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복권아파트, 동부이촌동 한가람아파트
우리 전도사님들과 한번은 동부 이촌동을 지나가에 되었습니다. 그다지 높지는 않은 아파트였지만, 옛날부터 좋은 아파트라 소문이 난 곳이기에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옆눈으로 흘깃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잘 단장된 아파트와 세련된듯한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아파트는 좋을지 몰라도 저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만나 대화를 하면 가끔 주거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김목사님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저는 힘주어 말합니다. “예! 봉천동 복권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엥! 무슨 아파트요?” “예 복권 아파트입니다.” 이쯤되면 그분은 ‘아니 저 목사는 복권을 얼마나 사다 모았길레 아파트까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집니다. “몇 평이나 됩니까?” “예! 저와 제아내, 아이들 둘, 그리고 어머니, 우리 다섯 식구가 살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요? 한 3~40평쯤 되겠군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죄송함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여 첫 가정예배를 드리던 날, 저와 제 아내는 잠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하려 꼬집었는데 곧 아픔으로 다가오는 현실이었습니다. “다솔아빠! 더도말고, 덜도말고 여기서 하늘나라 갈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제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나한테 시집오면 좋은 집, 좋은 음식, 환경, 꿈도 꾸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을 시켰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모도 여자이긴 여자인가 봅니다. 제 아내는 최소한도 그런 꿈을 다 포기했는줄 알았는데….
처음 결혼해서 난곡동 판자동네에서 시작한 우리의 신혼생활, 그곳에서 한달도 살지 못하고 장안동 차고를 개조해 만든 방으로 이사해서 서생원(쥐)들과 함께 먹고 자던 생활, 또 그곳에서 밀려나 연립주택 지하실로 이사하면서 장이 못들어가 친정으로 보낼때도 끄덕하지도 않았던 아내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제 스스로 놀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무척 좋았습니다. 현관문 열고 들어설 때 희미하게 보이는 형광등 불빛보다도 우리집에 축복스럽게 쏟아부어지는 햇살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건강해져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아직도 단칸 삯월세 지하실에서 살고 계신 우리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 말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주님! 어려우신 우리 성도님들, 최소한은 김목사보다는 더 넓고 좋은 집에 살도록 해주세요. 날마다 이러한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동부 이촌동 한가람 아파트, 평수나 시설등은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제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가장되시고, 사랑스럽지만 무서운 아내, 아빠를 하나님 다음으로 인정하고 믿어주는 우리 아이들, 목회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아들을 염려하여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어머니, 또한 목사로서 늘 아끼고 돌보아야 되는 성도님들, 분명히 이것은 축복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봉천동 복권 아파트 1동 201호의 작은 보물상자에 깨지지 않는, 변하지 않는 작지만 큰 행복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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