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야곱! (창 28:10-22)
창세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 장과 족장들의 삶과 신앙을 기록한 족장들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그 가운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요즘말로 표현하면 저명한 가문의 출신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가문은 바로 자신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이요,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미국 케네디가가 유명하다고 합니다만 어찌 감히 야곱의 가문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야곱은 어디까지나 투철한 현실주의자이면서 꿈은 하늘에 둔 자였습니다. 후에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면서도 하늘의 복을 탐내고 양보하지 않고 이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후에는 하늘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인물입니다. 오늘날 유대 나라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야곱도 한 때는 속이고 속는 인생살이를 살았습니다. ▶물건을 살 때 미국 사람은 상품이 얼마나 실용적인지를 본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은 그 상품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본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은 디자인을 먼저 꼽는다고 하고, 중국 사람은 얼마나 값이 싼지를 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 상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먼저 묻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 한국인의 모습은 "남을 속이고 또 남에게 속아 사는 모습"을 꼬집은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야곱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야곱은 '사기꾼, 속이는 자'입니다.
야곱을 한번 진단해 봐야 우리의 모습도 나옵니다. 야곱은 욕망덩어리였습니다. 욕심도 많았고 소유욕도 강했고 남의 것을 탐내고 속이는 사기성이 아주 가득했던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형을 속이고 눈 어두운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입니다. 그 형은 동생에게 속임 당하고 피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속은 후 창27:33절에 보면 '심히 크게 떨었다'고 했는데 그 말은 '아들의 교묘한 사기성에 그만 치를 떨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오늘 현대인들의 모형이고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이 가진 좋은 것은 반드시 꾀를 써서 뺏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꾀와 수단을 동원하고 부모도 형제도 외면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은 오늘 현대인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야곱처럼 자기의 이기적인 성을 쌓느라고 야단법석들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속이고 빼앗고 탐욕스럽게 긁어모으느라 혈안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이런 야곱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이 온통 갈등과 거짓과 불화로 싸여 있습니다.
야곱이 그 욕망을 채우려다 마침내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형 에서는 그 소중한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장자 권을 팔아먹을 정도면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뺏으면 다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얻기도 했지만 잃은 것도 많습니다. 우선 그는 버림을 받습니다. 형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년 동안 온갖 설움을 다 받고 살아갑니다. 20년 동안 처가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머슴살이를 하는 동안 자기가 속였듯이 자기도 장인으로부터 똑같이 속임을 당합니다.
본문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야밤에 도주하다가 도중에 광야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야곱은 가나안 집에서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의 예루살렘에서 이라크 땅으로 걸어갔다는 말입니다. 그 길이 얼마나 긴 거리입니까? 그 길을 가다가 하루 밤 광야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이불 삼아 돌로 베개하고 처량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 밤이 야곱에게 가장 두려운 밤입니다. 그곳은 언제나 맹수의 위협이 있는 곳이고, 곤충, 뱀, 전갈이 와서 쏠는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또 언제 강도가 올는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야곱은 그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죄송한 마음, 후회스런 마음' 별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한없이 후회하고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 '뉘우침! 회개의 눈물' 이것이 복입니다. 사람들이 '후회! 뉘우침의 눈물'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야곱 일수도 있습니다. 야곱과 똑같은 '탐심, 거짓, 속임, 인본주의 자'들이요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야곱 그대로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분도 받았으나 변화되지 못한 채 아직도 나 본위이고 자기이익에 혈안이 되고 형제도 속이고 이웃도 속이고 떼어먹고 손해 끼치고 피해주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모두 야곱입니다.
야곱이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그 날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야곱은 평생 남을 속여먹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믿/
▶'테레사' 수녀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유층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교사로 20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여인의 비명소리를 듣게 됩니다. 보니까 위독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돈이 없고 또 신분이 낮아서 치료를 받을 기회도 없다는 통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어머니의 품에서 죽어갔습니다.
