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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고 사는 지혜! (전 3:1-15)

by 【고동엽】 2022. 2. 10.

때를 알고 사는 지혜! (전 3:1-15)

 

스스로 자기를 탁월한 인재요 수재요 천재라고 생각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주 특별한 인물로 알았는데 대학 졸업 후 입사 시험에 거듭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자 '나 같은 천재를 몰라보는 이 어리석은 세상에서 살아서 무엇 하나?' 그는 죽기로 결심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한 노인이 그것을 보고 뛰어들어 그 청년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사연을 들은 노인이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를 주워서 청년의 손에 쥐어 주며 말하기를 '자네 손에 있는 그 모래를 이 모래바닥에 떨어뜨리게나' 청년이 모래알을 떨어뜨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방금 떨어뜨린 그 모래알을 주워서 나에게 주게나' '할아버지, 이 모래사장에서 그 모래를 어떻게 찾아요?' 그러자 노인은 자기 호주머니에서 진주하나를 꺼내어 청년에게 주며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번에는 그 진주를 모래사장에 떨어뜨리게나. 그리고 다시 그 진주를 주워서 내게 주게나' 청년이 진주를 떨어뜨린 다음 금방 다시 주워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는 다 똑같아 표가 나지 않지만 진주는 금방 알아 볼 수 있네. 이처럼 자네가 진짜 수재이고 천재라면 사람들이 왜 자네를 몰라보겠는가? 착각하지 말고 자네를 진주처럼 값지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가꾸어 보게'
노인의 말에 크게 깨달은 청년은 '그래, 내가 착각을 했구나. 나는 그저 모래알 같은 흔한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실력을 키우십시오. 믿음은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헌신과 기도를 통해서 옵니다. 우리 모두 영적인 실력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제목 소개!▶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의 노년기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기록한 지혜서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 기록한 지혜서이니 우리가 전도서에서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 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음을 가르쳐 주면서 보다 나은 삶이 무엇임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이라고 하는 신비 속에서 출생하여 성장하고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즉 시간 안에 존재하는 인생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은 신비입니다. 그것은 색깔이 없기에 볼 수도 없습니다. 부피도 없어 손으로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무게가 없어 저울에 달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있기 전에 있었고, 인간이 그 시간의 끝을 보기 전에 먼저 가 버리고 맙니다. 시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산물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안에서 인생의 역사를 주장하시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할/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때'를 강조합니다. 1절에서 8절까지 '때'라는 말이 스물 아홉 번 나옵니다. 영어에서는 그냥 모든 시간을 Time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희랍어에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라는 단어를 씁니다. '카이로스'는 의미가 있고 긴박한 시간을 말하고 '크로노스'는 막연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때'는 모두 '카이로스'입니다. 1절 시작 부분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여기서 '기한'이란 말도 사실은 '때'란 뜻인데 이 말 하나만 '크로노스'로 번역했고, 나머지는 모두 '카이로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때'란 모두 '의미가 있고 긴박하다'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인생은 때를 잘 알아서 삽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라, 때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무가 아무 때나 단풍을 만들고 시도 때도 없이 이파리들을 떨굽니까? 여름에는 최선을 다해 잎을 피우고 햇빛을 받아들여 부지런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여름에 앞당겨 단풍과 낙엽을 만드는 나무는 죽습니다. 반대로 겨울을 앞에 두고도 여름날의 기분에 도취되어 자기를 절제하지 못하는 나무도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때입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쇠는 달았을 때 두드려라'는 말이 있습니다. 쇠가 식으면 구부리지도 펴지도 못하기 때문에 쇠가 달구어졌을 때 두드려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쇠가 달구어졌을 때 두드리면 단단한 쇠를 가지고도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쇠가 식은 다음에 두드리면 힘은 많이 들어가는데 쇠는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때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멘!/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를 안사람입니다. 베드로도 고기 잡는 어부였다가 주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니까 뒤쫓아가게 되었습니다. 때를 안 사람입니다. 모세도 때를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에녹은 365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때를 잘 알아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때를 알았기에 '에벤에셀'의 축복을 받았지만 엘리제사장은 하나님의 때를 몰랐기 때문에 '이가봇'시대를 열고 말았습니다. 자녀를 간수하지 못해 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할/
'때'를 알고 삽시다. 때도 '카이로스' 즉 '바른 때, 정확한 시간'을 알고 사는 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람은 시간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일이 '정확하게 언제' 일어나게 되도록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과관계'에 있어서 그 '결과'가 나오게 되는 '정확한 타이밍'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전적으로 섭리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

