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올 추석도 주님과 함께! (시 23:1-6)

by 【고동엽】 2022. 2. 11.

올 추석도 주님과 함께! (시 23:1-6)

 

'추석명절'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기를 쓰고 고향을 찾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가들이 고향을 예찬하였고 또 많은 가수들이 고향을 노래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연을 시로 문학으로 예술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마치 모태와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합니다. 모든 동물들은 '귀소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굴에 와서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강원도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태평양에서 몇 년 동안을 살다가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남대천을 찾아와서 산란을 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고향을 찾을 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성경 속에서도 보면 '고향을 찾아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야곱은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까지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속고 속이는 삶을 살다가 드디어 결심하고 가나안땅으로 찾아갔습니다. 야곱의 귀향은 '금의환향'입니다.
▶나오미도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마라' 즉 '쓴 물의 환향'입니다. 신앙의 도성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다가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 말룐과 기룐을 사별하고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금의환향이 아니고 실패하고 망하여서 돌아온 나오미를 고향 사람들은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좋은 곳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가나안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조상 야곱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7년 대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이제는 모세를 영도자로 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 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고향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습니다.
▶유다민족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눅15장에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도시로 가서 허랑 방탕한 삶을 살다가 그 재산 다 허비한 뒤에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에 찾아옵니다. 그 아들을 아버지는 다 용서하고 품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북실향민들은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못 가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그들도 고향에 가는 날이 열리게 되기를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1만 6000㎞나 되는 먼바다로 나갔다가 알을 낳기 위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모두들 떠나온 길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좀더 높은 지위를 갖기 위해, 좀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마다 고향을 떠났습니다.
성냥개비 만한 새끼 연어가 어른 팔뚝 크기로 자라나듯이, 고향을 떠날 때보다는 한결 넉넉해져서 어떤 이는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했고, 어떤 이는 전셋집의 설움을 털어 내고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고, 어떤 이는 공부를 마치고 박사가 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신형 자가용을 타고 신나게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향길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고향에 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귀성길이 고생길이 되고 맙니다. 그래도 올해는 큰 사고 없이 추석을 맞이하게 된 것이 감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육신의 고향이 그렇게 소중한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영혼의 고향이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의 그 안타까움 이상으로,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영적 실향민'은 정말 불쌍한 인생입니다. /믿/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품' 우리가 장차 돌아갈 '하나님 나라'입니다. 전12:7절에 '흙(육신)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히11:13-15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떠나온 고향 갈데아 우르를 그리워 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참된 본향은 바로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할/

 

