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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리를 위해 살자! (고후 13:8-9)

by 【고동엽】 2022. 2. 6.

오직 진리를 위해 살자! (고후 13:8-9)

 

심리학자 '사무엘 존스'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조사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지나간 어두움의 삶을 생각하고 있더랍니다.
그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 어두웠던 과거, 실수했던 어제, 창피스런 과거'등 불필요한 생각을 40%나 하고 있었고, 또한 가능성이 없는 허무한 생각, 공중에 떠버릴 공상을 30%, 그리고 남의 말 때문에 상처가 된 일, 답답한 일, 분노, 흥분된 일을 12%,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가 10%이고, 정작 밝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은 겨우 8%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 욥이라는 사람은 열 자녀가 다 죽고, 그 많던 재산이 다 날아가고 아내는 저주를 퍼붓고 도망가 버리고 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악 창이 난 아픔 속에서도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하나님) 아시나니 그가(하나님)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만을 생각했습니다.
욥은 그의 신앙대로 주님을 만나 뵙게 되었고 다시 갑절의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욥42: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10절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하고 파고들면 축복된 생애를 살 수 있습니다. /믿/ 세계의 직업이 얼마 전만 해도 4만 가지라고 하더니 지금은 20만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 가지만 기가 막히게 잘 해도 기가 막힐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먹 하나만 잘 놀려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세계적인 전설의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는 주먹 하나로 '죠 프레이저'와의 경기에서 1분에 2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러니까 1초에 3백만 원씩을 번 샘입니다.
지금은 축구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차범근 선수는 발하나 가지고 세계에 이름을 날렸습니다. 지금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선수도 있습니다.
손기정씨는 마라톤 하나 가지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신앙의 사람 이영식 집사님은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모노드라마 연극 하나 가지고 세계를 돌고 있습니다.
일본 동경에 유명한 오뎅 집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오뎅은 그 국물이 맛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끓였다 중단했다'하면 맛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불을 피워 꺼트리지 아니하고 국물을 우러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은 3대가 되도록 한 번도 불을 끈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오뎅 국물 하나 잘 끓이는 것 가지고 그 집은 온 일본 장안에 소문이 나서 발 디딜 곳이 없도록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또 프랑스 꼬낙지방은 포도주 하나 잘 만들어서 세계적인 지방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만 잘해도 축복을 받고 유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믿/
여러분, 무엇이 자신이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최고가 되십시오! 그런데 세상은 너무나 경쟁사회가 되어서 살아남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가장 쉬운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하나 잘 믿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믿/
지금은 노사문제로 어려움을 받고 있는 '이랜드'의 박성수회장님은 예수 하나 잘 믿고 수지맞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세계적인 거부 '록펠러'는 예수 하나 잘 믿었다가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자가 세계에서 제일 부자로 바꿔졌습니다.
세상에는 예수 하나 잘 믿었다가 수지맞고 팔자 고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막9: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제목소개!▶

 

여러분,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하여 바울은 '오직 진리를 위해 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여기서 '진리'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오직 진리를 위한다'는 말은 '오직 예수를 위하여 산다'는 말이요,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란 말은 '우리는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들은 약해질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고린도 성도들의 강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신앙(믿음)을 의미합니다.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은 '잘못 놓여져 있는 것을 바로 잡는 것'이란 의미로 그들의 신앙이 온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은 고전후의 결론적인 부분으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들이 오직 진리를 위해 살면, 너희들의 신앙이 강해지고 온전해 진다'는 권면으로, '오직 진리를 위해 살라'는 권면이요, '온전한 믿음으로 살라'는 권면입니다. /아멘!/

1.오늘 주제가 진리입니다.

 