 

1.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때'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

 

①그 날과 그 때,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막13:32절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런데 증조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막13:6-8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이번 이웃나라 일본의 대 재앙 앞에 자연재해나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직접 보았고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나 하나님의 힘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의 위력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자연의 위력을 통해서 하나님은 포효하시고 심판하시고 꾸짖으시고 때로는 분노를 표현하시고 매를 드시기도 합니다. 옛 사람들은 천둥과 벼락을 가장 무서워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진노로 보았고 세상을 향한 경고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의 대재앙을 보면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세지말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시2:1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할/
한마디로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는 경건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격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천국을 보장받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멘!/


②신앙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롬13:11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할/ 죄악의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안일한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게으름과 태만의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잠자는 사람은 깨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내린 명령은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각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왜 깨어있어야 합니까? 살전5:4-6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니라' /할/


③은혜 속에 살고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야 할 때입니다.
고후6:2절에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멘!/ 그럼 그 은혜는 언제 받아야 합니까? 지금 받아야 합니다. 세상일에는 다 기회가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끝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기회는 앞에만 털이 있고 뒤에는 털이 없는 대머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는 기회는 잡기 쉬우나 기회가 지나고 보면 잡으려고 해도 미끄러져 잡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은혜를 지금 이 자리에서 받아야 합니다. /믿/
여기 '보라'는 것은 은혜의 공개성을 설명한 것입니다. 은혜 자체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란 '숨쉬는 그 순간, 살아있는 이 찰라'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다분히 종말적 긴박성을 강조되는 시간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미뤄서도 안 됩니다. /할/


④선을 베풀면서 살아야 할 때입니다.
갈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매가 빨리 맺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몰라줄 때도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2. 본문에서 '때'에 대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인가?

▶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의 힘에 의해서, 인간의 어떤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시작되고 마쳐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8절까지 보면, 28가지의 때와 기한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말한 28가지의 때와 기한에는 굴곡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 14이고, 부정적인 것이 14입니다. 솔로몬은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14가지의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완전수가 무엇입니까? 7입니다. 14가지니까 완전수 7의 두 배가되는 숫자입니다.
▶이렇게 완전하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⑴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잘된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교훈입니다. /할/
⑵지금 어렵다고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인생에 오르막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중에, 절망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큰일을 감당했습니다. 다윗은 하찮은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애굽에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일을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고, 종살이를 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셨습니다. /할/

 