①오늘은 추석날입니다. 먼저 추석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추석 명절이 오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이 생각이 나고, 송편이 생각이 나고, 시골 산소에 벌초가 생각이 나고, 또 조상들에게 제사 들이는 것이 생각이 나고, 이웃과 송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추석은 '나눔의 명절'입니다. 베풀며 사는 삶이 축복입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유서를 썼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이런 유서를 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던 그 부자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니지! 죽은 후에 베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살았을 때에 해야지.' 이렇게 외친 후 그는 유서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베풀면서 살았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게 되었답니다. /할/
⑴나눔은 하나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물질을 나누었습니다. 마음과 시간도 나누었습니다. 모든 것을 나누어 유무상통할 때 그 공동체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⑵나눔은 다리입니다. 지역, 계층, 세대, 종교, 민족을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실제 다리를 대한민국에서 아프리카까지는 못 놓습니다. 대신 나눔이라는 다리는 얼마든지 놓을 수 있습니다. 해외 봉사 활동으로 아프리카에 갈 수 있습니다. 구호 단체를 통해서 아프리카 어린이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나눔의 다리가 놓아지면 친구가 됩니다. /할/
⑶나눔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전도로 복음을 나누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구제로 물질을 나누면 살아갈 희망이 살아납니다. 헌혈로 피를 나누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갈릴리가 될 것인가? 사해가 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인간은 참 어리석습니다. 나누기보다는 쌓아놓으려고 합니다. 많이 쌓아놓아도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독백을 합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미소짓고 있을 때, 주님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19-20)고 말씀하십니다. /할/ 그래요, 우물물을 계속 퍼 줄 때 새로운 물이 솟아납니다. 우리 인생도 나눌 때, 새로운 복을 누리게 됩니다. /아멘!/
⑷나누면 내가 힘이 납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5년 간 400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답니다. 남을 돕는 사람과 돕지 않은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남을 돕는 사람이 돕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금연이나 운동을 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남을 돕는 사람의 사망 확률이 무려 63%나 적었습니다. 도울 때, 힘이 생깁니다. 나눌 때, 엔돌핀과 다이돌핀이 분비되어 하늘의 힘과 땅의 힘으로 충만해 집니다. /아멘!/
⑸나누면 행복이 배가됩니다. '까치 밥'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예전 어른들은 홍시를 다 따지 않았습니다. 까치가 배고플 때 먹으라고 홍시를 하나씩 남겨두었습니다. 감나무에 하나 남은 홍시가 까치 밥입니다. 까치하고도 나눠 먹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홍시를 바라보면서 좋아했습니다. 그 홍시 때문에 까치도 행복하고, 사람도 행복했습니다.
행복은 나눔이라는 파이프를 통해서 흐릅니다. 성공하고, 승리하고, 소유해도 나눔의 파이프가 막혀 있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나눔의 파이프를 녹슬게 하지 맙시다. 나눔의 파이프를 활짝 열고 그 나눔의 파이프를 연결시킵시다. 나눔이 커질 때 행복은 더 커집니다. /할/
㉡또 추석은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추석에 추수감사절로 드리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50:23절을 보세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⑴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감사합시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이들이 우리들의 삶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서 돕기도 하시며, 연단도 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마19:19)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라'는 가장 큰 의미는 '그들의 생명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주인공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믿/
⑵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명절날 최고의 선물을 하십시요! 효도는 본인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엡6: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할/
⑶주의 종에게 감사합시다! 히13: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갈6: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할/
⑷국가에 감사합시다! 그렇습니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나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 기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해외로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그렇게 감사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얼마나 살기 좋습니까? 4계절이 뚜렷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할/
⑸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감사의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결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롬7: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14: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할/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처소를 무엇으로 지었는가? 계21:10-11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새 예루살렘이 '보석, 벽옥, 수정 같이 맑고 빛나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18절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새 예루살렘 성곽이 벽옥으로 쌓여있고 정금으로 되어 있고 유리 같이 맑고 아름답습니다.
21절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에 문에 열 두 개인데,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길이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할/ 여러분! 아름다운 본향 있음에 감사하며 기뻐합시다. 고후5: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굳이 예수 믿을 필요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은 지옥 갈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

 

②올 추석도 나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과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시 23:1-6).

▶본문의 특징이 있습니다.
⑴단순성입니다. 본 시편은 매우 짧습니다. 모두 6절에 불과합니다. 어려운 말들이 없습니다. 당시의 중동 사회에서는 누구나 흔히 목격하는 목축의 이미지를 사용했기에 어린아이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⑵현실성입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있는 안식의 초원이 있고, 두려움과 긴장과 슬픔이 들어찬 어두운 골짜기가 있으며, 넘치는 잔과 기쁨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승리의 정상이 있습니다.
인생을 온통 꽃밭으로 그린 것도 아니고 또는 고난의 가시밭길로 묘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에 대한 사실적인 서술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⑶개인성입니다. 본 시편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한 마리의 양이 지나온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며 구원의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본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양 무리가 아닌 한 마리의 양이 자기 목자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읊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관계가 아니고 그분과 나의 관계입니다. '나의 목자'라는 말은 개인적인 표현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일대일입니다. /아멘!/
▶본문에서 목자 되신 하나님의 모습이 '동사 세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⑴인도하시는 하나님! 2절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길, 정말 우리가 가야할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멘!/
⑵함께 하시는 하나님! 4절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은 자기가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특히 사울에게 쫓겨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는 혼자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 신앙이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할/
인도의 무저항 민족운동가인 '간디'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이 저 멀리 우주 한 구석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으며, 우리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불 신앙자의 고백도 이런데 우리는 확실한 임마누엘신앙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⑶보호하시는 하나님! 4절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가 쳐들어왔을 때,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121: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네가 누구냐?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중요시하지 않고 '너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냐?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이 너와 함께 하느냐?'를 중요시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는 본문 이 한 절만 가지고도 가슴이 설렙니다. 그런데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씀 앞에서 심장이 크게 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멘!/


