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성 속으로 〓/영성 목회자(가나다순)

심방감사 헌금 목사가 받아 교회 내는것 부덕|

by 【고동엽】 2022. 2. 15.

자존심 싫어하는데 자존심 세우는 것 어리석은 일이고 권위의식 싫어하는 데 권위의식 갖는 것은 바보 석두 牧師이다. 그것 때문에 교인과 목회자 간에 괴리가 생긴다. 교인들이 세워주는 自尊心, 교인들이 세워주는 權威意識이여야, 참된 목회자의 자존심이요 목회자의 권위의식이다, 잘못된 자존심, 잘못된 권의 의식을 버리라. 그것이 목사를 비천하게 만든다. 목사의 권위는 능동적 권위가 아닌 수동적 권위여야 한다.

심방 감사헌금 不德!!!!!!?????
우리나라 초대교회 심방 할 때는 공식적인 심방감사 헌금이 없었으나 교회가 발전하고 성장함에 따라 대 심방이 생기고고대심방 때는 무당, 점쟁이에게 점을 보아도 복채를 내어 놓고 하는 데 우리 집에 목사님이 복 빌어주러 오시는 데 감사헌금을 좀 해야지. 생활도 어려우신데 이런 기회에 좀 도와 드려야지 하는 데서 장로님들, 영수님들, 또는 교회주동이 되는 집사님들이 부담없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다른 성도들에게도 본을 보이게 되어 심방감사 헌금이 시작되었다. 인사말은 '목사님 책 사보세요. 도서비로 드립니다 .'하면서 주었다.

또한 처음 심방 받는 분들에게는 다른 집에서 하는데 나는 안 할 수 없지 하는 상대적 예절 부담 심리에서 점점 일반화 되어오는 과정에 대심방 때는 의례것 감사헌금을 상 위에 내어 놓고 예배를 드리도록 목회자들이 은연중 교육을 하였고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부흥사들을 통하여 공개적인 성미교육과 심방감사 예물 교육을 하여 왔다. 대 심방 받을 때는 방을 깨끗이 치우고 상을 놓고 상 위에 정성껏 .준비한 축복 받을 감사헌금 봉투를 올려 놓고 기다리라고 교육을 하였다. 부흥강사가그렇게 교육하였어도 당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옛날부터 점을 볼 때 점쟁이 앞에 돈을 내어 놓고 점을 보는 복채 문화가 있었기에 우리 조상들이 그 정신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그 교육과 방법이 아무런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교육되어 심방감사 헌금 문화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교인수도 많아지고 생활의 여유도 생기고 하는데서 감사헌금 건수가 많아지고고액수가 커졌다. 대심방은 영적으로 말하면 목사가 성도 가정에 축복을 비는 행사였고 세상적으로는 목사가 부수입으로 톡톡히 재미 보는 절기였다. 실제로 목사들이 기대하게도 되었다. 필자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적이 있다. 그리고 요즈음 처럼 외식 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 었으므로 반드시 잘사는 집, 또는 대접하고 싶어 하는 성도들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많을 때는 장로 권사 집사 구역장 합하여 10명에서 20여명이나 되는 심방대원과 구역식구들을 대접하며 푸짐한 잔치를 벌이는 행사였으며 대 심방은 축복을 빌고 축복 받는 행사, 돈 주고 돈 받는 행사, 식사 대접하고 친교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행사로 그 대심방 문화는 친교와 교회 성장과 목회자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부목사를 할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잔치를 하고 부목은 수행원이고 심방은 원목이 다 하는데 수입은 전부 원목이 다 가졌다. 그후 어떤 교회는 여전도사가 받아 교역자들 끼리 나누는 교회도 있다고 하였다. 이런 정신 이런 문화였을 때에는 이런 말도 저런 말도 없었다. 서울에 큰 Y교회는 부목사 3년만 하면 집을 한 채씩 산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강남 어느 교회는 부목사가 2년마다 담당교구 교대를 하는데 아주 빈 한 교구로 배정을 받고 집에 와서 사모에게 그 말을 하였을 때 사모가 울었다고도 하였다. 그렇게 전승 되어 오던 대 심방 감사헌금 액수가 많아지고 말이 많게 되자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회에서 교회가 생활비도 안정되게 드리는데 심방감사 헌금을 목사님들이 다 갖는데 여론도 나쁘고 덕이 되지 않으니 교회로 내 놓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 그리하여 도시 큰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심방감사 헌금은 거두어 교회로 입금하게 되는 문화로 변천되어 가는 과정에 오늘의 교회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자립하고 생활에 보장이 되는 교회는 도, 농을 막론하고 심방 헌금을 목사들이 갖는 것을 상식적으로 부당하게 생각하고 문제시한다. 그렇다면 교역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정하여야 한다. 교인들이 문제시 하는데도 기득권과 이기심 때문에 고집하며 수호하는 교회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것은 결코 德이 되지 않는다.


이런 관행은 총회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교역자가 스스로 관행을 고쳐야 한다. 장로들이 말 할 때까지 부덕한 관행을 유지하는 것은 가르치는 지도자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다. 목회자는 교인들보다 의식이 앞서 가야하고 평신도들이 부당하게 생각하기 전에 앞서 행동하여야 한다. 목회자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런 것에서 존경은 받으면 그것이 목사의 受動的 權威로 이어진다.

