 설교할 본문을 놓고 본문에서 무엇을 문제시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찾아 낼 때도 있다. 다섯째로, 칭찬해라. 칭찬을 들으면 듣는 성도들은 으레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며 동시에 자신들을 칭찬하는 설교자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칭찬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 잘못하는 점만 지적하지 말고 잘한 점을 더 부각시켜서 칭찬해라. 그러면 성도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설교자를 향해 더 활짝 열게 되고, 이는 곧 설교자와 청중간의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진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칭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칫 아첨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사실에 기초한 칭찬거리를 찾아내는 통찰력을 발휘해라.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설교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신다는 말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게 함이다. 성도들을 자주 칭찬해라. 그러면 성도들의 마음과 하나되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여섯째로, 접촉점을 만들어라. 훌륭한 설교는 성도들과 본문간에, 혹은 성도들과 설교의 주제간에 언제나 접촉점이 있다는 것을 있지 마라. 서론 없이, 혹은 있다 하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채 설교 주제로 직접 들어간다면 성도들은 그 주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제를 들을 준비를 갖추게 하는 접촉점을 꼭 가져야 한다. 설교에서의 접촉점은 무엇인가? 성도들을 분석하고, 성도들의 형편과 정황들을 잘 알고 난 뒤 복음과 접목시킬 부분을 언급해야 한다. 결국 복음의 핵심과 자연스런 접목이 이뤄지게 만들어, 마침내 그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접촉점이란 현대인의 심리 상태와 설교 주제를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접촉점은 성도들이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마음을 열고 본문에 귀기울이게 하는 공감대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설교에서 접촉점은 꼭 필요하다. 그러면 공감대를 형성하는 원리들은 무엇이 있는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첫째로, 저음부터 주입식 놀리를 전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신 설교하고자 하는 내용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라. 그리고 성도들과 마음이 열린 단계에 이르렀을 때 주입해라. 둘째로, 흑백논리를 피해라. 셋째로, 전하려는 내용이 성도의 삶에 꼭 필요한 것, 혹은 중요한 것임을 밝혀라. 넷째로, 선명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혀라. 목적이 분명한데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다섯째로, 성도들이 납득할 만한 상식적인 내용을 펼쳐라. 이것은 성도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섯째로, 당면한 문제를 가능한 한 날카롭게 제시하라. 깜짝 놀라게 해서 얼른 해답을 듣고 싶어할 만큼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해라. 일곱째로, 성도들을 칭찬해라. 넉넉히 칭찬하는 마음을 보여라. 여덟째로, 접촉점을 만들어라.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기여할 도입부분을 생각해내라. 주의 할 점은 성도들은 메시지의 처음과 끝 부분을 가장 잘 기억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가장 중요한 말은 바로 이 시점(처음 혹은 끝)에서 해라.
3.창문 너머 사물(진리)를 보라(깊이 있는 본문 분석은 깊이 있는 설교를 만든다)
“왜” 창문 너머 진리를 보아야 하는가? 창문을 자세히 보면 먼지가 묻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창문너머의 사물을 보려고 노력해야 바깥 풍경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본문에서 진리를 찾을 때 창문에 묻은 이 먼지만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 없는 먼지로 설교를 만들려고 한다. 의미 없는 것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설교를 무가치하게 만들게 된다. 같은 본문 속에 더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설교자는 깊은 해석을 통해서 본문의 깊은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설교는 본문에 근거한 성경적 설교여야 하는데, 그 성경적 설교는 본문의 핵심이 짚어주는 깊은 의미를 찾아내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설교의 구성을 끝내기 전에 정작 중요한 것은 설교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본문을 깊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창문 너머 진리를 보는 방법들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로,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본문의 핵심을 파악해라. 둘째로, 본문은 어떻게 말하는가? 어떤 문학의 종류로 진리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파헤쳐라. 셋째로, 본문은 처음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본문 자체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필요성과 본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연구해야 한다. 넷째로, 본문이 오늘의 교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적용의 단계이다. 성도들은 과거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다룬 본문인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그 본문이 지금 나와 나의 삶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를 듣기 원한다. 다섯째로, 본문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해석되어진 본문과 적용할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성의 문제와 관련된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본문이 성도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본문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질문들이며, 이런 질문들 외에 던져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그것은 육하(六何)원칙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란 질문을 던지면 본문을 깊숙이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설교에서는 특히 “왜?, 어떻게?”란 질문이 본문의 핵심을 찾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다. ‘왜?’란 질문을 던짐으로써 본문의 사건이나 현장 혹은 행동의 동기 등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란 질문은 청중들이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영역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본문을 깊이 있게 해석해야 설교 속에서 성도들이 깊숙한 내면의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를 써 내려가지 전에 깊이 있는 본문 해석을 해라.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상상할 거리나 생각할 거리를 주어 다른 것에 주의를 빼앗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휘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어휘 사용은 설교의 가치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지루한 느낌이나 감정을 없애준다.