▶본문을 차례대로 상고해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아야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받습니다(1).

먼저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양이 목자의 소유이듯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모든 인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거기에는 바다와 같은 사랑이 있고, 모든 허물을 사해주는 자비가 있으며, 또 양육해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목숨까지 바치는 희생이 있습니다. 이 목자로서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에게 계시되었습니다. /믿/
주님은 요10: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할 때, 인생의 모든 행복은 안전하게 보장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여러분, 주인은 소유물을 관리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자는 양을 관리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가나안의 푸른 언덕에서 양을 먹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곳에서 양을 쳤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에서 자신의 양인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위로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⑴목자는 양의 공급자입니다. 목자는 그의 양들을 먹일 물과 풀을 찾아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믿/
⑵목자는 양의 보호자입니다. 목자는 야수들과 인간 도둑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양떼 곁에서 살아야 합니다. 부상당한 양이 있으면 목적지까지 메고 다녀야 하고 병든 양이 생기면 정성껏 간호해야 합니다.
⑶목자는 양의 인도자입니다. 목자들은 지팡이를 들고 아침에는 푸른 초장으로, 햇볕 뜨거운 오후에는 잔잔한 시냇가로 시원한 그늘로 양들을 인도합니다. 그러니까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보면 목자는 양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말은 '여호와는 내게 헌신된 분'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할/
이 헌신이 있기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목자가 아닙니다. 성도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주님이 나의 목자도 아닙니다. 주님이 '주인'이라 함은 나의 책임자 나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최고의 위치에서 내 삶을 결정짓는 최고 결정권자입니다. /아멘!/


▶양은 모든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양의 특징은 무엇인가?
⑴양은 대단한 근시입니다. 멀리를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냇물을 찾는다든지, 길을 잃었을 때 집을 찾아 올 수가 없습니다.
⑵양은 철저한 무방비 상태의 동물입니다. 동물들은 저마다 적들로부터 자기를 방어할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다 못해 스컹크처럼 방귀를 뀐다든지, 사슴처럼 도망을 잘 친다든지, 아니면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으로 적의 시선을 따돌린다든지, 그래서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방어무기가 없습니다. 뿔이라고 해야 그저 액세서리 정도이고 자기들끼리 싸울 때나 쓸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보호색이 있는 것도 아니도 도망을 잘 치는 것도 아닙니다.
⑶양은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거나 머리라도 좋아야 살아남을 텐데 양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도 IQ가 낮은 동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머리로 달나라까지 여행을 하는 가장 지혜로운 것 같은데 진정 복 받을 길을 가지 못하고 망할 길만 골라 갑니다. 우리 인간들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양들처럼 스스로 본향 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여러분! 많은 영혼들이 갈 길 못 찾아 헤매다가 쓰러져 죽는 심령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양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선한 목자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선한 목자를 만난 양은 배고프지도 않고 원수의 공격도 피하며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으니 평안하고 살이 찝니다. 주님은 요10: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⑷양은 의존하는 짐승입니다. 언제나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양입니다. 인간들도 그렇습니다. 권력에 의지하고, 재물과, 배경과, 기술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의 의지할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의지하면 어떤 복을 받을 수 있는가?
'부족함이 없는 축복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그 분이 '풍성한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원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믿/아멘!/
⑴물질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모든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몸, 나의 집, 나의 사업, 나의 재물, 나의 건강, 나의 재능, 이 모두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믿/
⑵정신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물질적인 축복보다 더 좋은 정신적인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만족을 주시고, 교훈을 주시고,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⑶다음에는 이런 것들보다 더 귀한 영적 축복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십니다. /할/
맞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헌신할 믿음을 주시고, 또 하늘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각종 은사를 주시며 성령을 통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닮게 하십니다. 그리고 부활에 참여케 함으로 영생의 축복을 주시고 안식의 보장을 주십니다. /믿/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빌4: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할/
우리의 모든 욕심을 채워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은 다릅니다. '채우시리라'고 확실하게 약속하십니다. 노력해 보겠다가 아닙니다. 채워주마 분명한 약속입니다. /아멘!/

