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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이스라엘아! (렘 31:1-6)

by 【고동엽】 2022. 2. 10.

처녀 이스라엘아! (렘 31:1-6)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사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선물로 주시고, 그 길을 향하여 가는 여정 길에서도 순간, 순간 그들을 불꽃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교만하고 타락하고 범죄하고 사치하고 방탕하고 우상을 섬겨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이 망해서 나라도 뺏기고 집은 불타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는 이산 가족의 슬픔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억압받는 포로가 되어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고, 그곳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비참한 신세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 36년의 식민지 통치의 고통을 우리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깨닫고 회개하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절의 말씀 가운데 '처녀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서 우리는 깊은 진리를 몇 가지 발견해 보려고 합니다. /할/

 

1.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받아 그 율법대로 지키며 살아야 할 선민입니다. 첫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또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관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요, 우리가 그의 신부가 됩니다. 신부는 신랑을 위해 몸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춘향이의 절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멀리해 버리고 정면으로 도전하며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해와 달, 일월성신을 섬기고 바알과 아세라와 몰록에게 제사하여 온갖 음란한 행위를 일삼아 온 창녀와도 같은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전혀 거리낌이 없이 '처녀 이스라엘아'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여기 '처녀 이스라엘아'의 원어는 '베툴라 이스라엘'인데 '베툴라'라는 말은 '순결한 처녀'를 가리킵니다. 창24:16절에 보면 장차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베툴라'라고 했습니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 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여기서 리브가를 '베툴라', 순결한 처녀로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순결한 처녀'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할/

 

2. '처녀 이스라엘아!' 이 음성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①하나님의 용서를 발견해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죽어야 마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입고 오늘도 주 앞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기억지도 않는 용서입니다.
렘31:34절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용서해 주었다가도 끄집어내고 또 끄집어냅니다. 이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으며, 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아 사망의 길로 가야 하는데 용서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기본신앙입니다. /아멘!/
사도요한은 요한1서 1:9절에서 용서의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또한 사1:18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하셨으며, 또 사44:22절에서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저를 구속하였음이니라' /할/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히8:12절에서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죄 사함의 복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었는데 용서받는 것이 큰복입니다. /믿/ 그런데 다 용서해 줍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고 7절에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가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격과 조건이라는 의미입니다. 남은 자는 누구입니까? 신앙으로 인한 환란과 유혹과 연단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불의한 세상 중에서도 진실과 영혼을 사모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이요,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표준으로 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때가 임박했습니다.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남은 자의 신앙은 큰 축복 자입니다. 남은 자들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입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서 오랜 세월을 보낸 한 아들이 출감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지난날 너무도 많이 어머니의 속을 태웠던 불효 막심했던 일을 생각해 보니 너무도 어머니께 큰 잘못을 했습니다.
이 아들은 지난날이 몹시도 후회스러웠고, 어머니의 용서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기를 도저히 용서해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에 '나를 용서해 하신다면 집 뜰 감나무 위에 흰 손수건을 매달아 주세요, 그것을 보면 어머니가 나를 용서한 줄로 알겠지만 손수건이 없으면 용서하지 않은 줄 알고 멀리 떠나겠습니다.'
며칠 후 드디어 아들이 출감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집을 달려갑니다. 그런데 집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과연 어머니가 날 용서하시고 감나무에 흰 수건을 거셨을까?
그런데 한순간 그런 염려가 살아졌습니다. 그 감나무에는 온통 하얀 손수건이 이곳 저곳에서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편지를 받는 순간에 집안에 잇는 흰 천을 모두 같다 걸었습니다. 행여나 아들이 잘못보진 않을까? 거기에는 손수건 속치마 이불홑청 모든 것을 다 동원했습니다.
여러분, 이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긍휼하심과 은총으로 더러운 창기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순결한 처녀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불의하고 추악하고 늘 배신했고, 원망했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처녀처럼 언제나 용서해 주십니다. /아멘!/

 