①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2).
솔로몬은 우리의 삶 자체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이것은 인생의 시작과 진행과 종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람이 태어나는 때와 죽는 때는 우리 인생 스스로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이 되었는데도, 여기가 편안하고 좋으니까 여기에 그냥 있겠다고 하면서 안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때 열 달이 되면 나오기 싫어도 나와야 합니다.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좋으니까 나는 한 300년 정도 살겠다고 한다고 사람이 300년을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것 죽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중요한 것은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멘!/
②심을 때와 뽑을 때가 있습니다(2).
이 말씀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심은 것과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뽑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식물을 심고 거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농부가 봄이나 여름철이 되면 밭에 나가서 배추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가을철이 되어서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그것을 뽑아 냅니다. 농부는 이미 정해진 계절에 따라서 행동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계절을 따라 인생이 일을 할 뿐입니다.
여기 심을 때가 되었으면 반드시 심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심을 때입니다. 소망을 심을 때입니다. 평화를 심을 때입니다. 경건을 심을 때입니다. 의를 심을 때입니다. 언젠가는 거두게 될 것으로 믿으며 심어야하는 때입니다. /할/
③죽일 때와 치료시킬 때가 있습니다(3).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계를, 치료시킨다는 것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다시 회복시켜 주심을 가리킵니다.
지금은 치료할 때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을 치료할 때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분노, 미움, 갈등을 없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을 내적 치유라고 부릅니다.
육신이 병든 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에 갑니다. 의사에게 어디가 아프다는 것을 말하고 진단을 받고 약을 먹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와야합니다. 기도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고 말씀의 약을 먹어야합니다. 그래야 치유가 됩니다. /아멘!/
나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은 가서 치료해 주어야할 때입니다. 손을 잡고 화해해야 할 때입니다. 육신이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 하나님께서 그 질병도 지금 치유해 주실 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④헐 때와 세울 때가 있습니다(3).
헐 때는 파괴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입니다. 지금은 세울 때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세울 때입니다. /할/
⑤울 때와 웃을 때가 있습니다(4).
지금은 웃을 때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이렇게 괴롭다, 내게 이런 문제가 있다, 이런 어려움이 있다, 못 견디겠다' 이렇게 호소하고 싶어집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하는 것도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그런 것들의 해결책들이 찾아지고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마음에 쌓여서 병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울 때가 있고'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아픔을 다 감수하면서, 울음을 감추면서. 웃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의연하다'고 말합니다. 일본 사람들의 의연함을 보셨지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큰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언도를 받은 죄수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에 전도를 받고 새 사람이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사형집행을 당할 때 웃으며 교수대에 올라가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장기를 기증하고 가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의 웃음이야말로 주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 가운데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를 흉악한 범죄자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흉악한 범죄자였었으나 회개하고 죄에 대해 승리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미소를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웃을 때입니다. 여러분, 웃으면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⑥슬퍼할 때와 춤출 때가 있습니다(4).