 

㉡나의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2).
'푸른 초장'은 목초 지를 말합니다. 푸른 초장에 가야 마음껏, 실컷 먹을 수 있습니다. 좋은 풀을 뜯어야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먹는 문제, 사는 문제까지 염려하지 말고 삶의 우선순위를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마6: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문제, 의식주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기 '누이시며'는 우리의 삶의 평안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설음은 뭐니뭐니 해도 배고픔의 설음입니다. 그러나 배부르고 몸 따스하면 우리의 삶이 평안합니다.
또한 푸른 초장에만 누이는 것이 아니라, 쉴만한 물가로도 인도해 주십니다. 팔레스타인에는 푸른 초장도 귀하고, 물가도 별로 없습니다. 이 지역은 비가와도 땅속에 모두 흡수되어 물이 잘 고이지 않는 곳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쉴만한 물가를 찾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는 양들을 인도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의 복음 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오늘날의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고 희망을 갖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병 고침을 받습니다. 평안을 누립니다. 기도에 응답 받습니다. 양들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 보호받는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믿/
교부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내가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기까지는 영혼에 안식이 없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쉼은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아멘!/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는 '영혼이 소생되는 은혜' 속에 살게 됩니다(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병들고 망가진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상처 입은 인간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이 소생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탄의 유혹을 받아 죽음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는 갈등과 긴장, 천대와 멸시, 불만과 억울함이 난무하고 그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은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종교나 철학이 이 영혼을 소생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영혼이 소생됩니다. /믿/
주께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목적은 우리의 심령에 신령한 부흥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우리의 심령은 죄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소생되고 우리 심령이 신령한 은혜에 잡히면 어려워졌던 심령이 깨끗해집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니라' /할/
사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 중 하나가 모든 인류를 치료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질 때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하나님 그 분의 이름은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름 값을 한다고 합니다. 자존심을 걸고 힘쓰는 모습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삽니다. 자기 이름 석 자, 명예를 위해서, 자기 인생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울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시고,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이름 때문에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아멘!/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으면 '능력의 손'이 우리를 안위하십니다(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팔레스타인은 지형의 특징상 기복이 심한 산지가 많습니다. 어둡고 험한 골짜기, 협곡이 많습니다. 특히 요단 지대는 좁고 급격한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나운 짐승들이 많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이끌고 나갔다가 늦어졌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들판에서 무서운 짐승들을 만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면 양들을 다 잡아먹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우리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 위험을 무릎 써야 하는 계곡을 선택합니다. 짐승과 싸울 것을 각오하고 양떼를 몰고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다보면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곤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고통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가 어디겠습니까? 건강이 나쁠 때, 사업이 실패할 때, 직장에서 쫓겨날 때, 아니면 우리의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어려움이 닥치는 길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망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깨닫고 뉘우치고 바로 서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이 새롭게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감사하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믿/


