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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 13:17-22)

by 【고동엽】 2022. 2. 7.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 13:17-22)

 

애굽의 포악한 압정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삶의 보람도 없고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 날 그 날을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보시고 호렙산에서 양몰이를 하는 모세를 불러내어 애굽의 왕 바로 왕 앞에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보내줄 것을 명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도 오랜 세월 동안 일을 부리던 이스라엘을 하루아침에 내어주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10가지 재앙'을 만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급기야 '장자'를 잃은 비참한 지경에 처하고서야 바로가 손을 들고 저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양의 피가 문지방과 좌우 설주에 표시되지 않은 집은 사망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같이 나라 전역에 내린 엄청난 재앙에 바로 왕은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 '네 백성을 이끌고 이 땅에서 속히 나가라, 양도 소도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몽땅 몰아가고, 각종 금은패물과 의복을 원하는 대로 구하여 가지고 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감격적인 해방의 기쁨을 안고 애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 되는 해, 그 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이스라엘)의 가족 70명이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한 지 430년의 세월이 흘러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성인 남자만 60만 명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출12:23-38).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다음 장면 즉, 10가지 재앙을 다 치르고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주시리라고 언약한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를 향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장장 40년이 걸린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행진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보호의 역할을 했습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으므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향해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구약에는 세 종류의 기둥이 나옵니다.
⑴소금기둥(창19:26)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하나님은 롯과 그 가정만을 구원에 은총을 주셨는데 그 조건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식구들이 이 조건을 끝까지 이행했지만 그러나 롯의 부인은 세상이 그리워서 뒤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전진입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아멘!/
⑵돌기둥(창28:18)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그의 아비 이삭을 속이다가 도망쳐 먼 곳에 있는 외갓집 하란 땅을 향하여 가는 도중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하룻밤을 노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하늘과 땅에 닿는 사닥다리에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축복하시는 음성을 듣고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서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세워 기둥을 만들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의 돌기둥은 새 출발의 순간입니다. 자기중심적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로 전환하는 순간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결단해야할 순간이 한번은 옵니다. 진실과 허상의 싸움에서 선과 악의 자리에서 결단해야 할 순간이 옵니다. 선택의 순간은 지금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여 새 출발하는 돌기둥의 귀중한 순간부터 시작되어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⑶본문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입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기둥이요,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기둥입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곳은 심한 바람으로 인한 모래 이동으로 말미암아 일정한 길이 없어 여행자들이 헤매다가 길을 잃게 됩니다. 광야는 물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때로는 도적의 무리도 많습니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길을 인도할 보호자를 만나야합니다. 여러분 인생 길도 어떤 의미로는 광야의 길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행로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보호자를 만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보호자를 부모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스승으로, 선배로, 남편으로, 아내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든 인간의 선견을 불안전하고 또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고 인간의 통찰력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의 결정은 늘 실수가 동반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안전한 보호자가 됩니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믿/

 