여러분, 슬픔 속에 살고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슬픔도 곧 지나갑니다. 그리고 기뻐 춤출 때가 옵니다. 지금은 춤출 때입니다. 삶이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축제와 같아야 합니다. 축제가 있는 교회가 부흥됩니다. /할/
⑦돌을 던질 때와 거둘 때가 있습니다(5).
지금은 돌을 던져 버릴 때입니다. 돌을 던진다는 것은 돌을 흩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돌로 성이나 요새를 쌓았는데 평화가 찾아와서 그것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돌을 흩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돌을 거둔다는 것은 반대로 성을 쌓기 위해서 돌을 거둬들이는 것,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장벽이 거둬져야 합니다. 삼팔선도 없어져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와 아파트 단지의 담도 거둬야합니다. 나와 이웃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도 없어져야 합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에 돌을 쌓아놓은 것이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돌들을 흩어버려야 할 때입니다. /아멘!/
⑧안을 때와 멀리할 때가 있습니다(5).
지금은 안을 때입니다. 이 말은 정확하게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부간에 애정을 표현하는 일을 말합니다. 정당한 일, 아름다운 일입니다. 또 하나는 친구간의 일입니다. 본문은 이 뜻이 강합니다.
오래간만에 절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친구를 안습니다. 반대로 친구가 나를 속였다는 것이 발견되고 나를 배반할 때는 우리는 그 친구를 멀리합니다. 서로 간에 신실한 친구가 되어 신뢰와 우정을 회복하고 확인하고 안는 때가 되어야합니다. /아멘!/
⑨찾을 때와 잃을 때가 있습니다(6).
찾을 때는 돈과 명예와 지위를 얻는 기회이며, 잃을 때는 그것들을 놓쳐 버리는 때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찾을 때가 되기 바랍니다. 기회를 찾고, 축복을 찾고, 진리를 찾고, 전도할 대상을 찾고, 하나님의 응답을 찾고 특별히 새로운 목표를 찾는 때가 되기 바랍니다. /할/
그런데 목이 말라도 샘을 파려하지 않고, 외로워도 친구를 구하려 하지 않고, 찾아야 할 것이 있는데 찾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찾기를 바랍니다. 찾는 자에게는 찾아집니다. 반드시 찾아집니다.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고 하셨습니다. /할/
⑩지킬 때와 버릴 때가 있습니다(6).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 지켜야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깨닫게 하신 것, 지켜야합니다. 오랫동안 힘써서 몸에 배인 경건의 습관, 지켜야합니다.
좋지 않은 것들은 버려야합니다. 특별히 지금이 버리는 때가 되기를 원합니다. 슬픔을 버리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추억들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미움도 버리는 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
⑪찢을 때와 꿰맬 때가 있습니다(7).
찢을 때란 극한 슬픔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꿰맬 때란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상함과 고침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꿰맬 때입니다. 매우 큰 충격적인 일을 만났을 때, 슬픔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슬픔과 충격이 사라지면 그 옷을 꿰매 입고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찢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분열을 상징하고 꿰맨다는 것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남한과 북한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말입니다.
⑫잠잠할 때와 말할 때가 있습니다(7).
잠잠할 때는 정의의 침묵의 때요, 말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때입니다. 말할 때는 말해야 하지만 지금은 잠잠할 때입니다.
어느 집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전화를 겁니다. 통화중입니다. 다시 겁니다. 또 통화중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걸었습니다. 계속 통화중입니다. 짜증을 내며 다시 걸었습니다. 여전히 통화중입니다. 다시 걸었는데 또 통화중이면 신경질이 폭발할 것 같아서 수화기를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런데 수화기를 놓자마자 '따르릉' 벨이 울립니다. 수화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통화해야 할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체험을 한 다음에는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일에 힘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사순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습니까? 잠잠히 묵상하면서 보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아멘!/
⑬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8).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때입니다. 교회를 더욱 사랑할 때입니다. 이웃을 더욱 사랑할 때입니다. 말씀을 더욱 사랑할 때입니다.
⑭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8).
이것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평화할 때입니다. 하나님과 평화할 때입니다. 롬5: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나라간의 평화가 이뤄져야 할 때입니다. 노사간의 평화가 이뤄져야 할 때입니다. 성도간의 평화가 이뤄져야할 때입니다. 이웃과의 평화가 이뤄져야 할 때입니다. 내 마음속에 평화가 이뤄져야 할 때입니다. /할/