▶우리는 본문에서 그 분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채찍과 보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할/ 그럼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⑴역사를 움직이는 손입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손은 대통령의 손도, 잘 나가는 대권주자의 손도 아니요 재벌의 손도 아닙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오늘도 이 역사를 움직이시는 그 능한 손이 우리 속에 운행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할/
⑵심판의 손입니다.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영 벌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에, 그뿐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심판하십니다.
⑶재물을 주장하는 손입니다. 여러분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⑷사람을 붙잡는 손입니다. 모세를 붙잡았습니다. 여호수아를 붙잡았습니다. 다윗을 붙잡았습니다. 원수의 나라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니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할/ '하나님! 그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잡아 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⑸지식과 지혜의 말씀을 주는 손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더니 가는 곳마다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에는 이 세상의 모든 비결이 총망라되어 집대성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속에 복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효도하는 비결, 돈 버는 비결, 장수하는 비결, 화목 하는 비결, 천국 가는 비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능력에 붙잡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환경마다, 거리마다, 기업마다, 가정마다 온통 지식의 바람이, 지혜의 바람, 말씀의 바람을 일으키는 날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⑹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털어 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는 손이 하나님의 손입니다. /믿/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잡힌 자는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역사가 일어난 줄 믿습니다. /할/

 

㉤주님을 나의 목자로 삼는 자는 '내 잔이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5).
본문 속에 5절은 23편의 절정기를 이르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만족과 즐거움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이제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조차 축복해 주시고 '잔이 넘치게 채워주시겠다'는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기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좇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의인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다'는 의미는 주께서 우리를 가장 귀한 자로 인정해 주심을 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의 축복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궁합니다. /할/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님의 축복은 영적인 구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도 그릇이 넘칠 때까지 정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부어 주십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죽음이 꺾지 못하는 평화! 세상이 이길 수 없는 담대함! 그리고 퍼주고 퍼주어도 마르지 아니하는 물질의 축복까지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눅6:38).
본절에 '주께서'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아니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한번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한번 닫으면 다시 열 자가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자를 있게 하시는 주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영원히 살아 계신 그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내 잔이 넘치나이다.'에서 몇 가지 진리를 발견합니다.
⑴내 그릇에 비해 부어주신 은혜가 과분하다는 뜻입니다.
정직하게 표현해 보면 내 그릇은 작은 종지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동이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천한 그릇에 불과한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귀하게 쓰십니다. 사실 나의 사람됨은 선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선한 사람도 받지 못할 축복을 쏟아 주셨다면 이것이 내 잔이 넘치는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은 원래 미천한 목동이었습니다. 또 그는 왕의 자리에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추악한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잔이 넘치는 은혜 속에 살았습니다.
⑵내 잔이 넘친다는 말은 '내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크다'는 감격의 표현입니다.
크게 봉사하지도 못했는데, 크게 부르짖는 기도도 못했는데, 하나님이 은총을 쏟아 부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크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격하는 찬양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⑶내 잔이 넘친다는 이 말씀 속에는 지금 계속 이어지는 진행형입니다.
어제까지 넘치게 부어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지금, 현재 이 시간에도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잔을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⑷'내 잔이 넘친다.'에서 '잔'은 기업 즉 재산을 비유한 말입니다. 이러한 잔이 단순히 가득한 정도가 아니라 흘러 넘치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다윗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보여 줍니다.
실제로 그가 차지한 왕실의 재산과 그의 사유 재산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대상27:25-31/29:2-5).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많은 풍성한 재물을 자기의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에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그 분이 채워 주셔야 '우리의 일생이 풍부합니다. 삶이 풍성해 집니다. 신용의 잔도 넘쳐 납니다. 기쁨의 잔이 넘칩니다. 행복의 잔이 넘칩니다.' /할/

 

㉥주를 나의 목자로 삼는 자의 최고의 축복은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6).
'나의 평생에' 즉 지금부터 죽는 순간까지, 아니 죽은 뒤 천국에서라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 다윗처럼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