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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롬 8:31-39)

by 【고동엽】 2022. 2. 10.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롬 8:31-39)

 

로마서는 16장으로 되어있는데 1-11장까지는 교리서, 12-16장까지는 윤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도 8장이 가장 중심된 장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야곱 스펜너'는 말하기를 '성경 전체가 다 귀한 보석이지만 특히 로마서는 보석 중에 보석이요, 로마서 중에서도 오늘 본문의 8장은 로마서 중의 진주'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성경의 최고봉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이 만일 다 불타서 없어진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로마서 8장만 남아있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로마서 8장의 말씀이 소중하고 또 은혜롭다는 말씀인 줄 압니다. 로마서 8장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3장에서 '죄론'을 다루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은 한 명도 없음을 예리하게 비판했습니다. 먼저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고 배반한 죄인들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을 의인이라고 봐준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알면서도 행함이 없고, 오히려 교만한 죄가 하나 더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다 죄인이며 그들은 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전적타락, 완전 타락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완전타락의 선언이 먼저 있고 나서 다음에 4장으로 넘어가 그러면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4-5장에서는 하나님 편에서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 쪽에서는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게 되면 구원의 길이 보장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의 길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만이 결국에 구원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지만 일단 의인으로 만들어 놓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갖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6-7장은 이렇게 구원받은 주의 백성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부딪치는 문제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일'때문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7장은 탄식하며 끝납니다. 그러나 8장부터는 마치 풍랑이 지나가고 광명한 아침을 맞이하는 느낌을 줍니다.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여기서 우리는 큰 소망을 붙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정죄란 법정용어로써 '당신은 이런, 저런 죄를 지었으므로 죄인이기에 몇 년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죄로 정하는 것입니다.
'정죄함이 없나니' 죄의 값을 치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예수 안에 정죄함이 없습니까? 예수께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고소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고소할 자가 없고 하나님 역시 우리를 죄인으로 보시기 않습니다. /할/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씀은 험악한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희망과 용기와 힘의 원천이 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인생은 한결 윤택하여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은 늘 외롭고 힘들며 고달픈 인생 길을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사람이 우리를 위함이 아니요, 만군의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고 선포하시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위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요, 도와준다는 말이요, 내편이 되어 준다는 뜻'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그렇습니다. 그 분이 우리 인생의 방패요 견고한 성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우리'라는 말은 나를 포함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1.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3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적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해치려하는 원수가 많고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키려고 다닐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시는 한 아무도 우리를 대적 할 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때문입니다. /할/
여기 '위하시면'은 '하나님이 편들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단도 이깁니다. 세상도 이깁니다. 죄도 이깁니다. 적도 이깁니다. 이단도 이깁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는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력, 금력, 과학, 의학,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식도 이단도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너지고 패했습니다. /믿/
▶여기서 바울 사도는 두 가지를 들어 감탄하고 있습니다.
①'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과 감동 어린 찬사입니다. 너무 감격하면 말문이 막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더 이상 할 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만큼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님이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있다면 '아멘! 아멘!'하면서 감격 가운데 이 말씀을 받을 뿐일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극도의 기쁜 심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할/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망 적인 외침입니까? 희망이 없으면 끝장입니다.
미국에 살던 인디언들 가운데 '아파치'라는 유명한 부족이 있었는데, 미국 남서부 지방에 주로 살았던 아주 강한 부족이었습니다. 그들과 백인들 사이에 있었던 아파치 전쟁은 미국의 서부 개척 사에 있어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부족에게는 하나의 특징이 있었는데 절대로 추장직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부족 가운데 가장 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언제나 추장으로 추대를 받았습니다.
한 번은 어느 추장이 나이가 많아서 은퇴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를 뒤이어서 추장직에 오르고 싶어하는 여러 사람들이 후보자로 나섰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추장으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합이 벌어졌습니다. 말타기, 창던지기, 활쏘기 시합도 있었습니다. 이제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 세 명으로 추려지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마지막 시합이 벌어졌습니다. 추장은 세 사람에게 멀리 바라보이는 산꼭대기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저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와라. 그리고 내려올 때는 너희가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증표를 하나씩 가져오도록 해라'
대단히 가파르고 험한 산이었습니다. 아무도 올라가 본적이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추장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죽을 각오를 하고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습니다. 이제 부족 앞에서 자기들이 가지고 온 증표를 보일 차례가 되었습니다.
첫째 사람은 산꼭대기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풀을 가지고 왔고, 둘째 사람은 산꼭대기의 매끈매끈한 돌 하나를 가지고 왔으나 셋째 사람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장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증표를 하나 가져오라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아닙니다. 저도 분명히 그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우리 마을의 반대 방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 아주 크고도 아름다운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주변의 땅은 너무나도 비옥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족의 거주지를 즉시 그곳으로 옮겨야 되겠다' 그래서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간 증표로서 그 비옥한 땅을 제 마음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던 추장은 그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나 다음의 추장은 바로 너다!' 왜 그랬겠습니까?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 마음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족의 추장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28절의 주 포인트는 '누군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는 데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까?
⑴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치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자식이 반작용으로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성도와의 관계는 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정, 지식, 재능, 행동 이 밖에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 인격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모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에 의해서 결국 선을 이루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십니다(히11;6).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요일5;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비결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을 주시고 그 명령대로 살면 축복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로 바꾸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란 말 대신에 사랑하는 자로 바꾼 것입니다. ▶왜? 이유는 간단합니다.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시금석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만 있으면 기쁨으로 순종하고, 기쁨으로 감사하고,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⑵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고 아멘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주장하고 자신의 마음과 계산법을 내세우는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에게 함께 하십니다.
성경은 수 없이 많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말하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과 엡5;17-20절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⑶'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것이란 우리의 모든 삶을 의미합니다. 밝은 날, 비 오는 날, 깜깜한 날과 바람 부는 날, 추운 날과 더운 날, 잘 될 때와 못 될 때, 기쁠 때와 슬플 때, 살 때와 죽을 때, 건강할 때와 병들 때, 부할 때와 가난할 때, 우리의 모든 삶을 의미합니다.
▶요셉을 봅시다. 그는 형들에게 벌거벗겨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 집에서도 그 부인의 유혹을 거절한 죄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죽도록 매를 맞습니다. 여기까지는 요셉의 고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 넣으시고 꿈 해몽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부어 주셔서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게 하여 애굽을 살리고, 자기 부모 형제들을 살리고, 죄수의 몸에서 애굽의 국무총리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고백은 창50;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입었으며, 그의 세 친구들도 풀무 불에서 선하심을 입었고, 욥의 경우도 처참한 환경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했더니 오히려 환경을 선으로 바꾸시어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모든 삶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무슨 말하리요' 이 감격에 할 말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윗 왕의 고백을 잘 압니다. 시23;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원문에는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소원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윗의 행복의 절정의 찬가입니다. /할/
▶바울은 고후6;7-10절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가리켜 역사적인 진리를 여섯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⑴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하나님 안에서 수 없이 일어나는 기사와 이적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이야기 할 때마다 사람들은 허황한 억측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속이는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참된 신앙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⑵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당시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배우지도 못한 어부 출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세상 적으로는 유명한 자가 못되지만 그러나 지금 이들은 성경 안에서 얼마나 유명해졌습니까?(베드로)
⑶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기독교의 능력은 우리가 약할 때에 강해집니다. 내가 죽을 때에 주님이 강해지는 종교입니다.
⑷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 자들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찬455장 /할/
⑸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세상에서 참된 부자가 누굽니까? 많이 가진 사람들입니까? 주는 잡니까? 주는 자가 부잡니다. 우리는 주어도, 주어도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들입니다.
⑹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예수의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할/ 이런 귀한 자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본문은 구원의 찬가이지만 그 주제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학자들은 본문을 구원의 '확신 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앞의 29-30절에서 구원의 순서인 '예정, 소명, 칭의, 영화' 즉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행하시는데 우리가 감히 무슨 말하겠는가? /할/