 

3.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도 이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①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9-11).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분에게 가장 좋은 뜻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원치 않던 어려움도 당하고 생각지 않았던 고통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롬8:28절 말씀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세상에는 낮도 있고 밤도 있습니다. 밤이라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밤이 있기에 잠을 자고 육체가 재충전을 하고 다시 달려갈 수 있습니다. 늘 낮만 있다면 인생은 단조로울 것입니다.
저는 가을을 좋아합니다.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가을만 있다면 무슨 농사를 짓겠습니까?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나라에서 사는 교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는 것이 지루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좋습니다. 낮과 밤이 있는 것, 4계절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에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벤 요세프'라는 사람은 유대인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범사에 일어나는 일들 속에 있는 모순을 보면서 많은 의문과 갈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기도했지만 한 번도 시원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왜?'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만나 그가 갖고 있는 모든 의문을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들판 길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반가워 엘리야에게 인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의 의문점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와 함께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그 뜻을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동행한다면, 내가하는 행동에 대해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날이 저물어 가난한 농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가난한 농부가 가진 유일한 소유는 소 한 마리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두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접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날 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이른 아침 떠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집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 때 갑자기 소가 죽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벤 요세프'은 매우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호의를 베푼 가난한 부부의 전 재산인 소가 죽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유유히 그 집을 떠나온 엘리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다시 날이 저물어 어느 부잣집에 들려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두 행인에게 빵 한 조각 대접하지 않고 박대했습니다. 두 사람은 몹시 배가 고팠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날 밤을 그대로 지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두 사람이 그 집을 떠나려고 집을 나섰을 때 그 집 앞마당에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혀 쓰려져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나무를 보자 곧 일으켜 세워 그 자리에 묻어 주었습니다.
'벤 요세프'은 엘리야의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어느 마을에 들려 그 마을에 있는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 회당 안에 있는 의자는 모두 은과 금으로 되어있었는데,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다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여행객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누구하나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었지만 누구하나 자기 집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회당에서 밤을 새고 그 이튿날 떠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회당 문 입구에 서서 그 동네 있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 모두는 지도자가 되라'고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 두 사람은 아주 작은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그 공동체 사람들은 다 가난했음에도, 두 사람을 너무 친절하게 맞아주고, 대접했습니다.
다음날 엘리야는 그 공동체 사람들을 향해 '너희 지도자는 오직 한 사람이어라'고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엘리야와 동행하고 있는 '벤 요세프'은 엘리야의 행동을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박대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지도자가 되라고 축복하고, 그들을 환영했던 사람들에게는 '지도자는 오직 한 사람'만이라고 축복하는 것이 너무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엘리야는 그와 동행한 '벤 요세프'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세프 자네는 나와 동행하면서 나의 행동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나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게. 첫 번째 우리가 마음씨 착한 가난한 부부 집에 들렸을 때 그 집 소가 죽은 것을 자네는 기억하는가? 그 날에 그 집 아내가 죽기로 되어있었던 날인데,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해서 그 부인 대신 소가 죽게 했네. 그 다음 욕심쟁이 부잣집에 들렸을 때 그 집 마당에 쓰러진 큰 나무를 내가 세워준 것은 바로 그 나무 뿌리가 뽑힌 자리에 황금 덩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욕심쟁이 부자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나무를 다시 세웠네.
그리고 우리를 박대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모두 지도자가 되라고 한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일세, 지도자가 많으면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망하는 법이네. 마지막으로 가난한 공동체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의 지도자가 나오도록 기도한 것은, 현명한 한 사람의 지도자가 그 공동체를 인도해야 그들이 잘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축복한 것일세'
이렇게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심오한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믿/아멘!/


②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11).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흙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창2:7,19). 이것은 진화론을 배격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란 실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허무 속에 있는 인생에게 하나님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이것은 오직 사람만이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하나님이 인생에게 심어 주신 본래적이요, 근원적인 것입니다.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에 내세의 소망 속에서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골3:1-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보다 나은 삶은 땅엣 것을 생각지 않고 위엣 것을 찾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위엣 것을 찾는 성도를 실망시키지 아니하십니다.


③선을 행하는 삶을 요구하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12).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여기서 선은 하나님이 보시고 옳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란 무엇입니까? 진실하게 사는 것이 선이며, 하나님을 믿으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선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떠나 죄를 끊어 버리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삶이 선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의 본업입니다. 가장 참된 즐거움은 선을 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멘!/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범사에 때와 기한이 있지만 우리는 그 때와 기한을 알 수 없으므로 현재 주어진 일을 즐겁게 기쁘게 하고 선을 행하면서 열심히 수고하라는 말씀입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오늘'이라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입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오늘, 현재에 충실해야 합니다. /아멘!/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 현재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며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④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또한 알았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돈이나 환경이나 인맥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집을 세우느냐 허무느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달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또 국가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할/


⑤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⑴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지난날의 삶을 계산하게 되는데 그 때 하나님은 과거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다시 보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비행기가 떨어졌을 때 블랙박스를 열어보면 조종사와 관제사 사이에 나누었던 대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어떻게 비행을 했고, 어느 고도에서 날다가 추락했는지 다 나오게 되어있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산 일생도 주님 앞에 가면 블랙박스를 열듯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되살아납니다. 지나간 것이라고 다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는 말입니다.
⑵해 아래 새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태아는 열 달이 되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그 정한 때는 변동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매일매일 기쁘게,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할/


⑥결론적으로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경외하며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이 마지막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 깨달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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