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자녀들
어떤 음식점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나갈 때면 이 앵무새는 언제나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하더란다. 한 손님이 너무 신기해서 음식점 주인에게 그 앵무새를 팔라고 하였다. 가정집으로 팔려간 앵무새가 하루는 목사님이 그 가정에 심방을 오셔서 예배를 드린 후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러 하는데 갑자기 "키스해 주세요" 하더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앵무새가 현관 위에서 종알거리고 있고 그 옆에서 있는 여 성도는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란다.
목사님은 하도 신기해서 그 앵무새를 사택에다 잠깐 두어보자고 하셨다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현관에 나가 남편을 향해 말하는 것을 앵무새는 하필 목사님이 계실 때 말할 것이 뭐람. 생각하여 더욱 부끄러워하였단다. 목사님 가정으로 이사를 간 앵무새는 "자 이제 예배드립시다" 라고 했단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 앵무새가 만일 우리 가정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면 얼마 후에 또 다른 말을 할 터인데 그 말은 어떤 말일까 앵무새는 생후 6개월 안에 자주 들어온 말은 모두 흉내낼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난 후부터 6년 동안 받은 수많은 자극이 그의 생을 결정한다고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시그문드 프로이드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가 아니겠는가. 태어난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그의 성격 습관이 형성된다고 본다면 어머니들의 안정된 정서가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가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사춘기 시기를 맞이하는 자녀들의 문제로 일어나는 가정불화는 제법 심각하다.
더욱이 이중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잇는 자녀들의 문제 더 나아가서 목회자 가정의 자녀문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목회자 가정은 지상 천국으로 보인다. 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주의 종이 사시는 곳이니까. 그러기에 목회자 아내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고 그의 자녀들은 모두 천사들처럼 보인다. 대부분 성도들의 기대와 성원 속에서 성장하는 이 자녀들은 성도들의 요구대로 살아가기 위해 귀한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가 포화 상태가 되는 그들의 정서는 드디어 엉뚱한 데로 터져 나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버지가 목회 하시던 그 옛날이 생각난다. 교회 청소 설거지는 언제나 우리들의 차지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밤중에라도 나가서 기름 난로의 기름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 방석으로 난로를 덮어 주어야 한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교복을 벗기가 바쁘게 비와 걸레를 가지고 나가 예배당 마루를 쓸고 닦는 일은 의례껏 내차지다. 주일 예배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는 언니와 함께 손목이 시큰거릴 때까지 해야 한다 주일학교는 아버지가 교장, 오빠는 부장, 언니는 반주자, 나는 교사 동생들은 보조교사, 막내 동생은 유년부 학생. 이렇게 7남매가 총출동해야 했다.
아버지는 주일학교 설교에 특별한 은사가 있으신 지 예화를 드실 때는 정말 그 현장을 보는 것처럼 묘사력이 뛰어나셨다 주일하교에 중점을 두고 목회를 하시더니 끝내는 30년이 지난 이후 코 흘리게 어린이들이 목사 장로 박사가 되어 주의 사역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매우 흐뭇해 하셨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많은 제자를 길러 내시는 가운데에도 친 자식중 낙오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좀 이해가 안될 때도 있다 작은 오빠 그러니까 아버지의 둘째아들은 언제나 교회 일에 방해꾼이었다 유난히도 아버지 목회 사역을 방해하며 반항하였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목사이지 아들까지도 왜 목사 흉내를 내어야만 하느냐는 것이었다. 작은오빠는 재능이 다방면으로 뛰어낫다 음악 운동 글짓기 특히 연기력은 매우 탁월하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바뀌어진 우리 가정의 변화에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다. 제일 어려운 사춘기를 이 시기에 지내야 했던 오빠는 아버지를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개척교회 당시 금싸라기 같은 교인을 한 사람 전도해 오면 교회 정문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정문을 가로막으며 못 들어오게 하는 거다 그때 목사로서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그러나 오빠는 가정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정면 도전을 해 오는 거다. 탤런트 지망을 하겠다고.
지금은 연예인 기독교인이 활약할 수 있는 때이지만 그땐 목회자 자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당시 나훈아씨가 인기가수였을 때였다. 아버지는 냉정하게 거절 하셨다. 목사자녀이면 목사가 되어야 하는가 왜? 왜? 왜? 나는 내가하고 싶은 것을 아버지가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해서는 안될까? 이런 질문에도 아랑곳없이 현실을 매우 냉혹했다 길고 긴 투쟁 끝에 오빠는 군에 입대하였다. 군 복무를 잘 마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었던지 부산에 내려가 취직을 하고 마음을 안정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버지께 못할 일을 한 불효자식임을 깨달은 후 아버지를 향해 통곡하며 회개를 하였다. 취직생활 6개월 동안 그의 삶을 깨끗이 청산하더니 어느 날 밤10시 편지 부치러 밤길을 건너다가 급히 달려오는 택시에 그만이야 그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25세! 그 때의 일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주일아침 11시 예배를 위해서 준비하는데 예기치 않은 전보가 날라왔다. "상호 사망"이라는 글을 읽고는 아버지께 드렸다.
그런데 설교준비를 하시던 아버지는 이 전보를 받고도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난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11시 예배에 설교를 태연하게 다 끝내신 후 광고시간에 아들의 사망소식을 비로소 알리셨다. 그때 만해도 목사가 되면 저렇게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버지의 입에서는 계속 감사하다는 말씀이 나왔다. 그리고 25세의 아들의 죽음을 이렇게 해석하셨다. 나를 연단 시키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그의 임무가 다 끝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이라고 하시며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직 활짝 피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재능 한번도 발휘해 보지 못하고 앉아 버린 애기 노랑나비.
아버지 때문인가 목사자녀 때문인가 아니면 시대를 잘 못 만나서인가. 아무렴 어떠냐 ? 그 결과로 얻어진 아들의 죽음을 이렇게도 태연하게 받아넘기시는 아버지의 신앙을 뒤늦게 나마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남겨 놓고 가신 생활 신조를 다시 되삭여 본다.
첫째도 인내요 둘째도 인내요 셋째도 인내다. 그렇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러나 인내를 생활 신조로 삼고 살았던 아버지는 정말 자녀들 앞에 인내의 냄새를 물씬 풍겨주고 가셨다. 그러기에 난 오늘도 세 자녀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인내하자 그리고 참자고. 어린 막내는 "엄마, 언제까지 참아야 되는 거야?""응, 죽을 때까지..."
음식점에서 어느 가정집으로, 가정집에서 목사님사택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다른 말을 배운 앵무새가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온다면 그 앵무새는 무어라고 종알거릴까? 난 오늘도 아버지가 남겨주고 가신 인내라는 두 단어를 입으로 말해 보면서 앵무새 같은 나의 세 자녀들의 뇌리 속에 박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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