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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곳으로 가라! (눅 5:1-11)

by 【고동엽】 2022. 2. 10.

깊은 곳으로 가라! (눅 5:1-11)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고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갔습니다.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에서 계속 빚 독촉은 날아옵니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폭도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을 하고서 광산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는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오지를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본문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깊이 파내려 갔습니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펑!' 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습니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당대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된 것입니다. 깊은 곳은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할/ ◀제목소개!▶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본명은 시몬이며, 주님께서 이름을 베드로(아람어로는 게바)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입니다. 그의 고향은 갈릴리 벳세다인데, 벳세다의 뜻은 '고기 잡는 집'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부 출신의 '요나'였으며,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전문 어부 출신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바다는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부르고 디베랴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갈릴리 호수는 팔레스틴 최대의 담수호로, 수심이 얕은 곳은 20m, 깊은 곳은 200m나 됩니다.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져 있으므로 바다 한복판에서 이따금씩 돌풍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호수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살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어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잡힌 물고기는 예루살렘과 로마제국으로까지 수출을 하였기 때문에 어부들은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감당하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이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고, 백부장의 종을 고치셨으며, 나인성에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곳이 바로 갈릴리 지역에서 이루어진 사건들입니다. /할/
이 바다에서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초저녁부터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채 그물을 거두고 있습니다.
2절에 '그물을 씻는지라'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실패자의 빈 그물입니다. 이때 강변에서는 수많은 무리들이 그리스도를 에워싸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오셔서 베드로에게 청하여 배를 약간 띄우게 하시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밤이 맞도록 헛수고한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그 명령은 베드로의 경험에 의해서는 순종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명령입니다. '시간적으로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 없을 때요, 장소 적으로 깊은 곳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경험으로 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인생의 경험과 지식을 접어두고 말씀에 따라 순종했더니 배가 잠길 정도의 만선의 복을 받았습니다. /할/
오늘 본문 속에 베드로는 인생의 삶에 있어 가장 위대한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여서 그의 삶의 행동반경이 갈릴리 호숫가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곳에서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승부를 건 곳입니다. 배타고, 노 젖고, 그물 던지는 이러한 베드로에게 어느 날 갑자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기적은 어느 날 여러분들의 생활 속에서 갑자기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일상생활에서 고기잡고, 배타고, 노 젖고, 잠자는 것밖에 다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불경기에 허덕이는 사업장에서 축복 예배들 드려주시고,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복이 된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4절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할/
오늘 우리 모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영의 눈을 크게 뜨고 갈릴리 해변의 바다를 보십시다. 그래서 베드로가 만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도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사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기 전만 해도 실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수없이 많은 인생들이 큰 꿈을 안고 경험과 지식을 담보 삼아 얼마나 열심히 인생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열심을 다한 사업장이 잘되는 쪽보다는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를 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한탄합니다.
'일이 이렇게 꼬이고 풀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경험이나 지식이 통하지 않아 깊은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의 경우도 주님 만나기 전까지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지만 대가 없는 빈 그물을 손에 쥐고 얼마나 허탈해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서 베드로가 기적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체험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영적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1. 내 인생 길에 주님을 만나야 '깊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날 그 새벽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불경기를 만난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기업!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 날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것처럼 서울 장안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날 많은 어부들과 베드로가 있었지만 다 기적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①부지런 해야 합니다. 본문의 베드로를 봅시다.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고기 한 마리 못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사업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공부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악으로 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를 갈며 슬피 움이 있으리라' /얼마나 무섭습니까?/
②빈배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빈배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에게는 실패한 인생의 모습이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생애에 빈배와 같은 그런 때가 종종 휘몰아칩니다.
어떤 때는 내 건강이 완전히 병이 들어 빈배처럼 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사업에 실패해서 빈배처럼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될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인간관계로 인하여 빈배처럼 허무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은 빈배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지고 누리고' 있을 때 교만해 집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갈수록 교만해 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과 절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빈배를 경험한 사람은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무슨 힘이 있고 능력이 있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지'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 때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행여나 오늘 이 자리에 빈배의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바로 이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지 않은 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빈 배 인생! 겸손해진 인생! 내 생애에 완전히 빈배처럼 되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내 심령의 빈배가 될 때 주의 성신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마음이 가난한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빈배에 주님을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할/ ▶또 어느 때 기적이 일어납니까?

 

2. 나의 귀중한 것을 주님께 드릴 때 '깊은 신앙의 체험'이 일어납니다.

