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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산소

by 【고동엽】 2022. 2. 20.

아버님 산소

 

지난주에는 시골 아버님의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그랬듯이 올해도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 못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그리 먼길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었을텐데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어머님과 종종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버님의 산소를 찾을때마다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아버님 산소 옆에 있는 친구 어머님의 산소를 볼때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느낌을 받곤 했지요 친구 어머님과 대화했던 기억과 그 분의 생전에 어머님과 너무 가까이 지냈던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향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없습니다. 아버님의 생전에 저와 한마디의 대화라도 있었다면 그에 대한 추억이라도 있었을텐데 말 한마디를 하지도, 듣지도 못했고 생전의 모습을 뵌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산소에 다녀와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은 저에게 어떠한 향수를 불러 이르키기 보다는 또 다른 하나의 부담으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그랬듯이 도착하자마자 산소 옆에 쭈그리고 앉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곳에 올때마다 아버지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저의 아버님께서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니 저희 어머니와 자녀들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저는 어려서부터 유복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우리 자녀들에게는 최소한의 의무는 감당하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 해마다 기도의 내용은 바뀌지 않은채 반복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때에는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는 주기도문 속의 아버지가 전부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어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정립이 됐을때에는 , 나에게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당히 반항적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증오의 대상으로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급기야는 하나님 아버지 마져도 ····· , 그러니 이러한 마음을 가진 제가 좋은 감정으로 찾을 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낫을 들고 풀을 베려 하는데 여전히 제 뒤에서는 어머니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잠깐이며 끝나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무언가 계속 기도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어라고 기도하시고 계실까? 혹시 먼저 간 님에 대한 원망은 아닐는지? 어머니의 수십년전 가족만 남긴체 먼저가신 아버님에 대한 감정은 어떠할까? 어머니는 저처럼 처음부터 낫을 사용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잡초를 뽑아낸 후 산소를 어루만지며 두분만의 무언의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무슨 말을 주고 받으실까? 혹시여보, 저 철없는 아들녀석 때문에 걱정이예요. 어버지의 산소에 와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하니·····, ”이런 대화를 나누고 계신 것은 아닐는지····,

이러한 궁금증이 있었지만 묻지 않고 낫질을 재촉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에 빨리 올라가 약속된 성도를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태양, 뜨거운 땅의 열기, 흘러내리는 땀, 그런데 다른해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 아들녀석이 아빠 우리에게도 친 할아버지가 계셔요? 라고 묻는 것이 아닙니까? 아마도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그 어린것에게도 있나 봅니다. 있으면 한번 보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제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먼저가신 약간의 증오와 섭섭함의 대상인 제 아버지가 아들녀석에게는 할아버지로서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이 풀을 뜯어내고 있던 저를 이상한 감정으로 빠져들어 가게 했습니다. 도대체 우리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서서히 내마음속에서도 ····

정말 그날은 열심히 풀을 베어 냈지만 힘든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내 가슴속에서도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돌아가셔서 이땅에는 계시지 않지만 아버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 그래야 아들 놈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것 아닌가? 나는 오래 살아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좋은 아빠가 되자라고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내년 벌초하러 올때에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아버님 아니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의 산소를 보여주어야 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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