4.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라(설교의 자연스런 흐름은 청중을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설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는 없을까? 설교의 흐름이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럽다는 느낌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자연스러움의 존재이다. 사람은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나타내는가?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성도들은 설교자가 전후좌우를 골고루 보면서 설교할 때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공간적 의미에서 성도들은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예민하게 느낀다. 또한 시간적 의미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부자연스런 모습에 부담스러워하고 자연스러움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것이 사람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다. 더 나아가 미래의 사건에 대해서도 그가 과연 잘 맞출 것인지 궁금해지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인 과정들이 드러나면 이는 곳 삼류소설이나 삼류영화로 취급받게 된다.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성도들은 진짜가 아닌 소설 같은 이야기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영화 작가들이나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연스런 전개를 진행시키려고 노력한다. 성도들은 이미 그런 작품들에 익숙해져 있고 또 그런 작품들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설교는 그들보다 너무나도 크게 뒤떨어져 있다. 그러면 설교에서의 자연스러움은 무엇인가? 첫째로, 서론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성도들이 세계, 성도들의 수준에서 서론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 본문을 접근해 들어갈 때도 역시 본문과 서론 사이에 접촉점이 있어야 한다. 즉 본문을 접했을 때 ‘지금 설교를 시작하는구나!’ 하는 감을 줘선 안 된다. 언제 설교가 시작되는지를 모르도록 자연스런 진행이 이뤄져야 한다. 셋째로, 성도들이 알고 싶은 욕구를 따라서 진행해야 한다. 성도들은 욕구 순위를 따라 설교를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설교를 자연스럽게 진행하려면 본문의 순서를 따르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고 성도들의 심리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라. 기자들이 어떤 한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먼저 전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그 다음 다룰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성도들은 원인을 분석하고 난 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본문도 결과, 원인, 해결책, 혹은 대비책(방법) 등을 본문이 다루고 있다. 즉 성도들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파고들 순서를 따라서 진행해야 한다. 어떤 본문이든지 본문을 분석해보고 그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순서를 정하되 성도들의 심리를 따라서 하면 된다. 이것이 자연스런 전개를 위한 최선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에는 ‘첫째로, 둘째로’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반드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질문을 던짐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던져진 질문에 답하려는 기회를 줌으로써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재치 있게 뛰어넘어갈 수 있다.
설교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방법들을 다시 보면, 첫째로, 성도들의 욕구 순위(성도들의 심리)에 익숙해 져라. 둘째로, 그 욕구 순서(성도들의 심리)를 따라 설교의 전개를 일치시켜라. 셋째로, 본문의 흐름이 성도들의 흐름과 배치되면 성도들의 흐름을 우선 순위로 하여 설교를 진행하라. 넷째로, 한 단락에서 다름 단락으로 넘어갈 때에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별을 취하는 형식을 택하라.