그리고 심방 받을 때에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분들은 몰라도 일반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에 부담 느끼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부담 때문에 심방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 200 여명이 모이는 시골 교회목사가

부임하여 부임심방을 마치고 심방헌금이 많이 모아졌다. 수석 장로님에게 물었다.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연로하신 장로님은 '옛날 관행으로 심방 감사는 목사님 책 사보시라고 드리는 건신데 목사님이 쓰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젊은 안수집사가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교회가 생활비를 다 드리는데 심방 감사 금을 교회에 내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 하였다고 한다.

후배 목사 여러분! 이럴 때에 어떻게 행하여야 德이 되겠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에 목사가 알아서 하는 것이 德이 되지 않겠는가? 그 말을 하기까지는 많은 생각을 하고 말 하는 것이다. 이미 시행 때가 늦은 것이다. 일반 교인들의 상식에 벗어나고 시대에 맞지 않은 관행은 과감히 개선하는 것이 선교에 도움이 될 것이며, 목사의 인격 유지에 도움이 된다.다목사가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설교하면 그 안수집사는 무엇을 생각하겠으며, 그 설교에 은혜를 받겠는가? 자기는 월급을

다 받고 집집마다 가서 돈을 받아 가로채는 목사가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웃긴다 웃겨, 할 것이 아닌가? 여러분이 그 안수 집사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필자의 생각은 복채의 문화로 발전한 심방감사는 교인들에게 부담도 주고 하니 아예 없애든지, 아니면 교회로 직접 내도록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교회로 직접 내라고 광고하고 심방 때 일체 받지 않기로 하였더니 교인들이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었다. 좋아 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무엇을 뜻하는가? 그렇다고 교회 헌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신앙이 바로서면 십일조나 감사나 낼 것은 다 낸다는 말이 된다. 이런 부정적 의식이 들끓기 전에 목회자가 알아서 시행하면 그런것이 존경과 권위로 연결된다.

지금도 구역장을 통하여 사전 헌금 봉투 준비하여 상위에 내어 놓으라고 시키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시대 착오가 아닐까? 엄격한 의미에서 심방감사 헌금의 근본은 복채 문화에서 왔으므로 이제는 그런 미신적 문화를 정리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견물생심의 유혹과 문제
필자가 총회 재판국원이었을 때 P지역목사가 심방감사 헌금 50만원을 가로챗다가 총회 재판국까지 소송이 제기 되어 징계를 당한 일이 있었고, 얼마 전 서울 H교회 부목사가 심방 감사헌금 받아 가로챗다가 들통이 나서 쫓겨 난 일이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에 개척하여 중형교회가 되고 연봉 7천여만원을 받는 데도 심방 감사헌금 때문에 시험 들어 담임목사가 유구무언으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필자는 다음과같이 생각한다.

1. 복체 문화를 교회가 계속하는 것도 정리해야 한다. 타 종교에서 유입된 용어하나라도 고쳐나가자는 시대인데 내게 유익을 주기 때문에 그것은 고집하면 德이되겠는가?
2. 생활비 보장되는 교회는 심방감사 헌금은 본인의 자유로이 교회에 바로 내도록 유도함이 德이 된다.
3. 심방이 교인들 집집마다 가서 축복을 빌고 위로를 주는 것인데 돈의 부담 감을 주는 것은 德이 되지 않는다.
4. 심방이 세금 거두는 것도 아닌데 왜 목사가 심방가서 받아서 교회에 내어야 하나? 그것도 德이 되지 않는다.
5.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돈을 만지면 시험들 우려기 많다. 견물 생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돈은 양심을 흔드는 무서운 괴력을 갖고 있다. 필자도 한 때는 그런 유혹을 느껴 본 적이 있다.
6. 안정된 생활비를 주는데 받는 것은 웃으면서 주지만 부당하게 생각함으로 德이 되지 아니한다.
7. 심방 때 돈을 받지 않으면 초신자들에게 자유함을 주고 전도에 유익함으로 德이 된다.
8. 안정된 생할비를 주는 데도 계속 받아 챙기면 상식이하의 不道德한 목사로 본다.
9. 심방 때 돈을 받으면 목사의 경건한 신앙관이 파괴되므로 결코 德이 되지 않는다.
10. 시대에 맞지 않은 관행은 목사이기 때문에 더욱 과감히 폐기하여야 목회에 유익이 된다.

그러나 미자립 농어촌교회들은 교인들이 어려운 목사의 생활비를 돕는 마음에서 주고 껄끄럽게 생각하는 성도도 없다.

그런 교회서는 아직 받아도 무방하나 가능한 한 심방가서 받는 것은 부담과 부덕을 초래하는 고로 할 수 있으면 받지 않은것이 신앙 양육과 목사 인격에 德이 된다. 진심으로 목회자의 생활에 도움을 줄 마음이 있는 성도라면 심방때 아니라도 다른 방법으로 도울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억지로 내는 것이 된다. 억지로 돈 내고 받는 심방이 은혜가 되겠는가?.

오늘날 목회자들이 모든 면에 잘못된 복고 사상은 버려야하고 의식이 성도를 앞서가야 존경을 받는다. 교회에 많은 문제가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의식 수준과 상식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하는 데서 비롯 된다고 생각한다. 그레서 신학교는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간다고 하였던가.!!??

후배 목사 여러분!
여러분은 시대에 뒤진 복채 관행의 부덕한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인들이 이의를 제기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데도계속 받으시겠습니까? 초신자들이 부담을 느끼는데도 받아야 합니까? 세금도 아닌데 왜 목사들이 거두어 내어야 합니까?
목회자들은 교인보다 상식이 앞서가야 함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목회에 참고가 되시기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가장낮은자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