②'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해서 감히 설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나서서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적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나서고 싶으면 한 번 나서보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다윗은 약합니다. 골리앗은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시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은 순식간에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대적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에게는 동족의 위험이 있었고, 이방인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도 바울을 거꾸러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선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머리에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위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가 큰 힘을 얻고 용기를 받았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카톨릭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마음에 고통이 있을 때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어 주신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여 이길 자가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를 끊임없이 대적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은 원수 마귀입니다. 오늘도 저들은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닙니다. 우리는 이 대적을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
본문의 대적하지 못한다는 말은 대적하는 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대적을 해도 주님을 당해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

 

2.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십니다(32).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상속자)가 되었으니 오늘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실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예비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식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아들까지 아낌없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시면서 까지도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시면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믿/
▶시골 가정에서 무남독녀 외동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어느 날 시집 간 딸과 사위가 찾아왔습니다. 처갓집에 온 사위가 갑자기 씨암탉 한 마리를 잡아 달라고 말합니다. 그 집에는 그 닭이 생계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재산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호통을 쳤을까요? 아니면 씨암탉을 잡아 주었을까요? 틀림없이 씨암탉을 잡아줍니다. 만약 잡아주지 않는다면 외동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귀한 무남독녀 외동딸을 사위에게 주었는데, 그 까짓 씨암탉 한 마리 못 잡아주겠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 버르장머리 없다고 야단을 치실 까요? 절대로 야단치지 않습니다. 예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광 가운데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엡3:20절에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또 빌4: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고' /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에 넘치도록 허락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넘치도록 풍성하게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아멘!/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건강이 문제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구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두드리십시오. 가장 소중한 아들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기 은사는 성령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분이 능력을 주시면 끝납니다. 빌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3. 송사 할 자가 없습니다(33).

