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 (습 3:14-20)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본문이 기록된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솔론몬 이후에 이스라엘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초대 여로보암 왕으로 시작하여 왕조가 9번 바뀌면서 19대인 호세아왕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대략 208년 왕조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남 왕국 유다는 초대 르호보암왕으로 시작하여 20대왕인 시드기아 왕을 끝으로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대략 344년 정도 왕조가 유지되었습니다.
이때 북 왕국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10지파들로 구성되었으며 19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단 한 사람도 선한 왕이 없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시작할 때부터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며 결국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왕조가 쉽게 무너지고 나라도 결국 먼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남 왕국 유다는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가 중심이 되었으며, 모두 20명의 왕이 다스리면서 그 중에 6명 정도는 상당히 훌륭하게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먼저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힘썼습니다. 율법 책을 찾아내어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 안식일을 지키려고 애를 썼고, 특히 산당을 제하거나 우상을 제하는데 앞장을 섰고 요시야 왕은 성전 수리를 명하며 유다 왕국의 신앙재건을 앞장섰던 대표적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왕들은 우상숭배와 사치 그리고 방종을 일삼았던 왕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남 왕국 유다를 배경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유다 왕국의 14번째로 왕위에 오른 므낫세 왕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다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등 온갖 우상을 다 모아놓고 함께 섬기도록 하였고, 매일 무당들을 불러다가 굿을 하고 점쟁이들을 불러서 점을 치는 악행을 했습니다. 더구나 몰록이라고 불리는 태양신에게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정치는 악정을 펼쳐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흘린 피가 예루살렘 길거리에 흘러 넘쳤다고 왕하21: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악정을 펼치던 므낫세가 죽고 그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는데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다가 왕이 된지 2년 만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암살 당하고 맙니다.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아이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신앙으로 먹고 마시고 자라며 꿈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이제 아몬의 아들 요시아가 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요시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 나라는 아버지 암몬 왕과 할아버지 므낫세 왕까지 거슬러 가서 거의 60여년 간 깊은 죄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1:4-7절과 3:1-4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종교적으로 심히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개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우상숭배가 다시 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며 오히려 율법을 범하였습니다. 백성들도 온전히 여호와를 떠나 배반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불의와 부정이 극심했습니다.
스바냐는 그 시대를 바라보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1:3절입니다.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그리고 1:6절입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주님의 진노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대노하셨고, 사람들은 물론이고 피조 세계 전체를 다 멸절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1:15절에 보면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분노'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에브라'는 '마치 화로 위의 주전자 물이 끓다가 뚜껑 너머로 끓어 넘치는 것처럼 화가 폭발하고 끓어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 더 참으실 수 없어서 화를 폭발하시는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스바냐라는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1:1절에 보면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족출신입니다. 그래서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 스바냐가 그 당시 상황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더 강열해 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 진노가 폭발할 것을 예감했습니다. 그 날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날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준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저버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믿/ 이런 사람들의 타락과 범죄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여호와의 날은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이 때 스바냐 선지자가 입을 열어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합니다 저들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내고 그 죄 값으로 저들이 가난해 질 것이며 적들이 쳐들어와 짓밟을 것이며 '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뜻 있는 사람들은 나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풀이 죽어 있었으며, 유대와 예루살렘을 물론이고 이웃민족들마저도 갈대아 사람들에게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메시지를 선지자를 통하여 듣고 백성들은 혼비백산하여 절망에 빠졌습니다.
스바냐의 예언은 '하나님의 날', '여호와의 날'이 주제입니다. 1-2장에서는 유다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절망과 애곡 속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3장에서 급 반전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시 스바냐를 부르시고 그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어둠 속에서 주어진 구원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초점은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들은 달라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미래는 아직도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
14절에 보면 멸망이 눈앞에 있는 백성들에게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외칩니다. 왜 스바냐는 멸망을 예언하다가 갑자기 기뻐하라고 외친 것일까요? 그것은 13절에 나오는 '남은 자'때문입니다. 모두가 타락해 우상숭배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남은 자들을 본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남은 자'들 즉 '믿음을 지키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희망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할/
13절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희망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 이 남은 사람들이 우리의 주요한 관심대상입니다. 모든 부패 속에서 아직도 정절을 지키고 있던 남을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거절했던 이 와중에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이 남은 자들, 이 남은 자들에게 허락하신 격려의 메시지가 바로 오늘의 이 본문입니다.
