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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지혜 있는 자가 되라! (엡 5:15-21)

by 【고동엽】 2022. 2. 7.

오직 지혜 있는 자가 되라! (엡 5:15-21)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시간 속에서 살다가 마침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죽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모두 각자가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50년, 어떤 사람은 70년의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90년이 넘는 시간을 배정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 받아온 시간만큼 세상에서 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모두 죽습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들은 죽고 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너는 내가 준 시간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왔느냐?' 분명하게 물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시간을 받은 청지기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소중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지난날들을 바로 살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는 다시 한 번 새롭게 결단하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제목소개!▶

 

1. 오직 지혜 있는 자로 살아라!(15)

 

여기 '그런즉'은 접속사로써, 앞 절 1-5절은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고, 6-14절까지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1-14절까지의 전체를 받아서 오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빛의 자녀가 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라'는 교훈인데, 15절에서 바울은 '잘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오직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 오직은 '힘써, 애써 하라는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돈도 필요하고, 재능도 필요하고, 학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들이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지혜, 슬기라고 지어서 세상을 지혜롭게 살고, 슬기롭게 살라고 소원하고 있습니다.
지혜라는 말은 우리말로 슬기입니다. 사전에 보면 슬기란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달아 밝히고 시비의 선악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단12: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여기 '지혜 있는 자'는 바로 구원의 진리를 믿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고전1:30)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입니다.
그는 자기 힘이 아닌 성령의 감동을 받아 거듭남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가 된 자입니다. 그는 영생과 영벌의 진리를 믿는 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끝날(종말)과 우주역사의 종말의 진리를 깨닫는 자입니다. /할/


▶성경에는 지혜에 관한 말씀이 325회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답니다.
잠1: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시111: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마7:24-25절에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했습니다. 마25:1-13절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마10:16절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비들기는 순결의 영이신 성령님을 의미하고, 뱀의 지혜는 에덴동산에 하와가 뱀의 감언이설을 듣고 유혹이 되어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뱀이 하와의 마음을 사로잡아 감동시켰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녹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 '지혜롭게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말과 동일어입니다.

▶그런데 지혜를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⑴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할 때 얻어집니다. 잠9: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⑵성경을 많이 읽고 들으면 지혜를 얻습니다. 딤후3:15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⑶하나님께 구하면 주십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5절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실천한다'는 말로 원어에서는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가르침인줄 믿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주의하여' 여기 '주의하라'는 말은 '정확하게'라는 뜻으로 ▶주어진 직분의 의무(사명)를 잘 감당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 ▶신앙의 행로를 갈 때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단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많은 함정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벧전5: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라는 의미도 그 속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행로는 우리 하나님이 주관하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성도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지혜롭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며 사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2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의 사랑으로 죄도 용서받았고, 허물도 사함 받았고, 영생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알고 체험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배를 게으르게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식들은 그 부모에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전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할/
우리가 지혜롭게 살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지혜롭게 삽시다. 지혜롭게 사는 첫 번째 비결은 2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귀한 자들입니다. 왜? 나 때문에 하나님이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


2. 악한 삶을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3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또 4절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으며 7절에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악한 불 신앙의 삶을 멀리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빚의 자녀같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두움을 밝히고 썩어진 곳에 방부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날들을 지혜롭게 사셨습니까? 못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지혜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지혜란 이해력, 판단력, 결단력을 포함한 품성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바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단할 수가 있습니다.
대통령도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를 바로 합니다. 3부 요인도 지도자도 우리 모두가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 지혜는 누가 주십니까? 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지혜로워야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세상살이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 속에서 지혜롭게 살라고 하십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아끼고, 잘 관리하며 사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16).

 