5.긴장을 유지하라(긴장 유지는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설교들은? 첫째로, 본문의 설명이 길어질 때 설교에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성도들은 본문의 내용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가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 본문이 격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혹은 ‘나’이 삶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며 ‘나’의 삶의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보여주는지를 듣고 싶어한다. 찰스 스펄전은 ‘진정한 설교는 적용이 시작될 때 시작한다’ 고 못박았다. 본문 설명이 끝나고 적용을 시작할 때부터 성도들은 설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둘째로, 적절한 자극이 담기지 않은 설교는 성도들에게 긴장을 주지 못한다. 본문 설명이 길면 긴장감이 약해진다. 또 적용을 하긴 하는데 밋밋한 적용, 즉 개인적이며 독특한 적용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적용이 되면 그 자극의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고, 약한 자극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물론 설교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성도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깨어있는 마음으로 설교에 몰입하게 하려면 긴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로, 뻔히 아는 길로 설교가 전개되면 성도들은 긴장감을 상실한다. 핵심 내용을 미리 말함으로써 막상 결론에서 그것을 강조할 때는 맥이 빠져버린다. 그래서 핵심적인 내용을 아껴두었다가 결정적인 때 핵심을 이야기해라. 그리고 개요를 먼저 밝히고 설명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기대감과 동시에 긴장감을 상실케 한다.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예를 들어, 서론에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보여주는 진리는 하나님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말하길…’ 하면서 설교를 시작하는가? 이런 접근은 성도들로 하여금 ‘목사님, 요점을 말하셨으니 다 이해했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대신 질문을 던지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성싶다. 설교에 긴장을 가져오게 하는 적극적인 원리와 그 경우들은? 첫째로, 상상력의 활용은 성도들을 긴장하게 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워렌 위어스비는 설교에서 상상력 활용을 적극 주장한다. 즉 상상력이 담긴 정교한 논리전개는 성도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 한다. 둘째로, 뒤에서 할 말을 앞에서 미리 흘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그렇지 않으면 설교가 긴장과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또한 단어 선택이 단조로우면 이 역시 성도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셋째로, 대조나 비교를 통한 설명은 성도들에게 긴장을 유하게 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설교에 긴장을 유지하는 원리들을 다시 보면 이렇다. 첫째로, 본문 설명을 짧게 해라. 둘째로, 적절한 자극을 주면서 설교를 전개하라. 셋째로,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방향으로 전개하지 마라. 핵심 내용을 미리 흘리지 마라. 개요를 미리 밝히지 마라. 넷째로, 상상력을 적극 활용하라. 다섯째로, 대조 혹은 비교를 통해 설명해라.
6.청중의 수준을 뛰어넘어라(청중의 수준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는 설교를 참신하게 만든다)
청중의 예상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설교들은? 진부한 표현들을 사용한 설교는 성도들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설교들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에서 진부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역시 성도들에게도 도전을 주지 못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 그것이 곧 신선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진부한 부분들을 배제하고 신선하게 표현하도록 창의력을 발휘해라. 강조한 부분이 성도들의 상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또한 죽을 쑤는 경우가 된다. 설교 내용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다섯 가지의 케리그마에 초점이 맞춰졌다. 즉 그리스도의 수욕, 고난, 부활, 승천, 재림에 대한 내용이다. 웬만한 성도들은 이러한 내용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성도들이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서 항상 새롭고 신선한 내용으로 들려지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전달하면 지루하거나 아무런 기대감 없이 설교를 듣게 만든다. 이것이 곧 성도들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설교다.
성도들의 예상 수준을 뛰어넘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방법들을 생각해야 한다. 예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밟고 올라서라’의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도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설교는 성도들이 관심을 사로잡는다. 성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수준에서 설교가 맴돌면 그 설교는 지루한 설교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수준에서 설교를 시작해라. 그러나 설교를 전개해나가면서 청중의 지성을 자극하는 단계적인 논리를 펼쳐라. 그것은 곧 성도들의 정신을 번쩍 뜨이게 만들 것이다. 설교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면 성도들의 예상의 수준을 뛰어넘는 원리들을 다시 보면. 첫째로, 진부한 표현을 피해라. 둘째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개념을 참신하게 표현해라. 셋째로, ‘밟고 올라가라’의 개념을 활용해라.
진부함에 빠지게 하는 내적 요인들.