그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기가 죽어있는 이 사람들에게, 그러나 아직까지 뜻을 버리지 않는 이 사람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남은 자들이야말로 역사의 그루터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리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이 남은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할/
여러분, 엘리야의 외침을 보세요! 아합과 이세벨를 대적해서 싸운 그가 비통한 심령으로 부르짖기를 '하나님 들어 보십시오. 나 혼자 밖에 없습니다. 나 하나밖에 남지 아니했습니다. 내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저 갈멜산에서 멋지게 대결하여 이겼지만 보십시오. 아무도 하나님을 따르고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피곤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아니한 남은 자 칠천을 예비했다. 너는 결코 홀로가 아니다' /할/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이런 남은 자들을 갖고 계십니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역사 창조의 씨앗들입니다. 이들마저 기가 죽어버리면 정말, 정말 큰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기죽기 알맞은 때가 아닙니까?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회적인 모든 압박 아래서 우리는 모두 기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 옛날 스바냐에게 주었던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 아침 이렇게 다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악해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너희 남은 자들아 기죽지 말라'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이 공동 번역에서는 '기운을 내라'고 되어 있고, 리빙 바이블에서는 '힘을 내라!, 기죽지 말라'로 나와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달했던 선지자인 스바냐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좋은 이름을 가진 선지자를 통하여 이 좋은 메시지를 전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도 ◀우리 기죽지 말고 힘을 냅시다!▶라는 정했습니다. /할/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기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은 모두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씀들입니다. 아버지가 자기의 딸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노래할찌어다, 기쁘게 부를찌어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너무나도 기뻤고,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모두가 손에 태극기를 들고서 거리로 좇아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눈물을 흘리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그 때 교회에서는 시온의 딸들이 모여서 찬송을 목이매인 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광복에 대해서 우리는 전심으로 기뻐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15절에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당시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믿/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역사적인 절망의 순간에 남은 자들에게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하셨을까요?
①하나님이 '용서 하셨으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15).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큰 잘 못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골목에서 쪼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혼 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낙심이 되고 기가 죽어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집에서 나와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얘야, 아빠가 다 용서한단다.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네' 이 소리를 듣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어린 아이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와가 너희 형벌을 제거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이 네 형벌을 제거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일어나라! 하나님이 네 죄를 사하셨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형벌'은 '심판'을 의미하고, '제하였고'는 '뒤집어 엎어버리다, 완전히 제거해 버리다'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면제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위축 될 때가 죄를 범했을 때, 죄의식이 해결되지 않을 때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죄의식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삶의 의욕과 용기를 상실합니다. 그러다가 죄 사함의 확신을 갖게 되면 기가 살아납니다. 새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이유가 죄 사함의 확신 때문입니다. /할/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하나님은 유다의 모든 형벌을 제하셨습니다. 제하셨단 말은 '유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 용서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하루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분장을 하면서 갖가지 화장품을 바르고 있는데 파리가 날아와서 자꾸 그의 얼굴에 붙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손으로 쫓아내면 날아갔다가 또 다시 날아와서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니까 급기야 화가 난 그는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때마침 파리는 책상 위에 얌전히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리채를 들고서 내려치려다가 생각이 바뀌고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의아스럽게 여기면서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게. 파리를 잡으러 갔으면 파리를 잡아야지 왜 그냥 돌아오는가?' 그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 놈이 말이야. 자기의 두 손으로 싹싹 빌면서 살려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애걸하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어. 용서해 주기로 했지'
파리도 잘못했다고 두 손으로 싹싹 비니까 채플린도 죽이지 않고 용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랑에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왜 용서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뿐만 아니고 우리에게 더 큰복까지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다윗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는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살인죄까지 범했습니다.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더 더했으니까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기억조차도 아니하셨습니다. 그 엄청난 죄를 지은 다윗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서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큰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고 다윗이 죽고 난 뒤 다윗과 밧세바의 소생인 솔로몬을 다윗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때에 따라서 시온의 딸인 우리들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두 손들고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를 회복케 해 주십니다. 오히려 더 큰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오래 전에 어느 목사님이 통일교에 엮이고 말았습니다. 이십만 원이면 성지순례와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여행을 주선한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성지를 구경하시고 뉴욕도 가시고, 워싱턴에도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모임이 통일교에서 주선한 모임임을 뒤늦게 알게 되어 후회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 통일교에서 엽서가 날아왔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모임이 있으니 나와 주십시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나갈 수 없다고 했더니, 어느 날 어떤 잠바 차림을 한 청년 한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통일교의 돈으로 세계여행을 다 했다는 그 사실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꼼짝없이 그 통일교가 주선한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다음 모임에 또 다음 모임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끌려 다니시면서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만 참석하고 다음부터는 안 하겠다고 말씀했더니 그 잠바차림의 청년이 지난 과거의 모든 사실들을 공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또 하는 수없이 계속해서 쫓아 다녔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목사님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정면 돌파하기로 하고 그 교단 총회와 산하에 속해있던 모든 목사님들 앞에서 자기가 통일교와 관련되어 지냈던 과거의 모든 사실들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목사직에서 쫓아내어도 좋습니다. 교단에서 어떤 징계를 주어도 다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고 나니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하고 개운하던지 모르겠더랍니다.