테레사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순간 하늘로부터 내려 쪼이는 빛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만난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셨듯이 이 테레사를 변화 시켰습니다. 그때 테레사가 밀려오는 감동에 힘입어 "이제부터 내가 서 있을 곳은 사립학교 강단이 아니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곁이다"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가 평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런 그는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성녀'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헨리 나우웬'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책을 30권이나 써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을 너무 일찍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그렇게 만족해 살아가던 어느 날 그 교수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그 교수는 충격을 받고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결론 내리기를 지금까지 나의 삶은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지독한 이기주의적 삶을 살았다고 회고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정박아시설에 들어가 남은 인생을 봉사의 삶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힘든 길을 택하느냐?" 하자 "오르막길에서는 칭찬과 성공에 가려서 예수가 보이질 않습니다, 나는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더 가까이서 만나고자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할/
인생의 성공시대에는 예수가 안 보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욕망과 승부 욕으로 가득 차 있으면 예수가 더욱 안 보입니다. 그때는 탐욕만 커져서 형제의 것을 탐하고 부모를 속이고 남의 것을 탐내고 손해를 끼치고 빼앗고 자기본위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 갇혀서 야곱처럼 빼앗고 사기치는 일에만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마다 속임 당하고 고통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빨리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꿔져야 합니다. /믿/
▶다시 본문의 야곱을 생각해 보자! 야곱은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채서 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정든 땅, 부모형제를 떠나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 땅을 향하여 가다가 한 지점에 이르러 해가 졌습니다. 그는 마음도 몸도 지쳐있었고,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들판에 누워 잠을 자는데 돌이 하나 있어서 그것을 베개삼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돌 베개를 취하여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사닥다리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쭉 뻗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닥다리 꼭대기로부터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고백하고 야곱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자기의 속임수의 결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는 외로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외로움을 통하여 벧엘의 은총을 체험하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외로울 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고난과 외로움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욥은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하나님)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야곱도 속임수로 장자 권을 빼앗았다가 고난을 자초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까지도 사용하셔서 벧엘의 은혜를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제목이 '하나님을 만난 야곱!'입니다.▶
1.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한 돌을 취하여 돌 베개를 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11).
"한 돌을 취하여" 이 돌은 버려진 돌입니다.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한 것입니까?
시118:22절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다윗의 예언을 통하여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교회의 머릿돌로 세우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마21:42절에서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엡2:20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요, 그 돌은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집,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야곱은 버려진 돌을 머릿돌로 삼아 제단을 쌓으니 성전의 기둥이 되었고 거기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니 교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굴러다니는 쓸모 없는 돌멩이처럼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기둥으로 세우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기름이 부어진 신령한 곳입니다. /아멘!/
2. 돌 베개의 영적인 의미 몇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돌 베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삶을 의미합니다. ▶베개는 우리들의 잠자리를 평안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안락함을 주는 베개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권력의 베개를 찾습니다. 재물의 베개, 명예의 베개, 정욕의 베개를 찾습니다. 삼손은 베개로 삼아서는 안 될 들릴라의 무릎을 베개삼아 자다가 머리칼이 잘리고 눈이 뽑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베개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돌 베개 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가 임하는가?
①평화의 잠을 약속합니다.
사실 베게는 편안한 잠자리의 기본입니다. 푹신한 침대는 없어도 베게는 있어야 잠을 잡니다. 시127:2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러분!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불면증으로 고통 받는 분은 당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런데 돌 베개는 단잠을 약속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단잠을 주시는 분이요, 교회가 단잠을 주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이 밤잠을 못 이룹니까? 세상 근심 걱정, 염려, 우수사려 속에 파묻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께 맡긴 자들입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오늘 이 자리가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다 우리 주님께 맡기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요14: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②돌 베개는 축복의 꿈, 계시의 꿈을 꾸게 합니다(12).
"꿈에 본즉" 야곱은 돌 베개를 베고 자다가 계시의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나 축복하시기 전에 반드시 마음속에 꿈을 넣어 주시고 그 꿈을 따라 축복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세상의 지도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 때문에 고난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까지라도 그 꿈을 이루시는 발판으로 삼으셨습니다.
믿음은 바로 꿈입니다. '바라보는 것의 실상'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그것을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축복의 꿈을 가지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이야기입니다. 늙은 의사 한 명이 평생을 연구하여 코카콜라를 조제법을 만들었습니다. 한 약국 주인이 이 의사에게 그 조제법을 팔라고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그 조제법을 자기에게 팔기만 하면 애틀랜타를 세계 제일의 상업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이익금으로 대학을 세워서 젊은이들을 양성하겠다고 꿈을 펼치며 말했습니다. 그 의사는 그의 꿈에 감동이 되어 코카콜라 제조법을 500불에 팔았습니다. 그는 코카콜라를 온 세계를 덮게 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코카콜라 회사를 창설한 아니켄들러입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샤르뎅은 '세계는 꿈을 가진 자가 가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양 속담에는 '벌레의 눈을 가진 자는 망하지만 새의 눈을 가지고 멀리 보는 자는 이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들에게 '소망, 꿈, 비전'을 주는 곳입니다. 오늘 이 강단에서 큰 꿈을 잉태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약속의 꿈을 가지십시오, 저 낙원의 꿈을 가지십시오, 병든 사람은 건강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십시오, 실패한 자는 성공의 꿈을, 불화가 있는 집은 화목의 꿈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예수를 만나겠다는 야무진 꿈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 주님의 능력은 크신 분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할/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붙잡으세요!