7.평범한 본문을 독특하게 만들라(평범한 본문을 독특하게 만드는 창의력은 설교를 매력 있게
한다)
본문을 독특하게 만들지 못하는 설교들은? 첫째로, 본문의 전후 문맥이 갖는 특별한 상황을 무시하고 평범하게 설교를 만들면 독특성이 상실하게 된다. 성경에는 비슷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본문들이 참으로 많다. 구절들도 그러하다. 그래서 설교를 위한 본문 또는 구절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같거나 비슷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 본문이라 할지라도 그 본문 속에는 다른 본문과는 다른 나름대로의 독특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바로 이 독특한 면을 잘 찾아내어 설교에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 결국 그 독특한 본문과 구절 등을 통해서 독특한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의 앞뒤를 살피면 본문이 주는 독특성을 발견하게 되고 설교에 매력과 긴장을 더하게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로, ‘적용’을 독특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이 또한 매력적이지 못한 설교가 된다. 설교는 본문 설명이 독특하게 취급되어져야 한다. 또한 본문 설명부터 적용까지 독특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은 설교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본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설교하면, 즉 모든 본문의 독특성을 살려서 독특하게 설교하면 설교는 항상 새롭게 될 것이다. 항상 매력있고 신선한 설교가 된다. 그러므로 본문을 독특하게 만들어 설교해야 한다.
본문 설명을 독특하게 취급하면 적용도 독특하게 취급하게 됨을 기억하라. 설교가 항상 특별해야 하고 독특해야 함을 기억하라. 특히 성도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는 설교를 언제나 신선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본문을 독특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다시 보면 첫째로, 본문이 전후 문맥을 찾아서 그 독특성을 찾아내라.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본문이라도 설교자가 설교의 독특성을 위해 본문을 독특하게 구성하고자 한다면 그 자료는 이미 본문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둘째로, 성도의 삶을 위한 적용을 독특하고 날카롭게 만들어라. 평범한 적용은 설교를 식상하게 만들뿐이다.
8.힘을 불어넣어라(역동적인 설교는 청중을 만족하게 한다)
좋은 설교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힘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설교이다. 현재의 영적 상태보다 더 큰 기쁨과, 희망, 감사, 그리고 더 큰 삶의 자신감이 설교를 듣는 가운데 솟아오르게 만드는 설교이어야 한다. 힘을 불어 넣어주는 설교들은 어떻게 다른가? 첫째로, 긍정적인 사상을 호소할 때이다. 성도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면은 그들의 삶에 자신감을 갖게 한다. 결국 성도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둘째로, 성도들을 끊임없이 깨닫게 하라. 그러면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다. 힘을 불어넣으려면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차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깨닫게 하는 작업 역시 설교에 힘을 불어넣는 것이다. 성도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긴장감을 주며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이 곧 설교에 힘을 불어넣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로, 설교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설교자는 자신의 삶을 말해야 한다. 설교자의 올바른 신앙태도나 영웅적 신앙태도는 성도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한다. 넷째로, 치밀한 논리는 설교에 힘을 불어넣는다. 설교의 전개는 결국 논리의 전개이다. 논리가 결여된 설교는 성도들을 맥빠지게 만든다. 다섯째로, 절제된 언어사용은 설교에 힘을 불어넣는다. 불필요한 말이 많아지면 말에 힘이 약해진다. 여섯째로, 성도들을 신앙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자극하라. 사람들은 언제 도전을 받는가? 자신보다 나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될 때,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될 때 도전을 받는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신앙의 영웅으로 만들고자 도전을 주었다. 일곱째로, 확신에 이르게 하라. 설교에 힘을 불어넣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다. 훌륭한 설교자들이 평범한 내용을 말해도 은혜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즉 설교자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확신하며 전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그 확신이 전가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확신 가운데 말씀하셨다. 그 확신이 곧 권위 있는 말씀의 소유자로 여겨지게 했다. 설교자의 확신은 설교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영적 상태가 건강해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늘 친밀한 가운데 있어야 한다.
9.들리게 말하라(한 가지 아이디어 전개는 설교를 쉽게, 깊이 있게 만든다)
설교는 쉽게 들려야 한다. 아무리 잘 빚어진 설교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교를 오랫동안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고 금방 잊어버리는 설교가 아니라 오랫동안 성도들의 가슴에 남게 하는 설교가 바람직한 설교이다. 그렇다면 주제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수박 겉핥기식의 얄팍한 설교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얄팍한 설교는 성도들이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의 감각 기관과 의식 사이에는 정신적인 여과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한 순간에 한정된 정보의 양만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설교가 쉽게 이해되고 오래 기억되게 할 수 있을까? 일단은 쉽게 쓰여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주제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하다는 말은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치밀한 논리와 체계를 잡아 설교를 쉽게, 그리고 깊은 인상을 주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독립적이면서도 통일성이 유지되는 개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쉽고 조직적인 체계가 잡힌 설교가 된다. 한 가지 주제만을 만을 선택하여 만드는 것이 좋다.