 

본문의 베드로는 자기의 배를 주님께 빌려 드렸습니다. 배는 시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재산목록 제 일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빌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왜? 구원해 주시려고, 우리의 육신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왜? 건강 주시려고, /할/ 하나님께 몸 바쳐 충성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건강 책임져 주십니다. 또 우리의 재능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물질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왜? 30배, 60배, 100배로 주시려고 빌려달라고 하십니다. 믿어지면 '아멘'합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면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려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갚아 주실 때 오늘 베드로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만선의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눅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할/
그 당시 베드로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실패의 밤! 사지가 축 늘어졌고, 아무 기분이 없습니다. 사람이 기분이 중요합니다. 기분 따라 죽고 삽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께서 오셔서 배를 쓰자고 하십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사람이 누굴 약올리나! 귀찮아 죽겠네' 퉁명을 떨 수가 있고 성질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기쁜 마음으로 주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 많이 빌려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실 때는 두 배가 잠기게 만선의 축복을 주십니다. /믿/

 

3. 깊은 신앙의 길은 '세상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우기를 청하셨습니다. 여기에 영적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 육지는 세상을 가리킨 말입니다.
세상과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세상이 멀어집니다. 세상의 풍속은 멀리하고, 세상의 습관을 멀리하고, 세상 취미, 세상 자랑을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것은 미루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까이 하는 신앙 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육지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육지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배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배는 노아의 방주를 의미한 것이요, 오늘날 구원선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몸 된 제단에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습니다.
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채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도입니다. 우리 모두 한사람이 한사람씩만 전도해도 우리교회는 배가 운동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도 한사람이라도 꼭 전도하겠습니다!' /아멘!/

 

4. 깊은 신앙의 길은 '주님의 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순종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아멘/
잠28: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그리고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인간의 비극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지 않았습니다.
창2:17절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우습게 듣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담 한 사람의 진 죄 때문에 인류가 다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을 수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 우 날선 검과 같아 우리의 심령 골수 관절을 찔러 쪼갭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사상을 말씀으로 수술해 버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못된 습관은 하나님의 말씀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은혜 주시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모두가 은혜를 받는 심령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①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②말씀을 많이 읽으십시오! 신17:19절에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고 계1:3절에서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할/
③말씀을 묵상하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묵상이란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시1: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으며,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할/ 이것이 베드로의 축복 받은 비결입니다. /믿/


▶베드로가 그 당시 상황에서 순종하지 못할 조건도 있었습니다.
①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입니다. 갈릴리는 너무나 물이 깨끗해서 낮에 그물을 내리면 고기가 다 도망갑니다. 그래서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②장소 적으로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곳입니다. 고기는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낮은 곳에 있습니다. 깊은 물은 물이 차가워서 고기가 놀지 못합니다.
③이미 그 날은 그물 정리가 다 끝났으니 다시 내리려면 능력의 손해가 따릅니다. 냇가에서 조그만 피라미 잡는 투망이 아닙니다. 큰 바다에서 고기 잡는 그물은 엄청나게 큽니다.
④자기는 고기 잡는데 베테랑 급 어부지만 지금 말씀해 주신 주님은 어부하고는 거리가 먼 목수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조건들을 다 극복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원동력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의 위력을 잘 압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다짐합니다. /할/

 