등산가, 고상돈씨는 마라술로 정상에 우뚝 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또 그려보았더니 어느 날 그 꿈이 이루어 졌다고 했습니다. 콜롬버스는 그의 일기장에서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고 매 페이지마다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꿈대로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은 돌 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늘의 계시의 꿈을 꾸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꿈이 잉태되는 자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③돌 베개는 구원의 길로 가는 곳입니다.
본문은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사닥다리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하나님과 죄인을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사닥다리입니다.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또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얻을 수 없고, 교회를 떠나서도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하늘가는 사닥다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환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시험이 강하게 닥쳐도 사닥다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으십시오! 이제 꼭 붙잡는 자는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십시오, 사닥다리를 붙잡고 난 뒤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이제 자신을 맡겼으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십시오, 신앙은 올라가야 합니다. 나중에 하늘나라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믿/
▶사닥다리는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이 사닥다리는 벧엘 들판에 누워 있는 낮고 천한 야곱이 높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진 사닥다리입니다. 이 사닥다리는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내리면서 성도의 어려운 사정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 아뢸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내려오는 통로가 됩니다. 이 사닥다리는 하나님의 사닥다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요1:51절에 나다니엘을 부르실 때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 위에 오르내림을 보리라" /할/
성도의 생활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사닥다리를 어떻게 올라가야 할까요?
⑴위만 바라보고 올라가야 합니다.
위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항상 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골3: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⑵사다리를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놓치면 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놓쳐 버리면 그 순간 천국 길에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단단히 붙잡아야합니다. 환란. 시험의 바람이 불어 올 때에는 더욱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⑶사다리에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해야 합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⑷사닥다리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착실하게 올라가야 합니다.
중간에서 포기하거나 쉬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의 특징은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새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상적인 성도라면 꾸준히 성장해야 합니다. 왜 꽃을 피우지 못하나요? 왜 열매를 맺지 못하나요? 성장하지 못하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은 살아있기에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멘!/
④돌 베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13).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서 계신다고 표현될 때는 아주 위급할 때나 아주 어려울 때 꼭 도와주어야 할 때를 나타내시는 표현입니다.
행7:55절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예수님이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교하는 스데반의 영혼을 받아 주시기 위해서 서 계신 것입니다.
지금 야곱이 어떤 처지입니까?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합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자에게 나타나 주십니다. 서서 있다는 것은 보고 있다는 것이요, 보고 있다는 것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관심을 가지고 보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스스로 계신 분을 의미합니다. 의역하면 '약속대로 지켜주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 문제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약속을 못 지키는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믿어봤자 별 볼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우리들에게 주시고 그 언약들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⑤돌 베개는 계속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13-15).
지금 야곱이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자는 외롭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에게 엄청난 미래의 청사진을 주십니다. 오늘 이 자리가 야곱이 받은 그 축복을 받는 자리입니다. /믿/
▶무려 7가지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⑴13절'하' "너 누운 땅을 내가 저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축복입니다. 땅만 있으면 땅땅거리고 살 수 있습니다. 땅이 돈입니다.
⑵14절 '상'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자손의 축복입니다. 자손을 축복하되 땅의 티끌처럼 퍼져 동서남북에 편만하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⑶14절 '하'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이 복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어지는 샘 줄기의 복입니다.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 복을 우리 모두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⑷15절 "네가 너와 함께 있어" ▶돌 베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동행의 축복입니다. 즉 임마누엘의 복을 받는 곳입니다. '네가' 누구인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똑 소리가 납니다. 형통의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형통한 복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받은 복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을 받으십시다. /할/
⑸15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야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질도, 건강도, 행복도, 생명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십니다.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일곱 배나 더 뜨거워진 풀 무불 가운데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를 지켜주셨습니다.
⑹"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귀향의 축복입니다. 또 '이끌어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헤매는 인생들을 소망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생명의 강가로 건져주십니다. 실패 속에, 질병, 염려, 우수사려 속에 있는 인생들을 이끌어 올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이끌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합니다. 어디까지 이끌어 주십니까? 가나안 땅까지, 저 천국까지 이것이 하나님의 '견인'입니다.
⑺"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성취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불리해지면 떠납니다. 이익이 없으면 떠납니다. 형제도, 이웃도 멀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에 처해도 떠나지 않습니다. 벧엘 광야 들판에 내 팽개쳐진 야곱에게 오셔서 하나님은 '너의 소원이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것이 성취의 축복입니다. /믿/
▶여기까지가 벧엘 광야에 누워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형편에 있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까?
⑴죄인 야곱을 찾아오시고 만나주셨습니다.