▶당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①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최신무기로 무장하여 질풍같이 추격해 온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②빵과 물의 문제입니다. 제주도를 여자, 바람, 돌 삼다의 지방이라고 합니다만 광야에도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길이 없고, 먹고 마실 것이 없고, 기쁨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할/
③백성들의 불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순간, 순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또 하늘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었건만 일부 몰지각한 백성들을 중심으로 한 불신세력(잡족들)이 형성되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향하여 고함을 치고 돌을 던지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다투어서는 안 될 대상이 있습니다.
⑴하나님과 다투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과 다툰다는 것은 불신앙과 불순종을 의미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란을 가지고 제아무리 바위 돌을 친다고 해도 바위는 흔들리지 않고 끄떡도 않습니다. 아무리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보다 힘이 없겠습니까? 엄청난 착각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1세들은 하나님과 다투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⑵주의 종들과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유익이 없습니다. 성경은 '너희 영혼을 인도하는 목자'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인도하는 목자와 다투면 영혼에 손해가 옵니다. 히13: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⑶이웃 형제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 못하면 주님도 사랑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 형제를 사랑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똑 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로를 '먼 길'로 가게 했습니다(17).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떠나긴 했지만 어느 곳으로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알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이 가야할 방향을 결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바로가 백성들을 보낸 후에 불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아니 하셨으니..." 지름길은 있습니다. 그 길은 불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까운 길을 제쳐 두고 멀고 험한 광야 길로 그들은 인도하셨습니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면 보름정도 걸리는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현재 애굽과 팔레스틴 간의 철도를 따라 기차로 달리면 세 시간 정도, 비행기로는 1시간 정도의 가까운 길이 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는 그 길을 제쳐놓으시고 광야 길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①왜 하나님께서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인도하셨을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불레셋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가까운 길이 있었지만 불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17).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고 사는 굉장한 호전적인 민족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60만 백성이 그 땅을 통과한다면 호전성이 강한 그들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금방 애굽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쟁의 준비가 없는 오합지졸입니다. 그러다 보면 불레셋이 무서워 애굽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멀지만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55:8-9절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 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때로는 너무나 원하는 것이 늦어지고 가야 할 길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한 것 같지만, 그러나 돌아서 가고, 늦게 가고, 천천히 이루어져도,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추구해야 하겠고, 그것이 더 선하고 좋고 아름다운 것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연단 하시고 훈련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벼락부자는 돈 귀한 줄을 모르고 가치 있게 쓸 줄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손에 쥔 재물은 땀 흘려 모은 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졸부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하루아침에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그렇게 쉽게 얻은 출세와 성공은 하루 아침에 쉽게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간이나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귀한 선물을 아무 고생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받아 보십시오,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겠습니까? 졸부와 같이 낭비하고 말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받았을 때에 그들이 그렇게 감격하고 기뻐했던 것은 광야 40년의 고된 행군이 있었기에 가나안땅이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은 훈련과 연단의 기간이었고 강한 민족으로 태어나는 축복의 세월이었습니다. /믿/

 

②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다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때로는 손해와 아픔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뜻하지 않게 손해를 보게 되고 아픔을 당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욥은 열 명의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심지어 그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아내마저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이처럼 큰 고통과 아픔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욥은 '자기가 왜 이렇게 괴로움을 만나야 하는지? 이렇게 손해를 보아야 하는지? 이렇게 아픔을 당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욥23:10절에 말씀하였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외쳤습니다.
욥은 이 아픔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전보다 갑절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문제와 아픔과 손해 같은 일들이 손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좋고 아름다운 축복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아멘!/
또한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요셉이 죄가 있어서 감옥에 들어 간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얄밉고 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파는 것은 형들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큰 실수였습니다. 그리고 요셉 자신으로 볼 때에도 정직하게 살고 바르게 산 것 밖에 없는데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미련하고 약하여 행한 일을 통해서 도리어 전화위복으로 바꾸어 주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창50:30절에 요셉은 형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 갈 때에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바로 살아가려고 애쓰는데도 불구하고 실패를 하고 아픔을 당하고 그래서 낙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신 것이 아니고, 그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둘입니다. 하나는 지름길이 있었고, 또 하나는 돌아서 가는 먼 길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직행하면 4-5일 밖에 걸리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홍해를 건너 광야를 횡단하는 길인데 매우 멀고 험한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멀고 험한 그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③'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 몇 가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⑴인생이 걷고 있는 길은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생 길, 인생사라는 게 자기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불행해 집니다. 잘 살고 싶은데 못살게 되고, 건강하고 싶은데 병들어 고통을 받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생각대로 뜻대로 안됩니다. 이 사실을 렘10:23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 즉 하나님께서 걸음을 지도하시리라는 것입니다.
⑵연단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쉽게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나 능력이나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의 힘으로 성공하면 잘 살게 될 줄로 오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메시아민족 즉 선민으로 연단을 시켰습니다. 훈련과 연단은 하루아침에 되어 지지 않습니다. 멀고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것, 그것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금방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주석가 '메투헨리'는 '우리의 신앙의 여정이 끝날 때,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⑶하나님의 깊은 뜻이 그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만일 가까운 길로 가게 되면 블레셋 땅을 통과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당시 싸움 잘 하기로 이름난 족속입니다. 그런 반면 이스라엘은 오합지졸입니다. 싸움을 할 줄 모릅니다. 블레셋과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갑자기 출애굽을 하자마자 전쟁이 벌어지면 이스라엘은 크게 당황하고 실망하여 애굽으로 되돌아갈 확률이 더 많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와 배려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아가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돌아가게 하시고, 기다리게도 하시고, 어둡게도 하시고, 고독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속에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답게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려는 배려입니다. /믿/아멘!/