5. 기적의 원동력은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깊은 곳에는 고기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고기는 얕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신비가 있고, 철저한 신앙 훈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의 주제가 '깊은 데로 가라'고 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이 간단한 말씀 속에는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①좀 더 '진지해지라'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밤을 새워 가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 밤에 그는 인간의 무능을 체험하게 되었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자기들의 경험과 실력과 기술을 총동원을 해서 고기를 잡아 보았지만 웬일인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이때가 사람들이 가장 갈등을 느낄 때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한계를 느끼게 되고 무능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실의에 찬 모습으로 새벽녘에 와서 고기 잡는 것을 포기하고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다 될 것 같은데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를 쓰면 다 될 것 같은데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 경험과 재주를 믿고 잘 될 줄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지치고, 의욕을 잃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살하는 이도 있고 정신이 돌아버리는 사람도 발생하게 됩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 힘을 다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된다, 해 보자'고들 말하는데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때 그곳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깊은 데로 가서 한 번 더 던져 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씀을 의지하여 한 번 더 던지리다'하고 던졌더니 어디서 갑자기 고기들이 몰려왔는지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혀 올라왔습니다. /할/
그 순간 제자들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고 보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밤새도록 얕은 곳에서만 놀았구나'하는 깨달음입니다.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위험 부담이 있고, 더 수고를 해야 하고, 장비도 더 갖추어야 하고, 해서 보다 쉽게, 보다 위험 부담이 없이, 보다 더 값싼 장비로, 돈을 적게 들이고, 고기를 잡으려고 얕은 물가에서만 죽으라고 그물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베드로는 수고는 적게 하고, 땀도 덜 흘리고, 투자도 조금하고, 재주만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이 잡으려고 했고, 횡재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실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받으려고 합니다. 삶이 뭐냐 하고 깊이 있게 고민해 보지도 않고 깊이 있게 살려 고는 합니다. 모두 재주와 꾀와 요령으로 살면서도 출세는 하려고 들 합니다. 모두다 얕은 물가에서 고기를 잡으면서도 큰 고기를 많이 잡으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라 하신 것은 좀더 투자하라는 말입니다. 좀더 수고하고 더 땀을 흘리라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좀 더 진지해 지라'는 말입니다. /할/
오늘날 사람들이 모두 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도 복을 받기 위해서 수고는 하려고 하지 않고, 땀을 흘리려고도 하지 않고, 투자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 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은 데로 가야 고기를 잡는데 적당히,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무슨 고기가 잡힙니까? 성경에서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은 자만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할/ 울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밤에 주님으로부터 이 점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큰 깨달음입니까? /할/
②'좀 더 깊은 곳을 보라'는 교훈입니다.
베드로가 밤을 세워 수고를 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듣기에는 예수님의 그 말씀은 현실성 없는 무모한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고기를 잡는 데는 전문가입니다. 평생을 바닷가에서 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고기를 잡는 일에는 경험이 아주 풍부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TV에 어떤 어부가 출현을 했는데 그분은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질을 분석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동쪽에서 불면 그 날은 고기가 없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은 출항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하나의 기술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오시더니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보기에는 예수님은 고기 잡는 데는 문의한 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는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던져 봅니다. 그랬더니 기적같이 고기들이 그물 가득히 잡혀 올라왔다고 합니다. /할/
베드로가 여기에서 또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 앞에서는 나의 지식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조그만 경험도,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조그만 재주도, 별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그 동안 내가 그렇게도 의지하고 믿어왔던 기술과 재주와 지식이 아주 보잘것이 없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경험과 재주가 있는 한 나는 굶어 죽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과신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능 앞에 서고 보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로소 좀더 깊이 알고 보니까 자신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은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비밀을 알고 난 베드로는 비로소 주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고백을 합니다. /할/
여러분, 사람들이 왜 교만합니까? 그것은 자신을 몰라서, 보다 깊은 곳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본다는 것이 고작 보잘것없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재주만을 보니까 그것이 제일인 줄 알고 오히려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보다 깊은 곳을 보라'는 뜻입니다. /아멘!/
여러분,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에서 무엇보다 값이 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깊은 데서 나옵니다. 생수는 길바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깊은 땅속에서 흘러나옵니다. 금은 보석은 자갈밭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보면 깊은 산 속, 돌 속에서 나옵니다. 진주는 개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보다 깊은 바다 속에서 나옵니다. /할/
우리의 삶의 영적 보화도 모두 깊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어쩌다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깊은 신앙 생활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을 때도 얕은 물가에서는 큰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또 그 하나님의 형상을 항상 새롭게 회복하는 데는 쉽게, 편안하게, 형식적인 신앙으로는 안 됩니다. 영혼 깊은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입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허기진 아침에 두 번째로 깨달은 것입니다. /할/