어느 날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나갈 수 없노라고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잠바차림의 그 청년이 또 나타나서 '만약 우리말을 듣지 않겠다면 과거의 사실들을 다 공개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그 목사님이 죄를 다 고백하고 용서받은 후였으므로 '고발하려면 해라 이놈아 이제 나는 자유다'라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죽지 말고 힘을 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해졌으며 죄 사함 후에 지은 모든 죄도 자백하기만 하면 다 용서 받는 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사1: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또 엡1:7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②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17).
15절에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성경에 보면 야곱이 자기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막 도망을 갑니다. 도망을 가다가 해가 저물었습니다. 그 인적이 끊어진 쓸쓸하고 외로운 황야의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돌을 하나 취해서 그 돌을 베개삼아 잠을 청하게 됩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멀리 들판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그 꿈속에서 천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광경을 봅니다. 깜짝 놀라서 잠을 깨었습니다. 그때 이 야곱이 깨달은 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쯤 도망 왔으면 형님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도 할아버지가 믿었던 그 하나님도 없을 줄 알았는데 바로 자기가 돌을 베고 누웠던 그 현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자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누웠던 그 자리에 돌을 쌓고 '벧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도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일터에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믿/
그렇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가 그 일을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거나 누군가 해결해줄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한 어려운 일 때문에 기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국가의 멸망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의 능력으로는 그 상황을 극복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아는 유대인들은 힘이 빠지고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들을 도우시기에 충분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절망적인 순간에도 힘이 빠지거나 기가 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남은 자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라는 약속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절망 가운데 빠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힘을 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울 때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수1:9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또 사41:10절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믿/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확신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마28:20절에 보면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남은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 주님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하나를 믿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힘이 빠지고 기가 죽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힘이 납니다.
아람의 군대가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도단 성을 에워 쌓습니다. 그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아침에 일어나 도단성을 둘러싸고 있는 아람의 군대를 보고 '아하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까?' 그때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리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영안을 열어 보여 주는데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서 있음을 보았습니다. /할/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은 그 유명한 '헤밍웨이'가 쓴 작품입니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마지막에 엽총을 가지고 자살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세계적인 활동가로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하고, 1차 세계 대전 때도 이태리 전선에 참여했던 아주 활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속에 일어나는 허무함, 외로움, 고독감,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서 그는 마지막에 엽총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유서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 자기의 마지막 절망적인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고독감 때문에 결국 절망하고 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낙담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때로는 절망스러운 일도 있고 낙심되는 일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섭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추진하다가 절망감 속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하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자기 자신을 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런 절망감에 빠져있는 루터에게 그의 아내가 까만 소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면서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당신이 소복을 입고 나타났느냐?'고 물자, 그 부인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소복을 입고 당신 앞에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어떻게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죽었다는 말이냐?'고 하니까 그 아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죽지 않았으면 천하의 루터가 이렇게 기진 맥진하고 절망감에 빠져 있을 수 있느냐. 나는 당신 모습을 보니까 하나님이 죽은 줄 알고 이렇게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고 말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루터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 지어 불렀던 찬송가가 384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입니다. 이 유명한 찬송가가 결국 종교 개혁의 주제가가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결국 루터는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할/
여러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여러분! 환경을 보지말고 주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어떤 환경 속에 있더라도 기죽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아멘!/
③하나님이 구원하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17).