②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그냥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용서에서 또 사랑으로 넘어집니다. /믿/
우리는 네 이웃의 죄를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넘어서 사랑으로 나아가기까지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망설임이 없이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눅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잘 압니다. 그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재물을 분배받아 화려한 도시로 나가 허랑 방탕한 생활 끝에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몸에 병까지 얻었을 뿐만 아니라 비참하게도 돼지를 치며 그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맘대로 먹을 수 없는 저주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그 아버지의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해야겠다'하고 고향집을 찾았을 때 상거가 먼 새벽길에 아버지가 달려나와 목을 끌어 않고 입을 맞추고 자색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며 가장 살찐 암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일들을 또 다시 들추어 내지 않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할/
▶'토마스 하디'의 유명한 작품 '테스'라는 장편소설에 보면, 농촌에서 자란 순결한 테스는 어느 명문 집 아들이라고 허풍을 떨어대는 '알레크'에게 꼬임을 받아서 그만 사생아를 낳고 맙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아기를 매장한 테스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성실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에 목사님의 아들인 엔젤과 가까워져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결혼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들이 서로가 사랑을 고백하며 과거를 진실하게 털어놓자고 엔젤이 말하자 순진한 테스는 그를 굳게 믿고 자기의 과거를 다 고백합니다.
테스의 과거를 들은 엔젤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로는 고백했지만 테스를 버리고 멀리멀리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떠나갔을까? 테스의 과거를 용서할 수가 없었고,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용서이고 사랑입니다.
오늘날 한국 신혼부부들이 자기의 잘못된 과거를 고백하다가 신혼 첫날밤에 헤어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숙이고 지난날을 뉘우치고 바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은 오직 현재의 우리만을 보실 뿐 지난 과거사는 절대로 따지지 않으십니다. 살인자 고재봉이도, 인사동 금당살인사건의 주범도 남편을 다섯이나 바뀌어 살았던 수가성의 여인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도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할/
재산을 낭비한 것도 왜 그렇게 어리석게 낭비했느냐 따지지 않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한 것도 왜 미련스럽게 그런 방탕한 생활을 했느냐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다만 현재의 눈물을 흘리고 주님 앞에 나가 고백하는 그 모습만 보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결코 책망하지 많습니다. 꾸짖지 않고 따지지 않고 캐묻지 않으시는 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 다 모든 것을 묻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구약 호세아서에서 음탕한 여인 고멜이 남편 호세아를 버리고 이 남자 저 남자 품에서 음탕한 방탕의 생활을 하지만 몸값을 값아 주고 데리고 옵니다. 용서해 주면 또 나가고 또 나가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간의 사랑은 연약하고 불안전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다 받아 드리지 못하고 용서하고 잊어버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허락하신 뜨거운 사랑이랍니다. 그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의 불길 속에는 우리의 모든 허물이 녹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순결한 처녀와 같이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③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에서만 멈춰지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에서 이제는 축복으로 나아갑니다.

 

⑴관계가 회복되는 축복입니다(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무슨 말씀인가? 관계 회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회복의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아멘!/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왕은 백성들을 보호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할/
시145:1-2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찬송하며 높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통치를 받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그 날부터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아멘!/ 시121:4-8절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세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십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구하면 주시고 일생을 책임져 주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시고 영원히 보살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런가 하면 사랑하는 자녀들이기 때문에 잘되라고 징계의 매를 드시기도 하시지만 버리시지 않으시고 돌보아 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믿/
관계성이 참 중요합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저'는 물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신앙은 회복운동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안에서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⑵칼 권세에서도, 광야에서도 보호받는 복입니다(2).
'나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출애굽 때를 회고하면서 그 은혜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 칼 권세는 애굽의 바로 왕의 철권통치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림으로 바로가 손을 들고 '나가라'하고 내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낸 후에 애굽 왕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군대를 뒤쫓아 보내어 전부 붙잡아 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대를 전부 홍해 바다에 쓸어 넣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광야로 보내신 사건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 칼 권세에서도 건져 주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도 지켜주시고 안식을 주셨습니다. 사실 광야라고 하는 곳은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언젠가 어느 방송에서 배도환이라는 탤런트가 480Km되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모습을 방영했습니다. 1,200리입니다.
몇 마리의 낙타와 함께 몇 사람이 그 사막을 횡단했습니다. 얼마나 사막에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모래 투성이가 됩니다. 또 밤에는 얼마나 추운지 모릅니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좀 먹으려고 하면 사막의 모래 바람에 음식이 모래 범벅이 됩니다. 그것을 보면서 '정말 사람이 살지 못할 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해 내는데 10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 40년입니다. 준비해 갔던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몇 일 가겠습니까? 금을 준다고 한들 어디서 쌀을 사며, 돈을 준다고 한들 어디서 물 한 방울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 살지 못할 그 땅에 밤에 자고 나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수북히 내려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내주심으로 마시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밤이면 얼마나 춥습니까?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해 주셨습니다. 밤낮의 기온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낮이 되면 더워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때에는 구름 기둥으로 햇빛을 막아 주셨습니다. 즉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막아 주셨습니다. 가도, 가도 사막이요, 어디가 어딘지 동서남북 분간 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갈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할/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사막 한 가운데서 100% 하나님의 덕분으로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광야가 아니면 체험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광야 생활의 그 암담한 상황 속에서 받은 체험입니다. 지나고 보면 전부가 다 하나님의 덕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도 광야의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우리 인생길이 광야 아닙니까? 그 인생 여정 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안식이 분명히 체험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⑶무궁한 사랑과 인자하심의 축복입니다(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호자로서 인도자로서 아버지로서 무궁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궁한 사랑을 그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아멘!/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부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시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인자하심을 베푸심입니다. /할/
아버지를 배신하고 타국으로 멀리 떠나서 돼지 쥐엄 열매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주려 주는 상황에서 아쉬우니까 아버지 집에 찾아 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쫓아 내지 않으시고 매를 들지 않으시고 무궁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탕자 아들을 영접하여 주셨고 다시 아들로 대접하는 표시로 가락지를 끼워 주었고 변함 없이 사랑하고 환영하는 표시로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궁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