요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재판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모든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로마총독에게 예수를 넘겨주면서 십자가에 못 박기를 강요했습니다.
그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제사장이 너를 내게 넘겼다. 너의 죄가 무엇이냐?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럴 것 같으면 천군 천사들이 나를 지켰을 것이고 오히려 너희들이 멸망을 당했을 것'이다.
그때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너를 왕이라고 해서 나에게 넘겼는데 그러면 너는 왕이 아니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 말처럼 내가 왕이다. 내가 이 왕 때문에 이 땅에 왔다. 그러나 나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노라!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자 그때 빌라도가 '진리가 뭐냐'고 묻습니다.
도대체 진리가 뭐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진리를 찾은 경험도, 진리에 대한 고민도, 탐구도, 노력도 없었던 지도자입니다. 출세 성공만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 권력에 오직 우상처럼 숭배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 자신이 지금 죽게 되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오히려 이 말 속에는 비웃음 소리가 가득히 담겨져 있습니다.
'너는 지금 죄로 말미암아 고소를 당해 죽게 되었는데 진리가 먹여주고 살려주느냐? 진리가 너의 문제를 해결하느냐? 나를 보아라! 진리가 없어도 내가 얼마나 출세하고 잘 사느냐?'는 식으로 빌라도는 진리에 대해 비웃었습니다.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진리를 따라갈 수 있는, 진리의 주님이 앞에 섰건만 그는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거나 겸손하지 않고 진리를 짓밟고 진리를 무시하고 진리의 주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경솔한 그의 행동 때문에 빌라도는 지금도 저주아래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외우는 신앙고백 속에 보면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의 죄를 지금도 온 세계 성도들이 저주하고 있습니다.
'칼 바르트'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이 미국을 방문해서 여러 신학교에서 강연을 하였는데 그때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지금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가장 큰 진리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그 박식하고 유명한 노학자로부터 '아주 거창하고 깊고 심오하면서도 복잡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때 이 노학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예수! 그 분이 진리이십니다.' /할/
▶진리는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의 주님이십니다. 요14장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고, 요18장에 '내가 진리를 증거하러 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1장에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14:17절에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임하지 아니하고 누구나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귀히 여기고 진리를 따라가고 진리 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이유가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듯이 누구나, 아무 곳에서나 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없습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가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 앞에 지금 서 있고 진리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이제 우리는 진리를 위해 살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땅 끝까지 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 안에서는 덕을 세우고, 세상에서는 소금과 빛 된 천국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인생은 짧습니다. 인생이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왜 이렇게 세월이 빠른지 모릅니다. 모세의 고백을 들어 보세요! 시90: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날아가는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야곱도 창47:9절에서 바로에게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인생 속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까? ▶그런데 인생들이 무엇을 따라 삽니까?
⑴기분에 따라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분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선심을 씁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마음이 넓습니다. 그러나 그 기분이 늘 좋아야 하는데 조석 변으로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표준을 기분으로 맞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⑵사람들은 욕심에 따라 삽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두 손 꽉 움켜쥐고 나옵니다. 무엇이든지 움켜쥐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욕심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에 욕심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세에, 명예에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에 끌려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가시나무를 심어 놓고 사과를 따려고 합니다. 악을 행하고도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생명의 존엄성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부모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이웃을 죽입니다. 욕심은 무서운 것입니다.
약1:15절에 무엇이라고 했는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대 사도인 바울은 갈5: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속적인 욕심보다는 거룩한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와 빼앗는 자의 것'입니다. /믿/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 받는데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하면 수지맞습니다. /할/
⑶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바울도 본래는 좋은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양반이라고 교만했으며, 권세 있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경솔히 행동했습니다. 또 지식이 많다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그는 본래 이름조차 사울 이었습니다. 사울의 뜻은 '큰 자, 위대한 자'란 뜻입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나는 양반 집 가문에서 왔고, 학벌도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학문을 익혔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당당한 권세가 있으므로 또한 당시에 산헤드린 공회원들과도 트고 지내는 아주 의기양양한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그런 교만을 가지고 당시 예수 믿는 성도들을 무섭게 핍박했고 괴롭히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괴롭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메섹을 향하여 갑니다.
스데반집사를 죽이는 일에 사인을 보냈던 사울 청년이 이번에는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에 있는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의기양양하게 걸어갑니다.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뜻하지 않은 하늘의 영광의 빛이 비쳐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하였든지 사울은 말에서 떨어져 땅에 거꾸러졌습니다. 눈이 멀어져버렸습니다.
이때 영광의 빛 가운데 부드럽고 권위 있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깜짝 놀란 사울이 '주여 뉘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우리가 오후예배에 배우고 있는 행9장의 사건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울은 교만한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주여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주님을 핍박했습니다.' 주의 영광을 본 사울은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사울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도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작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지극히 작은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겸손해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켜 세상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의로운 면류관을 받아 쓸 것을 간증'하고 갔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는 중에 그의 마지막 인생을 간증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나는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만나고 나서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나의 모든 것, 시간, 건강, 지식, 생명까지도 진리를 위해 일하며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간증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가 세상 떠날 때까지 진리를 거슬려 본 일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오늘부터 기분 따라 살지 마시고, 욕심 따라 살지 마시고, 오직 진리를 위해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하면 수지맞습니다. /할/

 

2. 진리가 무엇인가?

