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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산 소망의 종교입니다! (벧전 1:3-4)

by 【고동엽】 2022. 2. 10.

기독교는 산 소망의 종교입니다! (벧전 1:3-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죽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모두 이렇게 되지를 못해서 죽음 앞에서 벌벌 떨고, 눈물을 흘리지 일단 죽기로 마음을 정리하면 그렇게 편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죽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여 죽음으로 문제의 해결을 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살을 하고, 그래서 완전 범죄를 꿈꾸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 하나 죽어버리면 되지 않느냐?' 또는 '그 같은 놈, 죽여버리면 모두 끝장이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택합니다.
그렇습니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서 보면, 모두 삶을 포기했거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오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 부활신앙은 새로운 삶을 확신하는 긍정적이라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 신앙에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이것은 인류의 최대의 관심사이었고, 인간 이성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자기 나름대로 부활 신앙을 가졌지만, 기독교의 부활 신앙처럼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위에 세워진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 2,000년 동안 우리의 부활 신앙을 와해시키려고 각색 이단들이 제 아무리 애썼지만 저들의 주장은 다 소멸되었으나 오늘까지 부활 신앙은 건재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할/
거짓된 주장은 세월이 가면 끝장이 나지만 부활 신앙은 세월과 함께 점점 더 널리 펴져 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자체가 진실입니다.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되고 안되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믿느냐? 안 믿느냐? 일 뿐입니다. /아멘!/
오늘은 우리 주님이 사망권세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제목 소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금요일 늦은 오후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도 멀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꼼짝하지 않고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만 합니다.
토요일 저들의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이미 밤이 되어 주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몇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자들은 걱정하면서 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어떻게 치울 수 있을지 걱정하고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당시 장례는 굴속에 시체를 넣고 돌로 막는 문화였습니다. 여인들이 막상 도착해 보니 돌이 옆으로 굴러져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기고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여자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댔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할!/
예수님은 장사된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여섯 번이나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부활소식은 절대 기쁜 소식이요 굿 뉴스입니다. /할/

 