 

⑷그 하나님의 축복은 승리의 축복입니다(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넘어지기를 잘하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믿음 안에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패역의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할/
오늘날도 우리들을 세워 주십니다. 마치 니느웨로 가서 축복을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난 요나처럼 말입니다.
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그리고 바울을 따라 1차 전도에 나섰지만 고난을 견디지 못해 도중에 돌아와 버린 마가와 요한처럼 모두 다 넘어지는 연약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요나를 세워 니느웨를 구원케 하시고 베드로를 다시 세워 초대교회 지도자로 삼으셨고, 마가를 다시 세워 축복 전도의 요긴한 인물로 사용하셨으며, 요한사도를 사랑의 종으로 세워 밧모섬에 보내어 주님의 계시를 보게 하시고 앞으로 도래될 주님의 재림의 때와 천국을 보여주셔서 계시록을 집필케 하셨습니다. /할/
잠24: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엎드러진 이스라엘을 이제 다시 새롭게 세움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에 복입니다. 우리도 늘 넘어지기 잘하는 연약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넘어짐을 책망하지 않고 다시 붙들어 주십니다. /할/
그렇습니다.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여기 '다시 세운다'는 말은 '회복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닫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욥이라는 사람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총체적 실패와 비극을 겪은 사람입니다. 하루는 인근의 불량배가 쳐들어와 종들을 죽이고 재산과 짐승 떼를 약탈해 갔습니다. 어느 날 큰아들 집에 모여서 생일 음식을 차려 놓고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지면서 7남 3녀가 모두 압사하여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욥 자신도 불치의 피부병에 걸렸고 평생을 해로하자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겠다'며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욥1:20-22절에 보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라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욥이야 말로 '극한상황, 절대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친구도, 이웃도, 아내도, 자신도 절망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욥42: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재산은 전보다 배로 주셨고, 죽은 십 남매보다 더 귀한 7남3녀를 다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140년을 살면서 아들 손자 4대를 보았고 기한이 차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할/
호14:1-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4절은 '그리하면 패역을 고쳐주고 진노를 떠나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7절을 보면 '백합화같이 피겠고,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히고, 가지가 퍼지고, 향기가 퍼지고, 곡식같이 소성하고, 포도나무같이 꽃이 피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누구라도 실패할 수 있고, 병에 걸리고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사람만 고침 받고 회복되는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⑸하나님의 축복은 평안의 복입니다.
참된 평안은 죄에서 해방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 때에 비로소 평안의 복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4절에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께로 나오면 춤추고 노래하고 기뻐할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성공을 하고, 출세를 했어도 기쁨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움켜쥐고 모은다고 성공이 아닙니다. 기쁘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믿/
여기 소고는 한 손으로 들고 한 손으로 두들기는 작은북이랍니다. 그 당시 팔레스틴 지방의 여성들이 축제 때 사용하는 악기의 일종입니다.
출15:20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놓여나 하나님의 기적과 은총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자 아론의 누이동생 미리암을 선도로 이스라엘 여성들이 소고를 잡고 두드리며 춤추며 기뻐할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삿11:34절에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사사 입다가 미스바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자기 외동딸이 아버지의 승리가 너무 기뻐서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입다를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시68:25절에 '소고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행실 아니고 무엇입니까? /할/