세월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세월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고 말 것입니다. 세월은 우리가 그렇게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다 모래성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서유석이란 가수는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나요' 노래했습니다. 정말 이 노랫말대로 가는 세월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힘이 좋은 항우장사도 안 되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도 안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돈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아껴서 믿음의 생활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낭비는 왜 생깁니까?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낭비되는 시간도 많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면 그 시간들을 그냥 허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무료하게 낮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루해를 그냥 목적 없이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간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은 '카이로스'라는 말로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로 정하신 시간'이 카이로스입니다. 그리고 아끼라는 말은 '엑사골조메노'라는 말로서 '뜻 있는 시간을 사들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낭비되는 시간이 없게 하라'는 뜻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시간을 아끼라'는 뜻입니다. /아멘!/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새벽에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고 저녁에 잠자리에서 기도로 마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날 하루를 엉망으로 살지는 않습니다.
하루를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하면서 맡기고, 직장으로 나가 일하고, 일터로 나가서 일을 시작하는 생활,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생활,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복된 생활입니다.
그래도 새벽 기도가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이 새벽기도가 가장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 좋은 시간입니다. 모두들 잠자고 있을 때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새벽의 그 시원한 공기를 쏘이며 교회로 가다 보면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작이 성스러워야 합니다. 그래야 진행도 성스럽고, 과정도 성스럽고, 생활도 성스러운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사람을 만나면 첫마디를 '굿 모닝'으로 시작합니다. '좋은 아침' 얼마나 신선하고 산뜻한 첫 대화입니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뱉는 첫마디가 '굿 모닝'과는 그 뜻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첫 번째 하는 것은 하품입니다. 그 다음은 기지개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은 '아이, 죽겠다.'입니다. 굿 모닝과는 그 뜻이 비교가 되질 않고,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철학이 다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관리할 책임도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선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악한데 낭비할 때가 더 많습니다. 칼뱅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내라'는 뜻으로 본문을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쓸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쓸 수도 있습니다. 대게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쓰자고 하면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지만 내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쓰는 데는 관대하고 말이 없습니다. 향락을 위해 쓰는 시간도 많지만 하나님을 위해 쓰는 시간은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잘못된 시간들을 고치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⑴시간은 생명같이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는 시간은 생명과 같이 귀중합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서 시간 속에서 살다가 시간과 더불어 죽습니다.
길을 가면서 돈을 흘리면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귀중품을 버리고 가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도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돈을 흘리고 가는 사람이나 귀중품을 버리고 가는 사람보다 더욱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은 다시 벌 수 있습니다. 귀중품은 다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한번 지나간 세월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껴서 헛되이 낭비 말아야 합니다. /할/
⑵일할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농사를 일일이 다 손으로 지을 때 일할 것은 많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동트기 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여 저녁 늦게까지 농사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집에 돌아와서 밥을 짓고 호롱불 밑에서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고,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남은 때가 점점 단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⑶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현실과 여건이 얼마든지 세월을 허송하고 죄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들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온통 세상은 향락 문화로 깔려 있습니다. 인터넷에 음란 문화는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놀고 먹고 즐기기로 한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런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삼고 있습니다. 악한 세대에 악한 세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다.
바울은 이런 악한 일에 젊음을 보내지 말고 선한 일에, 하나님의 일에 세월을 아끼라고 가르칩니다.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쟌 록펠러'는 세 가지의 기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첫 번째 그는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일당 4센트의 적은 돈을 받고 땡볕에서 하루 종일 감자 캐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자수성가해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돈을 남을 위해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일평생 동안 자선사업에 희사한 돈이 7억 5000만 달러,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서 1조에 가까운 돈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금액이었겠습니까? 또 그의 후손들과 자식들이 함께 자선사업에 쾌적한 돈의 액수를 모두 합치면 25억 달러가 넘습니다. 아무튼 그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서 가장 많은 돈을 쓴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그 기록을 깬 사람이 없습니다.
세 번째 건강하게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 때 건강이 아주 악화되었습니다. 의사가 얼마 살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루에 비스킷 한 조각과 우유 한 컵이 다였습니다. 그런 그가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그의 치아는 하나도 썩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록펠러는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남을 위해서 가장 많은 돈을 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절대로 작은 돈이라고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단골로 가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자기를 위해서 봉사하는 종업원에게 언제나 15센트의 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하고 나서 팁을 주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더니 5센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5센트만 팁을 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작은 팁에 불만이 많았던 종업원은 결국 록펠러에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록펠러씨, 내가 만일 당신 같은 부자라면 그까짓 10센트 때문에 쩨쩨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록펠러는 종업원을 점잖게 타일렀다고 합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업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네. 부자인 나도 10센트를 아끼는데 어떻게 자네가 10센트를 하찮게 여기는가?' /할/ 아낄 것은 아껴야 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 모두는 지난날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해야 합니다.
⑴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정말 믿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실히 믿습니까? 만약 믿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그 지난 세월까지 속상해하며 더 많이 더 크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⑵우리가 진정한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았는가를 뒤돌아 봐야겠습니다.
⑶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17절에서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즉 어리석게 살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 우리가 수지맞습니다(시37:4). /아멘!/
⑷우리가 '신앙생활, 기도생활, 봉사 생활'을 게으르게 했다면 저도 여러분들도 같이 그 세월을 속량해 내어 그때 못한 것까지 더 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권면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지난날에 못했다고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새롭게 결단하고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지혜롭게 세월을 아끼려면 '지나간 과거를 반성해야 합니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하루하루 신앙 안에서 바르게 살아야 하고, 끊임없이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와 영원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 죽어버리고 끝난다면 신앙생활이고 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영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을 끊임없이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