들리게 작성하는 방법들을 다시 말하면 첫째로, 본문의 큰 흐름(핵심 주제)을 파악하라. 둘째로, 개요 작성에 있어 통일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라. 단 본문이 한 가지 주제마을 설명하고 있지 않은 불가피한 경우는 제외일 수 있다. 셋째로, 큰 흐름(핵심 주제)외의 진리는 설혹 중요하다 하더라도 가지치기를 통해서 완전히 외면하라, 외면한 진리를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다른 설교 시간에 그 주제를 다시 다루면서 설교하라. 넷째로, 큰 흐름(핵심 주제)에 대한 깊이를 더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라.
10.감정에 파도를 치게 하라(감정에 자극을 주는 호소는 청중에게 은혜의 맛을 체험하게 한다)
설교자는 왜 성도들의 감정을 건드려야 하는가? 사람들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이 자극된 상태에서 말씀을 들으면 반응이 달라진다. 몇 배의 효과를 가져온다. 감정은 놀라움, 갈등, 슬픔, 기쁨, 안도의 여유, 감격 등으로 나타난다. 감정을 일깨우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가 지속되면 성도들에게 머리로만 받아들이게 하는 지적 자극만 줄뿐이다. 평범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별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위하는 사람이라 허더라도, 그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불행의 그림자나 불안의 가능성을 건드리면 그들의 감정이 자극을 받는다. 어떤 설교자는 좋은 설교란 다음의 세 가지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 요소는 있어야 된다고 역설한다. 첫째, 성도를 울려라. 둘째, 성도를 웃겨라. 셋째, 성도를 회개케 하라.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 있어도 설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성도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는 성도들의 가슴에 설교가 파고들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준다. 결국 우리의 설교는 성도들의 감정을 건드리느냐, 아니면 전혀 건드리지 못한 채 마치느냐 하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의 장점은 뛰어난 논리 전개이다. 반면에 단점은 종종 논리 전개만으로 설교를 끝맺는 경우이다. 성도들의 감정을 끌어올려서 결단케 해야 하는데 논리적인 귀결만을 맺을 뿐 감정에 자극하는 면이 많지 못하다. 로이드 존스 설교의 뛰어난 논리 전개를 배우라. 그러나 감정이입이 없는 메마른 결론을 조심하라.
감정을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들? 첫째로, 사랑, 자비, 용서, 희생 등의 감정의 언어를 사용하라. 또한 그림언어를 사용하라. 둘째로, 감정이 듬뿍 담긴 예화를 사용하라. 셋째로, 서론가 결론에서는 감정에 자극을 주기에 충분한 예들을 활용하라. 주의 할 것은? 첫째로, 일반적으로 듣는 사람이 좋아하고 공감할 만한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라. 둘째로, 가장 설득력 있는 내용을 처음이나 마지막에 두어 잘 기억할 수 있게 하라. 셋째로, 짧은 메시지를 반복하라. 그러나 지루해질 정도로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11.귀납법적 접근을 하라(연역법적 접근보다는 귀납법적 접근이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성도들의 삶에 관련된 내용으로 설교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성도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방법이다. 이런 설교를 귀납법적 설교라고 부른다. 귀납법적인 설교는 현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귀납법적 접근은 삶의 정황으로부터 시작하는 설교에 효과적이다. 현재와는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성경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설교자가 억지로 성도들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마치 가랑비가 서서히 우리의 몸을 적시듯 진리가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해서 설득되도록 한다. 결국 귀납법적인 설교는 설교자가 억지로 성도들을 이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이 저절로 이해하도록 자연스러운 귀결을 유도한다. 중요한 것은 삶의 정황에서 설교를 시작해야 된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귀납법적 접근의 또 다른 예는 설교자가 미리 결정된 사항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짐으로 설교의 목적을 향해 성도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즉 절대로 결론을 내려 강요하지 않고 질문을 던져 결론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성도들을 설교에 참여시킴으로써 성도들과 함께 설교를 만들어가게 해준다. 그러면 성도들이 그 설교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결국 성도가 설교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귀납법은 문장이 평범해지는 것을 막고 동시에 성도들이 무관심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무엇보다 결론이나 답변을 주지 않고 성도들이 질문에 스스로 답변할 기회를 줌으로써 그들과 함께 설교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의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 대화, 유추, 질문, 비유, 확실한 경험 등을 이야기하고 이것을 성경적 결론으로 이끌어나간다. 결국 증거나 예화를 먼저 말한다. 결론이나 주장은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성도들과 함께 만들어져 설교의 끝 부분에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귀납법적 접근을 하는 방법들은? 첫째로, 삶의 정황에서 시작하라. 둘째로, 결론에 이르도록 유도하기 위해 질문하라. 셋째로, 결론에 이르기 위한 유추를 하라. 넷째로, 질문이나 유추를 통해 성도들과 함께 답변을 풀어나가라.