17절에 보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이 구원은 메시아가 가져다주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는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의 피의 공로로 우리가 새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아멘!/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질병 가운데서도 구원하시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영혼의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구원을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좁게는 죄 문제를 해결 받는 영혼의 구원이 있고, 넓게는 내 삶 속에서 건지심을 받는 삶의 구원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된 사건도 구원이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건도 구원이고, 가난에서 해방되는 것도 일종의 구원입니다.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이 술을 끊고 줄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고, 도박을 즐기던 사람이 도박을 끊는 것도 구원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남편이 변화되고 자식이 변화되어지는 것도 구원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 받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도 구원입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기도의 응답도 일종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한번 영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을 구원하시고 끝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나를 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믿/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나를 끌어올리십니다.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깊은 수렁에서 건져내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을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도 건져내셨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그들을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넣겠다고 할 때에 이 세 친구는 '만일 그럴 것이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단3:17)
그렇습니다. 한번 죄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혼의 구원 이후에 계속해서 구원을 누리며 살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1:10절에서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 말했습니다. 시3:8절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또 시37:39절에서도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할/
한번 건지심을 받은 사람은 지금도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손으로 건짐을 받은 사람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또 나를 건지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과거에 나를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도 나를 구원하실 수 있으며 앞으로도 나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은 광야 생활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만났던 여러 가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죽지 마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모든 괴로움에서 여러분을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렘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
④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17).
주님은 나를 인하여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보통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가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풀어 썼습니다. '그가 너를 맞이하여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 뛰시는 모습이 마치 명절 잔치 때와도 같으리라'
어느 분은 외동아들이었는데 결혼해서 아들을 셋을 낳았습니다. 자식들이 얼마나 예쁜지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걸어가는 법이 없이 항상 뛰어 갔다고 합니다. 이런 심정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어떤 집사님 댁에 목사님이 심방을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기가 오줌이 마렵다고 하니까 집사님이 밥그릇을 가져다 받더랍니다. 그 여 집사님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사랑하는 자식이 눈 오줌인데 어떠냐'고 하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이렇게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여기에다 비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시27:10절에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또 사62:5절에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던 날 얼마나 기뻐하던가요?
왜 주님이 나를 인하여 기뻐하실 까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62:4절에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여기 '헵시바'라는 말은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만이 하나님의 기쁨이 대상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로 인하여 기뻐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별 볼 일없는 사람들이고 모순이 많아도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시며 기뻐하며 즐거워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요일4:8말씀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여기 '잠담히 사랑하신다'는 말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소리를 내어 요란하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집에다 현수막을 걸어놓고 확성기를 동원하고 포스터를 붙이며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요란을 떨지 않아도 부모님은 깊게 자녀를 사랑합니다. /아멘 입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잠잠한 사랑을 간직하고 이웃에게도 베풀어야 합니다. 마6:1-4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아멘!/
⑤역전인생을 보장하셨으니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20).
'내가 그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지금 망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절망 중에 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모은다. 이 땅에서 너희들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지금은 이웃 나라에게 짓밟히지만 그 때에는 너희들은 온 천하 만민 앞에서 칭찬과 명성들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입니다. 자식문제로 브닌나에게 고통 당하던 한나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사무엘을 허락하셔서 브닌나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에서의 칼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던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보다 더 큰 민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하자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는 기적을 만드셨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은 다윗을 점점 강성하게 하셔서 사울의 왕관을 다윗에게 씌워주셨습니다.
▶사단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주님을 부활하게 하셔서 사단의 권세를 깨는 역전 드라마를 펼치셨습니다. /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개입하셔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지금 힘듭니까? 낙심이 됩니까? 힘이 빠집니까? 기가 죽었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 전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기죽지 말고, 힘을 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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