 

2. 하나님께서 이렇게 멀고도 험한 '광야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신8: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고난과 고통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 40년의 고난의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며 하나님이 가게 하신 길입니다. 이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⑴'너를 낮추시며' 그렇습니다. 인생들의 교만을 꺾고 겸손히 낮추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들어 축복하십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에게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먼저 자기가 자아를 죽이고 교만을 버리고 철저히 낮아 져야 합니다. /아멘!/
고난은 교만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며 낮아지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루십니다.
⑵'너를 시험하사'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을 시험해 보십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은 믿음의 분량을 보시는 것입니다. 순종의 유무를 보시는 시험입니다. 독자 이삭까지도 제물로 드린 아브라함의 그 신앙을 우리들에게도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
⑶'마음이 어떠한지' 사람의 마음은 고난을 받게 되면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고난에 임하는 그 마음 자세가 어떠했습니까? 한마디로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들은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 왔을 때 10명이 그 땅을 악평하는 소리를 듣고 다 울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⑷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태도를 시험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 만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고 순종하여 따라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믿/
그렇습니다.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시며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겸손과 순종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겸손해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⑹시험에 합격한 자는 축복을 받습니다. 신8:16절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3.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21-22).

 

모세도 애굽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애굽 지역의 지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는 '어디 어디로 가라'고 모세에게 지시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지식이 끝났을 때, 그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름기둥과 불기둥, 두 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미가서2:13절에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하나님은 당시 이스라엘의 안내자요 보호자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안내자요 보호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고달프고 망망한 인생 길에 하나님의 안내와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
안내자만 든든하면 마음놓고 길을 가도 걱정이 없습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표시판을 보고 길을 갑니다.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글자 몇 자 써서 세워둔 안내판도 길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인도와 안내와 보호가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이 힘을 받았던 미국 여자 맹인 찬송 작가 '제인 크로스비'는 찬송가 434장에서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노래했습니다. /할/
21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 하사"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몰아 낸 후 그들끼리만 가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행하시며 인도하시고, 모든 위험과 도전을 막아주시겠다는 의지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입니다. 가롯 유다를 앞세워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횃불과 검을 가지고 들이닥쳤습니다. 기도하다가 졸지에 당한 일이었기에 함께 있던 제자들은 하나 같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앞으로 나아가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 숨막히는 순간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내가 예수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들은 손대지 마라 그리고 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분이 광야로 인도하시고 우리 앞서 향하여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낮에 행군할 때, 구름기둥이 앞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기둥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기둥이 머무는 곳에서는 저들이 장막을 치고 쉬었습니다. 그러니까 움직일 때도, 쉴 때도 하나님의 기둥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는 낮에는 구름기둥,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때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저의 아는 친구 하나는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대형트럭에 부딪쳐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하는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는 순간에 끔직한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어!' 하는 순간의 인생이요, 찰라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믿/
22절을 보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평지를 지날 때도 험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낮에도 밤에도 이스라엘이 보채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신경질을 내고 손에 돌을 들고 모세를 때리려고 할 때도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기둥을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