4. 지혜로운 자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자입니다(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내 멋대로 살아가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라고 성경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14: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감정대로,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기감정대로, 본능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살전4: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5. 지혜로운 자의 삶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자입니다(18).

 

먼저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에베소라는 도시는 번화한 도시로, 방탕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언제나 방탕과 향락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또 에베소는 술 신인 '바커스'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술 취한 체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것을 일종의 자랑으로 삼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술 마시기 대회를 해마다 열었다'고 합니다. 그 때 너무 많이 마셔서 죽은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본문의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술 마시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술 취함은 방탕한 일이요, 아주 해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술은 신체에 해롭습니다. 간이 나빠집니다. 우리 아저씨가 지금 고생하고 있습니다. 술은 정신적인 타락과 지적 감퇴를 가져옵니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분별력이 없어지고 쭉 쳐지고 나중에는 정신이상자가 됩니다.
중국 '이 태백'이가 술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다가 마지막에는 물에 비친 달을 잡는다고 물에 뛰어 들어갔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담대함을 얻습니다. 평상시 조용하던 사람도 시끄러워지고, 평상시 소심하던 사람이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고 막 퍼붓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고백할 때나, 섭섭한 말을 할 때 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닙니다. 말을 횡설수설합니다.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합니다. 행동도 정상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점잖게 옷 입은 사람이 전신주에 소변을 보기도 합니다.
의인 노아도 술을 먹고 실수를 했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덥다고 옷을 훌렁 다 벗어버리고 드러누워 잠을 잤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아는 자기 아들 함을 저주하는 일이 버려졌습니다.
▶술 취한 사람에게 3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는 여우의 단계입니다. 술 취하면 여우처럼 눈 꼬리가 올라가고 말이 많아지고 싸늘해집니다.
2단계는 늑대의 단계로 사나워지고 덤비고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더 취하면 돼지처럼 아무에서나 뒹굴고 배설하고 추한 행동을 서슴지 않게 하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바울은 본문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이 말씀은 술 취하다 보면 방탕한 생활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방탕이란 뜻은 '저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방탕생활을 하게 되면 돈이 저축될 리가 없고 건강이 저축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탕히 패가망신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본문에서 '성령과 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취합니다. 술의 맛은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내 정신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술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술의 힘이고 위력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술은 내 것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때 나는 술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조종을 받게 됩니다. 그때는 내 정신이 내 것이 아니고 내 의지가 내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는 의미 술에게 장악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점잖던 분도 실수를 하게 되고 말이 많아지게 되고 혼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술에 충만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충만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술에 취한 것과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의 지배를 받듯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때는 내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을 성령이 주관하여 나를 완전히 성령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성령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맨 정신의 인간이 의지나 중심은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연약하고 나약하고 무능하고 그래서 실수하고 조금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조그만 일에 울고, 웃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또 조그만 이해타산 앞에서 다투고 갈등하고 얼굴 붉히고 소화도 못하고 안절부절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내 속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지 못하고 순전히 보잘것없는 내 힘만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효과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 충만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만의 개념은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이때가 가장 힘이 있을 때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배경이나 빽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배경 없고 빽 없는 사람은 항상 기가 죽고 배경 있는 사람은 항상 큰소리칩니다. 성령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둘도 없는 배경이요 빽입니다.
그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거기서 힘이 주어지고 용기가 주어지고 자신감이 주어집니다. 성경에 모든 인물들이 모두 이 성령의 배경 때문에 한 시대의 인물들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효과 있게 선용하려고 하면 성령의 힘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의 사건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은 한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 받아야 하는 사건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옥상에 있는 물탱크와 같습니다. 물탱크는 쓰면 즉시 채워집니다. 성령 충만도 그런 이치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할/

 

6.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자입니다(19).