 

송사는 법정에서 쓰는 말로 고소와 고발을 의미합니다. 고소나 고발을 사탄이 즐겨 쓰는 도구입니다. 욥2장을 보면 사탄이 욥을 비난하고 송사하는 장면이 기록 되어있습니다. 사탄의 별명은 '대적자요. 참소자요, 고소자'입니다.
사탄은 될 수만 있으면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송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집 통인데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할/
▶'우리를 위하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34절에 네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①'죽으실 뿐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모두 담당하시고 나 때문에 대신 예수님이 정죄함을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대신 죽으시는 투자를 했으므로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정죄하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②우리 의를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즉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사망은 예수님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리의 옛사람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실 때,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생명이 된 것입니다.
③'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편은 존귀한 자리, 영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어떠합니까?
엡2;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우리들도 하나님은 지극히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우편이란 하나님의 오른편, 왼편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영광의 자리에 계심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우편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합니다.
④'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순간까지 기도하고 계시니 누가 정죄할 수 있습니까? 롬8;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왜 정죄하지 못합니까? 예수님께서 정죄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할/

 

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

 

여기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끊거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우리를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놓으려고 합니다.
35절에서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놓으려는 것들이 7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입니다.
'환난'은 외부로부터 오는 고난이나 고통을 말합니다. '곤고'는 좁은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이 답답함의 제약을 받는 삶을 말하고, '핍박'이란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를 의미합니다. '기근'이란 굶주림을 말합니다. '적신'이란 벌거벗음은 말합니다. '위험'은 신변의 위기를 말합니다. '칼'은 상해를 당하거나 칼에 찔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 /할/

 

5. 넉넉히 이깁니다(37).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전투적인 삶입니다. 특히 우리는 영적 전투를 하며 살아갑니다. 싸움에서 지면 적의 종이 됩니다. 사탄과 싸움에서 지면 사탄의 종이 됩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이기도록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로 승리하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고 나가 싸우면 승리는 내 것입니다.
영적 전투를 하는 데는 크냐? 적으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강하냐? 약하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수가 많으냐? 적으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어려우냐? 쉬우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적어도, 어려워도, 부족해도, 약해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 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믿/
그렇다면 이기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일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할/
▶38-39절에 바울의 확신이 나의 확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은 본문을 시작할 때 '누가'라는 말로 시작했고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말씀을 거쳐서 이제는 '내가 확신하노니'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가 겪었던 모든 고난들이 끝나고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 없이 여전히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열 가지 예를 들었는데 그 가운데 여덟 가지는 서로 두 가지씩 짝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 두 가지는 짝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짝은 '사망과 생명'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떠한 사연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둘째 짝은 '천사와 권세자'입니다. 천사는 선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권세자는 악한 영, 악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존재들, 곧 그것이 선한 존재이든지 악한 존재이든지 간에, 어떠한 존재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결코 끊지를 못합니다.
셋째 짝은 '현재의 일과 장래의 일'입니다. 현재로부터 장래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어떠한 사건과 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능력'은 짝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능력도, 그 어떠한 권세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끊을 수는 없습니다.
넷째 짝은 '높음과 깊음'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게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라는 말씀으로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
▶오늘 이 시대는 힘을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힘이 있으면 다 이길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힘이 우상인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강하고 더 큰 힘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습니다.
여야는 서로가 더 큰 힘을 소유하려고 애를 씁니다. 힘이 없으면 할 일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 힘이 강하기 때문에 큰 소리를 치고 세계 어디를 가도 어깨를 피고 다닙니다. 재벌들은 이 힘이 있기 때문에 계열사들을 좌지우지합니다.
이 힘이 참 묘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을 가지려고 그렇게 안달을 합니다. 그런데 '나타난 힘'보다 '숨겨진 힘이 더 크고 강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탈옥한 무장 강도가 총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무서워서 떨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보통 때에 강하고 결정적일 때 약해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내는 오히려 의연하고 침착했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그런데 이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세상에서 정말 강한 사람은 여성들입니다.
그때 아내가 무장 강도에게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총을 놓고 여기 앉으세요,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할 테니 좀 기다리세요.' 아주 놀라운 태도입니다.
강도가 보니 이렇게 독한 여자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당신은 내가 무섭지 않느냐' 그러자 이 여인이 '나는 하나님을 믿는 여자예요, 당신이 지금 날 쏘아 죽이면 나는 천국에 가요, 그런데 뭐가 무서워요, 내가 가진 이 마음을 당신도 가질 수 있어요' 이 여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밥을 지어 먹이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나갔습니다. 새벽 3시에 강도가 이 집에 들어왔는데 아침 10시에 이 강도가 순순히 총을 놓고 자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탈옥 무장 강도 사건은 이렇게 아무런 부작용 없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힘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타나는 힘과 부드러운 힘이 있습니다. 강도는 나타난 힘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힘은 감추어진 부드러운 힘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영웅이 있습니다. 하나는 힘을 가진 영웅이 있습니다.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같은 사람이 바로 힘의 대표적인 영웅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힘의 영웅들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는 정신적인 영웅이 있습니다. 무저항주의 간디, 베토벤, 톨스토이, 슈바이처 등은 정신적인 영웅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파수자요, 평화의 수호자요, 문명의 건설자이며, 자유의 기수요, 정의의 사도들입니다. 이런 영웅들에 의해서 역사는 발전되고 사회는 건설됩니다. 우리 주님은 진리이시며 이 진리의 파수 잡니다.

오늘 주님의 진리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세상을 이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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