12.주입하려 하지 말고 설득하라(일방적이며 주입적인 설명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설교는 ‘선포’라는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외치기만 하면 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심정이었다. 즉 설교는 문제가 없는데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 밭이 다양하고 약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입을 열어 말할 때,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보이지 않는 수도관 같은 것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전달하려는 정보가 자동적으로 한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공급되면서 의사소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러면 설득적이지 못해서 전달되지 않은 경우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설명 위주의 설교는 성도들을 설득할 수 없다. 둘째로, 본문 위주의 설명은 성도들을 설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설교가 성도들의 삶과 관련성이 없는 경우 성도들을 설교에 무관심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셋째로, 동기부여가 없이 당위성만 강조하는 설교는 성도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설교가 설득적일 수 있을 것인가? 첫째로, 필요를 느끼게 하라. 이 말은 이유를 밝히라는 뜻과 같다. 사람들에게 필요를 느끼게 하라. 그러면 그들은 설득 당한다. 둘째로, 공감대를 만들라. 셋째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 주라. 이론적인 설명만 담긴 설교는 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남겨주지 못한다. 넷째로, 성도들에게 주어질 유익에 대해서 말하라. 성도들에게 설교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서 따랐을 때 주어질 큰 유익을 밝히는 것이다. 자기의 유익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설교자가 하자는 대로 했을 때 고통과 불이익이 따른다면 누가 설득 당하겠는가? 그러므로 설교자의 요청에 순응할 때 주어질 유익을 가급적이면 확실하게 밝혀라. 결국 믿음의 길을 선택했을 때 주어질 유익을 말했기 때문에 설득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성도와의 대화에서도 설득의 법칙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예’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지 말라. 흑백논리로만 이끌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의견차이를 없애는 대화를 시도하라. 셋째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칭찬하라. 상대방을 칭찬해줄 때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점을 찾아 칭찬하라. 또일의 결과보다는 과정중에 있을 때 칭찬하라. 넷째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라. 이야기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이해해 주면 좋다.
전달과 소통을 가로막는 방법상의 요인들.
13.예화를 정확히 사용하라(정확한 예화 사용은 설교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적절한 예화 사용의 필요성은? 설교에 예화가 필요한가? 대답은 자명하다. 예화가 들어감으로써 설교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니거니와 성도들의 이해를 돕고 설교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화가 왜 필요한가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예화는 개요 혹은 요점을 분명히 각인시키는 데 필요하다. 2.예화는 자체가 곧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내용이 될 수 있다. 3.결단에 이르도록 행동을 촉구한다. 4.진리를 확인시킨다. 5.진리를 오래 기억하도록 만든다. 6.장식으로도 쓰인다. 7.성도들의 주의를 끄는 데 사용된다. 8.다양한 성도들을 쉽게 흡수한다.