1. 부활 후 주님의 40일의 행적을 알아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11번 제자들에게 오셨고 후에 스데반 집사와 핍박자 사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①무덤 가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오셨습니다(막16:9/요20:14-18).
예수님은 부활 후 무덤 가에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②무덤에 갔던 또 다른 여인들에게 오셨습니다(마28:8-10).
주일 새벽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 사건은 주일 새벽 일찍이 일어난 사건입니다.
③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눅24:13-35/막16:12-13).
제자 중 두 명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로 가면서 일어난 체험인데 '이 일을 이야기하고 문의할 때' 예수님이 동행하며 자신에 대한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④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눅24:34/고전15:5).
주님은 당신을 부인한 제자에게도 나타나셔서 그 좌절과 절망과 낙심과 후회 속에 있는 그를 다시 격려하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⑤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막16:14/눅24:36-44).
주일저녁 방에 숨어있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제자들 앞에 예수의 영(靈)이 나타난 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살과 뼈가 있다'고 하시고 제자들이 먹다 남은 생선을 받아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부활한 것이 아니라 육신과 함께 온전히 부활하신 것입니다.
⑥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에게 오셨습니다(요20:26-29).
한 주일 후에 도마와 함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한 주일 전에 도마는 예수님이 나타날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나타났다니까 비웃었습니다.
'참 정신 없는 소리하지 말라. 나는 예수님의 손에 내 손가락 넣어보고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고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한 주일이 지나서 도마가 열 제자와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야 이리 오너라 네 손을 내어서 내 못 자국에 넣어 보아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너무나 놀라고 감탄하고 탄복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그렇게 고백할 때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⑦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일곱 제자에게도 오셨습니다(요21:1-14).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 호수에 이른 아침 나타나셨습니다. 요21:4-6절에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이시고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세 번 예수님이 회복을 시켰습니다.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또 잠시 후에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마지막으로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부인한 만큼 세 번 그의 입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서 상처 입은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 수석제자로 복귀시켰습니다. /할/
⑧갈릴리 산에서 열 한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마28:16-20/막16:15-18).
갈릴리 한 산 위에서 지상명령을 내리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⑨500명의 성도들 알에 오셨습니다(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한 두 사람이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500명이 동시에 보았으니 500명이 동시에 다 최면술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는 일입니다. /아멘!/
⑩야고보(알패오의 아들)에게도 오셨습니다(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⑪부활 후 40일 째 되는 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셨습니다(막16:19-20/눅24:44-53/행1:1-11).
40일 후 감람산 베다니 근처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축복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셨습니다.
눅24:50-51절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들 옆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이 왜 하늘을 처다 보느냐? 하늘로 들리운 이 예수님 네가 본대로 오시리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⑫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나님 우편에 주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끌려나가서 돌로 얻어맞고 죽을 때 예수님을 보셨습니다.
행7:55-56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은 죽기 전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서서 친히 스데반의 영혼을 받아 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⑬교회를 열렬히 대적하던 사울에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났습니다(행9). 사울은 열렬한 유대교의 바리새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열렬히 핍박을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지휘를 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이웃나라 수리아의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와서 투옥하고 죽이려고 살기 등등하여 가는데 다메섹이 눈앞에 보이는 그 근처에 왔을 때 대낮에 갑자기 하늘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거꾸러졌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놀라운 체험을 하고 그는 예수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리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사명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할/
이런 실질적인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 부활절을 지키는 성도들의 태도가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①어제(과거)의 사건으로 기념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삶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②내일(미래)의 사건으로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장차 죽은 뒤에 주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삶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일 부활할 것은 믿지만 그것이 오늘 나의 삶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③오늘(현재) 삶의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삶이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절은 오늘의 부활절이어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장차 죽은 뒤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는 정도여서도 안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3.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구속 사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아담의 무덤도 없고, 노아, 아브라함, 다윗의 무덤도 없습니다. 유대의 역사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히스기야 왕의 무덤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나 바울이나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무덤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무덤의 요소는 시체입니다. 시체가 있어야만 무덤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시체가 없는 빈 무덤은 무덤으로서 성립되지 않습니다.
①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숨겨 놓고 부활했다고 거짓말한다면 그 거짓말을 위하여 제자들이 순교하였겠습니까? 진리를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거짓을 위하여 죽은 이는 없습니다. 잠시 동안은 속일 수 있어도 2,000년 동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은 속일 수가 있어도 자기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 북경에 가면 천안문 광장 한 쪽에 모택동 이의 미이라는 보려고 뱀처럼 길게 줄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구 쏘련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 쪽에는 레닌의 미라 시신을 보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②빈 무덤은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군중들이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가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질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군중은 놀랐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자복하며 하루에 5천명씩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로마는 패하여 자기 나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사망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이름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할/
③빈 무덤의 보상은 부활의 새 생명입니다.
사망은 죽고 영생이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믿는 자는 그 다음 열매로서 사는 것입니다.
고전15:16-20절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벧전1:3-4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④빈 무덤은 부활의 완성입니다.
부활이 의미하는 진리의 최고 가치는 완성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며 진리의 완성이요 승리의 완성입니다. 모든 것의 완성이 바로 부활입니다.
믿음은 99점짜리가 없습니다. 기도도 99점짜리가 없습니다. 전도도 99점짜리가 없습니다. 60점 이상은 합격이고, 60점 이하는 불합격이라는 이런 원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섬김이나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해야 바쳐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완전은 하나님 앞에서 바쳐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전한 존재인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불완전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완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과 연합함으로써 예수 안에서 우리의 믿음도, 기도도, 헌신도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불완전이 메워져서 하나님 앞에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도 불완전한 예배입니다. 예배드리는 회중 가운데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분석해보면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는 온전해야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예배가 됩니다. 그 불완전함을 누가 메워 주십니까?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메워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함께 함으로써 우리의 부족한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믿/
⑤빈 무덤은 이제 우리에게 부활의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감사하고 부활의 주님께 경배하는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부활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⑴양심이 부활되어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지성소입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⑵윤리적, 도덕적인 부활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이 온통 가치관의 상실로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⑶심령의 부활이 일어나야 삽니다. 죽은 심령, 잠을 자고 침체된 심령이 영적인 부활(부흥)을 경험하여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을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로! 찬양으로!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⑷축복의 부활이 일어나야 합니다. 불통이 형통으로! 가난이 부자로! /할/ ▶신통하면 영통하고, 영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합니다. /아멘!/

 