 

⑹소득의 축복입니다(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무슨 복인가? 소득의 복입니다. 전에는 애써 심어 놓으면 군대의 침략으로 노략을 당하고 말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와 똑같은 약속을 하나님께서 사62:8-9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풍성한 소득의 약속입니다. 할/
사람들은 재산을 모으고 사업이 번창하고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면 자기의 실력과 재간을 의시 됩니다. 자기의 사업 감각이 최고라고 우쭐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큰 착각이요 오버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훅하고 바람 한 번 불어 버리면 끝나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불치의 병으로 모아 논 재산 다 날릴 때가 있고, 아니면 불의한 사고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서 그렇게 잘되면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두손들고 쇠고랑을 찬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장담하지 마십시오, 교만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보살핌이 없이는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쁘다고 주일도 안 키지는 사람,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다려보십니다. 그래도 깨닫지 않으면 징계의 잔을 드시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를 받기 전에 스스로 하나님의 은총을 잘 누려야 그것이 더 큰복이 됩니다. /아멘!/

⑺예배의 회복의 복입니다(6).
'에브라임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에서 중단된 예배를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회복을 볼 수 있습니다. /할/
여러분, 성도들에게 있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모든 축복은 예배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믿/ 기독교의 신앙의 행위 첫째가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한 때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다니느라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한 그 심령을 시42:4절에서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복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예배의 의미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요4: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서 '예배한다'의 원어적인 의미는 '가까이 하여 입맞춘다. 꿇어 엎드린다, 경배한다, 절한다'라는 의미로써 신약 성경에 많이 쓰여졌습니다.
㈁롬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예배를 '섬김과 봉사'라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47:31절에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여기서 경배는 '자신을 굽힌다, 엎드리다, 자신을 복종시키다'입니다. /할/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사랑과 존경과 경외와 순종과 복종으로 드리는 최고의 가치적인 행위입니다. 예배 전체적인 의미는 '가치를 돌린다'입니다. 예배의 최고 제일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멘!/
시29:1-2절에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또 사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할/
또한 예배의 제 2의 목적은 '축복'입니다. /믿/ 우리 출20:8-1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기 '복되게 하다'의 원어는 '베라크'입니다. 이 말은 '축복하다, 하나님께 빌다, 찬양하다, 숭배하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는 성도의 가장 큰 제일의 의무입니다.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드리기 싫으면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아멘!/
요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예배할지어다'의 원어는 '반드시 예배해야 한다'는 명령형입니다. /할/
예배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도, 찬송, 말씀선포, 봉헌,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으시고 전혀 흠 없고 순결한 처녀로 우리를 불러 주시며 용서와 사랑과 축복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우리가 잘 지켜야 합니다.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는 너희의 믿음을 보겠노라'고 눅18: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배우는 종교입니다. 아는 종교가 아니라 믿는 종교입니다. 이 믿음은 모든 조건도 사건도 초월합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계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어떤 것이라도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아멘!/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단계'가 세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너희는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행3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며 살다가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한푼 달라고 손을 벌렸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할/
여러분, 일어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게으름에서, 나태함에서, 불 신앙과 불순종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60:1절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했습니다. /할/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시온은 예루살렘의 대명사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의 대명사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루살렘 어느 곳에서나 바라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나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미래지향, 영원지향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올라가야 합니다. /아멘!/ 왜 시온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그곳엔 성전이 있고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사람도 친구도 신중하게 사귀어야 합니다. 여러분,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으로 자꾸 올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나아가야 합니다. 6절 끝에 '하나님께로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방향과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믿/
오늘 이 자리가 하나님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만나면 모든 만사가 축복 속에 해결됩니다. 시121:1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묻고는 2절에서 대답하기를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할/ 우리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문제가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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