그리고 예화들의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1.예화가 들어갈 위치를 잘 선정하라. 2.예화 사용을 서둘지 마라. 3.예화가 설교의 주제나 본문 설명의 내용과 정확히 연결되어야 한다. 4.지나친 예화 사용은 성도들을 식상하게 한다. 5.예화 내용에 충분히 익숙해지라. 6.예화 속에 나오는 본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 7.예화 속에 들어가기 위해 기간을 낭비하지 말라. 8.예화 내용이 설교의 요점을 기억하게 만들라. 9.예화에 대해서 흥분하라. 설교자가 흥분해서 말할 때 성도들도 실감하게 된다. 10.예화의 주인공과 성도들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라. 11.일반적인 설명을 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12.사물보다는 사람에 대한 예화를 사용하라. 13.이미지보다는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14.감정과 논리로 동시에 호소하라. 15.말하기보다는 보여 주라. 16.예화 사용은 점진성을 띠어야 한다.
14.예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라(설교의 주제와 일치되는 예화가 효과적인 전달을 만든다)
예화를 정확히 사용하지 못한 설교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로, 주제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예화는 설교이 효과를 떨어트린다. 둘째로, 예화의 핵심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라. 셋째로, 긴장이 담기지 않은 예화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즉 긴장이 담기지 않은 예화는 청중에게 지루한 감을 줄 뿐이다. 넷째로, 병렬식 예화 열거는 설교의 깊이를 나타내지 못한다. 즉 같은 예화를 두 번씩 사용하는 설교는 점진적인 접근의 효과를 이루지 못한다. 단지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여기에서 예화를 건정하게 사용하기 위한 일곱가지 질문들을 보겠다.
첫째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나의 경험이라고 거짓으로 소개하지는 않는가?
둘째로, 예화를 사용하는 중에 ‘전에 있던 교회의 성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셋째로, 이 예화가 과연 정확한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넷째로, 이 예화가 성도들이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다섯째로, 이 예화가 이 성도들에게 적절한 예화인가?
여섯째로, 이 예화가 혹 지나치게 상세한 것은 아닌가?
일곱째로, 나는 실화와 상상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있는가?
15.하나님을 경험하게 만들라(하나님이 드러나는 설교는 청중이 복음의 핵심을 접하게 한다)
설교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크고 감동적인지를 성도들이 설교 속에서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허물과 죄성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깨닫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설교가 성도들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하게 하는 하나님 중심 또는 예수님 중심의 설교이어야 한다. 특히 설교 속에서 성도들이 항상 하나님의 속성을 직접 경험케 해야 한다.
결국 어떤 주제를 전하든지 간에 하나님(예수님) 중심의 설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를 경험하게 하라. 동시에 우리 주 예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분의 인격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하라. 성도들을 그분의 은혜 앞에 굴복하게 하라. 그 은혜를 체험하고서 결단을 내리게 하라.
하나님 중심의 설교를 만드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중심의 아이디어를 전개하기 위해서 던져야 할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로,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역할 혹은 예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즉 본문 속에서 하나님(예수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행하셨는가? 둘째로, 본문 속에서 드러내야 할 하나님의 속성 혹은 예수님의 속성은 무엇인가? 셋째로, 하나님(예수님)의 행하심이 구속사적 차원에서 어떻게 설명되어져야 할 것인가? 넷째로, 하나님(예수님)의 구속사적 사역에 대해 인간의 반응은 아떠했는가? 다섯째로, 인물 중심의 본문 이야기 속에서도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16.감각있는 설교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7대 원리를 적극 활용하라(설교자 자신이 아닌 청중
중심으로 이해하고 전달해야 한다)
설교자가 커뮤니케이션의 일반적 원리를 알면 성도들과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이니라 목회를 하는 모든 영역, 즉 회의 진행, 사람을 설득하는 일, 성도와의 심방, 대화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효과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일곱 가지의 원리들을 보자. 첫째로, 상대를 향해 마음문을 활짝 열고 그를 깊이 이해하라. 설교자가 좁은 마음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넓은 가슴을 가지라고 역설하는 설교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향해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라. 그리고 그 상대를 깊숙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상대방에게 설교자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비쳐질 것이다. 둘째로, 상대의 감정에서 느껴 보라. 사람은 자기 중심의 삶을 산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기를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무감각해지기 쉽다. 설교자는 바로 이런 폭넓은 감정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상담이나 설교를 위한 성도들 이해도 좀더 분명해지는 것이다. 셋째로, 객관적 입장에서 말하라. 객관적 입장은 항상 상대에게 신뢰감을 갖게 해준다. 주관적인 입장은 가치가 적고 사람들의 호응도도 낮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평가하는 노력은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을 갖는다. 