①여기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되 주야를 가리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동하면 장막을 거두고 행군했고, 두 기둥이 머물면 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구름 기둥은 사막의 태양으로부터 저들을 보호했고, 구름 기둥은 밤의 추위와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저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 여정 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믿/ 그 기둥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거치는 동안 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스라엘을 인도했습니다. 시121: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할/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은 사람들의 도움이나 인도처럼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나치게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하고 속이고 무너지기가 다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 남은 생애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십니다. 역사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산천도 변합니다만 하나님은 변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기둥이란 원래 '견교하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둥일 때는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할/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는 이 신앙의 이론이 복잡하게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문적인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적 동의나 그 어떤 논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참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믿/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6천년이 지난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도하고 일을 까요?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하고 르비딤 바위에서 생수가 터졌던 그 기적이 지금 이 땅에서도 계속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신앙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그때 6천 년 전이나 지금 이 순간이나 영원합니다. /믿/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추격하는 애굽 군대도 홍해에 수장시키시고 만나로 먹이시고 메추라기로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지팡이를 잡은 문제의 손이 기도할 때마다 승리케 하셨던 그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학문적으로 설명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들 속에 있던 여리고 성이 무너지며 마라와 같이 쓴 인생들이 달게 변할 수 있습니다. 시32:8절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할/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서원하여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간구하여 얻어낸 축복도 아닙니다. 하나님 스스로 우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머니! 아버지! 나 버리지 말고 잘 키워주세요!' 이렇게 간구하지 않아도 그 부모는 끝까지 그 생명을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육신의 부모가 그 아이를 지키듯이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잠3:6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약속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기만 하면 실패의 인생 길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믿/ 요8:12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치 않으리라! 또한 어두움에 다니지도 아니하리라!' /할/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십시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리라!' 이것은 학문적인 지식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큰 믿음, 굳센 믿음, 강한 믿음, 불같은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여러분, 그 걸음을 인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걷기는 걸어도 그 걸음을 인도함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노력과 수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그렇게 조심하는데도 질병에 걸립니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걸었는데 사업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를 가리켜 어떤 사람은 운명이라고도 하고, 팔자라고도 합니다.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운명과 팔자의 종이 되어 어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는 자에게는 운명이란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우리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막16:17-18절에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가 귀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능력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열쇠입니다. /아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명이란 없습니다. 운명이 설사 우리에게서 부귀를 빼앗아 갈 수 있다 할지라도 용기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팔자가 설사 우리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믿음은 절대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믿음이 귀합니다. 믿음이 역사가 나타납니다. '주여! 이 시간에 나에게도 기적을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린 때로 인도를 받으려는 것과 인정을 받으려는 것과 혼돈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어머니가 열이 나는 아기를 안고서 병원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가 열이 굉장히 나서 첫째 이런 약을 주시고, 둘째 이런 주사를 주시고, 셋째 이렇게 치료해 주시고, 여러분 그러면 의사가 치료해주겠습니까? 기분 나빠서 치료를 안 해줍니다.
왜? 어머니가 갖고 있는 방법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인도를 받는 것과 인정을 받는 것을 혼돈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를 받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방법과 계획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인정이 안 되면 하나님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느니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느니 그런 자기당착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자기에게 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②그렇다면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⑴모든 하나님의 인도는 말씀을 따라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저는 될 수 있으면 저녁시간이나 철야, 새벽제단에는 말씀 한 장씩을 읽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성령님의 조명을 받게 됩니다. 그때 깨달은 말씀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⑵모든 인도는 성령님의 증거를 따라 일어납니다. 롬8: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바울은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심에 대하여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누구에게 물어보고 자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주께 기도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소원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믿/
⑶모든 인도는 기도를 따라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 인도를 받습니다. 기도할 때 응답을 받습니다. 여러분 깊은 기도를 하면 깊은 길이 보입니다. 그러나 잠깐 기도하면 어렴풋이 보입니다. 생명을 걸고 결사적으로 하는 기도는 크고 비밀한 응답을 받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계집 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왜? 그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 없이 재판관 앞에 서있는 주님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불이나 쪼이며 물 건너 불 구경하듯 하다가 주님을 배신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주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늘 말합니다만 세상에 바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제일 바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하루의 계획표 위에 맨 먼저 기도시간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결코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기도의 힘은 하늘 문을 열고 닫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여! 자부심을 가지십니다. 우리는 이래 봐도 기도대학 출신입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어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
⑷모든 인도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통해서 옵니다. 여러분에게 권면해 드립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사람과 교제를 하십시오. 누가 가장 하나님의 강한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눈을 뜨셔야 합니다. 신앙은 기적을 낳는 주인공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사람과 교제하며 배우며 가까이 할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⑸모든 인도는 순종을 따라 나타납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모든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순종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자기 고집이나 자기주장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마다 이것이 혹시 '내 고집이 아닌가? 내 주장이 아닌가?'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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