 

우리는 참된 것을 가리켜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는 거짓이 없고, 단순하지만 진실합니다.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비바람이 불고 세찬 폭풍우와 같은 문제가 엄습해도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반석처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진리에 속한 것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한번 돌아봅시다.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도 100년 200년이 되면 허물어집니다.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도 언젠가는 폐차가 되어 없어집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피아노 책상 의자 컴퓨터 이러한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폐품이 됩니다.
들에 핀 아름다운 꽃잎들도 언젠가는 떨어지고, 파릇파릇했던 나무 가지들도 언젠가는 썩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지만,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24:35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막13:31절과 눅21:33절에서도 똑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기에, 천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헬라 사람들의 진리 개념은 사실이라고 하는 진리가 있고, 또한 거짓의 반대인 참이라고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의 내용을 정리하면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진리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말했습니다.
⑴진리는 사실입니다. 즉 셋에 셋을 곱하면 아홉이고, 다윗은 유대나라 왕이었다는 사실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⑵진리는 실재하는 것입니다.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⑶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⑷'그 실재를 깨달은 그만큼이 진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야기로, 17세기에 모든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을 때,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갈릴레오는 지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이 새로운 학설에 깜짝 놀랐고 특별히 교황이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레오를 교황청으로 불러 종교재판을 했는데, '지동설은 진리가 아니니 취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학설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취소한다'고 서명을 하고, 돌아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감옥에 붙들려 평생을 고생하다가 마지막에는 장님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견고, 확신, 진실, 안정'의 뜻으로 '거짓이 없는 참'을 의미합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원리, 선하고 거룩하고 완전하여 흠이 없고, 티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원어 속에는 '영원히 복을 준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이것이다 저것이다 떠들어도 중간에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인간의 죄악에 때묻은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다가 모자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선하고 거룩하고 완전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또 복을 안겨주는 것이 진리입니다. /아멘!/
그러면 그 진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 가운데는 없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변합니다. 약속도, 생활방법도, 사랑의 생각도, 사랑의 교훈도 변합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큰 소리 쳤지만 그의 종말은 수배지 외딴 섬에서 모래에 혀를 박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3. 그러면 진리는 누구입니까?

 

요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히13: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변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진리이시며, 그의 인격이 진리이며, 그의 교훈이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믿/
진리는 예수님 자신이시고 그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뱄었으며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씌었고, 예수님의 몸을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쳐 떨어져가고 온몸에는 피의 진 액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양손과 양발에는 대못이 박혀 나무에 달렸습니다. 이 얼마나 큰 아픔이요, 괴로움입니까?
그러나 그 억울한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의 약속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면 악한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여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흘만에 살아나리라!' 보통 약속입니까? 죽었다가 사시 살아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땅 위의 어는 누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까? 석가, 공자, 마호메트, 문선명이 지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덤에 장사되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까지 인생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흘만에 내가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이 약속대로 사흘만에 돌문을 굴려버리시고 영광의 옷을 입으시고, 찬란히 약속대로 살아나셨습니다. /할/
또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내가 올라가서 성령을 보내 주리라!' 이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에게 오순절 날 성령의 불 세례가 임하셨습니다. 성령의 불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진리를 바로 알고 그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진리도 알고, 예수님을 모르면 진리도 모르게 됩니다. ⑴예수님 자신이 진리요, ⑵그의 말씀과 약속이 진리요, ⑶그는 왕이시며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종말적인 심판 주라는 사실이 진리이며, ⑷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진리며, ⑸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는 장차 그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를 믿습니까? 믿는다면 이 진리를 따르고 이 진리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인도의 '간디'는 '진리가 신이고 신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참 지혜는 진리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돈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다. 여자는 좀 더 강하다. 그러나 진리는 가장 강하다'고 했습니다. 가장 강한 것은 진리입니다.

 