넷째로, 긍정적 표현의 위대성을 알고 행하라. 긍정적 표현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목사는 사람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야 할 위치에 있다. 다섯째로,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상대방이 말을 걸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먼저 건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전도의 사명을 가진 목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소극적인 태도이다. 자신을 먼저 소개하거나 대화를 먼저 시도하는 것, 혹은 상대방이 대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 등에서 자신감이 이미 나타난다. 매사에 자신감을 가짐으로써 상대방이 호감을 갖게 하라. 자신감의 표현은 상대방이 확신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신감이 자만함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여섯째로, 친밀함을 나타내라. 상대방에게 집중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라. 이는 전도나 상담하는 일에서 상대방에게 오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따스한 마음으로 친밀함을 나타내는 태도가 중요하다. 일곱째로, 상호작용을 조절하라. 대화에서 한 쪽만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쌍방간에 균형을 이루도록 하라. 질문을 적절히 던짐으로써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17.설교감각을 키우기 위해 5단계 기초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익숙해 지라(결단에 이르게 하려면
의식 변화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윌리암 맥과이어가 자신의 책 「태도의 본성과 변화」에서 밝힌 커뮤니케이션 모델의 5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도들의 삶에 변화를 주기 윟나 최초의 작업은 성도들의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일어난다. 설교자는 성도들의 주의를 사로잡아야 한다. 만약 설교자의 말에 성도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교 서론에서 성도들의 주의를 끌려고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이 주신 창의력으로 성도들의 주의를 끄는 방법을 창조하라. 둘째로, 성도들이 설교의 서론에서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고 판단되면, 이제는 성도들에게 설교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시켜라. 중요한 것은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이해를 시켜야 할 쪽은 성도들이 아니라 설교자이다. 설교자로부터 설교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관점과 수준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기억하라. 셋째로, 동의를 구하라. 설교가 시작부터 성도들의 주의를 사로잡고 또 그들에게 설교를 충분히 이해시킨다면 이는 매우 고무적인 진행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시킬 뿐만 아니라 설교 내용에 동의하게 만드는 설교를 해야 함을 잊지 말라.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도록 설교를 전개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넷째로, 성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주의를 집중하고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다면 이는 괜찮은 설교이다. 강한 도전을 주면 그만큼 인상깊은 설교, 잊지 못하는 설교가 된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인상깊은 설교를 전하려고 노력하라. 다섯째로, 행동으로 옮기게 하라. 성도들이 진리를 이해하고 동의하며 또 선명히 기억하게 된다 해도 기억한 그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단계가 없이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실천에 옮길만한 적당한 목표를 세우되 반드시 행동에 옮길 만한 자극이 깃들게 설교하라.
18.무릎으로 설교의 힘을 키우라(기도의 양은 설교의 능력에 비례한다)
어떻게 해야 설교가 설교자의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설교가 되게 만들 수 있을까? 무엇이 설교자의 자신을 새롭게 한 차원 더 높게 끌어올려 줄까? 그것은 바로 기도이다. 결국 사람을 만들고 변화시키며, 설교자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도전이 되는 설교를 낳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데 철저한 기도, 자신의 게으름을 날카롭게 발견하려는 기도가 있는 설교자가 인격이 새로워지고 설교동 인경이 담긴 내용을 만든다. 자신을 살피는 예리한 통찰력이 담긴 기도는 설교자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도들을 변화시키고 성도들을 변화시킨다. 성도들을 감동시킬 만한 설교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기도에서 나온다. 기도 속에서 설교자 자신의 허물을 낱낱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기도 속에서 설교자 자신의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세속적인 모습을 도려내고, 하늘로부터 신령한 것들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깊은 기도 속에서 이뤄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실 것이다.
기도해야 하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자신 속에 있는 세속적인 요소를 분리해내기 위해 기도하라. 둘째로, 설교 전에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 셋째로, 진지하게 말씀을 연구하기 전에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기도하라. 넷째로,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넓히고자 기도하라. 다섯째로, 사건이나 사물을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자 기도하라. 여섯째로, 형식적이거나 짧은 기도가 아닌 정성이 담긴 깊은 기도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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