4.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11:25-27)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르다를 찾아오셔서 그를 위로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그러자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마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27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할/
마르다의 이 고백이 위대합니다. '나의 부활이요 나의 생명이신 분은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내가 확실히 믿나이다.' /할/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롬10: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르다의 이 고백을 통해 그 집에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죽은 나사로를 다시금 살려주셨습니다. /할/
①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당신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요2:19절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금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살아나실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기적을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리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기 시작한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②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육이 산 사람이 아니고, 영이 산 사람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사람, 곧 영원히 산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육신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③우리도 마리다의 부활신앙을 본 받아야 합니다.
마르다의 이 고백이 그 가정에 놀라운 부활의 능력과 부활의 축복이 나타나서 죽었던 나사로가 나흘만에 예수님이 다시금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할/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태양 빛이 아무리 강하고 밝게 비추인다 할지도 뚜껑을 닫아놓은 항아리 속은 비출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이시오, 우리의 생명이 되시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이 주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서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아멘!/

 

5.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의 부활도, 우리의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①만일 부활이 없다면 예수 부활도 없습니다. 고전15:13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미국에서 스탠포드 대학은 우리나라 서울대 연 고대처럼 명문 대학입니다. 그런데 그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사람이 바로 '스탠포드'입니다. 스탠포드가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동기가 있습니다.
스탠포드는 부자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잘 생기고 수재였던 외아들이었습니다. 극도의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장례식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슬픔 속에 잠을 자지 못 하고 있는 데 그 날 밤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셔요.' 스탠포드는 이 환상을 보고 인생관이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내 아들도 살아있다!' 스탠포드는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고 하고 청년 교육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 거액인 2천만 달러 약 200억 원을 바쳐서 오늘의 명문인 스탠포드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재산은 10원짜리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 /할/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도 부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분명히 부활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합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
②예수님 부활이 없다면 우리 부활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50-52절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 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 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아멘!/
여기서 우리가 잠깐 짚고 넘어 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죽어서 화장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분은 화장하면 '부활하는데 지장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한때 화장은 부활하는 신앙인에게는 합당하지 않다고 기독교 내에서 주장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몸을 모두 불태워버리면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느냐?'는 염려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다음에 우리의 부활이 이 몸 그대로 부활한단 말입니까? 여자는 또 여자로 부활하고 불구자는 또 불구자로 부활하고 못생긴 사람은 또 그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때 가서 또 성형수술 해야 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③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의 보상도 없습니다.
고전15:17-19절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우리는 부활의 새 아침이 온 줄 믿습니다. 죽음 뒤에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 뒤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이 없었다면, 영생도 없다면, 저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우리가 소망이 있습니다.
④부활에는 두 가지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또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요5:28-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예수를 믿고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하고, '악한 일'은 예수 밖에 사람, 즉 마귀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은 말하는데 그들은 심판을 받은 후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계20:6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생명의 부활을 가리켜 첫째부활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고 했습니다. /할/

 

6.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어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눅24:24-34)

 

①어두워져있던 영안이 밝아졌습니다.
눅24:31절에 '저희 눈이 밝아져 그 인줄 알아보더니' 드디어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바로 알고 믿는 것이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②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눅24:32절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을 들을 때 그들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은 헬라어에서 '현재분사 수동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만 뜨거워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뜨거워져있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용기가 생기고 힘이 생겼던 것입니다. '뜨거워졌다'라는 말은, '감동되었다'라는 말입니다. /할/
③내려가던 길을 돌이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눅24:33절에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신앙이 올라갑니다. ▲사랑이 올라갑니다. ▲능력이 올라갑니다. ▲소망이 올라가게 됩니다.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올라가게 됩니다. ▲신앙 인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할/
마음 문을 열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심으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라가고 또 올라가 차원 높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어지면 아멘!/
④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눅24:5-9절에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여인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일을 증거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일생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힘차게 증거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접한 우리들도 그냥 있어서는 안됩니다.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아멘!/

 

7.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 당시 40일간 지상에 계시면서 13번이나 제자들에게 오셔서 만나주셨습니다. 요20: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께서 오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들도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①'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의 주님의 제 일 성입니다(요20:19).
그 당시 제자들은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보고 요20:20절에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그들은 더 이상 슬픔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기쁨의 사람들로 바뀌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에 평강을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20:21절에서 다시 한번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②'성령을 받으라!'(요20:22)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을 물리쳐 주신 후, 제자들이 담대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령을 받으라'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담대해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담대해졌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할/
③부탁의 말씀도 있습니다. '가서 제자 삼어라!' 전도입니다!
마28:19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부탁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행1:8절에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고 가서 제자를 삼아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 주님의 부탁이었습니다.
④임마누엘 약속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마28: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약속이 소망의 근거입니다. 용기의 근거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성도들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는 절기입니다.
요16: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도 얼마든지 세상의 환난을 이길 수 있고,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미 이겼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있는 그 어떠한 두려움이라도 물리치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
우리는 소망 속에 사는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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