4.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요1: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할/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믿/
▶모든 것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의 길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입니다. 진리를 따라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은 진리의 길이며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따라가면 진리를 만납니다. /믿/
여기서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말씀대로 믿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17:17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①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원한 신비입니다. 사40: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무신론자 볼테르는 '앞으로 백년 안에 이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는 없어질 것이다'라고 장담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집은 성경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되었고, 성경을 쌓아두는 창고가 되었습니다.
②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신비스러움이 있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사람마다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변할 수 없는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는 눅16장의 부자와 나사로를 읽다가 변화되어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유명한 영화 벤허를 쓴 '류 웰리스'는 유명한 장군이며 문필가로서 천재였습니다. 그는 그의 친구 '잉 게르손' 대령과 함께 기독교를 영원히 말살시킬 수 있는 불후의 명작을 쓰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2년 간 도서실에서 반 기독교 서적을 읽다가 성경을 읽어봐야 기독교의 허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읽다가 말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벤허를 썼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시히 토키치'라는 사람은 살인마였습니다. 그는 '어린아이, 노인, 여자, 남자'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그는 사형을 언도 받아 사형 집행되는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 선교사 한 명이 감옥에 와서 그를 전도하러 갔다가 그의 악마 같은 표정에 겁이 질려 감히 전도하지 못하고 기겁을 하여 성경 한 권만 던져주고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살인마가 심심하여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차츰, 차츰 변화되어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부분에 와서는 잠시 성경에서 손을 떼고는 '주여! 이것이 정말 당신의 사랑입니까?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정말 내 죄를 용서하셨단 말입니까? 내 강퍅한 마음이 지금 이 말씀으로 깨졌습니다.' 엉엉 울면서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고백했습니다. 그는 결국 사형을 당했지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 간다며 '하늘가는 밝은 길'을 부르며 천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③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생명의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명의 책입니다. 생명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책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마귀를 쫓아갔다가 그 마귀에게 생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읽어버렸던 생명을 찾으려고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성경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66권은 온통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예표 했는데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 흘리실 것을 상징하는 피의 제사가 구약성경에 흐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주님의 피를 전하고 있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잃어버린 생명을 살리려면 예수님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로버트를 만들었으나 그 속에 생명을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생명은 만들 수 없습니다. 왜?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생명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할/
▶이태리 '시실리' 성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어떤 전도자가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전도자는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성경 밖에 없었습니다. 강도는 돈이 없음을 발견하고 화가 나서 성경책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한 분이 그 전도자의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날 기억하시나요?' '누구 신지요?' '수년 전 강도 만나 성경책을 빼앗긴 일은 기억하시나요?' '네 그 사실은 기억합니다.' '내가 바로 그 강도입니다. 그 책을 가지고 가서 처음에는 심심해서 읽었는데 차츰, 차츰 나는 나의 죄를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강도 짓을 그만두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이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할/
강도는 그 성경을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강도를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바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말씀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요8: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영감을 받은 사도 바울은 갈5: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강하게 당부하셨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자유라는 말과 해방이란 말이 같은 개념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해방이라는 말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자유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누리는 해방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지로부터의 자유가 있고, 공포로부터,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정신적인 그 무엇에 속박되었던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얻은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진실하고 필요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⑴죄에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이 자유는 영적인 자유라고도 하고, 영원한 자유라고도 합니다. 이 자유야말로 근본적인 자유이며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구약에서 죄로부터 해방되고 자유 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한 마디로 간추리면 인간이 지은 죄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반드시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려야 합니다. 피가 죄를 사한다는 개념은 창3:21부터 나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벌거벗은 수치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인간의 수치 때문에 양이 죽어야 했고,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 땅에 인간의 죄를 사러 가는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주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롬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가까운 사람과 함께 동업으로 사업을 했다가 사기를 당하고 실패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주님의 부름을 받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 분은 지금 자신도 놀랄만한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자기를 속이고 사업을 망쳐 놓았던 그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얻은 것은 평화와 자유였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로부터 자유인이 됩니다. 죄는 우리에게 고민, 갈등, 불안 등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할/
⑵사망의 권세에서 자유 함을 얻습니다. 롬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렇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혈과 죄로 씻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건짐을 받고 저 영원한 영생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할/

 

5.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복이 있는가?

①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 슥4: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의 능력은 무섭습니다. 혈기 투성이었던 졸장부 베드로가 은혜를 받아 대장부가 되었습니다. 시골 무식쟁이 어부 인줄 알았더니 천하의 지혜 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지혜 자로 진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힘써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고 나서부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위해 살려고 애쓰면 나도 모르게 성령임이 오셔서 나의 인격을 새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담대한 사람으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깨끗한 사람으로 사랑의 불덩어리로 만들어 주십니다. 내 인격이 새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사업을 하면 사업이 크게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이 직장에 나가면 직장이 크게 복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아멘!/
②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③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④영원히(영생) 살게 됩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⑤이제 우리는 진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일1:3-4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인간의 관심은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분은 수확이 많기를 바라고, 사업하는 분은 수입이 많기를 원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빨리 승진하는 것을 원합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해서 진학하기를 원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게임에서 우승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자기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항상 잘되기를 염려하고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든 사람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천하보다도 한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딤전2: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잘못되어서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믿는 자녀에 대해서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은 다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다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오직 말씀 안에 사십시다. 오직 예수님 안에 사십시다. 그리하면 복을 받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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