 

여기 '시'는 보통 구약의 시편을 가리키고, '찬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즉 찬송가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일반적인 복음성가를 말합니다. 찬송은 상향선 이고, 복음성가는 하향선 입니다. 찬송은 주께로 온 것이기에 하늘로 올라가고 복음송가는 내려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전체가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천국도 찬양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고, 축도를 받습니다. 이 5가지 요소가 기본입니다. 그 중에 찬송은 예배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미와 신령한 노래는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찬미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고전14:15절(하)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했으며, 히13: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은 기쁨과 평안과 능력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에게도 노래가 있고, 성령 충만히 받은 사람에게도 노래가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도 배짱이 생기고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도 배짱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나 배짱은 술 취한 사람들이 부르는 것과는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신령한 노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노래는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해야 한다고 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화답하며'란 '서로 노래하며' 이런 뜻으로 화답은 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시대는 대화와 조화와 화답이 모자랍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를 솔로라고 말합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를 합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리와 소리의 조화를 화음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합창의 경우 음의 조화, 박자의 조화, 강약의 조화, 등이 절묘하게 이루어졌을 때 수준 높은 합창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가대나 합창대원들은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서로 화답하며 조화를 잘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좋은 가문에 좋은 조건을 가진 두 남녀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3년도 못 채우고 헤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격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혼사유치곤 황당합니다. 본래 성격이라는 것은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격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다르기 마련입니다. 성격뿐만 아니라 키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성도, 부모도 다르고 손톱 모양도 다르고 버릇도 다 다릅니다.
같은 사람, 같은 성격, 같은 얼굴끼리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3년도 못되어 헤어진 그들은 성격이 맞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은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아내는 토스트나 양식을 좋아합니다. 남편이 된장찌개를 포기하거나 아내가 양식을 포기하는 것이 조화가 아닙니다. 하루는 한식, 하루는 양식을 하는 것이 조화입니다. 된장찌개 먹는 날은 아내가 참고, 양식 먹는 날은 남편이 참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 조화가 깨지면 성격도 취미도 안 맞는다며 티격태격 시비가 붙게 마련입니다. '당신은 촌스럽게 된장찌개를 좋아하느냐? 나는 된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데 수준을 높이라' '당신은 국산 곱창에 왜 양식만 선호하느냐? 네 뱃속엔 된장이 안 들었느냐? 잘난 체 하지 말라 창자 속 들여다보면 다 똑같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공격하다보면 감정의 골이 깊어져 등을 돌리게 됩니다.
결혼이란 맞지 않는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를 맞춰 나가는 삶의 조화이며 지혜입니다. /할/아멘!/
오늘 본문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찬양하며 사는 사람들이 삶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께 누가 되고 영광이 가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노래하고 찬송하며 감사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찬양은 우리의 마음 문이 열려지게 합니다. 성경 이곳, 저곳을 보면 찬양하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이 인간의 삶에 매우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체 조직을 보면 그 근원이 마음입니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출발합니다. 여기서 생각이 나오고 기도와 노래와 감사와 기쁨이 나옵니다.
동시에 여기서 분노가 유발되고 시비가 조성되고 갈등과 원망이 생겨납니다. 마음이 정상이면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이 나오고 여기가 비정상이 되면 갈등과 원망과 시비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정상이 되고 건강해야 합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이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이 마음을 건강하게 해 주는 가장 좋은 약이 바로 찬양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하나님을 모실 수가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을 모으시기를 바랍니다. /할/

 

7. 지혜로운 자는 항상 감사하며 사는 자입니다(20).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성령 충만에 외적 표현입니다. 이런 감사를 누가 드렸는가? 욥이 드렸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열 아들 딸, 그 많은 재산도, 건강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강지처도 병신이라고 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욥은 감사를 드립니다.
욥1:21-22절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불평은 마귀가 좋아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감사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8. 지혜로운 자는 이웃과의 화목을 이루며 사는 자입니다(21).

 

'피차 복종하라' 이 말은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말고 나 자신이 솔선해서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성도들끼리, 이웃끼리, 서로를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 존중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옵니다.
요일4: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은 세월을 뒤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하라고 말합니다. 지혜롭게 살지 못한다면 지금부터 지혜롭게 사십시다.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을 위하여 사십시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의 결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주신 생애를 잘 관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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