③'보다 더 용기를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어부가 보다 더 큰 고기를 잡으려면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은 곳을 찾아가서, 큰 파도와 싸워가면서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큰 고기를, 보다 많이 잡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조그만 배를 타고 나가서, 낡아빠진 그물을 가지고, 얕은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다면 밤새 왔다갔다한다고 고기가 잡힙니까? 그러니까 수고는 수고대로 했는데도 고기도 못 잡고, 언제나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 인들을 보면 꼭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 봐도 쩨쩨하고, 용기도 없고, 물가에서만 10년, 20년씩을 뱅뱅 돌다 세월 다 보내고, 좀더 깊은 데로 들어가라고 해도 용기가 없어서 용단을 못 내리고 주저주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부도 용기가 있어야 큰 고기를 많이 잡을 수가 있습니다. 사업가도 용기가 있어야 큰 생각을 가지고 큰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학자도 용기가 있어야 넓은 학문의 세계에 들어가서 큰 학문의 맥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도 용기가 있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고, 남들이 꺼리는 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위험과 핍박이 더 거센 곳을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용기를 가지고 날마다 더 깊이 있게, 더 진지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이 말씀은 용기 있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고, 핍박이 더 거센 곳으로 들어가서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용기 있게 그물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할/
고기를 잡으려면 깊은 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고기를 잡으려면 더 진지해야 합니다. 더 수고해야 하고 더 깊은 곳에, 관심과 뜻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깊숙이 숨겨져 있는 영적인 보화를 찾아낼 수 있고, 그래야 그것으로 나의 내면의 빈 공간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아멘!/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는 기쁨이 자리를 잡게 되고 만족이 찾아오고 감사함이 솟아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깊은 데로 들어가는 생활입니다.
④깊이 빠지는 신앙이 깊은 곳으로 가는 신앙입니다.
⑴말씀에 깊이 빠져라. 공부 잘하는 학생은 파고드는 학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파고 읽다 보면, 그 말씀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말씀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기뻐 뛰게 됩니다.
⑵기도에 깊이 빠져라. 기도도 푹 빠지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에 깊이 빠지면 옆에서 누가 뭐래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깊은 기도는 주님과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⑶성령에 깊이 빠져라. 성령의 깊은 곳에 들어가야 불이 떨어지고 능력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깊은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무의 뿌리가 깊이 내려지면 태풍이 불어와도 요동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얕은 나무는 미풍만 불어도 넘어집니다. 깊은 믿음! 깊은 기도!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깊은 곳으로 가야하는 골목에서 외면해 버리고, 포기해 버리고,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기적은 깊은 곳으로 나아갈 때 일어납니다.
⑤깊은 곳에 또 다른 의미는 무엇입니까?
⑴인생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내려놓는 곳입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갈릴리 바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고기 잡는 어부고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입니다. 그런 그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그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으로는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다 버립니다. 그리고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자가 됩니다. 경험이 아닌 믿음으로 그물을 내립니다.
유명한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이성과 생각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 높은 단계입니다. 영리한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할/
⑵'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은 '순종의 길'로 가라는 말입니다. 그물을 깨끗이 씻어 놓았는데 또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할 때는 철저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축복의 지름길은 순종의 터널을 통과한 길입니다. /믿/
⑶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은 '말씀에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여기서 말씀은 '레마'를 말합니다. 신앙이란 말씀을 의지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인데 그 약속은 행할 때 이루어집니다.
요2장에 가나 혼인집에 하인들처럼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지고 갈 때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⑷깊은 곳은 자신의 죄를 발견한 곳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가 죄인 됨을 알 때 주님은 그 때 우릴 불러 쓰십니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할/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대사도가 되어 아가야 파트리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다섯 번의 신앙을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을 '베드로의 다섯 가지의 고백'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고백을 할 때마다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베드로의 제일차 고백이 바로 본문의 고백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고백을 받으시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나를 따르라' /할/
베드로는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가장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임을 아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제2차 고백은 요 6:67절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기적을 보고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지 않자 많은 이들이 떠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 때 베드로가 두 번째 고백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할/
죄인임을 고백한 베드로는 예수님만이 영생의 말씀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아멘!/
▶제3차 고백은 마16:16절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기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7-19). /할/
▶베드로의 4차 고백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일어났습니다.
요21장에 보면, 베드로가 옛 직업으로 돌아가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이 사명을 버리고 떠나간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러자 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그때 그 현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의 네 번째 고백은 이것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고백으로 베드로의 믿음은 한 차원 높아졌습니다. /할/
▶베드로의 다섯 번째 고백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행3: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는 오직 예수 이름으로 외쳤습니다. 예수 이름은 놀라운 이름입니다. 기도응답이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기적이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베드로는 이런 고백을 통해서 큰 사도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바른 고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멘!/
⑸깊은 곳의 신앙은 '예수님이 내 인생에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셨으면 손님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으로서 나를 온전히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안방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잘 모시는 삶입니다. /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실패의 오늘은 잊고 내일을 준비'하며 사는 자입니다. 여러분! 최악의 인생은 인생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포기한 사람은 주님이 쓰실 수도 없습니다. 비록 어제와 오늘 실패를 거듭했다고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함께 하시고 밝은 내일을 열어가게 하십니다. /아멘!/
⑹깊은 곳이란 주님의 '사명을 받는 곳'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마4:19절에도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할/ 사명자의 결단이 11절에 있습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기적은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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