야곱이 한 일을 보아서는 오히려 정죄를 당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 편에서 찾아오셔서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기적입니다.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믿/
⑵하나님은 극히 불안하고 답답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두려움 속에 쌓여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자는 야곱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장래에 대한 보장을 약속해 주시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불안한 시대입니다.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무거운 쇳덩이로 눌려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멘!/
⑶하나님은 외롭고 고독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야곱이 홀로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험한 인생길 가는 동안 때때로 야곱과 같이 외로워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우리 주님은 그곳에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⑷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개나리 봇짐하나만 가지고 가는 그 현장에 우리 주님이 오셔서 만나 주셨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소유하였을 때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할/
▶여기 중요한 진리는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만나주십니다. /할/
3.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20-22)
그의 처신이 중요하고 변화가 중요합니다. 20절을 보면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야곱의 서원기도입니다. ▶야곱은 세 가지 소원을 먼저 말씀드리고, 다시 세 가지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소원을 자기의 유익을 위함이고, 서원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행위입니다.
▶먼저 그의 세 가지의 소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재 다짐하고 있습니다.
①"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재차 다짐합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이런 기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기도는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응답 될 때까지!
②"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의식주를 해결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③"나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이 세 가지 약속을 전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신앙이 귀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나와 함께 계시사" 16절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창35:3절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야곱의 신앙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계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나를 지켜달라는 것은 안보에 관한 것입니다.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달라는 것은 의식주, 즉 생존의 조건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와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신앙의 진면목은 자신의 소원만 기도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겠다고 하는 서원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은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서원기도는 세 가지입니다.
①21절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서원입니다. '내가 평생토록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는 신앙의 서약입니다. 믿음의 서약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고백이 중요합니다. 나의 하나님, 이 한마디의 고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우리들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물론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전 세계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고 소개할 수 있습니까? "제 남편입니다. 제 아내입니다." 이렇게 소개해야 옳은 표현입니다.
요20:28절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도마가 고백합니다.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고백은 주관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은 언제나 밖으로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고백 못한 채 혼자서 애태우는 사랑은 짝사랑입니다. 표현 못하는 신앙, 고백 못하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롬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한평생 하나님만 섬기고 살겠다는 고백이고,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야곱은 그의 인생행로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우리도 내 삶의 터전 위에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복을 받습니다. /할/ ▶중요한 것은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욥22:21절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②22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내가 여기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습니다' 라는 서약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복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랑과 축복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그 당시는 교회가 없을 때였고, 성전도 없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훗날 그것은 구약의 성전이 되었고, 오늘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두 번째 서원은 '성전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조상인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제단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한 마디로 예배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할/
제일 가까운 사람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은 늘 시간마다 만나는 사람입니다. 10년이나 20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라면 이름뿐이지 끈끈한 친구는 아닙니다. 얼굴이 멀어지면 정도 멀어집니다. 예배가 뭡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소홀히 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기로 한 시간에 딴 데로 갈 수 있습니까?
③"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우리는 내 것, 네 것도 분별할 줄 알아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십일조(레27:30,32)와 첫 것, 첫 열매(민3:12-13), 그리고 서원제물(신23:21)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세 번째 서원은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야곱의 약속은 곧 우리의 약속이 되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교회나 목사의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아직 못하거나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결심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신앙의 씨앗, 축복의 씨앗, 기적의 씨앗입니다. 신14:22-2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백성들을 축복하겠다는 언약인데, 29절의 결론은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할/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범사에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또 말3: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구 소련에는 3대 기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많은데 종이가 없고, 원유는 많은데 휘발유가 없고, 땅은 넓은데 식량이 없습니다. 이것이 구 소련의 3대 기적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고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까? 러시아가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 믿음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시베리아로 유배시키면서부터 그런 저주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되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지하자원이 없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인구가 500만 밖에 안 되어 사람이 없습니다. 세 가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믿기만 하면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 /할/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만나면 모든 면에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주님은 만나야 합니다.
▶옛날, 어떤 스승이 제자들과 함께 메밀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메밀이 자라 꽃을 피웠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스승에게 말하기를 "이제 메밀은 먹은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그러자 스승이 말합니다. "먹어야 먹은 것이지!"
며칠이 지나 메밀을 타작하여 거두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자가 스승에게 "이제 메밀이 먹은 것과 다를 바 없지요?" 그러자 스승이 "먹어야 먹은 것이지!"
타작한 그 날, 메밀을 찧어서 묵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솥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었고, 메밀 묵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가 "이제는 메밀을 먹은 것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래도 스승은 여전히 "먹어야 먹은 것이지!" 그런데 묵을 그릇에 담아서 스승에게로 가지고 가던 제자가 스승의 방 앞에서 그만 넘어져 묵 그릇을 엎질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스승이 말합니다. "보아라, 내가 뭐라고 하더냐? 먹어야 먹은 것이라고 하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야곱이 만난 그 하나님을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 만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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